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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세 안 보이는 국가 리더십 단비가 내린 바로 다음날 일찌감치 대통령이 가뭄피해 현장을 찾은 모습은 다소 어색해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일요일인 어제 오전 최대 가뭄피해지역 가운데 하나인 강화도를 찾아 농민들을 격려했다. 공교롭게도 전날 강화도를 포함한 수도권에는 상당량의 비가 내렸다. 오전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의 양은 프로야구 야간경기가 취소될 정도였다. 강화도 역시 해갈이 될 만큼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지역에 따라 수도권의 다른 곳에 버금가는 강수량을 보였다. 30년 만에 닥친 최악의 가뭄인데다 어제 내린 비가 부족한 양이라니 최고지도자가 농사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 광경은 큰 사건이 터질 때마다 한 박자씩 늦는 대통령의 언행을 다시 떠오르게 한다. 한 농민의 말이 흥미롭다. “대통령께서 .. 더보기
치킨호크 ‘법무총리’ 후보자 오늘부터 국회 인사청문회장에 서는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는 야누스의 얼굴을 닮았다. 법과 양심의 잣대가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하다. 남에게 매서운 원칙을 들이댄 그의 삶은 편법·탈법·반칙투성이로 얼룩졌다. 남들에겐 철저하게 적용하는 애국심과 국가관도 정작 본인에겐 느슨하고 형식논리에 급급하다. 그의 프로필은 법과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공직자다. 실제로 그는 준엄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하고 ‘미스터 국가보안법’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게 전혀 어색하지 않다. 청와대도 그를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정치개혁을 이룰 수 있는 적임자’라고 치켜세운다.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도록 강요하는 황 후보자는 막상 의심쩍은 병역..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43)--<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인간이 끊임없이 이상향을 갈망한 흔적은 동서양과 고금을 가리지 않고 발견된다. 고대 페르시아에서 유래한 파라다이스, 고대 그리스의 아르카디아, 그리스 신화의 엘리시움, 남아메리카 아마존 강변에 있다는 상상 속의 엘도라도, 성경 속의 에덴동산, 불교의 정토(淨土), 중국의 무릉도원이나 낙원, 제임스 힐턴의 소설 ‘잃어버린 지평선’에 설정된 티베트의 샹그릴라,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오는 섬 라퓨타, 허균의 홍길동전에 등장하는 율도국에 이르기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어떤 이는 이상향을 유토피아와 아르카디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유토피아는 인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인공적 이상사회다. 이에 비해 아르카디아는 양떼, 산새, 들새와 초원에서 평화롭게 사는 목가적 이상향이다. 동양에서는 요순시.. 더보기
사전에 등재된 국해의원(國害議員) 한 고등학교에서 한자능력시험을 치렀다. ‘다음에 열거되어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통폐합해 하나의 사자성어로 표현하시오.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 후안무치(厚顔無恥), 용두사미(龍頭蛇尾), 조령모개(朝令暮改), 일구이언(一口二言), 횡설수설(橫說竪說), 중구난방(衆口難防), 갑론을박(甲論乙駁), 당동벌이(黨同伐異), 우왕좌왕(右往左往), 이합집산(離合集散), 풍전등화(風前燈火), 유야무야(有耶無耶), 오합지졸(烏合之卒), 안하무인(眼下無人), 막무가내(莫無可奈), 안면박대(顔面薄待), 부정축재(不正蓄財), 뇌물수수(賂物授受), 책임회피(責任回避), 일단부인(一旦否認)’ 답을 제대로 쓴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학생은 장학금을 받아 중국유학을 가게 됐다. 정답은 국회의원(國會議員).. 더보기
개구리와 6070 정치 사람들은 곧잘 애꿎은 개구리를 비판의 도구로 삼는다. ‘냄비 속의 개구리’라는 그럴듯한 예화가 대표적이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금방 뛰쳐나오지만 차가운 물이 담긴 냄비에 넣은 뒤 서서히 데우면 뜨거운 줄 모르고 그 안에서 죽고 만다는 얘기다. 위험을 감지하지 못하거나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과 조직을 비판할 때 비유하곤 한다. 이 이야기는 전혀 사실이 아니지만 줄기차게 인용된다. 잘못 알려진 지식임에도 이를 모르는 사람들과 언론, 인터넷의 전파력이 낳은 부작용이다. ‘냄비 속의 개구리’ 일화는 19세기에 했던 한 과학자의 실험이 잘못 전해져 오늘날까지 내려온다. 그 후 수많은 실험 결과, 정상적인 개구리는 어느 정도 온도가 높아지면 냄비에서 뛰쳐나온다. 개구리가 뇌사 상태..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42)--<통치론> 존 로크 영국 법정에서는 지금도 하얀 가발을 착용한 법관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2008년부터 민사·가정재판에서 가발 착용을 금지했으나 형사재판에서만은 예외로 했기 때문이다. 흰 가발은 법정의 존엄을 상징한다. 재판내용이나 판결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것을 우려해 판·검사나 변호사에 대한 신변보호 수단으로 익명성이 높은 가발을 이용한다는 설도 전해온다. 천장이 높은 영국 법정이 추웠기 때문에 방한용으로 가발이 등장했다는 또 다른 주장도 있긴 하다. 하지만 기능성만으로 300년 넘게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영국 판사와 변호사 대다수가 여전히 법정에서 가발 착용을 원하는 반면 국민은 시대착오적인 관습으로 여긴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천부인권’ 사상에 바탕을 둔 시대정신에 비춰보면 당초 착용 동.. 더보기
시기와 순서가 중요한 정상외교 박근혜 대통령의 애국심은 남다르다. 그의 지지자들도 그것만큼은 추호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운동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애국심을 믿어달라고 할 정도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도 선거 세일즈 포인트의 하나로 여긴다는 뜻이 담겼다. 김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지금 정치인 중에서 박근혜만큼 애국심이 깊은 사람은 없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한참 뒤떨어진다”고 비교했다. 박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국민에게도 애국심을 다그치듯 당부한다. 사관학교 졸업식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 때면 ‘불타는 애국심’까지 주문하곤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도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기에 대한 경례.. 더보기
성완종, 박근혜, 리콴유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인터뷰 육성녹음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할 사람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다. 최근 타계한 리콴유야말로 박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첫 사례로 리콴유를 선택한 것도 그런 상징성이 크다. 리콴유의 가장 탁월한 업적이 부정부패를 서릿발같이 다스려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만든 일이다. 싱가포르가 세계 최상위권 부자국가로 우뚝 선 것은 부패 정치인과 공무원을 일벌백계로 척결한 덕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 비결은 자신과 최측근에게 한층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낸 데 있다. 1995년 리콴유의 부..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41)--<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공부와 운동은 물론 리더십에서도 남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 당연히 자신감, 자긍심, 열정이 넘쳐난다. 진취적이고 도전의식이 강하다. 성실하고 낙천적이면서 실용적이다. 관심 영역도 넓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지만 평등주의와 이상주의를 추구한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과 댄 킨들런 교수가 2007년 제시한 신조어 ‘알파걸’의 특성이다. 미국 10대 엘리트 소녀들을 의미하는 알파걸은 ‘최상’ ‘으뜸’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그리스어의 첫 자모인 알파(α)와 걸(girl)을 결합한 낱말이다. ‘혁명의 딸들’이라는 별칭이 붙은 알파걸들은 여성해방 운동가들의 딸이나 손녀뻘이다. 은수저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눈물어린 투쟁의 과실을 물고 태어난 첫 세대다. 킨들런 교수는 알파걸이 시몬 드 보부아.. 더보기
거꾸로 가는 언론·표현의 자유 18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국에선 정부를 비판하는 일은 무엇이든 범죄행위였다. 말이든 문서로든 정부를 비판하면 모두 처벌 대상이 됐다. 국왕의 권위를 하늘처럼 여기는 ‘보통법’(Common Law)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진실이 더 클수록 명예훼손도 그만큼 커진다’는 발상까지 담고 있었다. 진실할수록 더 큰 피해를 주기 때문이라는 억지스러운 주장이다. 여기에 도전한 이들은 ‘케이토’라는 필명으로 편지 형식의 연재 에세이를 쓴 정치철학자 존 트렌처드와 토머스 고든이었다. ‘정부가 국민을 위해 운영되려면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가 있어야 하고 정부정책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핵심 사상이다. 두 사람은 1720년 ‘진실이 명예훼손의 방어기제가 돼야 한다’는 혁명적인 생각을 처음 전파했다.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