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교에서 한자능력시험을 치렀다. ‘다음에 열거되어 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를 통폐합해 하나의 사자성어로 표현하시오.
마이동풍(馬耳東風), 우이독경(牛耳讀經), 후안무치(厚顔無恥), 용두사미(龍頭蛇尾), 조령모개(朝令暮改), 일구이언(一口二言), 횡설수설(橫說竪說), 중구난방(衆口難防), 갑론을박(甲論乙駁), 당동벌이(黨同伐異), 우왕좌왕(右往左往), 이합집산(離合集散), 풍전등화(風前燈火), 유야무야(有耶無耶), 오합지졸(烏合之卒), 안하무인(眼下無人), 막무가내(莫無可奈), 안면박대(顔面薄待), 부정축재(不正蓄財), 뇌물수수(賂物授受), 책임회피(責任回避), 일단부인(一旦否認)’
답을 제대로 쓴 학생은 단 한 명뿐이었다. 그 학생은 장학금을 받아 중국유학을 가게 됐다. 정답은 국회의원(國會議員)이었다.
최근 인터넷에 부쩍 떠도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해학이다. 이 글은 국회의원을 지낸 홍준표 경남지사와 새정치민주연합 신계륜 의원이 ‘국회 특수활동비’를 집에 가져가 썼다고 고백한 이후 퍼나르기 인기품목으로 떠올랐다.
홍 지사가 국회대책비를 부인에게 생활비로 갖다 주고, 부인은 그 돈을 모아 비자금을 만든 것은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섰다. 신 의원이 국회대책비를 아들 해외 유학비로 쓴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국회의원들이 고액 연봉에다 온갖 특혜를 누리면서 국민의 피같은 세금을 ‘눈먼 돈’처럼 착복한 일이 들통 나자 유권자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는 듯하다. 국민은 두 정치인의 사례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공개적으로 문제가 불거지지 않으면 구렁이 담넘어 가듯 하는 집단 심보나 다름없다.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는 헌법재판관 재직 당시 특정업무경비를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이 드러나 사퇴에 그치지 않고 고발까지 당했다. 그 같은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도 국회는 남의 집 문제려니 하고 대책비가 제대로 쓰이는지 자체 점검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들의 이권인 특수활동비 폐지 법안은 3년째 계류만 해놓고 있는 상태다.
국회의 책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 나랏돈을 제대로 쓰고 있는지 감독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신들의 특수활동비는 내역을 공개하지도 않고 ‘쌈짓돈’처럼 쓰고 있었으니 말문이 막힌다. 국정감사나 예·결산 심의 때마다 청와대와 국정원, 행정부 간부들을 불러 특수활동비 내역을 따지던 국회를 보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 제격이다.
국회 특별위원회에 이해할 수 없는 경비를 지급하는 문제도 마찬가지다. 회의는커녕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국회 특별위원회가 법적 근거도 없이 월 600만원이나 쓰지만, 돈은 사실상 고스란히 위원장의 주머니로 들어가고 만다. 구설에 오르자 국회 운영위원회는 지난해 4월 특별위원회 경비에 대한 근거를 마련한다는 시늉을 내다 회의조차 열지 않고 있다. 국회 운영위원회 소위에는 입법활동비, 특별활동비, 입법·정책개발비 등에 대한 내역을 제출하도록 하는 국회의원 윤리실천특별법안도 계류돼 있지만, 그 뿐이다.
그 사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는 주장에 이어 얼마 전엔 외교관 여권까지 요구해 빈축을 산 적이 있었다. 그렇잖아도 국회의원 특권은 200여개에 이른다. 국민이 국회에 가장 바라는 일의 하나가 과도한 국회의원 특권 폐지다.
비난여론이 비등할 때마다 특권 내려놓기 개혁을 한다고 요란을 떨다 소낙비가 그치면 유야무야하고 마는 게 우리네 국회의원들이었다. 국회는 국가 기관이나 단체 가운데 국민들로부터 가장 낮은 신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잇단 조사결과에서 드러났다. 2000억 원대의 호화 의원회관도 비난의 대상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국해의원’(國害議員)이라는 낱말이 정식으로 등재돼 있다는 사실을 국회의원들은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나라와 국민들에게 해를 끼치는 의원’의 줄임말, 일부 국회의원들을 낮추어 부르는 표현’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붙여 놨다. 내년 4월 실시되는 20대 총선에서 ‘여의도 쓰레기 분리수거 전략이 필요하다’는 치욕스러운 구호까지 등장한 걸 아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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