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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41)--<제2의 성> 시몬 드 보부아르


 공부와 운동은 물론 리더십에서도 남자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더 뛰어난 경우도 많다. 당연히 자신감, 자긍심, 열정이 넘쳐난다. 진취적이고 도전의식이 강하다. 성실하고 낙천적이면서 실용적이다. 관심 영역도 넓다. 개인주의 성향이 짙지만 평등주의와 이상주의를 추구한다.


 하버드대 아동심리학과 댄 킨들런 교수가 2007년 제시한 신조어 ‘알파걸’의 특성이다. 미국 10대 엘리트 소녀들을 의미하는 알파걸은 ‘최상’ ‘으뜸’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그리스어의 첫 자모인 알파(α)와 걸(girl)을 결합한 낱말이다. ‘혁명의 딸들’이라는 별칭이 붙은 알파걸들은 여성해방 운동가들의 딸이나 손녀뻘이다. 은수저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눈물어린 투쟁의 과실을 물고 태어난 첫 세대다.


 킨들런 교수는 알파걸이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원제 Le Deuxieme Sexe)이라는 책에서 예견한 대로 탄생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보부아르는 이 책에서 경제적·사회적 평등의식으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나 가능성이 무한대인 여성들이 태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킨들런 교수가 말했듯이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지금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여성들의 잠재의식을 일깨우고, 이후 세대에게 길을 터줬다. 알파걸을 포함해 모든 현대 여성들이 이룩했던 수많은 변혁이 그녀에게 빚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제2의 성’은 여성의 위상을 높이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저작이다.

                                                                       

 

 

   이 책에서 가장 상징적인 문장은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대목이다. 가장 유명하고 자주 인용되는 문구이기도 하다. 이 말은 이미 1800년대에 여성참정권을 외쳤던 여성해방의 선구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약간 다른 표현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고대 그리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 현관 기둥에 새겨졌다는 ‘너 자신을 알라’는 경구가 소크라테스의 말로 더 유명해진 것과 흡사하다. 보부아르는 서양문화권에서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넓고도 깊게 천착했다.


 1천여 쪽에 이르는 이 책의 줄거리는 이렇다. 여성과 남성의 관계는 모든 분야에서 비대칭적이다. 여성은 남성에 종속되어 있고, 자유롭지 못하다. 여자와 남자가 신체적 조건에 차이가 있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신체적 차이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여자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남자 아이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기 시작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 여자 아이는 사회·문화적 환경 때문에 남자의 종속물이나 다름없이 길들여진다.


 여자는 성장해 가면서 사회의 강요와 구속을 한층 더 노골적으로 받는다. 그럴수록 여성은 스스로 ‘여자다움’이란 굴레를 쓰게 된다. 여성적인 것은 ‘다른 것’이다. ‘다른 것’은 정상을 벗어나는 것이다. 여성은 스스로를 정의내리는 것이 아니라 남성들의 시각과 가치를 통해 규정된다. 남성이 지배하는 문화는 여성을 경제적·정치적·육체적·정신적·법적·역사적으로 억압받는 존재로 만들었다.

                                                          

 여성이 독창적인 삶을 개척해야 한다고 일깨워주는 남성은 물론 여성도 없다. 여성은 관습에 얽매이게 된다. 자연히 여성은 불가피하게 남성의 보호나 사랑을 받으며 안주한다. 사랑의 의미도 남녀에 따라 하늘과 땅 만큼 큰 차이가 난다. 사랑이 남자에게는 일시적인 관계이며 생활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 반면, 여자에겐 인생 자체다. 사랑의 결실인 결혼도 여성에게는 옴짝달싹 할 수 없는 구속력을 지니지만, 남성에겐 남성 우위 사회를 떠받치는 버팀목으로 작용한다. 결혼이 여성의 자유를 구속하는 현실에서는 부정돼야 한다. 남자들은 그동안 남녀 역할 분담으로 인한 차별장치를 만들어 두고 이를 ‘불평등속의 평등’으로 미화해 왔다. 남녀가 조화롭게 살아가는 ‘성 차이 속의 평등’을 모색해야 할 때가 됐다.

                                                                       

                                                    <시몬 드 보부아르>

 

 보부아르 자신도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으로 세계적인 이목을 끌었다. 이 계약결혼은 1931년 2년간 시한부동거로 시작됐으나 1980년 사르트르가 죽을 때까지 50년간의 평생계약으로 끝났다. 보부아르는 여성 문제의 근원을 경제력에서 찾았다. 그는 여자가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한 경제적 자립부터 확보해야 한다고 외쳤다. 그가 사회주의운동이라는 도구로 여성 해방을 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보부아르는 출산이 여성의 경제적 자립을 위태롭게 한다는 이유로 모성애까지도 부정하는 과격성을 드러냈다.


 이 책은 남자들의 여자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면서 시작한다. “여자? 아주 단순한 거지. 여자는 자궁이며 난소야. 요컨대 암컷이지…남자들이 암컷이라고 내뱉을 때 그 말은 경멸하는 것처럼 들린다. 남자들은 자신을 수컷이라고 하면 더욱 득의만만해지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여자를 자연 속에 놓아주지 않고 그녀의 섹스 속에 감금시키기 때문이다.”


 보부아르가 다른 여성운동가들과 비교해 높이 평가 받는 까닭은 단순히 남성들을 비판하는데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으로 생물학, 정신분석학, 사회학, 신학, 철학 등 폭넓은 이론을 바탕으로 여성 권리 주장의 당위성을 천명했다.


 보부아르는 ‘미국의 흑인문제가 따지고 보면 백인문제이듯 여성문제도 실상은 남성문제’라는 시각으로 접근했다. 물론 남녀 차별 문제의 화살을 남성 쪽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다. 여성 스스로 차별을 부르는 각종 신화를 만드는데 일조했음을 시인한다. “여자들이 스스로 쟁취한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단지 남자들이 베푸는 것만 받아왔을 뿐이다. 여성들은 단 한 번도 독립된 계급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냥 운명에 체념해왔을 뿐이다.”

                                                                   

                                                   <장 폴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그렇지만 이 책의 결론격인 마지막 문장은 지나치게 도전적이지 않다. “이 주어진 현실 세계에 자유의 승리를 가져오느냐 마느냐는 우리 인간에게 달려 있다. 이 지고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남녀가 그 자연의 구별을 초월해서 분명히 우애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보부아르는 맨 처음 이 책의 제목으로 ‘타자, 제2의 존재’를 상정했다고 한다. 남자가 ‘본질적인 존재’인 것과 달리 여성은 ‘본질적이지 않은 존재’라는 의미였다. ‘쓸모없는 자’ ‘다른 곳에 있는 자’를 의미하는 ‘타자’라는 용어는 이 책에서 내내 되풀이되는 말이다. 두 번째로 생각한 제목은 ‘또 하나의 성’이었다. ‘제2의 성’이라는 마지막 안을 떠올리고선 ‘이것이다’라며 무릎을 칠 정도였다고 한다.


 1949년 이 책이 출간되자 프랑스 사회는 벌집 쑤셔놓은 듯했다. 남자 지성인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알베르 카뮈는 즉각 “프랑스 남성을 조롱했다”고 개인성명까지 발표해 격렬하게 비난했다. 가톨릭 신자였던 작가 프랑수아 모리아크는 “포르노”라고 쏘아붙였다. 바티칸 교황청은 이 책을 곧바로 금서목록에 올렸다. “성경의 이념도 남성의 여성 장악에 적지 않게 기여했다”는 대목이 교계를 결정적으로 자극한 것이다. 프랑스 공산당을 비롯한 좌파진영마저 보부아르를 싸늘하게 대했다. 여성해방은 계급해방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게 좌파의 주장이었다. 사실 이 책이 나온 1949년은 프랑스에서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지 5년 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이와는 달리 당대 여성들은 열렬한 호응으로 화답했다. 출간 1주일 만에 2만부가 팔려나갈 만큼 당시로서는 초베스트셀러였다. 1953년에 나온 영역 본은 2백만 부 이상 팔렸다. 미국 독자들로부터 엄청난 호평을 받은 뒤 프랑스에서 재조명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페미니즘 저서이자 현대 여성해방운동의 교과서로 불린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98년 ‘인간의 삶과 정신을 바꿔놓은 20세기 10대 논픽션’의 하나로 ‘제2의 성’을 꼽았다.


 1986년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나자 각계의 추도사에서는 ‘페미니즘의 성서’, ‘페미니즘의 어머니’ ‘여성운동의 최고사제’ 같은 숭앙의 언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2006년 프랑스 파리의 센 강에 서른일곱 번째 다리가 개통됐을 때 ‘시몬 드 보부아르교’란 이름이 붙여졌던 것도 ‘제2의 성’을 기리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파리의 다리에 여성 이름이 붙여진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2의 성’은 20세기 전반 여성 참정권의 획득 이후 다소 쇠퇴의 길을 걷던 서구 여성운동 제1의 물결을 20세기 후반 여성해방운동 제2의 물결로 승화시킨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집력이 부족했던 여성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성(Sex)과 사회문화적 성(Gender)을 구분하는 현대 여성주의의 운동은 보부아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의 신비’라는 저작으로 미국 여성운동의 기치를 높이든 베티 프리단을 비롯한 전 세계의 여성운동가들은 보부아르의 이 책을 읽고 무한한 용기를 얻었다고 입을 모아 회고한다.


 한국에서는 이 책이 초판 이후 거의 4반세기만인 1973년 처음 번역돼 나와 가부장적 전통을 무너뜨리는 일등 공신이 됐다. 여성주의적인 시각으로 쓰인 책 가운데 최초로 한국사회에 소개된 것이다. 한국의 여권운동가들과 여성학자들은 한결같이 이 책을 성전으로 여겼다.


 이 책은 지금으로선 그리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지 모른다. 여성학자들은 이 책이 위계적 이분법 비판보다 여성이 열등하게 평가된다는 점을 비판하는데 중점을 뒀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보부아르가 여성의 수동성과 여성의 과제, 성적 무지, 결혼에서의 역할 등 대부분을 19세기의 상황에 맞춰 서술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조차 성적인 계몽에 관한 한 1950년대 초까지 사실상 19세기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도 보부아르의 주장은 여전히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 여자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지고, 여성의 사회진출이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은 삶을 누리고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글은 월간 신동아 2015년 4월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