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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성완종, 박근혜, 리콴유

 검찰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와 인터뷰 육성녹음을 보고 박근혜 대통령이 가장 먼저 떠올려야할 사람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다. 최근 타계한 리콴유야말로 박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박 대통령이 외국 지도자의 장례식에 참석한 첫 사례로 리콴유를 선택한 것도 그런 상징성이 크다.


 리콴유의 가장 탁월한 업적이 부정부패를 서릿발같이 다스려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청렴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만든 일이다. 싱가포르가 세계 최상위권 부자국가로 우뚝 선 것은 부패 정치인과 공무원을 일벌백계로 척결한 덕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그 비결은 자신과 최측근에게 한층 더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 국민의 신뢰를 이끌어낸 데 있다.  


 1995년 리콴유의 부인 콰걱추와 장남 리시엔룽(현 싱가포르 총리)이 할인 가격으로 매입한 주택이 부동산경기 호황으로 급등하면서 특혜 시비에 휘말렸다. 부동산 투기행위로 부당이익을 얻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부인 콰걱추가 부동산 양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던 터여서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정당한 절차로 매입한 게 부정으로 여겨지자 콰걱추는 분개했다. 실제로 주택 개발업자가 리콴유의 가족이어서 특별히 할인가격으로 판 것도 아니었다. 시장을 시험해 보기 위해 누구에게나 할인 가격을 제시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리콴유는 총리실 직속 부패행위조사국과 한국의 금융감독원 격인 금융청에 더욱 철저한 조사를 요청했다. ‘투기 혐의 없음’이 명백히 밝혀졌음에도 리콴유는 시세 차익으로 얻은 100만 싱가포르달러를 모두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결정을 내렸다.  


 리콴유는 오른팔 같았던 인물의 부정부패행위에 대해서도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자세로 처결했다. 1986년 싱가포르 건국공신이자 리콴유의 최측근인 테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건설업체로부터 4천만 원가량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부패행위조사국 수사를 받게 됐다. 싱가포르 국민도 테치앙완이 장관직에서 물러나고 근신하는 정도로 마무리될 것이 예상했으나 리콴유는 더욱 엄정한 수사를 지시했다. 테치앙완은 소명할 기회를 달라고 리콴유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리콴유는 수사대상자를 면담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단호하게 거절했다. 테치앙완은 면담이 거부된 지 일주일 뒤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리콴유가 그의 빈소를 찾아가자 테치앙완의 부인이 시체 부검만은 하지 않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싱가포르 법은 자연사가 아닌 경우 부검을 의무화하고 있으나 그 정도의 부탁을 들어준다고 국민이 비난했을 리도 없다. 그럼에도 리콴유는 그것마저 매정하게 거절했다. 자신의 측근이라고 예외를 두면서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요구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테치앙완의 유족들은 한을 품고 싱가포르를 떠나고 말았다.


 성완종 전 회장이 현 정부 핵심 실세들에게 금품을 전달한 정황에 대한 수사도 박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통령과 여당 수뇌부가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검찰은 성역 없는 수사를 다짐하고 있지만, 그런 말을 수백 번도 더 들어온 게 우리 국민이다. 최고 지도자가 실천으로 보여줘야만 가능하다.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사람은 거의 하나같이 박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이 리스트에는 박대통령 자신의 대선자금 문제도 걸려 있다. 박 대통령이 그토록 존경하는 리콴유라면 어떻게 처리했을지 생각해보면 해답은 금방 나온다. 리콴유는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서는 어떠한 정치적 계산이나 타협도 하지 않았다.


 위장 전입, 병역 회피, 탈세, 부동산 투기 등으로 무장한 고위직 인사들이 국민에게 법을 지키라고 닦달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실정이다. 부정부패척결을 진두지휘하겠다고 선언한 국무총리가 그럴 자격이 있는지 청문회 과정을 지켜본 국민은 무척 의아해 한다.

 

  박 대통령이 리콴유에게 단 한 가지만 반드시 배워야 한다면 바로 ‘자신과 측근에게 더욱 엄정한 잣대’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인 2008년 싱가포르를 방문해 리콴유를 만난 뒤 “한 국가의 지도자가 갖고 있는 철학과 지도력이 그 나라의 운명을 바꾼다”고 밝힌 소회를 잊지 않았을 게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