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애국심은 남다르다. 그의 지지자들도 그것만큼은 추호의 의심을 품지 않는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4·29 재보궐선거운동을 하면서 박 대통령의 애국심을 믿어달라고 할 정도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도 선거 세일즈 포인트의 하나로 여긴다는 뜻이 담겼다. 김 대표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에도 “지금 정치인 중에서 박근혜만큼 애국심이 깊은 사람은 없다. MB(이명박 전 대통령)는 한참 뒤떨어진다”고 비교했다.
박 대통령은 기회만 있으면 국민에게도 애국심을 다그치듯 당부한다. 사관학교 졸업식 때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청와대에서 열리는 각종 회의 때면 ‘불타는 애국심’까지 주문하곤 한다. 블록버스터 영화 ‘국제시장’에서 부부싸움 도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는 코믹 장면을 정색하고 애국심으로 포장하는 기술도 만만찮다. 주무 부처가 득달같이 태극기 달기 캠페인을 벌이는 과잉 반응도 여기서 나왔다.
그런 박 대통령이 남미 4개국 순방기간에도 애국적 투혼을 보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12일간의 순방 도중 편도선이 붓고 복통에 열까지 많이 나서 거의 매일 링거를 맞으면서 강행군을 했다는 뉴스가 언론에 뜨자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수준 높은 글은 아니지만 정서를 헤아리기에는 충분하다.
<영화 '국제시장'의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경례 장면>
‘이렇게 거두어서 먹을 것을 벌어오느라고 생고생하는데 세월호 1주기를 추모한다는 사람들은 박 대통령이 추모식에는 참석 안하고 외유 나갔다고 한다는 데 그런 사람들 정신은 어느 쓰레기통에서 나온 것인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날마다 링거를 맞고 강행군하시는데 나라 안 꼴은 데모꾼들이 소판을 치고 있으니 큰일이다.’ ‘대통령께서 저렇게 힘들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노력하시는데 좌익, 4·16붉은연대들은 국가와 국민을 혼란케 하는가?’
이따금 따끔한 글도 보인다. ‘쓸데없이 헛고생하시고 있다. 방문한 남미 4개국은 우리나라와 교역규모가 5%도 되지 않고 향후 급격한 교역이나 투자 증대도 예상되지 않으며 더구나 국내 정국이 난장판인데 이런 곳에 10일 이상이나 대통령이 시간과 체력을 낭비해야 하나?’ ‘도대체 대통령이 국정 우선순위가 뭔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 정말 한심하다. 외유만 나가면 지지율이 올라서 그런가?’
사실 대통령의 애국심은 국가이익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어야 한다. 링거투혼을 발휘한 남미 순방외교에도 지금 그곳에 꼭 갔어야했는지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껄끄러운 세월호 참사 1주기 국면을 피해 가기 위해 마음이 편안한 해외순방을 기획했을 것이라는 비판은 과하다 치자. 인도네시아가 아닌 남미였느냐는 지적은 새겨볼 여지가 많다.
<남미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박근혜 대통령>
비슷한 시기인 19~24일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일명 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해 비중 있는 최고지도자들이 한꺼번에 모인 의미 있는 회의였다. 박 대통령은 마뜩찮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북한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걸까? 외교부장관도 아닌 황우여 교육부장관이 국가대표로 참석한 건 모양새가 말이 아니다.
남미가 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임에는 분명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미 한차례 다녀왔던 곳을 박 대통령이 또 갈 필요가 있었느냐는 논란은 접어두어도 좋다. 하지만 정상외교도 국익을 위해 수순이나 시기선택이 긴요하다. 전 세계인의 존경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장례식은 외면하고, 개인적 인연을 앞세워 리콴유 싱가포르 전 총리 장례식에만 참석한 것도 국가의 품위와 이익에 걸맞으냐는 의문이 적지 않았던 터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내키지 않은 일이라도 국가이익을 먼저 계산에 넣어야 마땅하다. 그게 진정한 애국심의 발로다. 아베가 영 못마땅하지만 실용적인 외교를 검토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고 애국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 미·일 밀월 관계와 중·일 화해국면으로 한국만 외톨이가 되지 않느냐는 우려가 밀려오는 때다. 국내정치는 물론 정상외교 스타일에도 참된 애국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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