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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와 환상/다니엘 부어스틴·사계절 가상공간이 현실공간을 지배하고, 만들어진 이미지가 진짜 현실을 압도한지 오래다. 진본보다 모사나 축약이 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실물보다 이미지가 내로라하는 시대다. 유권자는 이미지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스타 제조업자가 키워낸 유명 연예인이 막상 역사에 남을 일을 한 영웅보다 한결 더 숭배된다. 사람들은 속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광고에 현혹되어 상품을 산다. 영혼의 비타민이 되는 책보다 만들어진 베스트셀러가 더욱 활개를 친다. 이미지에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도 그리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렇듯 본말이 전도된 사회현상을 한 역사학자는 이미 50년 전에 간파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지낸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환상이 현실보다 더 진짜 .. 더보기
닥치고 북한 나무심기 탈북자들이 남한에 처음 도착해서 가장 놀라는 것은 어딜 가나 푸르른 숲이다. 대남공작 부서에서 상류 생활을 즐기다 탈북한 30대 후반의 남성이 들려준 ‘한국에 와서 놀란 10가지’에 산마다 울창한 나무가 앞순위에 꼽혔다. 도로를 잔뜩 메운 자동차일 법도 하지만 그건 잠깐이다. 자동차와는 달리 숲만들기는 수십 년이 걸려야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가 남한에 와서 가장 인상 깊은 두 가지를 꼽은 것에도 산림녹화가 들어 있었다. 다른 하나는 대학입학시험 때 고등학교 선배들이 대학 정문 앞에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실제로 한국은 온 국민이 10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고 가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일하게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로 평가받는다. 독일·영국·뉴질랜드와 더.. 더보기
신화, 인류 최고(最古)의 철학 | 나카자와 신이치 ‘신화’란 단어를 떠올리면서 이보다 찬란한 수사를 본 적이 없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고,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 소설가 이병주가 대하소설 에 풀어놓은 탁월한 상상력의 산물이다. 학문적으로 폭넓은 지지를 받는 말은 J F 비얼레인의 정의가 아닐까 싶다. ‘신화는 과학의 시초이며, 종교와 철학의 본체이고, 역사 이전의 역사다.’ 일본 최고의 신화인류학자인 지은이가 신화를 ‘인간정신의 종합적 구현’으로 파악한 것은 비얼레인의 정의와 그리 다르지 않다. 신화는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3만년 전부터 쌓아온 지성의 산물이어서 고대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철학의 역사보다 훨씬 앞선다고 생각한다. ‘인류 최고의 철학으로서의 신화’라는 표현은 사실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등록상표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