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공간이 현실공간을 지배하고, 만들어진 이미지가 진짜 현실을 압도한지 오래다. 진본보다 모사나 축약이 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실물보다 이미지가 내로라하는 시대다. 유권자는 이미지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는다. 스타 제조업자가 키워낸 유명 연예인이 막상 역사에 남을 일을 한 영웅보다 한결 더 숭배된다.
사람들은 속는 걸 뻔히 알면서도 광고에 현혹되어 상품을 산다. 영혼의 비타민이 되는 책보다 만들어진 베스트셀러가 더욱 활개를 친다. 이미지에 속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도 그리 문제를 삼지 않는다.
이렇듯 본말이 전도된 사회현상을 한 역사학자는 이미 50년 전에 간파했다. 미국 의회도서관장을 지낸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이미지와 환상이 지배하는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꼬집었다. 환상이 현실보다 더 진짜 같은 세상, 이미지가 실체보다 더 위엄을 갖는 세상에 미국인들은 살고 있다고 부어스틴은 죽비처럼 내리친다.
산업화·민주화·영상시대의 개막은 삶에 대한 과잉 기대를 부추겼고, 그 결과 미국인들은 사물의 본질이 아닌 허상을 좇게 되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미국인들은 세계 사람들에게 자기들의 헛된 이미지를 자랑하려고 우쭐거린다고 비꼬았다. 부어스틴이 갈파하는 이미지는 여섯 가지 특성을 지녔다. 인공적이다. 믿을만하다. 수동적이다.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단순하다. 모호하다.
1962년에 초판이 나왔지만, 반백년의 세월이 무색한 탁견의 사회비판서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포함해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비판하는 도구로 전혀 모자람 없이 유효하다. 정치의 절반이 이미지 만들기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람들에게 그 이미지를 믿게 하는 것이라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절묘한 명언이 더불어 새록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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