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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 프랑스인들이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일컫는 말은 선거 때 종종 등장한다. 후보자와 공약이 자기와 같은 편인지 판단하기 모호함을 비유하는 상징으로 안성맞춤이어서다. 해가 설핏 기울고 땅거미가 질 무렵이면, 언덕 너머 다가오는 짐승이 개인지 늑대인지 잘 분간하기 어렵다. 프랑스 사람들은 그게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황혼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곧잘 은유한다. 기발하고 시적인 이 묘사는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를 각각 개와 늑대에 비유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 지혜로운 철학자인 소크라테스의 변증법과 소피스트의 궤변을 식별하는 게 어렵듯이 개와 늑대를 알아보는 일도 간단치 않다고 플라톤은 ‘대화편’에서 털어놓았다.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는 닮았으나 소크라테.. 더보기
박근혜와 옹정제 박근혜 대통령이 새해 기자회견에서 “(퇴근 후) 보고서 보는 시간이 제일 많다”고 한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청나라 옹정 황제였다. 옹정제야말로 ‘보고서 통치의 대명사’다. 옹정은 밥 먹을 때조차 보고서를 곁에 둘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민심과 비밀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모든 지방 관리들로부터 ‘주접’(奏摺)이라 일컫는 민정 보고서(상주문·上奏文)를 받았다. 보고서는 하루 평균 20∼30건, 많게는 60∼70건에 이르렀다. 하루에 8만자를 읽고 8천자씩 업무지시를 한 셈이다. 옹정제는 이 보고서를 읽고 답글을 쓰는 데 밤 시간을 거의 다 보냈다. 제위 13년 내내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하루 20시간 한결같이 일하면서 초인적인 정력을 과시했다. 역사상 전무후무하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옹정은 자.. 더보기
세상을 바꾼 책 이야기(26)--<나의 투쟁> 아돌프 히틀러 “아우슈비츠 이후 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중심인물인 독일 철학자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이 명언만큼 아우슈비츠(폴란드 지명 오시비엥침) 수용소의 참극을 잘 웅변하는 말도 찾기 어렵다. 일부 문학인이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적이다”라고 비약시킨 이 말(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연상한 의도적인 오역이라는 견해도 있다)은, ‘아우슈비츠의 참상을 떠올려보면 더 이상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회의(懷疑)와 비탄의 동의어다. 한 신학자는 아도르노의 말을 비틀어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신학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아돌프 히틀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아우슈비츠다. 히틀러가 이끈 나치 독일은 이곳에서 250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