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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공직자 윤리의 이중 잣대

 

 미국 미시간 주 지방법원 레이먼드 보에트 판사는 재판 도중 휴대폰이 울리면 누구든 휴대폰을 압수한 뒤 벌금 25달러를 내야 돌려주는 규정을 만들어 엄격하게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재판 진행에 방해 받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판 전에 이를 빠짐없이 알린다. 그는 지금까지 방청객은 물론 검사, 피고, 경찰관으로부터도 휴대폰을 압수한 적이 있다.

 

   지난 4월에 열린 한 재판 때 검사가 마무리 발언을 하고 있었다. 보에트 판사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서 느닷없이 “명령어를 말씀하세요”라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검사는 발언을 멈추고 판사를 쳐다봤다. 보에트 판사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는 서둘러 휴대폰을 끄고 검사가 발언을 계속하도록 했다. 재판이 끝난 뒤 그는 자신에게 벌금 25달러를 부과했다. 이 일화를 안 ABC 방송이 인터뷰를 했다. “판사도 사람이어서 실수를 한다. 우리도 법 위에 있지 않다.” 보에트 판사의 답변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자신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공직자의 높은 윤리의식을 엿볼 수 있는 에피소드다. 한국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설이 공직자 윤리문제의 거센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다. 법무부가 채 총장에 대한 사상 초유의 감찰 카드를 꺼내들자 야당과 상당수 국민들 사이에서 ‘밀어내기’ 공작이라는 반발이 일어났다. 그러자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나섰다. “이 문제는 검찰의 독립성 문제가 아니라 공직자 윤리의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도 법무부가 옳다고 힘을 보탰다.

 

   공직자의 불륜이나 혼외자녀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가연성이 강하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만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명언도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민의 눈은 박근혜 정부의 공직자 윤리 잣대에 일관성이 있는가에 쏠려 있다. 상황이나 대상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불공평한 법적, 도덕적 기준을 우리는 이중 잣대라고 부른다.

                                                             

                                                  <채동욱 검찰총장>

 국민 세금으로 한해 수백조원의 나라살림을 총괄하는 경제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날 탈세를 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인물은 우리보다 훨씬 엄격한 인사청문회제도를 운영하는 미국에서라면 사전검증 때문에 후보자에 오르지도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다른 정권이었다면 빠져나기 어려운 낙마대상이었으리라.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박근혜 대통령이 장관으로 지명한 다음날에야 탈루한 종합소득세, 지방소득세, 증여세 등을 일괄 납부했다.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납세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경제수장이 탈세자에게 세금을 내라고 독려할 자격이 있을까.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재직 당시 주말에 사적으로 42차례에 걸쳐 사용한 업무추진비 수백만원도 언론에 보도되자 반납했다. 현 부총리는 2011년 저축은행 사태 당시 예금 수억 원을 인출해 공직자의 기본 윤리를 지키지 않아 비난을 샀다. 그는 이 외에도 병역특혜의혹, 전관예우, 재산형성 과정 의혹에 이르기까지 낙마의 단골 사유들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이런 여러 윤리적인 이유들 때문에 여당인 새누리당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들끓었다.

 

   세금을 거두는 책임자 김덕중 국세청장도 탈·절세 의혹을 샀다. 김 청장은 6억 원대에 매입한 아파트를 3억여 원으로 신고해 취득·등록세를 덜 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다른 문제점이 크게 불거지진 않았지만, 국세청장이 납세로 구설에 오른 것은 윤리적인 지적대상임에 틀림없다.

 

   황교안 법무장관도 인사청문회 직전 증여세를 납부하는 편법을 보였다. 황 장관은 아들에게 차용증을 쓰게 한 뒤 전세금 3억 원을 빌려줬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증언까지 했다. 황 장관 역시 미국이라면 사전검증 탈락 대상이다. 병역면제 의혹과 더불어 고액의 전관예우 문제까지 논란의 도마에 오르자 “많은 급여를 받아 송구하단 말씀을 드리며 주변 분들이 납득할 수 있는 봉사와 기여 활동을 하겠다”며 피해나갔다.

 

   박근혜 정부의 고위 공직자 가운데 내정 통보 후 세금을 내는 사례가 적지 않아 ‘‘장관 통과세’ ‘입각세’ 같은 조어로 희화화하는 세태가 나타났다.

 

   끝내 낙마한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나 김병관 국방 장관 후보자 같은 비리백화점 수준의 내정자를 박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옹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것도 전형적인 이중잣대 사례에 속한다.

 

   공직자 윤리 문제는 엄격할수록 바람직하다. 그것도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만 된다면 말이다. 미국의 공직자 임명과정에서 배워야할 점은 정권이 바뀌어도 이중 잣대를 용납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중 잣대는 한국 정치판의 단골 메뉴다. 충성만하면 문제가 많아도 감싸 안고 갈 경우, 나쁜 학습효과를 남길 수밖에 없다. 사서삼경의 ‘대학’도 사회의 최대 비극 가운데 하나가 위정자들의 이중 잣대에 있다고 가르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