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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이정현의 롤모델, 누사덕

 

 중국의 유일무이한 여황제인 측천무후는 3대 악녀로 꼽힐 만큼 잔인무도했으나 용인술이 출중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측천무후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신뢰한 인물이 명재상 적인걸(狄仁傑)이다. 아부라는 말을 모를 만큼 강직한 이가 적인걸이었다. ‘천리마’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걸출한 인재인 적인걸을 추천한 인물은 누사덕(婁師德)이다. 근면하고 충직한 재상으로 8년간이나 일한 적이 있는 누사덕은 대범하기로 이름났다.


 

   두 사람 사이의 흥미로운 일화가 ‘신당서 누사덕전’에 전해온다. 적인걸은 누사덕을 늘 경멸하고 업신여겼다. 그럼에도 누사덕은 적인걸을 재상에 임명하라고 측천무후에게 여러 차례 상주했다. 재상이 된 적인걸은 못마땅하게 여기던 누사덕을 수도 밖으로 몰아내려고 안달했다.

                      

   누사덕은 그걸 눈치챘지만 개의치 않았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당신을 재상으로 적극 추천한 나에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따지거나 생색낼 법도 하지만 누사덕은 달랐다.
                                                                                                   

                                     1월 6일 서울 삼청동 금융연수원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임명장 받은
                                      이정현 당선인 정무팀장이 박근혜 당선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런 낌새를 알아챈 측천무후가 어느 날 적인걸에게 물었다. “누사덕이 유능하다고 보시오?” 적인걸은 얼버무렸다. “장군으로서 부지런하기는 하지만 유능한지는 잘 모르겠나이다.” 측천무후가 다시 물었다. “누사덕이 사람은 잘 본다고 생각하시오?” 적인걸은 이번엔 좀 더 매몰찼다. “제가 그와 같은 조정에서 일하고 있지만 인재를 잘 알아본다는 말은 못 들었나이다.”


  그러자 측천무후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대를 중용한 건 누사덕의 적극적인 추천 때문이었소. 그러니 그가 정말 사람을 잘 알아보는 게 아니겠소?” 그러면서 대신들의 상주문 상자를 가져오게 한 뒤 누사덕이 추천한 상주문 여러 장을 찾아 적인걸에게 보여줬다.

 

  적인걸은 그걸 읽으며 진땀을 흘렸다. 그 뒤 적인걸은 누사덕을 전범으로 삼고 인재를 찾아 추천했다. 동료들에게도 너그럽게 대해 탁월한 재상이란 평판을 남겼음은 물론이다. 한편에선 없는 죄도 만들어 뒤집어씌우던 시절의 얘기다.

                                                                                                  

                                                                               <적인걸 초상>


  정권이 바뀔 무렵이면 공직사회에는 서로 밟고 올라서려는 권모술수가 난무한다. 지어낸 투서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비밀주의를 고수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참모들에게 인사 의견을 물으면 이해당사자들끼리 험담하고 서로 끌어내리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자기 편 인물을 한 사람이라도 더 심으려는 계산도 치밀했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원회 시절, 떠오른 실세 박영준과 정두언 의원의 주도권 다툼 때문에 인사를 망친 사례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비밀주의를 강화했다. 그 결과는 또 다른 부작용으로 나타났다. 인수위에 부적절한 인물들이 추천된 것은 비밀주의로 말미암은 검증부실 탓이 크다. 문제의 인물을 추천한 사람에겐 책임을 물어야 똑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선의로 비판하는 사람들과 언론·야당에 밀려서는 안 된다며 외려 두둔하는 과잉충성파들의 꼴은 더 볼썽사납다. 자칫 부적절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처럼 해야 요직에 기용되는 한심한 풍토라도 조성되면 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게다.


  국무총리와 각료, 청와대 참모진 인선을 앞두고선 인사 대상자를 후보군에 고의로 띄워 놓고 낙마를 유도하는 새로운 네거티브전략이 무성하다는 설까지 나도는 걸 보면 갈 때까지 간 듯하다. ‘영혼 없는 공직희망자’들이 사전 노출을 금기사항으로 여기는 당선인 스타일에 맞춤전략으로 대응하려는 꼼수들이 눈물겨울 정도다.


  인사 실무 작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이정현 당선인 비서실 정무팀장을 비롯한 최측근들의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들의 정신자세는 무릇 누사덕과 같아야 한다. 특히 이 팀장의 역할은 이명박 정부 인수위의 박영준 총괄팀장과 신재민 정무1팀장을 합친 것처럼 막강하다는 풍문이 나돌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당선인에게도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용인술이 절실하다. 잘못된 추천이 드러나면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시정하는 결단이 긴요하다. 다양한 경로로 인사 추천을 받는다면, 그 경로에 사심이 개입되지 않는지 가려내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도 당선인의 몫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