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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법조인의 병역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왜 고위공직자의 아들들은 죄다 신체적 결함들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은 궁금할 따름이다.” 이언주 민주통합당 원내대변인이 최근 낙마한 김용준 국무총리 지명자의 두 아들 병역면제 의혹이 불거졌을 때 내놓은 촌철살인의 논평이다.

 

  좀 더 좁혀 보면, 고위 공직후보자로 발탁되는 법조인들의 아들들은 왜 멀쩡하던 신체에 이상이 생겨 군복무를 면제받거나 공익근무로 대체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한 개그 프로그램의 익살처럼 궁금하면 오백 원? 이젠 그걸 궁금해 하는 국민은 별로 없는 듯하다.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뢰머광장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자료 사진>


   정홍원 새 총리 지명자의 아들도 첫 신체검사 때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몇 년 뒤 재검을 받아 디스크(수핵탈출증)로 5급 판정과 함께 병역 면제 처분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명박 정부의 법치를 행정적으로 총괄하는 권재진 법무장관조차 아들들이 모두 현역을 면제받고 의혹을 불러 일으킬만한 논란거리로 인사청문회의 쟁점이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이회창 전 대법관의 아들들까지 나온다.

                                                                                          

   실제 통계로 잡히는 법조인 본인들의 병역 면제율도 다른 직역에 비해 훨씬 높다. 지난해 안규백 의원이 병무청 국정감사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 판·검사 가운데 5급(제2국민역) 판정을 받아 군 입대를 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221명에 이르렀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첫 신체검사에서는 1~4급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사유는 신체이상이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이상 고위법관과 검사장급 이상 검찰간부 211명 가운데 16퍼센트가 병역면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질병이 주된 이유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이는 그 다음으로 많은 행정부 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평균 병역면제율 14퍼센트, 전체 4급 이상 공무원의 평균 병역면제율 11%보다 높은 수치다. 사법연수원 수료 후 상대적으로 근무 여건이 좋은 군법무관이나 공익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음에도 법조인의 병역면제율이 다른 직역에 비해 높은 것은 의외다.


  당사자들은 불법이나 위법은 없었다고 한결같이 해명한다. 하긴 준법을 지고의 가치로 아는 법조인들이 불법이나 위법을 저지를 리 없다고 믿고 싶다. 신기한 것은 신체결함으로 병역 면제를 받은 뒤엔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일하게 된다는 점이다. 심지어 정신 질환으로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까지 현직 판·검사로 일하고 있다. 그러니 법무부 여론조사에서 ‘법은 항상 진실의 편이다’라는 설문에 ‘그렇다’고 한 비율이 10퍼센트에 불과한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아 보인다.

 

 

  병역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의 뿌리이자 핵심이다. 한국에선 요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개념이 기부나 사회봉사쯤으로 부쩍 뒤틀려 있지만, 서양에서 그 역사적 기원은 병역의무다. 보수진영의 중심가치도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보수진영이 자신들의 핵심가치를 앞장서서 무너뜨리고 있는 건 자가당착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법조인들이 법질서를 누구보다 잘 확립해 줄 것으로 믿기 때문에 고위직에 우선순위로 발탁한다. 김용준 인수위원장에 이어 역시 법조인 출신인 정 후보자를 국무총리로 지명한 것도 국가 운영에서 ‘법과 원칙’을 앞세우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2009년 발표한 한국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에서 법조인은 국회의원과 더불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여기에 병역이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남들보다 더 희생하기는커녕 자신들의 반칙을 반칙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박 당선인은 법조인들의 이런 모순을 모르는 걸까. 진정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궁금하면 오백 원’은 이 대목에서 필요하다. 그러고 보니 박 당선인이 선거 때나 평소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역설한 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료를 검색해 봐도 발견하기 쉽지 않다. 박 당선인이 늘 강조하는 것은 애국심이다. 애국심의 가장 밑바탕에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