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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탈북자 재입북 증가, 어떻게 볼 것인가

 

 탈북자의 남한생활을 극도의 리얼리즘으로 묘사한 독립영화 ‘무산일기’는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받은 16개 상이 입증할 만큼 복잡한 감정을 이입한다. 개성 있는 연출은 물론 탈북자에 대한 문제의식, 남한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실감나게 그렸기 때문이다. 병마 때문에 이미 고인이 된 2008년 탈북자의 실화라는 점이 이 영화를 더욱 각별하게 만든다.

 

   전승철의 고향 함경북도 무산(茂山)은 ‘나무가 무성한 산’이라는 뜻이지만 이젠 민둥산으로 전락했고, 서울 역시 그에게는 아무 것도 가질 수 없는 ‘무산’(無山)이다. 이 영화는 박정범 감독이 직접 주연하면서 대학시절 친구였던 탈북 청년 전승철 역을 소화해낸 특별한 영화다.


  전승철은 영락없는 이방인의 모습이다. 우리와 똑같은 얼굴에다 같은 언어로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낯선 나라에 온 것 마냥 어색하기만 하다. 북한이탈주민을 보는 눈길은 어딜 가나 불편하고 차갑기 그지없다. 일자리를 구할 때도 125로 시작되는 고유의 주민등록번호로 말미암아 어려움을 겪기 일쑤다(최근엔 거주지 기준으로 구분 없이 발급한다). 탈북자는 이렇듯 크고 작은 편견과 낙인을 견디며 소외감 속에서 살아야 한다.

                                                                                                   

                                                               <탈북자 재입국 기자회견 자료사진>


  최근 북한으로 돌아가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잇달아 발생하는 일은 영화 ‘무산일기’를 떠올리게 한다. 탈북자 부부와 그들의 딸, 또 다른 탈북 여성 등 4명이 지난해 말 북한으로 귀환해 지난 24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탈북자 재입북 사례는 지난해에만 세 번이며, 인원수로는 8명에 이른다.

 

  지난해 7월 김일성 동상을 파괴하려다 체포됐다고 주장하는 전영철까지 포함하면 김정은 체제 들어 네 번째다. 이들 외에 제주도에 거주하던 여성 탈북자 3명이 재입북했으며,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자가 100여명이라는 설까지 나돈다. 재입북했다가 되돌아온 사례도 있긴 하다.


  남한 사회의 냉혹한 현실에 도저히 마음을 붙일 수 없었고, 불안과 눈물 속에 살았다는 재입북자들의 주장엔 과장이 섞였겠지만 탈북자들의 심정을 다소나마 엿보게 한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어디에서도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다는 폭로를 마냥 허위라고 부인하기 어렵다.

 

  이들이 먼저 재입북한 사람들의 기자회견 소식을 듣고 재입북을 결심했다는 대목도 마음에 걸린다. 이들이 김정은 체제의 선전도구화하는 점은 안타깝다. 탈북자의 재입북 사례가 늘어나는 게 북한이 새 젊은 지도자의 우상화를 위해 적극적인 회유공작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지만 정부의 탈북자 관리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물음표를 찍을만하다. 현재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는 2만4000여명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기에는 많은 숫자로 불어난 것도 사실이다. 탈북자 가운데 극소수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남파된 스파이일 개연성도 없지는 않아 이들의 재입북을 원천 차단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게다.


  탈북자 관리와 이들의 안정적 정착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힘만으론 불가능하다. 생존경쟁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탈북자가 적응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웃과 남한 주민 전체의 각성이 긴요하다. 탈북주민을 귀찮게 여기거나 일자리와 복지를 빼앗는 존재로 보는 풍조는 심각한 문제다.

 

  탈북자들에 대한 시선에 이데올로기를 섞어 남북 간 평화정착의 걸림돌이나 ‘계륵’으로 재단하는 것도 불행의 씨앗이다. 일부 탈북자들의 과격한 반북활동이 원인이지만, 대부분의 탈북주민들에겐 생존이 발등의 불이다. 최근의 한 설문조사결과, 탈북자의 30퍼센트 이상이 한 달 평균 10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다못해 탈북자 정착 시설이나 학교를 짓는 데도 이웃주민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았음을 반성해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을 이방인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공통의 희망을 품고 함께 나아가야 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모두가 인식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탈북자들의 잇단 재입북을 간접적으로 부추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다. 탈북주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은 통일과정에서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