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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차별금지법 제정 미룰 일 아니다

 좋은 판결 하나가 사회를 전진시킨다. 동성부부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이 그렇다. 성소수자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방향전환을 강권하는 조치나 다름없다. 해외 언론도 획기적인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우쭐대지만 명실상부하기엔 갈 길이 멀다. 선진국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대부분이 갖춘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다. OECD 회원국 중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라고 한다.


 그나마 일본은 지난해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증진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LGBT 이해증진법안’을 중의원에서 통과시켰다. 원안의 핵심문구는 수정됐으나 성소수자 권리보호를 위한 법적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도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7년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정부안으로 발의해 처음 공론화했다. 그뒤 모두 8번이나 국회의 공론장에 올라왔다. 그때마다 철회되거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돼 17년 지나도록 진전이 없는 상태다.


 차별금지법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같은 모든 생활영역에서 합리적 이유가 없는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장애 성별 등 차별을 규제하는 개별법이 있지만 다양한 현실을 개선하는 데 한계를 지녔다.

                                                                                         


 차별금지법안 얘기가 나올 때마다 보수성향의 기독교계가 강하게 반대해왔다.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거나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이 처벌받는다는 이유를 댄다. 자신들의 교리를 사회규범으로 재단하는 것은 독선이다. 한국보다 훨씬 오랜 기독교 국가인 유럽과 미국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성소수자는 사실상 타고나기 때문에 이를 바꾸라는 것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맞추라는 생각과 같다. 그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에 피해를 주는 일도 없다.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명료한 답은 한 문장으로 가능하다. ‘존재를 반대할 수 없다.’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우리 사회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특정한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장려하는 법률이 아니다. 표현의 자유나 종교의 자유 보장과 배척 관계에 있지도 않다.


 국민 대다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한국갤럽 여론조사(2022년 5월)에서 열명 가운데 여섯명이 ‘성별 장애 성적지향 학력 등을 이유로 한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다. 반대 의견은 세명에도 못 미친다.


 포괄적 차별을 없애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30년 넘게 경제학 관점에서 성소수자 문제를 탐구해 온 미국 경제학자 리 배짓이 저서로 보여준다.(‘차별비용’, 글항아리) 성소수자 차별에 따른 경제적 손해는 생각보다 막심하다. 인도는 성소수자 혐오와 차별로 인해 해마다 국내총생산(GDP) 1%의 손실을 낳았다. 케냐(1.6%)와 남아프리카공화국(5.7%)은 훨씬 치명적이다. 미국 기업들이 성소수자 차별을 없애 성장을 높인 사례가 많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게리 베커는 인종차별이 고용주에게 재정적 손실을 입힌다는 사실을 1950년대에 증명했다. 차별에는 돈이 들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회원 가입 조건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한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나라는 이미 20세기 말 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국제사회는 차별금지법에 그치지 않고 앞서나가고 있다. 주요 7개국(G7)은 일본만 빼고 모두 동성혼을 합법화했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혼을 법제화했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2018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정부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권고했다.


 국회가 차별금지법 제정을 망설이는 것은 다수 국민의 뜻에 반하는 일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반대 이유가 성소수자가 돼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성소수자 핑계를 대고, 교회는 이를 이유로 겁박한다. 한국 총인구 가운데 외국인 체류자와 외국계 주민을 다 합치면 5% 가까이 된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대통령 직속 국민통합위원회가 지난 5월 발표한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실태조사 결과 ‘남녀가 평등하다’고 인식한 답은 35.2%에 불과하다.


 차별과 배제, 혐오와 편견은 민주주의와 평등 사회의 걸림돌과 같다. 장애인·여성·노약자·외국인·북한이탈주민·성소수자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은 문명사회의 장애물이다.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가 선진 민주사회일 수는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