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500년 전 조선 도공의 길을 배우고 찾아가는 것이다.” 20세기 최고 도예가였던 영국의 버나드 리치(1887~1979)가 세계 최고의 명문 도자학교로 불리는 미국 앨프레드 도자학교 강연에서 던진 한마디다.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자(粉靑瓷)’가 이미 다 제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뉴욕대 특강에선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도자기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중국, 일본, 조선 순서로 좋다고 평한다. 조금 아는 사람은 중국, 조선, 일본 순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조선, 중국, 일본 순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양 도자기의 특색을 ‘한국은 선이고 중국은 색채이며 일본은 모양’이라고 규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의 백자>라는 책을 펴낼 만큼 한국 도자기에 대해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좋은 도자기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을 내려오는 사람과 같이 손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흔히들 한국의 옛 도자기는 동양인의 고요한 정신자세를 상징한다고 품평한다. 선이 곱고 색은 순하며 내적인 품위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 도자기의 특질에 관해서는 미술사학자인 윤용이 명지대 교수가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돌베개)에서 살갑게 들려준다. 그는 리치가 그랬듯 도자기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분청자를 꼽는다. 한국인은 분청자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재발견한다는 것이다. 분청자는 역동적이면서도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선(禪)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그는 해설한다. 분청자는 쉽게 풀이하자면 화장을 한 청자다. 센 리큐를 비롯한 일본의 최고 다인(茶人)들이 가장 사랑한 것도 분청자와 백자였다.



리치가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고 은유했던 조선의 백자 항아리는 순박하면서도 고아한 품격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상찬을 받는다. 윤용이는 조선 후기의 백자를 청초하고 단아한 멋을 지녀 간결하고 기품 있는 그릇으로 친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와는 달리 정돈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한국의 백자를 사람으로 치자면 자신은 전혀 뽐내지 않으나 주위를 빛나게 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다.

그는 청자와 백자에 비해 저평가됐던 질그릇(도기)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게 돋보인다. 조선시대 질그릇의 표징으로 소박함, 고요함, 단순미를 꼽는다. 전문가들은 신라 토기에는 신라 사람들의 넉넉한 미소가 담겼고, 청자에는 고려 사람들의 꿈이 담겼으며, 백자에는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하지만 윤용이는 여기서 ‘토기’란 용어를 매우 못마땅해 한다. 일본이 만들어낸 말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견해다. 그냥 ‘도기’로 분류하면 족하단다.

도자기는 흙과 불, 사람이 삼위일체가 돼야 최상품을 만들 수 있다. 흙이 도자기의 살이라면 불은 도자기의 피이고 작가의 마음가짐은 도자기의 혼으로 불린다. 사기장들은 흔히 말한다. 도자기의 3분의 1은 사기장이, 3분의 1은 불이, 나머지는 사용하는 사람이 만든다고. 그만큼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윤용이도 천편일률적인 그릇 대신 우리 도자기로 생활의 멋을 한껏 부려보라고 적극 권면한다. 일본에선 도자기가 식기로 대중 속에 파고든 지 오래다. 그 배경에는 미식가이며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이고, 요리와 그릇은 한 축의 두 바퀴”라는 명언을 남겼다.

전국 각지에서 도자기 행사가 풍성한 가을, 가장 한국적인 결정체를 찾아보고 직접 만들어보는 낭만과 즐거움은 비할 데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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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과 희극을 가장 쉽게 구분한 사람은 영국 낭만파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이 아닐까 싶다. 죽음으로 끝나면 비극이고 결혼으로 끝나면 희극이라고 했으니 말이다. 이 공식에 맞춰보면 중세 유럽 최고의 연애담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대표적인 비극이고, 가에타노 도니체티의 명작 오페라로 탄생한 <사랑의 묘약>은 희극이겠다. 넓게 보면 비극은 죽음·파멸·진정성, 희극은 환희·결혼·축제·번식·재생 같은 것과 연관된다.

비극과 희극에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 ‘비극적인 결점’이 그것이다. 주인공이 그걸 극복하면 희극이 되고, 극복하지 못하면 비극이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은 비극적인 결점을 극복하지 못해 비극으로 분류된다.

더 중요한 차이는 작품에서 주인공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의 처리방식에 따라 나타난다. 비극은 갈등의 해결책이 없을 때 일어난다. 반면에 희극에선 갈등이 결국 해결되고 만다. 비극이 주로 죽음으로 끝맺는 건 문제를 끝내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극은 기원전 500년쯤 고대 그리스에서 탄생했다. 원래 디오니소스 신을 찬양하기 위해 공연했다. 그리스 비극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이론으로 집대성됐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명저 <시학>에서 비극의 본질과 카타르시스의 실체를 규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여기서 “비극은 역사보다 철학적이고 주변 인간들보다 뛰어난 인물을 등장시켜 공포와 비애를 일으킴으로써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한다”고 정의했다. <시학>은 서양 최초의 문학이론서로 알려져 있으나 비극 이론서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리스 비극은 모두 33편.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이 7편, 소포클레스 작품 7편,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이 19편이다. 그리스 비극은 사실상 창시자로 불리는 아이스킬로스, 완성자로 일컬어지는 소포클레스, 가장 신세대였던 에우리피데스 등 3대 작가에 의해 꽃피었다. 이들은 인간 내면에 대한 성찰과 탐구로 그리스 정신을 구현해냈다. 그리스 비극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 철학을 완성하는 전제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리스에서 꽃피운 비극은 16세기 말 걸출한 셰익스피어가 등장해 다시 중흥기를 맞는다. 이어 유진 오닐의 희곡,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 예술·사상·종교·역사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쳐왔다. 그리스 비극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필독서로 자리 잡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번역본 <그리스 비극>(현암사)은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편으로 나뉘어 있다. 아이스킬로스의 <아가멤논>과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안티고네>,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와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등이 걸작으로 꼽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을 가장 완결된 비극의 전범으로 여겼다.



18세기 고딕 소설의 선구자 호레이스 월폴은 “세상은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희극이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라는 절묘한 명언을 남겼다. 3대 비극 작가 중 에우리피데스는 세상을 깊이 생각하고 깊이 느꼈으나 세상에서 우스개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찾아내지 못해 비극만 썼다고 전해진다.

지난주 방한했던 영국의 대표적 좌파 문화이론가 테리 이글턴은 현대사회의 갈등 국면을 진보·보수가 아닌 ‘비극적 휴머니즘’과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의 대립에 있다고 이채롭게 분석했다. ‘비극적 휴머니즘’은 현재 상태를 부숴야만 새로운 삶과 인류 발전이 가능하다는 믿음이 그리스 고전비극 같은 패턴을 지닌다. 이글턴의 얘기처럼 비극은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웅숭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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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성인을 꼽자면 약간의 논란이 따른다. 예수, 석가모니, 공자까지는 이론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서양에서는 당연히 소크라테스에게 나머지 한 자리가 돌아가야 한다는 견해가 대세다.

여기에 가장 강력히 이의를 제기하는 게 이슬람권이다. 이슬람교 창시자 무함마드(마호메트)가 4대 성인의 반열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무함마드가 빠지는 건 이슬람을 견제해온 서구의 영향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없지 않다.

무함마드를 4대 성인에 포함할 수 없다는 이들은 몇 가지 이유를 댄다. 그가 포교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부잣집 과부를 만나 경제적으로 비교적 풍족하게 살았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무함마드가 4대 종교인 이슬람교의 창시자이긴 하지만 온전히 성인다운 삶을 살았다고 보긴 어렵다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그에 비해 소크라테스는 예수, 공자처럼 평범한 서민 출신으로서 인류의 전범이 될 만한 삶을 영위한 데다 ‘아테네 민주정치의 희생양’ ‘철학의 순교자’로 상징되는 것만 봐도 성인으로서 손색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실존철학의 거장인 카를 야스퍼스도 4대 성인으로 소크라테스, 석가모니, 공자, 예수를 주저없이 든다. 야스퍼스는 <위대한 사상가들>(책과함께)에서 이들 네 사람을 신격화하지 않고 객관적 시각에서 보더라도 인류에게 가장 긍정적 영향을 끼친 모델로 삼을 만하다고 확언한다. 종교의 창시자라 하더라도 인간적 한계까지 서술하고 있어 책 제목도 <위대한 사상가들>(원래는 위대한 철학자들)로 정한 듯하다.

야스퍼스는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조로아스터, 이사야, 예레미아, 무함마드, 노자, 피타고라스 등을 더 들 수 있지만 네 명의 위인만큼 역사적으로 깊이 있고 지속적인 영향을 준 인물은 없다고 주장한다. 유일하게 무함마드만은 역사적 영향력에서 네 명의 성인과 어느 정도 견줄 만하지만 인간적 깊이에서는 이들을 따라갈 수 없다는 의견이다.

그 자신도 위대한 철학자인 야스퍼스는 4대 성인이 인류에게 던져준 빛이 조금씩 다르다고 비교 분석한다.
‘소크라테스가 실재적인 빛이라면, 예수는 마법처럼 변용된 빛이고, 석가는 마력적인 추상의 빛이며, 공자는 냉정하게 빛나는 객관적인 빛이라 할 수 있다.’
야스퍼스는 인류에 대한 가르침의 방법도 정리해 준다. ‘소크라테스는 사고를 통해 진리를 깨닫게 했고, 석가모니는 명상을 통한 깨달음의 길을 제시했으며, 공자는 교육을 통해 인간의 삶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예수는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세상의 악에 대응하는 방법도 네 성인이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야스퍼스는 본다. 예수는 잘 알려졌듯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공자는 선을 선으로 갚고 악은 정의로 갚으라고 권면한다.
소크라테스는 악을 갚기 위해 불의가 재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석가모니는 어떤 악에도 저항하지 않는 보편적 사랑, 모든 생명체에 대한 자비심을 역설하고 있다.

네 명의 성인 모두 스스로 쓴 책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도 공교로운 공통점의 하나다. 이는 훗날 제자들에 의해 이들 성인의 삶과 가르침이 보강되면서 변용 과정을 거치는 요인의 하나가 된다.
그렇다고 야스퍼스는 4대 성인을 우리가 단순히 모방해야 할 대상으로는 보지 않는다. 다만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지표로 생각한다. 성인들처럼 하늘의 뜻을 깨달아 중생을 일깨우고 옳은 길을 가도록 하기는 어려울지라도 성인들의 사상을 삶의 나침반으로 삼는 지혜를 지녀야 한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위대함은 훌륭함을 뛰어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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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오주석을 한마디로 일컫자면 ‘옛 그림을 그윽하고 향기롭게 읽어주는 사람’쯤 되겠다. 그
는 조선시대 그림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인물로 첫손가락에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보기’보다 그림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도하는 데 길지 않은 평생을 바친 공력이 지대하다.

그는 우리네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다가 5년 전 하늘의 뜻을 채 알기도 전인 마흔 아홉에 속절없이 하늘나라로 가버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의 저작은 그림의 문외한조차 즐겁고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강하다. 글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정제되어 군더더기 한 점 없어 보인다.
대중적이면서도 그림만큼이나 은근한 맛과 훈향, 기품이 풍겨 나오는 문장이다. 마치 옛 그림처럼 담박하고 단아하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도록 언어의 섬섬옥수가 끌어당긴다. 그가 그림을 읽는 눈은 전문가들도 찬탄할 만큼 독창적이고 깊이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는 박물관에 박제돼 있던 우리 옛 그림을 다시 살려내 고미술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솔출판사)은 제목부터 그림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또 다른 수작 <한국의 미 특강>도 예외가 아니다. 1998년 <단원 김홍도>로 시작된 그의 저작은 그렇게 옛 그림에 대한 뭇사람들의 사랑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한·중·일·대만·홍콩의 석학들이 선정한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김구의 <백범일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과 더불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선정된 것만 봐도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어떤 이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회화 예술계에 나온 <우리문화유산답사기>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그런 유홍준에게 생전에 서슴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렸던 고인이 달가워할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에 관한 해설에서 내면의 삼엄함, 도가풍의 은일, 풍아(風雅)의 유유자적 같은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의 눈, 아니 가슴에서 새로 읽히는 김명국의 ‘달마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김정희의 ‘세한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같은 명작은 늠연한 선인들의 심상 그대로다.

책 서문의 한 구절이 사뭇 인상적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그림을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을 잘 완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옛 그림이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고 설파한다. 저자는 수묵화가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라고 품평하고 있다.

그의 얘기 가운데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게 있다.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명심할 게 하나 더 있다. 그림은 천천히 오래 봐야지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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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그림

국가 차원의 복지정책을 사상 최초로 도입한 사람이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총리였던 건 역설이다. 지주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철혈 재상으로 불릴 만큼 카리스마가 강하고 보수 성향인 비스마르크가 좌파·개혁 성향의 입법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는 세계사적으로도 뜻 깊은 공적 사회보험을 역사상 처음 발의하고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1881년 발의한 산재보험 입법안에 관해 ‘무산계급의 요구와 이익에 봉사하는 공적 보험제도 수립이 곧 인륜과 기독교의 의무이자 국가를 수호하는 정치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정책이 완성될 무렵 자기 이름으로 이뤄낸 위대한 복지제도를 ‘의회와 관료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라고 스스로 혹평하는 또 다른 아이러니가 발생했지만 말이다.
당시 진보적인 사회민주당은 비스마르크의 사회보험이 진정한 사회개혁을 얼버무리는 사이비 정책이라고 맹비난했다. 사회민주당은 훗날 자신들이 공적 사회보험의 유일한 수호자라고 선언한 뒤 복지정당의 길로 접어들었다.(<복지국가 만들기> 박근갑)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지난해 5월 미국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처음 차기 대선의 화두로 ‘복지국가’를 들고 나온 이래 최근까지 간단없는 화제와 논쟁으로 이어지는 걸 보면 비스마르크가 먼저 떠오른다.
역대 정부에서 복지정책 공약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012년 대선구호로 ‘복지국가론’을 첫머리에 내세우고 향후에도 강하게 밀고나갈 유력 대권주자가 박 전 대표다. 서민과 중산층의 표를 겨냥한 것은 같지만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와 구별 지으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물론 아직 구체성이 없는 데다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목표가 복지국가였다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지나친 비약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기에 사실상 대항마로 나선 게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다.

이상이 제주대 의료관리학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난 3월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와 전략>(밈)을 내놓았다. ‘복지국가론’은 대권주자가 아닌 시민단체 차원이긴 하지만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박 전 대표보다 먼저 들고 나왔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이미 <복지국가혁명>이란 책과 더불어 진보정당 대통합을 주창하고 나섰다. ‘복지국가’라는 깃발아래 진보 정치세력을 묶어 정권 창출의 대안세력으로 나서겠다는 취지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원리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 등 4가지다.

‘역동적 복지국가’는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모델로 삼고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란 복지 혜택이 시혜로서 소외층에만 주어지는 게 아니라 중산층 이상 전 국민에게 권리로 제공되는 국가를 뜻한다.

메리 힐슨의 <노르딕 모델>(삼천리)은 보편적 복지국가의 꿈과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다섯 나라의 차이점도 부각시켜 한국 실정에 맞는 복지국가를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이들 나라를 무조건 유토피아로 묘사하지도 않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박 전 대표를 포함한 보수진영의 복지정책이 선별적·시혜적 복지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어쨌거나 박 전 대표 쪽에서도 사회복지기본법을 설계 중이라는 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걸 보면 차기 대선의 화두는 단연 ‘복지국가’가 될 게 틀림없다.

이미 6월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무상보육, 노인복지 등을 놓고 전초전을 벌인 바 있다. 서민과 중산층이 단순히 표 계산의 대상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질이 진정으로 높아지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건 시기상조일까.


Posted by 김학순
TAG 복지, 정치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퍼부은 독설에 가까운 촌철살인의 풍자다.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시나브로 국력이 쇠잔하고 분열이 이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껍데기만 남은 제국이었다.

중국이 초강대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며 제국은 더욱 아니라는 엄살 섞인 항변을 들고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볼테르의 명언이다.
현대 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를 당부할 때만해도 그런 이중성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부르짖는 지금의 중국이라면 사뭇 달라진다.
중국은 동양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이래 2132년 동안 제국으로 호령한 화려무비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기 역사저술가 이중톈은 화려한 중국 역사의 겉면보다 쓰라린 실패와 아픈 기억을 <제국의 슬픔>이란 책으로 담아낸 바 있다. 이중톈이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자신 있게 말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에서 과거 중국제국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제국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재구성했다.
이중톈이 진시황 이래 청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유지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官員代理) 세 가지로 요약되는 시스템이다. 진시황이 군현제와 그에 걸맞은 관원대리라는 하드웨어를 창조했다면, 한무제는 여기에다 윤리치국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해 완벽한 제국의 틀을 만들었다.

윤리치국이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가운데 유가를 정치의 도구로 채택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이후 모든 왕조는 이 트로이카를 앞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20세기 초 들어 강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이 시스템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만이 미래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처방했다. 중국 학계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몰라도 이중톈은 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중톈이기에 그의 한마디는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제국이란 제도는 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무너진 제국은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진다.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제국이 재건된다.

중국이 또다시 세계 제국으로 굴기하는 걸 보면 순환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과시한 ‘한·당(漢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이미 제국의 야욕을 세계 만방에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 때나 당나라 때나 한민족의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중국의 행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 제국이 될 지 모른다는 점을 확연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역사적 교훈은 제국이 혼자 강압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국계 미국 석학인 에이미 추아는 명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필요조건으로 ‘관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베이징의 봄 이후 중국은 청년 정신까지 성장을 멈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중톈도 지적하듯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리라.


Posted by 김학순
TAG 중국

걸어서 세계를 일주했다는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의 걷기예찬은 문학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걷기, 그 속에는 인생이 들어 있고, 깨달음이 들어 있으며, 신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현자의 지혜가 번득이고 그의 눈은 시적 통찰력으로 빛난다.”

그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빌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걷는 행복>이란 책에 ‘인간의 지성이 걸음에서 잉태됐다’고 썼다. 하긴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마호메트) 같은 성인들도 생전에 가장 부지런히 걷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고독하게 홀로 걸으며 신과 대화하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가르침을 전했다. 석가모니도 평생을 걸었다. 전해지는 법어의 절반 이상이 걸으면서 제자들에게 한 것이다.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길) 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도보여행지다.


장 자크 루소는 숲을 산책하고 나서 “철학의 첫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철학을 논하면서 걸었다는 데서 소요(逍遙)철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면, 노자와 장자의 철학 또한 무위와 ‘소요의 철학’이지 않던가.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도 <걷기예찬>에서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일찍이 루소는 <에밀>에서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고 특유의 걷기 미학을 펼쳤다.

오늘날의 걷기 열풍을 불러온 데는 프랑스의 퇴직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기여도가 적지 않다.
1만20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세계 최초로 오직 걸어서 여행하고 나서 쓴 <나는 걷는다>(효형출판)는 전 세계적인 걷기 마니아를 낳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 올레 걷기의 길을 튼 것도 이 책의 영향이 크다. 대표적인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이 책을 읽고 전율을 일으켜 산티아고 길과 세계를 누볐으며, 제주 올레를 창안한 서명숙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올리비에는 책 앞부분에 실크로드 걷기 구상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왔음을 상기시켰다.

올리비에가 30년간의 기자생활에서 은퇴한 뒤 예순두 살의 나이로 그 같은 용기를 냈다는 게 더없이 경이롭다. 기자라는 동류의식도 없지 않으나 경외심까지 느낀다.
말이 쉽지 7세기 전 마르코 폴로가 말을 타고 갔던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다. 지독한 외로움, 생사를 오가는 질병, 사람들의 위협, 수도 없이 찾아드는 중도포기 유혹을 무릅쓴 4년간의 도보여행기다.

그는 역설한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다”라고. 걷기에 관한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거리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감탄사가 나올 법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올리비에는 ‘걷는 것은 육체적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운동’이라고 여긴다.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도보여행을 할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혼자 여행하는 동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단순하지만 소박한 기쁨을 알게 된다. 난관에 부딪힐 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아를 단련하게 된다.”

길을 가는 것은 도(道)를 닦는 것이라는 선인들의 슬기와 다르지 않다. 거창한 것을 제쳐놓더라도 걷는 것은 곧 건강이다. 의성(醫聖) 허준도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좋은 음식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설파했다.


Posted by 김학순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의 한 사람인 이사야 벌린은 레프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를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한다. 벌린은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이해하지 않고선 <전쟁과 평화>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설명하기 위해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고대 그리스 우화를 빌려온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 희랍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이다. 벌린이 쓴 <고슴도치와 여우>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고슴도치형 인간은 모든 일을 하나의 핵심적 비전으로 조망하려는 비전형이다. 본질적인 것을 보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는 스타일이다. 고슴도치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가시뭉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여우형 인간은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피는 분별형이다. 여우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복잡하고 산만한 것들을 두루 살피는 것과 흡사하다. 벌린은 톨스토이가 고슴도치를 꿈꾼 여우였다고 평가한다. 톨스토이가 천성적으로 여우형이었음에도 고슴도치형을 흉내를 냈기에 불행한 천재라고 본 것이다. 벌린은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의 조화에 대한 중요성을 톨스토이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찾는다.

톨스토이는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전쟁은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질병’이라고 한 마틴 루터나 ‘모든 인류 죄악의 총합은 전쟁’이라고 했던 J 그라이트의 생각과 같다.

존 스토신저는 <전쟁의 탄생>(플래닛미디어)에서 전쟁의 원인을 기존 국제정치이론과 다르게 본다. “전쟁 발발의 원인 가운데 지도자의 성격도 지극히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도출됐다. 전통적으로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돼 왔던 민족주의, 군국주의, 동맹체제와 같은 추상적인 힘의 역할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느 것도 경제적 요인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지도자의 성격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물리적인 힘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독·소전쟁, 미국·이라크전쟁, 르완다 내전 등 20~21세기 큰 전쟁의 전황과 정치적 상황, 당시 운명을 결정짓던 지도자들의 성향과 심리상태까지 분석한다. 그 결과, 스토신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공격성향은 선천적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학습된 행동이다. 그건 학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와카쿠와 미도리 역시 특이한 시각에서 전쟁을 해부하고 있다. 그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알마)에서 인간의 공격성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는 전쟁이 모계사회에서는 없었으니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다. 당연히 그 같은 체제에서 벗어나야 전쟁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젠더 이론’이다.

미도리는 본래 인간이 토끼나 비둘기처럼 같은 크기의 동물을 죽이지 않는 존재였음에 주목한다. 무기의 발명이 인간을 큰 까마귀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손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어버렸다. 전쟁을 일으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는 동물은 인간, 침팬지, 개미뿐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선전포고하는 것은 늙은이다. 그러나 싸우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다”라고 했던 허버트 후버 미국 31대 대통령의 말이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묻어났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우리가, 특히 지도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는 경구다.


Posted by 김학순

축구소설이 아니면서도 이처럼 풍성하고 격조 높은 축구지식을 담은 소설이 있는지 들어본 적이 없다. 박현욱의 논쟁적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 말이다.
폴리아모리(비독점적 다자연애)가 소설의 주제지만 축구로 시작해 축구로 끝난다. 제목부터 발칙한 <아내가 결혼했다>는 축구라면 질색하는 사람들조차 축구의 마력에 푹 빠지게 하지 않을까 싶다.
축구와 연애, 결혼, 인생의 공통점을 고비마다 절묘하게 연결고리 짓는 작가의 전개방식이 놀랍다. 책의 들머리를 장식하는, ‘인생 그 자체가 축구장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영국 시인 월터 스콧의 말이 이 소설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작가는 축구의 정치·사회학을 종종 유명인사들의 말로 대변한다. 작가 조지 오웰이 축구를 일컬어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 했다면, 토털 사커의 창시자이자 네덜란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리누스 미헬스는 아예 “축구는 전쟁”이라고 한술 더 뜬다.
하긴 혁명의 풍운아 체 게바라도 “축구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라 혁명의 무기”라고 선언했다. 반대로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축구경기가 열리는 일요일에 혁명을 하는 것이 가능한가?”라고 묻는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연례 경기, '엘 클라시코'는
마드리드와 카탈루냐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다.

축구의 정치·사회학에 관해서는 미국 저널리스트 프랭클린 포어가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말글빛냄)에서 흥미롭게 파고든다. 포어는 축구야말로 어느 경제기구보다 앞서서 세계화를 이끈 주역이었다고 단정한다.

지은이는 명문 프로축구단 FC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의 민족주의를 천착하고 있다. 그는 바르샤(FC 바르셀로나의 애칭·현지 발음은 바르까)의 모자와 유니폼을 입고 이 책을 썼다고 고백할 정도로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결혼했다>의 폴리아모리스트 여주인공도 바르샤의 ‘광팬’이다.

고상한 문화와 민주적 운영을 자랑하는 바르샤 구단의 정책을 보면 좋아하지 않기가 쉽지 않다. ‘클럽 그 이상이 되자’는 모토를 가진 바르샤는 세상의 모든 프로축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유니폼 앞쪽에 광고로 장식하지 않고 있는 전통을 자긍심의 하나로 삼는다. 바르샤의 서포터스도 낭만을 우승보다 훨씬 소중하게 여긴다.

저자는 이탈리아 최고 명문 구단인 유벤투스와 라이벌 AC 밀란에 얽힌 정치역학을 파헤친다. “이탈리아 총리의 임무는 아넬리 가계(유벤투스 구단주)의 문고리를 닦는 일”이라는 풍자가 냉소적인 상징성을 띤다.
유벤투스는 경이적인 우승횟수를 기록했지만 결승전 가운데 상당수가 심판의 의심스러운 판정에 힘입어 승리를 따낸 것으로 소문이 나 있다. 새로운 경쟁자 AC 밀란이 과두재벌이자 총리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의 정치적 배경이라는 건 비밀이 아니다. 좌파 지식인들이 인터 밀란 팬이 되는 이유를 자연스레 알 것 같다.

세계 최강인 브라질이 세계적 스타들을 자국 리그에 잡아두지 못하는 건 상류층인 ‘카르톨라스’가 만든 정치 부패가 브라질 축구를 위축시켰기 때문이라고 꼬집는다.
중동 축구의 맹주 이란에서는 축구가 자유화의 동력이다. 남장을 하고 축구경기를 보는 여성 팬들 가운데는 성직자의 딸도 있다고 한다. 축구 혁명은 하나의 사건 이상이며, 중동의 미래를 여는 열쇠를 쥐고 있다고 저자는 내다본다.

기성용 선수의 소속 구단인 스코틀랜드의 셀틱과 글래스고 레인저스의 경기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끝나지 않은 싸움이자, 적(敵) 이상의 적이다. 상대팀을 응원했다는 이유로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상대팀 티셔츠를 입었다가 이웃에게 살해당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누군가 세상이 어수선할수록 축구도 거칠어진다고 했다. 지구촌의 가장 매혹적인 스포츠 축제인 월드컵 축구대회도 그 이데올로기와 정치학을 알고 보면 격이 다른 관전자가 될 게다.


Posted by 김학순

리더십에 대한 정의는 리더와 연구자의 숫자만큼이나 많다고 한다. 리더십에 관한 방법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리더십에 관한 책이 세상에 넘쳐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리더십=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정의는 갈수록 복잡다단하고 온갖 갈등으로 가득한 사회를 반영하고 있다. 인식의 차이를 줄이는 게 리더의 핵심 역량임을 강조한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일화 한 토막.

자녀와 제대로 된 대화가 한 번도 없었던 아버지가 있었다. 우연히 아버지 역할에 관한 책을 읽고 느낀 게 많았던 그는 그날 저녁 아들을 식탁에 불러 앉혔다.
“야, 우리 이제부터 대화하자!” 당혹한 아들은 어쩔 줄 몰랐다. 한참동안 기다리던 아버지는 참다못해 한마디를 던졌다. “너, 요즘 몇 등 하냐?” 아버지는 인식의 차이를 극대화하는 미스커뮤니케이터형 리더의 전형이다.

아담 카헤인의 <통합의 리더십>(에이지21)‘소통의 리더십’을 함축한다. 사실 제목처럼 ‘통합의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원제를 보면 금방 눈치 챌 수 있듯 ‘난제 풀기 방법론’이다. 카헤인은 지난한 문제를 푸는, 열린 대화법의 전범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그게 하늘에서 금방 떨어진 기상천외의 요술방망이가 아니다. 하나같이 자신의 체험담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흑백 정권이 처음으로 바뀐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남아공에서 인종분리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철폐된 뒤 앙숙인 흑인과 백인이 함께 사는 길을 찾아야만 했다.
좌파 흑인 정당, 강성 노조, 반정부단체, 공산당 대표 등이 보수적인 백인 대표들과 마주 앉아 이른바 ‘몽플레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먼저 석 달 동안 서른가지 시나리오를 만든 후 이듬해 3월까지 4개로 압축했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타조’다.

차기에 정권을 잡은 백인 정부가 타조처럼 자신의 머리를 모래 속에 처박고 다수 흑인들이 요구하는 협상안에 응하지 않는 경우다.
두 번째 시나리오인 ‘레임덕’은 차기 정권에 약체 정부가 들어서 개혁이 미뤄지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다. 세 번째 시나리오는 ‘이카루스’다. 차기에 정권을 잡은 흑인 정부가 대중의 지지를 얻어 재집권한다. 흑인 정부는 지나치게 이상적인 국책사업을 추진하다 재정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네 번째 시나리오인 ‘플라밍고들의 비행’은 모든 세력이 연합해, 답답하지만 천천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이들의 최종 선택 카드는 네 번째였다. 한마디로 ‘끝장 대화’다.

이를 설명하고 토론하는 100회 이상의 워크숍이 열렸다. 그 결과 남아공 국민들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배제하고, 느리지만 서로 협동하면서 흑인과 백인이 연대하는 나라를 건설하는 최선의 시나리오를 공연할 수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열린 마음으로 듣는 것은 솔직하게 말하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인상 깊은 구절 하나. “모든 것에 대한 진리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어떤 것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도 말머리에 ‘내 생각에는’ ‘내 견해로는’과 같은 말을 집어넣어라.”

진솔한 소통만이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는 교훈이 담겼다. 촛불시위를 괴담 수준에서 반성하길 요구하는 리더십,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 불신을 낳은 천안함 규명 의혹, 찬성보다 반대 의견이 높은 4대강 사업 강행, 세종시 수정 계획 밀어붙이기 등은 이 책에서라면 반면교사다.

현대 리더십의 관건이 설득력과 휴머니즘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