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세계를 일주했다는 프랑스 생물학자 이브 파칼레의 걷기예찬은 문학이자 철학이기도 하다.

“걷기, 그 속에는 인생이 들어 있고, 깨달음이 들어 있으며, 신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들어 있다. 걷기를 좋아하는 이에게는 현자의 지혜가 번득이고 그의 눈은 시적 통찰력으로 빛난다.”

그는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의 유명한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빌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도 남겼다.

그는 <걷는 행복>이란 책에 ‘인간의 지성이 걸음에서 잉태됐다’고 썼다. 하긴 석가모니, 예수, 무함마드(마호메트) 같은 성인들도 생전에 가장 부지런히 걷는 사람이었다.
예수는 고독하게 홀로 걸으며 신과 대화하고, 제자들과 함께 걸으면서 가르침을 전했다. 석가모니도 평생을 걸었다. 전해지는 법어의 절반 이상이 걸으면서 제자들에게 한 것이다.



Camino de Santiago (산티아고 길) 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페인의 도보여행지다.


장 자크 루소는 숲을 산책하고 나서 “철학의 첫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자들과 철학을 논하면서 걸었다는 데서 소요(逍遙)철학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면, 노자와 장자의 철학 또한 무위와 ‘소요의 철학’이지 않던가.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르 브르통도 <걷기예찬>에서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했다. 일찍이 루소는 <에밀>에서 “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고 특유의 걷기 미학을 펼쳤다.

오늘날의 걷기 열풍을 불러온 데는 프랑스의 퇴직 언론인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기여도가 적지 않다.
1만2000㎞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세계 최초로 오직 걸어서 여행하고 나서 쓴 <나는 걷는다>(효형출판)는 전 세계적인 걷기 마니아를 낳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 올레 걷기의 길을 튼 것도 이 책의 영향이 크다. 대표적인 도보여행가 김남희는 이 책을 읽고 전율을 일으켜 산티아고 길과 세계를 누볐으며, 제주 올레를 창안한 서명숙 역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뒤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올리비에는 책 앞부분에 실크로드 걷기 구상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나왔음을 상기시켰다.

올리비에가 30년간의 기자생활에서 은퇴한 뒤 예순두 살의 나이로 그 같은 용기를 냈다는 게 더없이 경이롭다. 기자라는 동류의식도 없지 않으나 경외심까지 느낀다.
말이 쉽지 7세기 전 마르코 폴로가 말을 타고 갔던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다. 지독한 외로움, 생사를 오가는 질병, 사람들의 위협, 수도 없이 찾아드는 중도포기 유혹을 무릅쓴 4년간의 도보여행기다.

그는 역설한다.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길이다”라고. 걷기에 관한 수많은 책이 나왔지만 거리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감탄사가 나올 법한 것은 이 책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올리비에는 ‘걷는 것은 육체적 운동이 아니라 정신적인 운동’이라고 여긴다. 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기를 성찰하기 위해서는 혼자서 도보여행을 할 것을 권한다. 처음에는 지루하게 느껴지겠지만, 혼자 여행하는 동안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단순하지만 소박한 기쁨을 알게 된다. 난관에 부딪힐 때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아를 단련하게 된다.”

길을 가는 것은 도(道)를 닦는 것이라는 선인들의 슬기와 다르지 않다. 거창한 것을 제쳐놓더라도 걷는 것은 곧 건강이다. 의성(醫聖) 허준도 <동의보감>에서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 좋은 음식이 낫고, 좋은 음식보다 걷기가 더 낫다고 설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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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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