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를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의 한 사람인 이사야 벌린은 레프 톨스토이의 걸작 <전쟁과 평화>를 독특한 시각으로 접근한다. 벌린은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이해하지 않고선 <전쟁과 평화>를 제대로 소화해 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톨스토이의 역사관을 설명하기 위해 ‘고슴도치와 여우’라는 고대 그리스 우화를 빌려온다. “여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고슴도치는 큰 것 하나를 알고 있다.” 희랍 시인 아르킬로코스의 말이다. 벌린이 쓴 <고슴도치와 여우>는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고슴도치형 인간은 모든 일을 하나의 핵심적 비전으로 조망하려는 비전형이다. 본질적인 것을 보고 나머지는 모두 무시하는 스타일이다. 고슴도치가 몸을 동그랗게 말아 가시뭉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여우형 인간은 여러 가지 목적을 동시에 추구하며 세상의 복잡한 면면들을 두루 살피는 분별형이다. 여우가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복잡하고 산만한 것들을 두루 살피는 것과 흡사하다. 벌린은 톨스토이가 고슴도치를 꿈꾼 여우였다고 평가한다. 톨스토이가 천성적으로 여우형이었음에도 고슴도치형을 흉내를 냈기에 불행한 천재라고 본 것이다. 벌린은 고슴도치형과 여우형의 조화에 대한 중요성을 톨스토이의 역사소설 <전쟁과 평화>에서 찾는다.

톨스토이는 전쟁처럼 악하고 소름끼치는 일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전쟁은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질병’이라고 한 마틴 루터나 ‘모든 인류 죄악의 총합은 전쟁’이라고 했던 J 그라이트의 생각과 같다.

존 스토신저는 <전쟁의 탄생>(플래닛미디어)에서 전쟁의 원인을 기존 국제정치이론과 다르게 본다. “전쟁 발발의 원인 가운데 지도자의 성격도 지극히 중요하다는 연구결과가 도출됐다. 전통적으로 전쟁의 원인으로 간주돼 왔던 민족주의, 군국주의, 동맹체제와 같은 추상적인 힘의 역할은 그리 인상적이지 않았다. 어느 것도 경제적 요인이 전쟁을 일으키는 데 절대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경우는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지도자의 성격은 결정적이었다.” 그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다른 물리적인 힘이 전쟁의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기존 이론을 비판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독·소전쟁, 미국·이라크전쟁, 르완다 내전 등 20~21세기 큰 전쟁의 전황과 정치적 상황, 당시 운명을 결정짓던 지도자들의 성향과 심리상태까지 분석한다. 그 결과, 스토신저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공격성향은 선천적일지 모르지만 전쟁은 학습된 행동이다. 그건 학습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와카쿠와 미도리 역시 특이한 시각에서 전쟁을 해부하고 있다. 그는 <사람은 왜 전쟁을 하는가>(알마)에서 인간의 공격성은 제어할 수 없는 본능이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는 전쟁이 모계사회에서는 없었으니 ‘가부장제 남성 지배형 국가’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다. 당연히 그 같은 체제에서 벗어나야 전쟁 위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는 논리다. ‘젠더 이론’이다.

미도리는 본래 인간이 토끼나 비둘기처럼 같은 크기의 동물을 죽이지 않는 존재였음에 주목한다. 무기의 발명이 인간을 큰 까마귀의 부리를 가진 비둘기, 손도끼를 든 침팬지로 만들어버렸다. 전쟁을 일으켜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는 동물은 인간, 침팬지, 개미뿐이라는 게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선전포고하는 것은 늙은이다. 그러나 싸우고 죽어야 하는 것은 젊은이다”라고 했던 허버트 후버 미국 31대 대통령의 말이 천안함 침몰사건 이후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젊은 유권자들의 표심에도 묻어났다.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우리가, 특히 지도자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은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없다’는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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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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