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학자 오주석을 한마디로 일컫자면 ‘옛 그림을 그윽하고 향기롭게 읽어주는 사람’쯤 되겠다. 그
는 조선시대 그림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인물로 첫손가락에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보기’보다 그림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도하는 데 길지 않은 평생을 바친 공력이 지대하다.

그는 우리네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다가 5년 전 하늘의 뜻을 채 알기도 전인 마흔 아홉에 속절없이 하늘나라로 가버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의 저작은 그림의 문외한조차 즐겁고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강하다. 글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정제되어 군더더기 한 점 없어 보인다.
대중적이면서도 그림만큼이나 은근한 맛과 훈향, 기품이 풍겨 나오는 문장이다. 마치 옛 그림처럼 담박하고 단아하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도록 언어의 섬섬옥수가 끌어당긴다. 그가 그림을 읽는 눈은 전문가들도 찬탄할 만큼 독창적이고 깊이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는 박물관에 박제돼 있던 우리 옛 그림을 다시 살려내 고미술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솔출판사)은 제목부터 그림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또 다른 수작 <한국의 미 특강>도 예외가 아니다. 1998년 <단원 김홍도>로 시작된 그의 저작은 그렇게 옛 그림에 대한 뭇사람들의 사랑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한·중·일·대만·홍콩의 석학들이 선정한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김구의 <백범일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과 더불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선정된 것만 봐도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어떤 이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회화 예술계에 나온 <우리문화유산답사기>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그런 유홍준에게 생전에 서슴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렸던 고인이 달가워할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에 관한 해설에서 내면의 삼엄함, 도가풍의 은일, 풍아(風雅)의 유유자적 같은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의 눈, 아니 가슴에서 새로 읽히는 김명국의 ‘달마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김정희의 ‘세한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같은 명작은 늠연한 선인들의 심상 그대로다.

책 서문의 한 구절이 사뭇 인상적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그림을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을 잘 완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옛 그림이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고 설파한다. 저자는 수묵화가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라고 품평하고 있다.

그의 얘기 가운데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게 있다.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명심할 게 하나 더 있다. 그림은 천천히 오래 봐야지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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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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