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육의 길

서재에서 2010.05.14 11:41

이오덕과 하이타니 겐지로는 닮은 점이 많다. 한국과 일본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진정한 교육자이자 문학가로 추앙받는 큰 나무라는 점이 같다.
동시대를 산 두 사람은 참교육의 표징이다. 어린이와 문학을 빼놓고선 얘기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의 생활 글을 높이 평가하고 확산시킨 것도 공통점의 하나다. 아이들을 가르친다기보다 함께 배운다는 교육철학도 흡사하다.

하이타니 겐지로의 첫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양철북)는 참스승이라면 어떠해야 하는지, 진정한 교육이란 무엇인지를 눈시울이 뜨겁고 콧날이 찡하게 보여준다.
‘교사의 바이블’이라고 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1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작가의 체험과 따사로운 교육철학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명작이어서다.

이 작품은 아이들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아름다운 선생님들과 그들의 노력으로 마음을 열어가는 아이들의 따뜻하고 풋풋한 이야기다.
쓰레기 소각장이 있는 동네의 초등학교를 무대로 갓 대학을 졸업한 신참내기 여교사가 직면하는 사건들과의 만남을 통해 소외된 어린이들과 함께 성장해가는 모습이 갸륵하다. 지엽적이지만 교활하고 끔찍한 일제의 만행과 조선인(한국인)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대목에서도 작가의 휴머니즘이 가감 없이 우러난다.
1974년 첫 출간된 이후 한 세대가 훨씬 지났지만 수많은 모방작을 낳으며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일본에서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 한 교육대학 여학생은 이런 리포트를 제출했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이 싫다. 이 책을 쓴 작가가 밉다. 나는 그런 식으로는 살아갈 자신이 없다. 그런데도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도저히 못할 것 같다.’
그럴 만큼 이 체험적 소설은 우리 모두의 교육 이상향을 그리고 있다.

이오덕 교육문고 시리즈 첫 권으로 나온 신간 <민주교육으로 가는 길>(고인돌)은 ‘이오덕 교육철학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요약해 보여준다.
그는 겨레교육을 다시 세우는 일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알맹이로 도덕교육, 노동교육, 표현교육을 든다. 도덕교육은 겨레교육을 일으켜 세우는 기둥이고, 삶과 표현을 통한 교육은 민주·민족·인간의 참교육을 실천하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교육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아무리 좋다고 생각하는 관념이나 도덕이나 이론도 그것을 덮어놓고 따르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생각과 이론은 감각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이루어 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사상이 여기서 출발해야 합니다.”

어린이를 ‘지적 노동자’라고 칭했던 하이타니와 상통하는 부분이다.

이오덕은 교육자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육자에 계급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교육자는 다만 교육자일 뿐이다. 평생을 오직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즐겁게 여기고 보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교육자가 될 자격이 없다.”

이오덕과 하이타니 겐지로를 생각하다 보니, 친구가 될 수 없다면 진정한 스승이 아니라고 했던 중국 양명학자 이탁오의 말이 스쳐간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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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저명한 산악인 보이테크 쿠르티카의 등반철학은 남다르다. 유명 산악인이 하나같이 히말라야 8000m급 정상에 도전하는 것과 달리 7925m의 가셔브룸 4봉에 오르면서 이렇게 반문한다.

“단지 8000m급 산이라고 하여 오르고 싶어 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해발 8000m에서 불과 75m 모자라는 히말라야 봉우리라고 의미가 없느냐는 것이다.

히말라야는 8000m가 넘는 봉우리를 14개나 품고 있지만 7000m급 산도 350여개나 거느리고 있다. 기실 지구상에 7000m 이상 솟아 있는 산은 모두 히말라야에 모여 있는 셈이어서 희소성이 떨어질 법도 하다.

쿠르티카는 1985년 11일간의 사투 끝에 가셔브롬 4봉 정상 바로 앞에 다가섰음에도 나의 목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어려운 서쪽빙벽’이라며 미련 없이 돌아서는 기이한 산사나이이기도 하다. 정상의 유혹도 초월한 ‘설벽의 구도자’로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등산을 ‘인내의 예술’이라고 정의한다.




쿠르티카와는 달리 이탈리아 출신의 ‘살아 있는 전설’ 라인홀트 메스너는 세계 등반 기록의 역사를 갈아 치운 정통파 산악인이다. 1978년 에베레스트를 무산소로 오른 뒤 곧이어 악명 높은 낭가파르바트를 단독 등반하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세계 역사상 가장 탁월한 등반가다.
그는 무산소 등정, 단독 등정, 알파인 스타일 등반, 새 루트 개척 등반 등 늘 새로운 방식으로 산을 올랐다. 덕분에 등반을 철학 이상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메스너는 한국 여성산악인 고미영을 비롯한 30여명의 알파니스트를 죽음으로 몰아간 낭가파르바트를 오르고 나서 산악문학의 고전이 된 <검은 고독 흰 고독>(이레)을 썼다.
아시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등정한 엄홍길이 <8000미터의 희망과 고독>을 집필하도록 동기부여한 명저이기도 하다.

그는 극한의 세계에서 찾은 고독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산을 정복하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영웅이 되어 돌아가기 위해서도 아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서 이 세계를 새롭게 알고 싶고 느끼고 싶다. 이 고독 속에서 분명 나는 새로운 자신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체험한 흰 고독이었다.”




그에게 히말라야 등반은 위대한 도전이자 산에 있는 것 자체가 즐거움이었다.

“나는 그저 산을 오르려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것이다. 모든 기술을 배제하고 파트너도 없이 산을 오르려고 생각할수록 환상 속에서 나만의 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는 애국심 따위를 팔지도 않는다.

“나는 에베레스트를 올랐지만 그것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일 뿐 나라를 위해, 즉 볼차노를 위해 이탈리아를 위해, 혹은 오스트리아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또 다른 신화적 산악인 헤르만 불의 <8000미터 위와 아래>(수문출판사)도 등산이 스포츠와는 다른 영역이어서 자연에 대한 사랑과 정신적 가치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1953년 낭가파르바트를 최초로 단독 등정하고 33살에 산악인의 최후를 히말라야에서 맞은 불은 모험정신을 내세운다.

“8000m급의 거봉은 인간으로서 최후의 모험을 단행하지 않고는 등정을 이룰 수 없다. 나는 그런 모험을 강행했다.”

<알피니즘, 도전의 역사>를 쓴 원로 산악인 이용대의 말대로 더 이상 미지의 세계나 미답봉이 없어진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산에 오르는 과정과 정신일 듯하다. 쿠르티카가 일찍이 그랬던 것처럼 산의 높이보다 산과 만나는 태도가 요체이다.

한층 더 새겨들을 것은 프랑스 산악인 리오넬 테레이의 말이다.

“등산은 자기과시가 아니며,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인간의 의식과 행동이자 자연에 대한 가장 순수하고, 가혹하며 신중한 도전이다.”

여성으로선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등정한 쾌거를 이룬 오은선 대장이라고 예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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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민주주의를 대놓고 빈정거리면서 비판한 것으로 이름 높다. ‘인간의 타락한 형식’이라거나 ‘동등한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는 난장이짐승’ ‘겉으로만 보면 평화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민주주의자들과 혁명주의자들’ 따위로 매도할 정도다.
특히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권력에의 의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의 평등의식을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때린다.

그런 니체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들도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면 뭐라고 할까.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자인 도라 비로 박사팀은 한 무리의 비둘기들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하고 15㎞ 정도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반드시 민주적 위계질서에 따른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최근 논문에서 밝혔다.

수많은 비둘기 떼가 비행 방향을 바꿀 때마다 순간적인 의견수렴 ‘투표행위’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리더와 여론 주도층이 어린 새끼의 투표권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들이 진화 과정에서 이 같은 행동 결정 양식을 선택하고 발전시켰다면 다른 동물집단은 물론 인간도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일반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연구진은 유추한다. 민주주의가 공동체 내에서 공적인 결정을 만드는 틀이라고 본다면 이 같은 현상은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모레 4·19혁명 50주년을 맞고, 절차적 민주화를 이룬 뒤 20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가 질적으론 도리어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1980년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희망의 언어였다면, 90년대에는 실험의 언어였으며 2000년대에는 절망의 언어가 되었다’는 풍자가 귓전을 울린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해 발표하는 2008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아직 167개 국가 중 28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층에서는 잊을만하면 ‘민주주의의 과잉’을 운위하곤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제자 박상훈·박찬표가 함께 쓴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는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따져 묻는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이름만 갖고 있지 않다.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보호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법치민주주의, 숙의(심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직접행동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지은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추상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민주주의냐’하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뼈아프게 지적하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정치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영역,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의 정치참여 확대와 보편적 시민권의 향유와 같은 요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이다.

저자들의 중요한 인식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려 보면 이렇다.

“우리가 가진 공통의 현실인식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로의 발전 경로는 점차 봉쇄되고 있는 반면 ‘국가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권 확대의 요구는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주의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대면해야 할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의 봄’으로 불리는 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시위대는 ‘안녕하세요, 민주주의님’(爾好 德先生 Hello Mr. Democracy)이라는 플래카드를 높이 들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인사말이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요’라는 물음 앞에 놓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민주주의의 모든 질병은 더 많은 민주주의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는 앨프레드 스미스의 처방이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차와 제도에 갇힌 민주주의는 죽은 민주주의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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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의 공자·맹자와 도가의 장자는 책에 관한 생각도 차이를 드러내는 듯하다. 불가의 학승(學僧)과 선승(禪僧)의 차이와 흡사하다.
‘옛것을 익혀 새것을 안다’(溫故知新)는 공자의 말은 고전을 읽어야 할 이유를 한마디로 간추려 놓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옛 사람들과도 벗이 될 수 있다’(讀書尙友)는 맹자의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반면에 장자는 책에만 너무 매달리지 말라고 은근히 경계한다. 중국 고전 <장자>에 나오는 임금과 수레바퀴 장인의 우화가 대표적인 예다.

마루에서 책을 읽고 있는 제나라 환공에게 마당에서 수레바퀴를 만들던 늙은 장인이 “무슨 책이냐”고 묻는다. 환공이 “옛 성인의 말씀”이라고 하자, 장인은 “이미 죽은 성인들의 말씀이라면 그건 말의 찌꺼기에 지나지 않는 것(然則君之所讀者, 故人之糟魄已夫)”이라고 되받는다.
환공이 화를 내자 늙은 장인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설명한다.
‘바퀴 구멍에 바퀴살을 맞춤하게 끼우는 섬세한 작업은 짐작으로 터득해서 마음으로 느낄 뿐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자식에게도 전수하지 못하니 늘그막에도 이렇게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처지다. 그러니 옛 성인이 터득한 지혜도 말로 전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영국 소설가이자 케임브리지대 교수였던 클라이브 스테이플스 루이스는 고전과 신간의 일정한 균형 유지를 권면한다.

“평범한 독자들이 신간과 고전 중 양자택일의 상황에 직면한다면 고전을 읽으라고 조언할 것이다. 신간 한 권을 읽고 난 뒤 고전 한 권을 읽기 전까지는 결코 또 다른 신간을 읽지 않도록 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다. 만일 이것이 너무 많다고 느껴진다면 적어도 신간 세 권당 고전 한 권을 읽어야만 한다.”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영국 소설가 에드워드 리튼은 “과학에서는 최신의 연구서를 읽어라. 문학에서는 가장 오래된 책을 읽어라”고 권한다. 정답은 물론 스스로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고전을 읽어야 한다’는 진부한 주문이 끊이지 않는 까닭은 동서와 고금이 그리 다르지 않다.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는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 서문에서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는 역사를 읽는 이유와 다르지 않다.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디딤돌이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한다.
<위대한 책들과의 만남>의 저자 데이비드 덴비도 고전을 읽어야 하는 으뜸가는 이유로 ‘우리와 멀리 떨어진 시대, 우리와 사뭇 다른 문화와 사유의 소산’이란 점을 든다.

특히 이탈리아의 저명한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왜 고전을 읽는가>(민음사)에서 고전에 대한 정의를 14가지로 내린다.
그 첫번째가 “고전이란 사람들이 보통 ‘나는 ~를 다시 읽고 있어’라고 말하지 ‘나는 지금 ~를 읽고 있어’라고는 결코 이야기하지 않는 책이다”란 구절이다. “고전이란 그것을 둘러싼 비평 담론이라는 구름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작품이다. 그러한 비평의 구름들은 언제나 스스로 소멸한다”라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이어지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고전이란 우리가 처음 읽을 때조차 이전에 읽은 것 같은, ‘다시 읽는’ 느낌을 주는 책이다.” “고전이란 고대 전통 사회의 부적처럼 우주 전체를 드러내는 모든 책에 붙이는 이름이다.”

칼비노는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이자 모럴리스트 작가인 에밀 시오랑의 입을 빌려 왜 고전을 읽어야 하는지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이 준비되고 있는 동안 피리로 음악 한 소절을 연습하고 있었다. ‘대체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오?’ 누군가 이렇게 묻자,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 음악 한 소절은 배우지 않겠소.’ ”

고전을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이야기의 근본이 되는 텍스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지난해 도서관 대출 도서 분석결과 ‘서울대생들은 신간을 주로 읽고 하버드대생들은 고전을 많이 읽는다’는 기사가 화제로 떠오른 적이 있다. 상징성을 띤 이 기사가 영국 저술가 새뮤얼 스마일즈가 했던 말과 겹쳐 보이는 건 왜일까.

“사람의 품격을 그가 읽는 책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마치 그가 교제하는 친구로 판단되는 것과 같다.”


Posted by 김학순


2010.03.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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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있는 심리학자 닥터 톤은 이색적인 실험을 위해 참가자를 공개 모집한다. 2주일 동안 사람들을 임시 감옥에 가두어놓고 이들이 어떻게 변해가는가에 관한 실험이었다. 감옥 생활 경험이 없고, 엄밀한 심리테스트를 통해 뽑힌 스무 명은 각각 14일간 열두 명의 죄수와 여덟 명의 간수 역할을 한다. 즐겁게 시작한 실험에서 참여자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짜 죄수와 간수처럼 변해간다. 차츰 험악해진 분위기는 마침내 금지됐던 폭력이 난무하고 끝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변한다. 교수가 잠시 자리를 비운 5일 뒤부터 이들은 실험 관리자들을 감금하고 고문까지 했다. 가까스로 탈출한 죄수들은 다시 잡히지만 그 과정에서 죄수 한 명이 죽고 간수도 죽는다. 77번 죄수와 소령의 힘으로 결국 실험을 중단시키고, 때마침 교수가 돌아오면서 영화는 끝난다. 영화 <엑스페리먼트>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필립 짐바르도가 1971년 실시했던 충격적인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을 각색한 것이다. 실험을 토대로 35년 뒤에 탄생한 짐바르도의 저작 <루시퍼 이펙트>는 ‘무엇이 선량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가’란 물음을 던지며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과 악의 뿌리를 궁구한다.

짐바르도는 ‘악한 사람은 그 기질에 원인이 있다’는 기존의 통념을 부정하며 선과 악에 관한 새로운 해석을 모색한다. 인간은 누구나 의지와 달리 순식간에 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고 경종을 울린다. 루시퍼처럼 악의 얼굴은 평범하며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이다. 마치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복판에 있다”고 갈파했던 알렉산드르 솔제니친과 상통한다.

찰스 프레드 앨퍼드 메릴랜드대 교수의 명저 <인간은 왜 악에 굴복하는가>(황금가지)는 악의 근원을 ‘두려움’이라고 본다. 앨퍼드가 직접 일반인, 흉악범, 정신병 환자까지 68명을 만나 정신분석적 방법으로 악의 실체를 탐구한 결과 공통적인 열쇠는 바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에 쫓기면 조급해지고 영혼을 잃게 된다는 게 앨퍼드의 발견이다. 일반인들이 패배, 죽음, 실연, 따돌림 등에서 악을 떠올린 것과는 달리 흉악범들은 존속 살해, 시체 유기, 강간 같은 범죄를 악이라 여기고 있다.

<한국인의 심리에 관한 보고서>란 책으로도 잘 알려진 앨퍼드는 ‘악이란 자신의 두려움을 타자(他者)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규정한다. 상대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기심이 발생하고 악이 드러난다고 한다.앨퍼드는 한국인의 심성에는 서구의 ‘악’에 대응할 만한 개념이 없다고 분석한 바 있다. 선(善)과 이분법적으로 대비되면서 외부에서 우리를 타락시키는 ‘악’에 대한 개념이 한국인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선과 악의 개념보다 좋음과 나쁨의 개념이 더 적절한 것으로 여긴 듯하다.

앨퍼드가 보기에 인간 본연의 양상인 악은 결코 제거될 수 없다. 그는 악과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인류가 악행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파괴적 충동의 완충지대를 더 많이 만들어내 범죄자들의 가학증에 배설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지금까지 수많은 책들은 ‘불평등한 사회구조가 엽기 범죄자를 낳는다’거나 ‘결손 가정이 악인을 만든다’는 가설을 제시해 왔다.

앨퍼드는 김길태 같은 사람과 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악을 도덕주의적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는 데에 방점을 찍는다. 악을 제거 대상으로 보는 사회에서 김길태 같은 이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에티오피아 마지막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는 탁견을 남겼다. “역사를 통해 악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 행동하지 않고, 잘 아는 사람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가장 필요한 순간에 정의의 목소리가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Posted by 김학순

2010.03.05 17:13

닌토쿠 일왕(仁德 日王)은 일본 역사상 백성을 가장 극진히 사랑한 군주로 칭송 받는다. 왕자 시절 스승이 백제의 왕인 박사였던 그는 즉위 후 어느 날 왕궁의 전각과 언덕에 올라 사방을 살펴보다 연기가 나는 집이 별로 없다는 걸 발견했다. 백성들이 밥을 짓지 못할 만큼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직감한 그는 3년 동안 단 한 푼의 세금도 거둬들이지 않았다. 덕분에 3년 뒤에는 온 나라에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게 되었다. 하지만 궁전 살림살이는 왕궁이 낡아 여기저기서 비가 샐 정도로 어려워졌다.

즉위 7년째 처음으로 왕궁 수리에 들어가자 백성들이 너도나도 자진 참여하는 바람에 순식간에 공사를 끝냈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정사서(正史書)인 <일본서기>에 나오는 일화다.

<조선왕조실록> 중종 편에도 호화관청의 폐해에 관한 기록이 전해온다. 사헌부가 임금에게 아뢰었다. “경상우도 병사 조윤손이 성 안에 대(臺)를 쌓고 정자를 지었는데 극도로 사치스럽고 화려했다 합니다. … 전라좌도 수사 김세희는 전에 제포첨사로 있을 때, 병화(兵火)가 있은 후인데도 대청을 극히 장려하게 창건하였는데, 궁궐에 버금가게 하여 군졸을 피곤하게 하였습니다. 온성 부사 신옥형은 전에 경상좌도 수사로 있을 때 대청을 영건하되 크게 공역을 일으켜 궁궐에 견줄 만할 정도로 웅장 화려하게 하여 군졸을 피곤하게 하였으니, 이문(移文)하여 다스리게 하소서.”

그러자 중종이 전교를 내렸다. “대저 옛 관사가 혹 퇴폐했으면 수보(修補)하는 것이야 옳지만, 수개(修改)하되 웅장하고 사치스럽게 하면 그 폐해가 반드시 백성에게 미칠 것인데, 하물며 누관과 정사를 새로 창건하여 유관(游觀)의 장소를 삼음에랴. 헌부에서 추치하는 것이 마땅하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창비)에도 호화청사와 비리를 질타하는 대목이 숱하게 나온다. “고을의 원님이 허름한 청사를 수리할 경우에는 공무를 빙자하여 사리를 도모한다. 재화와 경비의 항목을 마음대로 설정하고 상급관청에 구걸하고 고을의 곡식창고를 농간질하여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들이고 아전들과 공모하여 남는 것을 가로채어 사복이나 채운다.”



가장 역점을 둬야 할 주민 복지는 뒷전인 채 수천억원을 들여 호화청사를 이미 지은 성남·용인시 같은 곳이나, 지을 계획을 세워놓은 방방곡곡의 지방자치단체들에 경종이 되는 사례들이다.

<목민심서>는 무엇보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고 많다. “청렴하게 한다는 것은 수령 본연의 의무로써 온갖 선정의 원천이 되고, 모든 덕행의 근본이 된다. 청렴하지 않고 목민관 노릇을 제대로 한 사람은 아직 없다.” “수령이 청렴하지 못하면 백성들은 그를 도둑으로 지목한다.” “현명한 사람은 청렴이 궁극적으로 이롭다는 것을 안다” “청렴한 관리를 귀하게 여기는 까닭은, 그가 지나는 곳은 산림과 천석(泉石)까지도 모두 그 맑은 빛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백성을 사랑하는 근본은 재물을 절약해 쓰는 데에 있고, 절용하는 근본은 검소한 데에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기초단체장 가운데 각종 비리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사람이 무려 42%에 이른다는 사실은 부정부패의 심각성을 한눈에 엿보게 한다. 충남 홍성군청 공무원 670여명 가운데 16%인 108명이 군 예산 7억여원을 빼돌리는 데 동참한 공무원들의 집단범죄는 부패의 극치를 보여줬다. 지방공무원의 부정부패와 호화청사 건축은 심지어 지방자치제 자체에 대한 회의론을 낳을 정도다.

공직자 필독서 1위에 꼽히는 <목민심서>를 보유한 대한민국의 국가청렴도가 오랫동안 세계 40위 안팎에 머물고 있는 것은 무엇으로도 변명되지 않는다.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지방선거의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 방법의 하나로 <목민심서>를 읽었는지, 읽었다면 제대로 읽었는지, 실천 의지는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해본다.


Posted by 김학순

2010.02.19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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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는 흥미롭고 자기암시적인 속담이 전해온다. “사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해줄 역사학자를 갖기 전까지 사냥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사냥꾼을 찬양하는 일색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역사가 중심으로 쓰이고, 약하고 권력 없는 자는 언제나 역사에서 누락되거나 악역만 맡고 만다는 경구다.

그래선지 영국 역사학자 홉킨스는 이렇게 자성하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독립의 해인 1960년 이전 식민지시대 유럽인들의 아프리카관은 자연이나 인간의 낙원으로 보는 ‘메리 아프리카’와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보는 ‘프리미티브 아프리카’의 두 극단적 신화로 채색되어 있었다. 그곳에 사는 아프리카인이 주체인 참된 의미의 역사는 쓰인 적이 없었다.”

‘아프리카는 가장 낭만적이면서도 가장 비극적인 대륙’이라고 묘사했던 미국 흑인 사회운동가 윌리엄 듀 보이스의 말도 이와 흡사하다. 듀 보이스는 <세계역사 속의 아프리카> 서문에서 “아프리카를 세계 역사에서 생략함으로써 흑인 노예를 합리화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 흑인을 언급하지 않고도 역사를 쓸 수 있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여전히 아프리카를 굶주림과 질병, 내전의 땅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만 재단하는 이가 대다수다. 21세기 초부터 부쩍 주목하는 ‘마지막 남은 자원 외교의 대상’이 추가됐을 정도다. 세계 열강이 다시 아프리카 대륙을 향해 잰걸음 하고 있는 것도 이로 말미암은 바다.

독일 출신인 루츠 판 다이크의 <처음 읽는 아프리카의 역사>(웅진씽크빅)는 유럽인의 편견을 버리고 아프리카의 다채로운 역사를 균형잡힌 시각에서 접근한다. 가장 오랜 대륙의 생성, 최초의 인간인 ‘이브’의 탄생과 그 후손의 첫 아프리카 탈출, 부족·종족 중심의 고대 아프리카, 유럽의 침략과 아프리카의 저항,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 역사를 쉽고 감명 깊게 정리했다.

지은이는 “백인들이 왔을 때 그들은 성서를 갖고 있었고 우리는 땅을 가졌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성서를 갖고 그들이 땅을 가졌다”는 상징적인 속담으로 비극의 역사를 풍자한다. ‘아프리카의 성자’로 불리는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조차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등한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다는 새로운 사실도 들려준다. “나는 너의 형제다. 그러나 너의 형”이라는 게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설명할 때 자주 쓴 말이었고, ‘검둥이’라는 표현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모든 아프리카인은 동일하다’라는 관념도 500년 동안이나 유럽에서 변하지 않았다고 떠올린다.

아프리카가 어느 지역보다 앞선 생각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대목을 애써 간과하고 있는 점도 일깨워준다. 르완다 의회의 여성의원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는 사실이 대표적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새 헌법이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것에 속하고 동성애가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가나 출신의 아마 아타 아이두 아프리카 여성작가회의 의장의 말은 아프리카에 남은 숙제를 한마디로 요약해준다. “식민 지배자와 거짓 선교사를 쫓아내는 것이 곧 자유롭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건 정말 힘든 교훈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아프리카의 다양성이야말로 가치있는 것임을 다시 깨닫는 일이 아직도 과제로 남아 있다.”

아프리카 대륙에선 겨울철은 물론 여름 올림픽이 개최된 적이 없다. 올해 사상 처음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고 때마침 무려 17개 나라가 식민지에서 해방돼 새 출발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프리카를 조금이나마 주목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진짜 고향을 너무 모른다. 모르는 정도를 넘어 곧잘 무시한다. 유전적으로 보면 우리 모두가 아프리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지낸다. 인간이 여기서 처음으로 곧게 서서 걷고 달리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마저 우리는 망각하고 사는 게 아닌가 싶다.



Posted by 김학순

2010.02.05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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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저명한 출판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1951년 6월2일자에 리틀 브라운 출판사 광고가 실렸다. “ ‘뉴요커’가 주목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가 쓴 놀라운 신작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이 7월16일 출간됩니다. 몇 달 전부터 각종 지면에는 이 소설이 최근 몇 년간 발표된 소설 가운데 가장 흥미진진하며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는 글들이 실렸습니다. ‘이 달의 책’ 북클럽의 여름휴가 추천목록에도 꼽힌 바 있습니다. 가격은 3달러이고,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 출판사에서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때 나온 초판본은 현재 2500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주 세상을 떠난 샐린저의 대표작이자 유일한 장편소설인 <호밀밭의 파수꾼>(민음사)은 지금까지 숱한 화제를 뿌렸지만 출간될 때부터 곡절의 연속이었다.

샐린저가 10년 동안 공들인 원고를 뉴욕의 하르코트 브레이스 출판사에 건네자 1951년 당시로서는 지나치게 거친 언사와 반항적인 내용으로 말미암아 말썽이 빚어질 것을 우려한 출판사가 주저하다 급기야 원고 수정을 요구했다. 화가 난 샐린저는 원고를 빼내 보스턴의 리틀 브라운 출판사로 보내 버렸다. 출간 10년 만에 150만부나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하르코트 브레이스로서는 땅을 칠 노릇이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해마다 25만부 이상 판매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6500만부 이상이 팔린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출간 직후 보수적인 사회가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베스트셀러가 되기까지는 2년의 세월이 더 흘러야 했다.

이 책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까닭은 젊음을 분출하는 16살의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모습이 같은 세대의 공감을 얻기 때문이라는 데 이의가 없다. 정치적으로 우파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1950년대 미국에서 젊은이들로부터 광적인 호응을 얻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이 ‘비트운동’이나 ‘성난 젊은이들’그룹, 히피문화 등의 모태가 된 작품이었지만 막상 샐린저는 이런 운동을 탐탁잖게 여겼던 것은 아이러니다. 한때 극작가를 꿈꾸고 영화를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진 샐린저지만 주인공 홀든을 핑계 대며 영화화를 끝내 거부한 것 역시 뒷담화가 이어진다. 엘리아 카잔 감독이 영화화를 제의하자 샐린저는 “홀든이 싫어할까봐 두렵다”며 거부 이유를 밝힌다.

샐린저의 자전적 색채가 짙은 이 작품에서 홀든은 영화와 할리우드에 대한 증오를 여러 차례 드러낸다. 하지만 그를 직·간접적인 모델로 한 영화가 수도 없이 나오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세계 젊은이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던 다음 구절에 작품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닐 듯하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 애들만 수천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은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까마득한 절벽에 서 있지.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잘못해서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원래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잖아…. 난 온종일 그 일만 해.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나 할까…. 바보 같은 짓이라는 건 알고 있어.”

이 책이 미국 고등학교와 도서관에서 최고의 금기도서와 최고의 권장도서가 된 것은 역설적이다. 샐린저는 당초 성인들을 위해 이 소설을 썼으나 전 세계 10대들이 홀든을 자신과 동일시하며 열광하는 것도 패러독스다. 지금은 미국 성인들까지 도서관에서 훔치고 싶은 책 1위로 이 소설을 꼽는다. 어쩌면 작품 속의 앤톨리니 선생님이 홀든에게 건넨 글에서 그 답의 일부가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어떤 일을 위해 고귀한 죽음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원래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대학 동창인 정신분석학자 빌헬름 스테켈의 말이다.

이제 샐린저는 육신의 옷을 벗었지만 홀든처럼 영원히 16살의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osted by 김학순

2010.01.22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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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지고 살아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지고 죽어서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살아 돌아온 장수, 전쟁에서 이기고 죽어 돌아온 장수.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이 가장 존경을 받을까. 상황에 따라 약간은 다를 수 있겠지만 네 번째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인기 드라마 <명가>와 그 주연 배우 차인표의 아이티 지진피해 구호금 1억원 쾌척 등이 상징하듯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유행어가 되다시피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덕목은 원래 전쟁에서 비롯됐다. 초기 로마의 귀족들은 솔선해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포에니 전쟁에 참여했으며, 2차 포에니 전쟁 때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로마에서는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고위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다. 가슴을 저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 ‘칼레의 시민’ 이야기도 백년전쟁 당시 처형을 자청하고 나선 최고 부자 ‘외스타슈 드 생 피에르’의 희생정신에서 시작된다.

그렇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전쟁에 국한되지 않았다. 전쟁이 나면 귀족들은 솔선수범해 최전방에 나가 싸웠으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알토란 같은 재산도 사회에 흔쾌히 내놨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구체적인 덕목이 명문화된 것은 없다. 하지만 의무의 이행, 어려운 상황에서 보여주는 수범과 희생, 나라와 사회에 대한 봉사, 기부, 사회적 책임의식 등을 두루 꼽을 수 있겠다.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라는 의미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은 1808년 프랑스 정치가이자 작가인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이 로마에 흘러들어간 뒤 생활화한 관념이기도 하다.

예종석 한양대 교수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살림출판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역사와 유럽 각국의 모범 사례, 기부문화 선진국인 미국과 한국의 기부 문화를 비교하며 살펴볼 수 있는 마당이다. 로마 귀족들의 기부 정치, 영국 왕자들의 참전 수범, 독일의 귀족 출신 전쟁 영웅, 프랑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통, 미국 사회의 성숙한 기부문화가 심장을 파고든다.

서양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였지만 우리 역사 속에 살아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범례도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널리 알려진 경주 최부자 집안 이야기는 물론 6형제가 모두 만주에서 독립운동에 몸 바친 이회영 집안, 항일투쟁에 앞장섰던 허위 일가,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상룡 가문 등 3대 항일 명문의 일화는 후대까지 호의호식하며 철면피로 사는 수많은 친일파 가문들과 사뭇 대비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이다. 가진 것 없이 평생 모은 재산을 기부한 ‘김밥 할머니들’의 나눔 정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능가하는 ‘험블레스 오블리주’(어려운 사람이 베푸는 일)라 할 만하다.

기부문화에 초점을 맞춘 데다 문고본이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국내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그나마 포괄적으로 다룬 책으로는 거의 유일하다. 이미숙의 <존경받는 부자들>(김영사), 최해진의 <경주 최부자 500년의 신화>(뿌리깊은나무) 같은 책이 깊이를 보완해 줄 수 있을 듯하다.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표 개발을 위한 연구용역’ 보고서가 한국사회의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지수’는 100점 만점에 26.48점으로 매우 낮았다. 그 가운데서도 정치인, 고위 공무원들이 기부는커녕 병역·납세의무를 가장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도덕적 해이가 상습화된 이들에겐 ‘노블레스 말라드’(병들고 부패한 지도층)란 딱지가 제격이겠다.


Posted by 김학순

2010.01.0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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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국이라고 자처하는 서양인들이 자기들과 뻔질나게 교역을 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여전히 전래적인 운수방법인 인력거를 타고 관광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줄로 여겼던 고요한 아침의 나라 국민은 서구의 신발명품을 거침없이 받아들여 서울시내 초가집 사이를 누비며 바람을 쫓는 속도로 달리는 전차를 타고 여기저기를 구경할 수 있다니 어찌 놀랍고 부끄럽지 않으랴(서울에서 전차가 달린 것은 도쿄보다도 3년 앞선다).” “한국 사람들의 본성은 배타적이 아니다. 타협적이며 친절하고, 배우기를 좋아하는 부지런한 민족이다. 능력 있는 지도자들만 있다면 이른 시일 내에 현대 문명국가의 수준에 오를 희망이 있는 국민이다. 국왕 스스로도 외국인의 조언과 도움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이려는 태도다.”

1901년 조선을 방문한 최초의 독일기자 지그프리트 겐테가 쓴 여행기의 일부다. 지리학자이기도 한 겐테의 여행기는 동양과 조선에 대한 선입견과 경멸로 가득 찼던 여느 외국인들의 시선과는 사뭇 다르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세밀하게 관찰한 느낌을 주지 않는가. 그것도 며칠 잠깐 둘러본 게 아니라 반년 가까이 고종황제를 알현하고 서울, 강원도 당고개 금광, 금강산을 거쳐 제주도 한라산 정상까지 등반(한라산의 높이가 1950m라는 것도 처음 측정)한 뒤 한 달여 동안 ‘쾰른 신문’에 연재했던 것이다.

겐테 기자의 시각과는 달리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 명분은 조선이 자력으로 근대화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의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메이지 일본의 한국침략사>(태학사)는 이러한 일본 식민사관의 맹점을 역사 자료를 제시하며 조목조목 반박한다. 조선이 메이지 일본의 침략기도에 시달리면서도 자수자강(自修自强)을 위해 진력한 사실도 예증한다. ‘당파싸움은 유교적 이상을 실현한 붕당정치였다. 고종은 무능한 군주가 아니라 개혁군주였다. 강화도 조약을 낳은 운요호 사건이 일본의 교묘한 공작으로 일어났다. 국권 침탈이 일본의 강압과 불법에 의해 이루어진 만큼 국제법상 무효다’ 등등. 새로운 사실을 접한 일본 학생들의 놀라운 반응과 질의응답 내용도 아울러 전해준다.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선의 부정부패 문제를 과학적으로 공박하는 대목이다. 일본이 16세기 조선에 매관매직이 성행했다고 주장하지만, 매관매직의 증표인 납속공명첩은 운석의 지구 충돌로 말미암아 자연재해가 발생하자 구휼곡 부족으로 개인 소유의 여유곡식을 동원하기 위함이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는 조선에서 납속공명첩을 만든 것이 자연재해 때문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유럽 여러 나라의 자료들을 직접 찾아냈다.

‘내재적 발전론’에 바탕을 둔 그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교수신문이 엮은 <고종황제 역사청문회>(푸른역사)를 함께 읽으면 다른 의견을 균형 있게 소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이태진 교수의 견해에 대한 김재호 전남대 교수의 반론과 재반론 등은 물론 왕현종 연세대 교수, 김기봉 경기대 교수 등 여러 학자들의 논쟁참여로 흥미로운 토론이 전개된다. 학계의 난제였던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의 첨예한 대립구도를 넘어서는 마당이 펼쳐진다. 지나친 민족주의적 경향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의 통계의존적 연구방법만으로는 당대의 본질을 통찰하기에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근현대사를 둘러싼 일제강점기의 근대화논쟁, 해방공간의 분단논쟁, 정부수립 후의 민주화 논쟁도 그 뿌리가 구한말의 개화논쟁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지금 읽는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청산하지 못한 경술국치 100년의 굴레를 떠올리면 우리가 먼저 새겨야 할 내용이다. “조선 병합은 합법적이었고 식민통치를 통해서 한국을 근대화시켜 주었다”고 망언을 일삼는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 같은 극우 정치인들이 여전히 설쳐대는 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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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