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란 기다리는 사람들에겐 너무 느리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빠르고, 슬퍼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길고, 기뻐하는 사람들에겐 너무 짧으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영원하다.” 미국 성직자이자 교육철학자 헨리 반 다이크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얘기한 ‘시간의 상대성원리’를 빌려 이처럼 절묘하게 말했습니다. 또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떠오릅니다.  

이채 시인의 ‘새해엔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란 시가 새해맞이 인사로 안성맞춤일 듯합니다. 

당신이 아무리 큰 나무라 해도
한그루의 나무로는 산을 이룰 수 없으며
당신이 아무리 찬란한 별이라 해도
별 하나로는 하늘을 채울 수 없습니다
홀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
하루하루 참으로 어려운 이때
있어야 나눌 수 있는 게 물질이라면
없어도 나눌 수 있는 것은 마음이겠지요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나눌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복의 한해 희망의 한해를 열어갑시다
마음마다 화평이 깃들고
집집마다 웃음이 가득하여
사람마다 만복이 오는 소리
새해엔
우리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책의 종결자는 저자가 아니라 독자라고들 합니다. 어떤 책이든 독자에 의해 완성된다는 뜻이지요. 새해에 읽어봄직한 책 몇 권을 골라보았습니다. 영국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사색 없는 독서는 소화되지 않는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저 책을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이지요.  
새해를 맞아 누군가가 띄운 재미있는 구절의 마지막 부분만 바꿔 봅니다. 나이는 뺄셈, 복은 덧셈, 돈은 곱셈, 웃음은 나눗셈, 건강은 지키셈. 새해 책 많이 읽으세요!!!
 

■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 /다우베 드라이스마(에코리브르)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고 했던가. 하지만 한 해의 끝자락이나 새해 벽두에 서면 누구나 “시간은 인간이 소비하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것”이라고 했던 소요학파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의 말을 절감할 것이다.
해서 사람들은 쏜살같은 시간에 관해 한마디씩 남겼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은 인생을 지배할 줄 아는 사람이다”(에센 바흐), “시간을 최악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늘 불평하는 데 일인자다.”(장 드 라 브뤼에르)
시간을 낭비 없이 가장 효율적으로 썼다고 알려진 러시아 곤충분류학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라면 시간을 지배했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듯하다. 주어진 모든 시간을 단 1분도 빠뜨리지 않고 시간통계를 기록한 노트를 남겼다니 징그러울 정도다. 그에게 문제는 시간의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나쁜 시간, 빈 시간, 필요 없는 시간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게 류비셰프의 지론이었다. ‘시간을 정복한 남자’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그다.
흔히 20대에는 시간이 시속 20㎞로 달리고, 40대에는 40㎞로 흐르며, 60대가 되면 60㎞로 달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19세기 프랑스 철학자 폴 자네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어떤 시간의 길이에 대한 느낌은 그 사람의 삶의 길이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열 살짜리 아이는 1년을 인생의 10분의 1로 느끼고, 쉰 살의 남자는 50분의 1로 느낀다고 한다.”
네덜란드 심리학자 다우베 드라이스마는 <나이 들수록 왜 시간은 빨리 흐르는가>(에코리브르)에서 이 의문의 수수께끼를 풀어준다.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는 멋진 표현으로 책을 여는 드라이스마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을 세 가지 현상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망원경 효과’다. 망원경으로 물체를 볼 때 실제 물체와의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느껴지는 것처럼 과거를 기억할 때 일어났던 사건의 시기보다 더 나중의 일로 여겨지는 현상이다. 현재와 가까운 일처럼 인식하는 효과로 인해 ‘시간 축약’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회상 효과’다. 노인들의 기억을 테스트할 때 정상적인 망각곡선에서 20대 전후 부분이 돌출되는 효과다. ‘내가 처음 ○○했을 때’처럼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기억의 표지’가 많은 부분이 기억에 오래 남으며 중년 이후에는 이런 표지들이 점차 감소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는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느려지는 ‘생리시계’다. 미국 신경학자 피터 맹건은 나이에 따라 시간에 대한 감지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9~24세, 45~50세, 60~70세 연령대별로 3분을 마음속으로 헤아리게 했다. 20세 전후의 젊은이들은 3분을 3초 이내에서 정확히 알아맞혔지만 중년층은 3분16초, 60세 이상은 3분40초를 3분이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도파민 분비가 줄어 중뇌에 자리한 인체시계가 느려지기 때문이다. 
노벨의학상을 받은 알렉시스 카렐은 시간을 일정한 속도로 흘러가는 강물에 비유해 설명한다. “시계에 표시되는 시간은 계곡을 흐르는 강물처럼 일정한 속도로 흐른다. 인생의 초입에 서 있는 사람은 강물보다 빠른 속도로 강둑을 달릴 수 있다. 중년에 이르면 속도가 조금 느려지기는 하지만, 아직 강물과 보조를 맞출 수 있다. 그러나 노년에 이르러 몸이 지쳐버리면 강물의 속도보다 뒤처지기 시작한다. 결국 그는 강둑에 드러누워 버리지만 강물은 한결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하는 방법은 없는 걸까. 지은이는 프랑스 철학자 장 마리 귀요의 말을 빌려 제언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로운 것들로 시간을 채워라. 신나게 여행을 다녀오거나 새로운 삶을 받아들여 한층 젊게 살아라.” 너무 쉽고 평범한가.
 

■ 줌: 행복한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방식 /메리 제인 라이언(다우)




과부의 두 렙돈과 빈자일등(貧者一燈). 신분을 밝히길 거부한 60대 할머니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연세대에 찾아와 1억 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단상의 편린이다.
예수가 부자들의 많은 돈보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헌금을 더 귀하게 여겼다는 마가복음의 ‘말씀’과 부자의 만 등보다 가난한 사람의 한 등이 낫다는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의 ‘법언’은 맥을 같이 한다. 두 일화에 대해서는 다소 다른 해석도 있긴 하지만 가난한 이들의 작은 정성이 한결 값지다는 공통점은 분명하다. 
엄밀하게 말하면 60대 할머니가 기부한 돈은 ‘과부의 두 렙돈’이나 ‘빈자일등’에 비유할 수 없을 만큼 거액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뜻 깊은 기부자들은 대개 불우한 이웃에 속하는 부류임을 재확인해 주는 일임에 틀림없다. 10년 동안 수입의 대부분인 40여억 원을 쾌척하고 정작 자신은 월세 방에 사는 가수 김장훈의 이야기도 차원이 약간은 다르지만 큰 뜻은 마찬가지다. 끝내 익명을 고집한 할머니의 기부는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실천한 것이기도 하다. 
‘베풂의 마법사’란 별명을 얻은 메리 제인 라이언의 저서 ‘줌: 행복한 사람들의 또 다른 삶의 방식’(다우)은 ‘주는 행복론’을 자늑자늑하게 설파한다. 베푸는 것이 ‘단순한 적선’이 아니라 ‘행복을 위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깨우친다. 행복해지는 가장 빠른 길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복음이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주었다면 그 대부분이 준 사람들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라며 ‘행복한 부메랑론’을 편 시인 월트 휘트먼의 선견(善見)을 연상케 한다.
세상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미덕인 기부가 결코 자기희생만은 아니다. 기부는 ‘창의적 이기주의’라고 라이언은 정의한다.
그는 기부가 얼마나 쉬운 일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85가지의 일상적 예화로 오바사바하게 설명한다. 지하철의 거지조차도 기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더없이 역설적인 풍경이다. 어느 날 한 여성 사회복지사가 지하철역에서 주머니를 뒤지다 차비가 없음을 확인한다. 아무도 그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는 수없이 자신이 한 번도 신경 써 본 적이 없는 거지에게 25센트만 달라고 청한다. 거지는 흔쾌히 주었다. 사실 사회복지사인 그가 평소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야 할 사람이 거지가 아닌가. 라이언은 기부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감동마케팅을 펼친다. 
라이언은 기부에 관해 몇 가지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다. 기부란 도덕적 억압이라기보다 자유로우면서도 살가운 선택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중요한 단서를 붙인다. ‘기부를 억지로 하지 말 것.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할 것.’ 
그가 자선과 관대함에도 차이가 있음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자선은 내가 누군가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관념이지만, 관대함은 그 결과를 보지 않고도 마음이 움직이면 자연스럽게 베풀게 되는 것이다.
‘줌…’에서는 미시간대 사회과학연구소가 5년간 423쌍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 1년에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도운 적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수명이 40~60% 정도 긴 것으로 입증됐음을 좋은 실례로 든다.
독일의 정치경제 전문기자 토마스 람게가 ‘행복한 기부’에서 제시한 2-1=3이라는 독특한 수식이 떠오른다. 람게는 이 수식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누면 더 많아진다. 왜냐하면 준다는 것은 잘 조직되고 올바르게 이해되기만 한다면, 사회자본과 인간자본에 투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고 나누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만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돈 없이도 베풀 수 있는 ‘일곱 가지 보시(無財七施)’를 생각해 보면 안성맞춤이겠다.
 

■ 증여론 /마르셀 모스(한길사)




선물의 유래가 그리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부족 간의 전쟁을 피하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귀한 소금을 둘러싸고 부족 간의 약탈과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물물교환이 이뤄졌던 것이 선물의 시초라는 학설이 유력하다. 남아도는 가죽과 소금의 물물 교환이 인심과 실리를 동시에 얻는, 세련된 방식인 선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선물의 기원이 원시시대에 남자가 식량으로 여자의 환심을 사려했던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설도 있다. 호감을 사기 위해 주는 선물은 특정집단에서 자연스레 문화적 관습이 됐다고 한다.
선물 문화는 아프리카 갈로 족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전해온다. 갈로족은 땅을 공평하게 나누어 농사를 지었지만 빈부격차를 막을 수 없어 3년에 한 번씩 명절 때 곡식을 나눴다. 토질, 날씨, 농부의 정성에 따라 개인의 수확량이 천차만별이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한해 농사가 끝나면 가족 식량을 제외한 나머지 곡식을 자루에 담아 마을 공동창고로 가져간다. 3년이 지나 창고에 곡식이 가득 쌓이면 추장은 타로이(선물)를 선포하며 창고 문을 활짝 연다. 곡식이 부족한 주민들은 이때 필요한 양만큼 가져간다. 부자라도 곡식을 남기지 않으므로 이듬해에도 당연히 열심히 농사를 지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은 흉작이 게으름에 대한 신의 경고라고 여긴다.
이와 비슷한 문화는 북미 태평양 연안 인디언들과 남태평양의 일부 원주민들에게서도 엿보인다. ‘포틀래치’와 ‘쿨라’가 그것이다. 프랑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대표작 <증여론>(한길사)에서 선물 교환의 가장 단순한 형식을 북미 원주민의 ‘포틀래치’에서 찾아낸다. 치누크 인디언 용어인 포틀래치는 원래 ‘식사를 제공하다’ ‘소비하다’는 뜻이다. 모스는 인류의 원초적 거래방식이 사회적 통념인 ‘물물교환’이 아니라 ‘선물주기’라고 주장한다. 이때 선물은 ‘공짜’가 아니다.
모든 선물에는 언제나 세 가지 의무가 존재한다. 선물을 줘야 할 의무, 주는 선물을 받아야 할 의무, 받은 선물에 답례할 의무가 그것이다. 주는 것을 거부하거나, 초대를 소홀히 하는 것은 전쟁 선언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는 결연이나 교제를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진다. 집단마다 차이가 있긴 하지만 포틀래치에는 보편적 특징이 있다. 손님 초대와 연설할 때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지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선물의 크기는 주는 사람의 사회적인 지위를 반영한다. 
포틀래치는 생산력이 불균등한 종족 사이의 부의 생산과 분배를 재조정해주는 메커니즘인 셈이다. 모스는 선물이 주는 사람의 우월성을 증명한다고 설명한다. 포틀래치를 열지 못하고 선물을 받기만 하는 것은 예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연스레 위계가 형성된다.
멜라네시아 남동부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주민들이 행하는 선물교환제도인 ‘쿨라’는 ‘갑’에게서 선물을 받으면 그에게 답례하는 게 아니라 다른 이웃인 ‘을’에게 선물을 하고, ‘을’은 ‘병’에게 선물을 주는 방식이다. 결국 ‘갑’에게도 선물이 돌아간다. 이 같은 선물 체계는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의무적인 호혜성을 지닌 선물 교류는 평화로운 관계를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다.
선물과 교환이 인류의 보편적인 관습으로 정착되는 과정을 관찰한 모스의 <증여론>은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사회학의 아버지’ 에밀 뒤르켐이 외삼촌인 모스는 구조주의의 선구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가슴을 울리게 만든 존재이기도 하다.
명절을 앞두고 선물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 <증여론>에 담긴 모스의 혜안이 드러난다.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는 “선물은 신도 설득할 수 있다”고 했지만 “거저 받은 선물만큼 비싼 것은 없다”고 한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의 말을 더 명심하는 게 지혜롭지 않을까 싶다.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 /레이첼 킹(샨티)




“내 아들을 죽인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요? 이해하라고요? 남의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 마세요. 그건 가장 사치스러운 충고이니까.” 전도연이 칸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 나오는 신애의 절규는 감정을 공유할 수는 있어도 아픔을 대신 짊어지긴 어렵다는 걸 실감나게 보여준다. 기독교의 회개와 용서를 다루고 있는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나 이를 각색한 <밀양>은 모두 우리가 용서하는 법을 배우고 스스로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귀감이다.
2006년 10월2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랭커스터 니켈마인스라는 작은 시골마을의 아미쉬 원룸 스쿨에 우유배달원이 침입해 수업 중이던 여학생들에게 총을 난사했다. 5명이 목숨을 잃고 5명은 중상을 입은 이 충격적인 사건은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신이 자신을 버렸다’는 환상에 빠진 한 감리교도가 저지른 이 사건에서 진정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것은 피붙이를 잃은 유족과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보여준 의연한 대처였다. 이들은 자식을 잃은 슬픔에도 현장에서 자살한 범인의 가족을 찾아 위로하며 용서의 뜻을 전했다. 범인의 장례식 조문객 가운데 절반이 아미쉬여서 미국 사회가 더욱 놀랐다. 더구나 당시 9·11 테러사건을 보복으로 응답한 부시 행정부의 대처와 사뭇 비교되는 바람에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형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미국 변호사 레이첼 킹이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용서>(샨티)에서는 영화와 소설에 나오는 이야기나 미국 실화와 흡사한 전율을 받게 된다. 살인자를 용서하고 사형제 폐지에 앞장선 피해 유가족 10인의 감동적인 실화를 담고 있어서다. 보복과 증오 대신 용서와 사랑을 택한 이들의 진솔하고 절절한 고백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외경스럽다.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살인범을 용서했다. 하나같이 살인범과 화해를 시도했고, 어떤 이는 살인범이 사형을 선고받지 않도록 변호까지 자청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이들을 성자 아니면 정신병자로 여기지만 실제론 그 어느 쪽도 아니다. 그저 엄청난 용기와 신념을 지닌 보통사람들일 뿐이다.
이들은 “사형제도 역시 복수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미국은 유엔인권협약에 조인했지만 비준하지 않았고, 서방사회에서 사형제도를 존속시키고 있는 유일한 국가”라는 비판과 함께.
지능지수 68의 제인스 버나드 캠벨에게 사랑하는 딸 수잔을 잃은 목사 아버지는 “생사 결정은 인간의 권한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한”이라고 역설한다. 
피자 배달원인 아들을 불량 청소년들의 총격으로 잃은 무슬림 아버지 아짐 카미사는 가해자들을 용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들 이름의 재단을 설립해 청소년범죄 예방교육 활동을 펼치고 있다. 가해 청소년들을 교화해 이 활동에 참여시키는 장면은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가 가해자를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들 자신의 상처가 치유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파고든다.
아무래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이 가해자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을 게다.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취약한 부분이 용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형으로는 폭력을 이길 수 없다. 정신의학자 토머스 사스도 이렇게 갈파했다. “멍청한 사람은 용서하지도 잊어버리지도 않는다. 순진한 사람은 용서하고 잊어버린다. 현명한 사람은 용서하되 잊어버리지 않는다”고. 그러고 보면 용서는 가장 숭고한 복수가 될 수 있다. 
 

■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 /요한 갈퉁(들녘)




평화는 무조건 다 좋은 것인가? 이 물음이 한없이 절절할 때가 있다. 힘 센 ‘갑’은 총칼을 휘둘러 목숨을 앗아가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약한 ‘을’은 언제나 말로만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경우엔 심리적 유혹이 다가오곤 한다.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나 미국 흑인 지도자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이는 죽는 순간까지 유혹을 뿌리쳤지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하긴 고대 로마의 정치가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정의로운 전쟁보다 나쁜 평화를 더 좋아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키케로의 명언은 오늘날 평화주의자들이 가장 즐기는 말의 하나가 됐다. 
노르웨이의 평화학 창시자 요한 갈퉁도 평화를 위해 무력과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강대국들의 논리에 나쁜 평화론으로 맞선다. 평화는 어떤 경우에도 목적뿐 아니라 수단 역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갈퉁의 이 같은 생각을 집약한 책이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들녘)이다. 평화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저질러지는 전쟁과 폭력은 결코 평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릴 수 없다. 이라크 전쟁을 치른 미국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초강대국 미국은 국제적인 반전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 평화라는 목적’을 위해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다고 강변한다. 
어떤 경우든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여야 한다는 갈퉁의 생각은 ‘과정의 평화학’이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칸트의 윤리학과도 상통한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라고 갈파한 손자(孫子)를 사실상 평화학의 창시자로 떠받드는 갈퉁이기에 당연한지도 모른다. 
갈퉁은 평화를 총소리가 나지 않는 ‘소극적 평화’와 모든 국민의 인권과 복지를 지켜내는 ‘적극적 평화’로 나눈다. 소극적인 평화를 ‘국가 안보 개념의 평화’, 적극적인 평화를 ‘인간 안보 개념의 평화’로 흔히 일컫는다. 
갈퉁의 등록상표인 ‘평화적 수단에 의한 평화’는 강자에 대한 약자의 비폭력 저항이 현실성이 있기는 한가라는 회의론을 자주 불러일으킨다. 개인의 확고한 평화 철학이 어느 정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낳는다. 실제로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가 펼치는 평화적 비폭력 운동에 대한 대가로는 중국의 비평화적 무력 진압만 기다리고 있다. 언제까지나 평화적 수단을 지켜야 하는지 고뇌하는 티베트인들이 적지 않다. 갈퉁은 인도 독립을 이끌었던 간디의 비폭력 민중저항과 20세기 역사적 사건인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의 용기 있는 개혁 같은 것에서 해답을 찾으려 한다.
갈퉁이 학생들에게 자주 던진 질문에 이런 게 있다. “세 사람 앞에 두 개의 오렌지가 있다. 세 사람 모두 배가 많이 고파 오렌지를 먹고 싶다. 여기서 갈등이 발생한다. 사람 사는 세상에 힘 센 두 사람이 오렌지를 차지할 수는 없다. 이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답변이 쏟아진다. “공평하게 오렌지 2개를 각각 3등분한다. 제비뽑기를 해서 두 사람이 오렌지 하나씩 갖는다. 즙이나 주스로 만들면 공평하고 쉽게 나눠 먹을 수 있다. 오렌지 2개를 크기가 작은 오렌지나 다른 과일 3개로 바꾸어 하나씩 가진다. 훗날 무수한 오렌지를 가질 수 있도록 오렌지 씨앗을 심는다. 오렌지를 팔아 돈으로 나누어 갖거나 나누기 쉬운 다른 물건을 산다.”
갈퉁은 어떤 갈등이라도 이처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그는 1970년대부터 남북한을 수없이 오가며 한반도 평화를 모색해 온 평화운동가이기도 하다. 휴전선으로 막힌 철길과 도로를 다시 이으라는 것도 갈퉁의 획기적인 제안 가운데 하나였다. 부산과 일본의 규슈를 수중익선으로 연결하라는 제안도 곁들였다. 자신의 조국 노르웨이에서 아내의 고국 일본까지 기차를 타고 달려보는 게 소원이어서다. 그런 갈퉁의 평화학이 한반도에서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있는 모습이다.
 

■ 어떤 민주주의인가 /최장집·박상훈·박찬표(후마니타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민주주의를 대놓고 빈정거리면서 비판한 것으로 이름 높다. ‘인간의 타락한 형식’이라거나 ‘동등한 권리와 요구를 주장하는 난장이짐승’ ‘겉으로만 보면 평화적이고 일을 열심히 하는 민주주의자들과 혁명주의자들’ 따위로 매도할 정도다. 특히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권력에의 의지>에서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의 평등의식을 비판하며 노골적으로 민주주의를 때린다.
그런 니체는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들도 민주주의 시스템을 지니고 있다면 뭐라고 할까. 영국 옥스퍼드대 동물학자인 도라 비로 박사팀은 한 무리의 비둘기들에 위성항법장치(GPS)를 부착하고 15㎞ 정도 날아가는 모습을 관찰한 결과 완벽하지는 않지만 순간순간 반드시 민주적 위계질서에 따른 집단의사결정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실린 논문에서 밝혔다.
수많은 비둘기 떼가 비행 방향을 바꿀 때마다 순간적인 의견수렴 ‘투표행위’가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리더와 여론 주도층이 어린 새끼의 투표권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새들이 진화 과정에서 이 같은 행동 결정 양식을 선택하고 발전시켰다면 다른 동물 집단은 물론 인간도 이 같은 메커니즘을 일반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연구진은 유추한다. 민주주의가 공동체 내에서 공적인 결정을 만드는 틀이라고 본다면 이 같은 현상은 놀랄만한 일임에 틀림없다.
절차적 민주화를 이룬 뒤 20여년이 지났지만 민주주의가 질적으론 도리어 뒷걸음질하고 있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온다. ‘1980년대 민주주의가 우리에게 희망의 언어였다면, 90년대에는 실험의 언어였으며 2000년대에는 절망의 언어가 되었다’는 풍자가 귓전을 울린다.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조사해 발표하는 2008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은 아직 167개 국가 중 28위권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한다. 그럼에도 일부 보수층에서는 잊을만하면 ‘민주주의의 과잉’을 운위하곤 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제자 박상훈·박찬표가 함께 쓴 <어떤 민주주의인가>(후마니타스)는 한국 민주주의의 질을 따져 묻는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이름만 갖고 있지 않다.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보호민주주의, 자유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프롤레타리아민주주의, 법치민주주의, 숙의(심의)민주주의, 참여민주주의, 풀뿌리민주주의, 직접행동민주주의, 전자민주주의….
지은이들은 민주화 이후에는 민주주의냐 아니냐를 추상적으로 따지는 것보다 ‘실제로 어떤 민주주의냐’하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뼈아프게 지적하는 것은 “실질적 민주주의라고 할 때 민주주의는 정치의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경제적 영역,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분배의 정의를 실현하고 노동의 정치참여 확대와 보편적 시민권의 향유와 같은 요소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는 대목이다.
저자들의 중요한 인식 가운데 몇 가지를 간추려 보면 이렇다. “우리가 가진 공통의 현실인식은 정당과 시민사회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로의 발전 경로는 점차 봉쇄되고 있는 반면 ‘국가가 중심이 되는 민주주의’가 돌이키기 어려운 정도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시민권 확대의 요구는 강화되고 있지만, 한국의 자유주의는 이를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한국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의 기원은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와 대면해야 할 민주주의의 허약함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베이징의 봄’으로 불리는 1989년 6월 톈안먼 사태 당시 중국 시위대는 ‘안녕하세요, 민주주의님’(爾好 德先生 Hello Mr. Democracy)이라는 플래카드를 높이 들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 인사말이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인가요’라는 물음 앞에 놓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민주주의의 모든 질병은 더 많은 민주주의에 의해서 치료될 수 있다’는 앨프레드 스미스의 처방이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절차와 제도에 갇힌 민주주의는 죽은 민주주의나 다름없다.
 

■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대화의 역사 /스티븐 밀러(부글북스)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막 돌아온 한 부자 여성을 축하하는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 부자 여성이 카네기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뉴욕에서 가장 말을 잘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가 말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부인. 최근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이 여성이 아프리카 여행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 카네기는 곧바로 다른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셨습니까?” “언제 아프리카로 떠나셨나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어디 어디를 돌아보셨는지요?” 질문이 거듭되자 이 부자 여성은 대답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여 분간의 대화에서 그녀가 대답한 시간은 95%인 반면 카네기가 이야기한 시간은 5%에 불과했다. 다음날 한 신문에 그 부자 여성의 촌평이 실려 있었다. “카네기는 역시 뉴욕에서 가장 대화를 잘하는 분이었다.”
이 일화를 들으면 자연스레 소크라테스가 먼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철학자가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반대논증을 편 상호대화의 전범(典範)인지 금방 눈치 챌 수 있다.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의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대화의 역사>(부글북스)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대화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며 대화의 참 가치를 깨우쳐준다. 대화를 필생의 주제로 잡고 연구해온 밀러가 “대화는 인간 존재와 다른 동물들을,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영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의 말로 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밀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다. 이 시기의 영국인들이 경제와 군사력은 물론 커피하우스와 클럽에서 대화의 기술도 갈고닦아 나라의 품격을 세계 수준으로 높였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가 대화를 멸종위기로 만든 주범으로 꼽은 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사로잡은 ‘반체제문화’다. 분노와 적의로 가득 찬 ‘상스러운 말투의 제왕’인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이 대표적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아이콘으로, 의회에서 상원의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도 주범의 하나다.
여기에다 저자가 ‘대화 회피장비’라고 이름 붙인 휴대폰, MP3, 비디오 게임, 컴퓨터의 범람은 대화의 문을 닫는 또 다른 주범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능력은 대화 회피장비들의 신호음과 노래, 호출, 윙윙거림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대화의 대용품조차 문자메시지, e메일 등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밀러가 내다보는 대화의 미래는 한층 더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씩 다른 사람과 교류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짧은 대화도 주로 무례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뤄질 것이다.”
작금 대화의 위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에 몰리고 정치권과 사회도 대립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남북한 간에도 어느덧 대화하는 법을 잊고 다툼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한동안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대화가 필요해’가 인기를 누렸던 것도 대화 부재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새해 벽두에 더욱 걱정스러운 건 ‘잃어버린 대화의 품격’은 고사하고 ‘대화의 빈곤’ 자체가 아닌가 싶다.


■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 /윤용이(돌베개)




“현대 도예가 나아갈 길은 500년 전 조선 도공의 길을 배우고 찾아가는 것이다.” 20세기 최고 도예가였던 영국의 버나드 리치(1887~1979)가 세계 최고의 명문 도자학교로 불리는 미국 앨프레드 도자학교 강연에서 던진 한마디다. 도예가 나아갈 길은 조선시대 ‘분청자(粉靑瓷)’가 이미 다 제시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뉴욕대 특강에선 이런 말도 했다고 전해진다.
“도자기를 아예 모르는 사람은 중국, 일본, 조선 순서로 좋다고 평한다. 조금 아는 사람은 중국, 조선, 일본 순이라고 한다. 도자기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조선, 중국, 일본 순이라고 말한다.”
그는 동양 도자기의 특색을 ‘한국은 선이고 중국은 색채이며 일본은 모양’이라고 규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고국으로 돌아가 <조선의 백자>라는 책을 펴낼 만큼 한국 도자기에 대해 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좋은 도자기는 시원한 바람이 부는 산을 내려오는 사람과 같이 손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도 했다.
흔히들 한국의 옛 도자기는 동양인의 고요한 정신자세를 상징한다고 품평한다. 선이 곱고 색은 순하며 내적인 품위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국 도자기의 특질에 관해서는 미술사학자인 윤용이 명지대 교수가 <우리 옛 도자기의 아름다움>(돌베개)에서 살갑게 들려준다. 그는 리치가 그랬듯 도자기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분청자를 꼽는다. 한국인은 분청자를 통해 자신의 얼굴을 재발견한다는 것이다. 분청자는 역동적이면서도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운 선(禪)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그는 해설한다. 분청자는 쉽게 풀이하자면 화장을 한 청자다. 센 리큐를 비롯한 일본의 최고 다인(茶人)들이 가장 사랑한 것도 분청자와 백자였다.
리치가 “나는 행복을 안고 간다”고 은유했던 조선의 백자 항아리는 순박하면서도 고아한 품격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상찬을 받는다. 윤용이는 조선 후기의 백자를 청초하고 단아한 멋을 지녀 간결하고 기품 있는 그릇으로 친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와는 달리 정돈된 맛을 느낄 수 있다고도 한다. 한국의 백자를 사람으로 치자면 자신은 전혀 뽐내지 않으나 주위를 빛나게 하는 등불 같은 존재라고 비유하는 이도 있다.
그는 청자와 백자에 비해 저평가됐던 질그릇(도기)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인 게 돋보인다. 조선시대 질그릇의 표징으로 소박함, 고요함, 단순미를 꼽는다. 전문가들은 신라 토기에는 신라 사람들의 넉넉한 미소가 담겼고, 청자에는 고려 사람들의 꿈이 담겼으며, 백자에는 조선 사람들의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하지만 윤용이는 여기서 ‘토기’란 용어를 매우 못마땅해 한다. 일본이 만들어낸 말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견해다. 그냥 ‘도기’로 분류하면 족하단다.
도자기는 흙과 불, 사람이 삼위일체가 돼야 최상품을 만들 수 있다. 흙이 도자기의 살이라면 불은 도자기의 피이고 작가의 마음가짐은 도자기의 혼으로 불린다. 사기장들은 흔히 말한다. 도자기의 3분의 1은 사기장이, 3분의 1은 불이, 나머지는 사용하는 사람이 만든다고. 그만큼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윤용이도 천편일률적인 그릇 대신 우리 도자기로 생활의 멋을 한껏 부려보라고 적극 권면한다. 일본에선 도자기가 식기로 대중 속에 파고든 지 오래다. 그 배경에는 미식가이며 도예가인 기타오지 로산진이란 인물이 있다. 그는 “그릇은 요리의 기모노이고, 요리와 그릇은 한 축의 두 바퀴”라는 명언을 남겼다.


■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이중톈(에버리치홀딩스)




“신성하지도 않고, 로마도 아니며, 제국도 아니다.” 프랑스 사상가 볼테르가 신성로마제국을 두고 퍼부은 독설에 가까운 촌철살인의 풍자다.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게 멸망하기까지 시나브로 국력이 쇠잔하고 분열이 이어지면서 17세기부터는 껍데기만 남은 제국이었다.
중국이 초강대국도 아니고 선진국도 아니며 제국은 더욱 아니라는 엄살 섞인 항변을 들고 나올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볼테르의 명언이다. 현대 중국의 설계자 덩샤오핑이 ‘도광양회’(드러내지 않고 실력을 기른다)를 당부할 때만해도 그런 이중성은 납득할 만했다. 하지만 ‘화평굴기’(평화롭게 우뚝 선다)를 부르짖는 지금의 중국이라면 사뭇 달라진다. 중국은 동양 최초로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진시황 이래 2132년 동안 제국으로 호령한 화려무비한 전력이 있지 않은가.
중국의 인기 역사저술가 이중톈은 화려한 중국 역사의 겉면보다 쓰라린 실패와 아픈 기억을 <제국의 슬픔>이란 책으로 담아낸 바 있다. 이중톈이 자신의 최고 역작이라 자신 있게 말한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에버리치홀딩스)에서 과거 중국제국 시스템을 비판적으로 해부한 점은 인상적이다.
그는 중국 역사를 제국 시스템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치사와 문화사를 아우르는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고 재구성했다. 이중톈이 진시황 이래 청 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제국 유지의 핵심요소로 꼽은 것은 ‘중앙집권’ ‘윤리치국’ ‘관원대리’(官員代理) 세 가지로 요약되는 시스템이다. 진시황이 군현제와 그에 걸맞은 관원대리라는 하드웨어를 창조했다면, 한무제는 여기에다 윤리치국이라는 소프트웨어를 더해 완벽한 제국의 틀을 만들었다. 윤리치국이란 중국의 제자백가 사상 가운데 유가를 정치의 도구로 채택한 것을 일컫는다. 한나라 이후 모든 왕조는 이 트로이카를 앞세워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왕조의 명맥을 유지했다. 20세기 초 들어 강대한 제국이 하루아침에 자멸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 이 시스템 때문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는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만이 미래의 근본 해결책이라고 처방했다. 중국 학계에서 ‘후진타오 주석은 몰라도 이중톈은 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이중톈이기에 그의 한마디는 무겁게 들릴 수밖에 없다.
순환론적 역사관에 따르면 제국이란 제도는 그 시스템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가 있고 한계에 도달한 제국은 무너진다. 무너진 제국은 제국을 형성했던 사회구조나 구성원의 삶의 질이 이전보다 훨씬 열악해진다. 영웅적 지도자가 나타나 다시 통합을 시도하고 제국이 재건된다.
중국이 또다시 세계 제국으로 굴기하는 걸 보면 순환론을 부정하기도 어렵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과시한 ‘한·당(漢唐)으로 돌아가자’는 구호는 이미 제국의 야욕을 세계 만방에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나라 때나 당나라 때나 한민족의 역사는 아픈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잖아도 최근 중국의 행태는 한반도 통일과정에서 가장 큰 장애물이 중국 제국이 될 지 모른다는 점을 확연히 각인시켜주고 있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중국인들의 특성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역사적 교훈은 제국이 혼자 강압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중국계 미국 석학인 에이미 추아는 명저 <제국의 미래>에서 제국의 필요조건으로 ‘관용’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1989년 베이징의 봄 이후 중국은 청년 정신까지 성장을 멈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중톈도 지적하듯 역사를 기억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다시 역사의 심판을 받고 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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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추석 명절에 귀성을 포기하고 집에서 보내는 이들에게 독서는 연휴를 보내는 가장 알찬 방법이다. 추석 연휴는 평소 시간이 없어 읽지 못했던 책들을 비교적 여유롭게 읽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때마침 책읽기에 좋은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해 더욱 안성맞춤이다. 연휴 기간에 읽어볼 만한 책 몇 권을 골라봤다. 



■ 한국의 차 문화 천년 1, 2…정약용·김정희·초의선사 외/돌베개


차향(茶香)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라면 필시 멋과 여유가 배어있으리라. 그윽하고 청아한 격조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유유자적 차중선(茶中仙)의 경지는 우리네 옛 선비 문화가 궁극적으로 지향한 길이다. 낙락장송의 그림자가 드리운 초암(草庵)이나 선비의 문방에서 차를 달이는 화경청적(和敬淸寂)이야말로 지고의 경지다.
 

차는 넓은 것에는 마땅치 않아 혼자 마시면 탈속하고, 두 사람이면 한적하여 좋으며, 서너 명이면 즐기고, 대여섯 명이면 들뜨며, 일고여덟 명이면 베풀고, 그것을 넘으면 또한 잡스럽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인 듯하다.

 
시와 차가 어우러진 풍광, 시와 더불어 나누는 청징한 차 한 잔의 참맛이 담긴 <한국의 차 문화 천년>(돌베개)에는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卷氣)에다 차향까지 서려 있으니 금상첨화다.

여섯 권짜리로 기획된 연작 가운데 이번에 먼저 나온 두 권은 조선 후기의 차 문화에 관한 시와 산문을 번역해 엮어 때로는 삽상하고, 때론 선미(禪味)와 현기(玄機)가 느껴진다. 차는 특히 술, 시와 더불어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문화 코드나 다름없다. 차에 관한 시를 읽는 맛은 마치 좋은 차 한 잔 마시는 기분에 버금간다.


“깊은 샘에서 진리를 긷노라니 글맛(書味)이 통하여
정수리에 제호를 부은 듯 불심을 깨닫네
(중략) 천하의 차 끓이는 물을 논해보건대
강왕곡(康王谷) 물이 제일이라면 이 샘은 두세 번째는 되리.”


시·서·화 삼절로 이름 높은 신위의 ‘귀양살이의 한 기쁨’이라는 시다. 벼슬자리에서 쫓겨나 자연에 묻혀 사는 호해지사(湖海之士)의 심심파적이 가득하다.
 
조선 후기 서화가 이광사의 ‘내도재기(內道齋記)’에는 단아한 서재에 귀한 고서 서화, 문방구, 차를 옆에 두고 이따금 금석 자료나 희귀한 비탑을 품평하며 시간을 보내는 독서군자의 풍류가 고스란히 읽힌다. “졸렬한 시도 장기 두는 것보단 낫고 옅은 술은 차만 못하네”라고 읊조린 홍현주의 차시들도 각별한 운치를 더해준다. 마음에 맞는 벗들과 차 한 잔을 나누며 속세의 물욕과 세속의 번뇌를 씻으며 안빈낙도의 일상을 즐기는 시도 적지 않다.
 
스님의 모습은 보고 싶지 않고 편지도 보고 싶지 않으나 차의 인연만은 끊어버릴 수 없으니 어서 빨리 차를 보내 달라고 초의 선사에게 조르는 추사 김정희의 편지글에서는 돈독하고 특별한 교유의 멋과 함께 미소가 번진다.
 
이덕리의 산문 ‘기다(記茶)’의 한 구절은 무척이나 실용적인 모습을 띤다.

“차는 사람의 잠을 적게 만든다. 혹 밤새 눈을 붙이지 못하고 밤낮으로 관아에 있거나 아침저녁으로 심부름을 다니는 자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새벽닭이 울 무렵 베틀에 올라가는 여인이나 서재에서 학업에 열심인 선비에게 모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이다.”
 
초의 선사가 중국차의 아류로 여기던 한국 차의 우수성을 설파하고 추사 김정희가 지리산 차의 탁월함을 역설하는 대목도 눈길을 잡는다. 예조판서를 지낸 신헌구는 ‘해다설(海茶說)’에서 초의 선사가 제조한 차가 스님들 사이에서만 이름이 났을 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안타까워한다.

다산 정약용과 아들 학연, 초의 선사, 김정희와 아우 명희, 낙하생 이학규처럼 시와 산문이 모두 실린 이가 있는가 하면 차인(茶人)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들도 많다. 앞으로 나올 나머지 네 권에는 삼국·고려 시대, 조선 전기와 중기, 조선 후기와 근대, 승려의 차 문화를 집대성해 소중한 자료가 될 게 틀림없다.

번역에는 한문 고전에 통달한 성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등 명망있는 인사 6명이 참여했다. 차를 얘기하려면 육우의 <다경>(茶經) 정도는 완독해야 마땅하나 이제 이 책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 독소 : 죽음을 부르는 만찬…윌리엄 레이몽/랜덤하우스


사하라 사막 이남의 ‘검은 아프리카’에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비만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이 3배나 많은 나라가 적지 않다면 믿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잠비아에서는 네 살 난 어린이의 20%가 비만이다. 아프리카도 비만이라는 질병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는 더 많다. 
 
비만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병’이라는 말을 처음 쓴 호주 디킨대의 폴 짐멧 교수는 단순한 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병으로 여겨야 한다고 재촉한다.
비만은 세계보건기구(WHO)가 공식적인 전염병으로 선포하고 ‘은밀한 살인자’로 인정할 정도다. 미국에선 비만이 사망원인 1위를 차지한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그 10분의 1에 불과하다. 연간 총에 맞아 죽는 사람이 2만9000명인 반면 비만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은 40만 명에 달한다.
 


프랑스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 윌리엄 레이몽은 미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디는 순간 ‘이 나라엔 왜 유난히 뚱보가 많을까’ 하는 의문 때문에 책을 쓰기로 결심한다. ‘독소: 죽음을 부르는 만찬’(원제 Toxic)은 그렇게 탄생한, ‘질병을 키우는 모든 음식에 관한 충격 보고서’다. 레이몽은 아예 텍사스에 거주하면서 비만 문제를 추적하다 치명적인 대장균 O157:H7, 인간 광우병, 암, 심장병, 당뇨를 비롯한 온갖 질병을 일으키는 식품 독소의 원인을 캐내기에 이른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에이즈에 이어 인류가 겪은 무시무시한 유행병에 비만을 추가해야할 것이라고 레이몽은 단호하게 경고한다. 그 진원지로 미국을 지목한 것이다. 미국 국민 3분의 2는 음식이 넘쳐나 걱정인데 비해 12%는 먹을 게 없어 고통을 겪는 역설의 현장을 레이몽은 선연하게 목격한다. 
‘코카콜라 게이트’의 저자이기도 한 레이몽은 사람들이 먹은 음식의 양이 아니라 질 때문에 비만해진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먹는 음식에 포함된 독성물질이 비만을 일으킨다.
 
미국에서는 매일 20만 명이 식중독에 걸린다. 대장균 O157:H7이 등장한 시기는 비만 유행병이 2단계로 접어든 시기와 맞물린다. 이 대장균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박테리아 목록에 올라 있다.
햄버거 빵 사이에 끼우는 다진 미국 쇠고기의 ‘생산이력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여러 주에서 온 소 400마리의 살코기를 다져 햄버거 하나에 들어갈 패티를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대장균에 감염된 소떼를 알아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축산업자들은 대장균 O157:H7이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여론을 조작하려 든다. 축산업자들은 막강한 ‘식품비방법’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식품비방법’에 걸리면 소송을 당하기 십상이다. 식품기업들은 재정이 취약한 공립학교나 대학에 기부하는 대신 학생들에게 판촉하는 수법을 가리지 않는다.
 
방사선을 쬐는 식품도 ‘비열처리살균’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피해 나간다. 방사선 소독식품은 독성 위험 외에 최대 80%의 영양소가 파괴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현재 허가된 방사능 조사량으로는 일부 박테리아나 광우병의 원인인 프리온을 완전히 박멸할 수 없다고 한다.
미국 가축의 80~90%, 공장형 축사에서 자라는 가축들은 100% 성장 호르몬을 투여받는다. 성장 호르몬을 사용하면 엄청난 이익을 낳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망률이 가장 높은 결장암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된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은 1989년부터 성장 호르몬을 투여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금지한 뒤 엄청나게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 버티고 있다.
미국 농무부는 미국에서 소비되는 쇠고기와 닭고기의 절반에서 최소한 항생제 잔류물이 두 가지 정도 검출되었다는 연구 보고서를 냈다. 사람이 식품을 통해 항생제를 흡수하면 항생제 내성이 길러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햄버거 맛을 돋워주는 지방질 샘플 12개에서는 정부에서 허가한 농약이, 100여개의 샘플에서는 인체에 유해해 사용이 금지된 농약 성분이 검출됐다. 농업의 산업화를 적극 지지하는 사람들은 농약을 쓰지 않으면 인류가 식량부족에 시달릴 것이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구상의 기아가 자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불공평한 분배 때문이라고 일갈한다. 론데일 연구소는 실험실이 아닌, 실제 경작하는 밭에서 22년 동안 연구를 거친 끝에 친환경농법과 농약을 사용하는 농법 사이에 수확량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두 가지 혁명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제안한다. 먼저 우리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 소비자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매일 먹는 세끼 식사를 투표하듯 선택해야 한다.
여기서 문제는 위험하지 않은 음식들로 밥상을 채울 만큼 구매력을 갖춘 사람이 소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비만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공장에서 생산한 음식 밖에 사먹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정치인들의 각성이다. 사회를 위험한 병증에서 보호하는 것도 자신들의 책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책은 현장 취재와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 형태여서 긴장감을 더해 준다. 문장의 흐름은 짧고 경쾌하다. 그의 고발은 뇌수에 화살처럼 꽂힌다. 저자가 채식주의자도 동물보호단체 회원도 아니어서 더욱 거리낌 없다. 
 

■ 관용--헨드릭 빌렘 반 룬/서해문집


 
서열이 분명한 늑대 무리에서는 우두머리를 가리기 위해 해마다 수컷들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진다. 여러 수컷이 힘을 모아 우두머리에게 도전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코 패자를 죽이지는 않는다. 승자가 송곳니로 패자의 목을 무는 시늉으로 싸움을 끝낸다.
거듭되는 싸움이 종족의 명맥을 끊을까봐 살육을 금지시킨 것이다. 식물과 동물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하지만, 이처럼 더불어 살기 위해 욕심을 잠재우고 관용을 베풀 줄 안다. 인간은 다른 생물을 멸종시킬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다. 프랑스 식물학자 장 마리 펠트가 쓴 <정글의 법칙>(이끌리오)의 한 토막이다.
 
‘관용(톨레랑스)의 나라’다운 프랑스에서 전해오는 일화에는 이런 것도 있다. 조르주 클레망소 프랑스 총리가 정치적 이념을 달리하는 한 청년에게 저격을 당했다. 청년이 쏜 총알 일곱 발 가운데 한 발을 맞은 클레망소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청년은 현장에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하지만 클레망소는 사형에 반대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를 감옥에서 8년간 사격훈련을 시키자고 제안했다. 자신을 저격한 범인의 사형집행을 반대하는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프랑스에 총알 일곱 발 중 한 발밖에 못 맞히는 청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랑스의 명예는 실추되었소. 그 한 방도 부상만 입히는 정도라면 부끄러운 일이요. 그에게는 사격훈련을 더 시켜 목표물을 맞힐 수 있는 프랑스 청년으로 만들 필요가 있소.”
 

‘관용’에 관해서는 철학자 볼테르의 명언으로 흔히 인용되는 말이 있다.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이 말은 볼테르가 실제로 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사상을 정리한 이블린 홀이 출간한 <볼테르의 친구들>에서 볼테르가 한 말을 인용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는 게 정설이다. 어쨌거나 볼테르는 <관용론>까지 써 프랑스 관용정신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관용은 상대방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경청하고 자기 생각이 다르거나 부족할 수 있다는 한계를 인정하는 태도다. 관용과 용서는 사촌쯤 된다. 그렇지만 관용이 곧 용서는 아니다. 관용이 되면 물론 용서가 된다. 용서가 안 되면 관용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관용은 용서를 넘어선다.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역사학자이자 언론인인 헨드릭 빌렘 반 룬은 인류 역사를 ‘관용과 불관용의 역사’로 규정짓는다. 엄청난 지적 열정과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닌 ‘르네상스적 인물’인 반 룬은 <관용>(서해문집)이라는 걸작에서 ‘관용의 정신사’를 펼쳐 보인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관용의 역사’가 아니라 ‘불관용의 역사’라 해야 할 듯하다. 인류가 그나마 ‘관용’의 품속으로 들어오게 된 것도 기나긴 역사 속에서 최근 몇 세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관용을 획득하기 위한 인간의 투쟁, 종교적 신념이 낳은 무자비한 불관용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로마 집정관 심마쿠스, 율리아누스 황제, 에라스무스, 라블레, 볼테르, 디드로, 스피노자, 레싱 등 다른 역사책에서는 소홀히 다뤘던 많은 인물들이 ‘관용의 영웅’으로 승화한다.
 
우리는 요즘 들어 부쩍 힘의 억압이 만연하고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최악에 가까운 ‘관용결핍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촛불 시민과 시위·집회엔 철퇴를 내리는 반면 국민의 혈세를 마구 낭비한 공직자나 공공기관엔 솜방망이로 관용을 베푸는 괴이쩍은 일들도 다반사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긴요한 덕목이 바로 참된 관용이다. 자기 신념에 대한 자신감과 타인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관용의 정신을 올곧게 갈무리할 수 있다. 관용은 상대를 내편으로 만드는 비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관용을 인간에 대한 가장 겸손한 형태의 사랑이라고 부른다.
 

■ 한옥에 살어리랏다--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돌베개


 
어언 40년째 한옥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피터 바돌로뮤는 이론적으로 완전 무장한 한옥 전도사다. 서울 동소문동의 80년 넘은 전통 한옥에서만 35년째 산다.
그는 1968년 평화봉사단원으로 강릉의 조선시대 고택 선교장(船橋莊)에 머물기 시작하면서 한옥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한국에 눌러앉은 것도 한옥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그에게 전통 한옥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자연 속에 녹아 든 전통미와 사방이 열려 있는 동양적 여백미를 갖춘 예술품이다. 그의 한옥예찬은 비교건축론으로 기를 죽인다.
 
“중국 전통 건축물은 ‘나는 이렇게 부자고 힘이 세다’는 오만한 느낌을 준다. 일본 전통 건축물은 너무 깔끔해서 정이 가지 않는다. 이에 비해 한옥은 부드러운 곡선이 ‘어서 오세요’ 하며 따뜻하게 맞아주는 듯한 포근함이 감지된다. 그래서 한옥을 고려청자만큼, 유럽의 모나리자 그림만큼 중요한 보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혼’ 같은 한옥을 헐어버리고 아파트를 지은 뒤 ‘돈 벌었다’고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열불이 난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 애지중지하는 한옥을 떠나야 할 위기여서 한결 그렇다. 

 
 
한편에서는 이처럼 한옥을 푸대접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한옥 열풍이 뜨거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 서울 북촌이나 전주의 한옥마을 같은 곳을 찾는 이가 몰라보게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집값도 크게 올랐다는 풍문도 있다.
서울대에 ‘한옥 짓기’ 강좌가 이번 학기에 처음 개설된 것도 같은 흐름으로 봐도 좋을 듯하다. 이것도 한옥의 복권이라 해야 할까. 덩달아 한옥에 관한 책도 어느새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가 나올 정도가 됐다. 
 
한옥을 사랑하고 한옥 지킴이를 자처하는 ‘새로운 한옥을 위한 건축인 모임’이 펴낸 <한옥에 살어리랏다>(돌베개)가 대표적이다. 이 책은 한옥의 멋스러움과 현대적 거주 공간으로서의 장점을 소담스레 얘기하듯 들려준다. 서울의 북촌 한옥마을에서부터 제주도의 전통 초가에 이르기까지 27채의 한옥이 등장한다. 국내 유일의 한옥 동청사인 서울 혜화동사무소, 치과병원으로 정겹게 활용되는 한옥 등 300여 컷의 컬러 사진과 100여 컷의 도면까지 보태져 살갑게 ‘보며 읽을’ 수 있는 실용서이기도 하다.

(책 중에서)
 
한옥을 ‘여유가 있는 집’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집’ ‘비울수록 채워지고 나눌수록 커지는 집’이라고 한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의 정의가 그윽하다. 서울 강남에서 살다가 능소헌과 청송재로 이사와 십수 년째 살고 있는 풍경사진가 조향순씨의 글 가운데 한 대목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아이가 초등학생 시절 ‘우리 집’이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렸는데 도화지에 네모반듯한 아파트를 그렸다. 그것만으로는 구별하기 힘들겠다고 판단했는지 아이는 그림 옆에 ‘00아파트 00동 00호’라고 써놓았다.”

조씨에게 한옥은 자식들을 건전한 사고와 관용을 갖춘 자유인으로 키우기에 적당한 집이다. 한옥이 어떻게 변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해답을 준다.
 
우리네 주거공간 가운데 아파트 비중이 전체 주택의 60%에 육박하고, 남은 한옥 가운데 50%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옥’이란 낱말이 새우리말큰사전에 처음으로 등재된 게 1975년이라니 사라져감에 대한 안타까움의 산물이 아닌가.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펴낸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얼마 전 잠깐 화제가 됐던 기억을 되살리면 뜨끔하다. 줄레조 왈. “서울은 아파트 때문에 하루살이 도시다.”
 
이렇게 일갈한 외국인도 봤다. “유럽 국가들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옛 도시를 복원하겠다고 나서는데 한국은 멀쩡한 과거 유산을 재개발 명목으로 없애고 있네.”
 

■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오주석/솔출판사


 
미술사학자 오주석을 한마디로 일컫자면 ‘옛 그림을 그윽하고 향기롭게 읽어주는 사람’쯤 되겠다. 그는 조선시대 그림을 맛깔나게 읽어주는 인물로 첫손가락에 꼽아도 손색이 없다. 그림을 감상할 때 단순히 ‘보기’보다 그림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선인들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도하는 데 길지 않은 평생을 바친 공력이 지대하다. 
그는 우리네 옛 그림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다가 5년 전 하늘의 뜻을 채 알기도 전인 마흔 아홉에 속절없이 하늘나라로 가버려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의 저작은 그림의 문외한조차 즐겁고도 쉽게 읽어낼 수 있을 정도로 친화력이 강하다. 글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정제되어 군더더기 한 점 없어 보인다. 
 
대중적이면서도 그림만큼이나 은근한 맛과 훈향, 기품이 풍겨 나오는 문장이다. 마치 옛 그림처럼 담박하고 단아하다.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도록 언어의 섬섬옥수가 끌어당긴다. 그가 그림을 읽는 눈은 전문가들도 찬탄할 만큼 독창적이고 깊이가 남다르다. 그래서 그는 박물관에 박제돼 있던 우리 옛 그림을 다시 살려내 고미술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솔출판사)은 제목부터 그림은 보는 게 아니라 읽는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읽는 그림이라는 뜻이다. 
 
오랫동안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또 다른 수작 <한국의 미 특강>도 예외가 아니다. 1998년 <단원 김홍도>로 시작된 그의 저작은 그렇게 옛 그림에 대한 뭇사람들의 사랑을 불러 모았다. 지난해 한·중·일·대만·홍콩의 석학들이 선정한 ‘동아시아 100권의 책’에 김구의 <백범일지>,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등과 더불어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선정된 것만 봐도 무게를 짐작할 만하다. 
 
어떤 이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이 회화 예술계에 나온 <우리문화유산답사기>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그런 유홍준에게 생전에 서슴없이 비판의 화살을 날렸던 고인이 달가워할지 모르겠다.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에 관한 해설에서 내면의 삼엄함, 도가풍의 은일, 풍아(風雅)의 유유자적 같은 분위기가 스멀스멀 피어난다. 그의 눈, 아니 가슴에서 새로 읽히는 김명국의 ‘달마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자화상’, 김홍도의 ‘주상관매도’, 김정희의 ‘세한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같은 명작은 늠연한 선인들의 심상 그대로다.
 
책 서문의 한 구절이 사뭇 인상적이다.

“그림을 아는 사람은 그림을 설명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저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그림을 즐기는 사람은 일상생활 속에서도 거기에 그려지는 대상을 유심히 살펴보게 된다.”
 
오주석은 우리 옛 그림을 잘 완상하려면 옛 사람의 눈으로, 옛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는 자세를 갖는 것이 기본이라고 일러준다. 
그는 ‘옛 그림이 학문적으로 대할 때에는 까다로워 보일 수 있겠지만 한 인간의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존재로 대할 때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기름지게 하며 궁극적으로 우리 생명의 의미를 고양시킨다’고 설파한다. 저자는 수묵화가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라고 품평하고 있다.
 
그의 얘기 가운데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 게 있다.

“문인화를 잘 그리기 위해서는 ‘천 리의 먼 길을 다녀보고 만 권의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 말은 그림을 감상하는 사람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

명심할 게 하나 더 있다. 그림은 천천히 오래 봐야지 바쁘게 서두르다 보면 참맛을 놓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 공감의 시대--제러미 리프킨/민음사---‘경쟁’의 시대 넘어 ‘공감’의 시대로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후보 경선과정에서 흥미로운 일이 일어났다. 여론조사 과정에서 색다른 질문 하나가 추가됐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대통령 후보의 가장 중요한 자질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것이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전통적인 선택지를 놔두고 ‘공감(empathy)’이라고 대답했다.
놀라운 것은 ‘공감’을 대통령의 중요한 자질이라고 한 여론에 별다른 반응을 보인 정치학자들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공감’이란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 50년 동안 세계적으로 가치관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반영해 주는 현상인데도 말이다.
 
‘공감’을 자신의 정치철학 핵심으로 삼은 것은 바로 버락 오바마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금도 대외 정책에서부터 대법관 선임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을 내릴 때마다 ‘공감’이란 말을 앞세운다. 그가 대통령 당선 연설에서 강조한 한마디는 세계인의 공감을 얻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을 듣겠습니다." 
 
2009년 4월 ‘뉴욕 타임스’는 미국 교실에서 일어나는 공감혁명을 1면 기사로 다뤘다. 이 기사는 공감을 주제로 하는 워크숍과 교과 과정이 실시되고 있는 18개 주의 실태를 전하면서 이런 선구적인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초기 평가가 매우 고무적이라고 소개했다.
공감 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교육혁명의 바람이 불고 있으며 교육자들은 공감 능력을 개발할 때 학업성취도도 올라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처럼 ‘공감’은 정치적 집회나 전문 단체, 시민사회에서 중요한 토론 주제가 될 정도로 친숙한 개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래학자이자 사회사상가인 제러미 리프킨은 신작 <공감의 시대>(원제 The Empathic Civilization)에서 분야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공감’ 개념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고 분석한다. <유러피언 드림> <소유의 종말>의 저자인 리프킨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문명이 끝나고 협력과 평등을 바탕으로 하는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다.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 흑인 등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가 크게 바뀌고, 타 민족, 타 인종에 대해서도 서로 인정하는 현상이 점차 뚜렷해지는 것은 공감의 문명으로 전환하는 방증이라고 그는 해석한다.
지은이는 이제 인간적 공감이 인류를 넘어 다른 생물에게까지 확장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애완동물을 동료로 여기는 것은 물론 다른 생물을 벗 삼고 자연에 대해 깊은 친화력을 갖게 되는 것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미국 가정의 69%가 개나 고양이를 사람들이 자는 침대에서 재운다는 최근 조사결과만 봐도 그렇다.
 
세계경제체제도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더불어 분산 자본주의가 인도하는 3차 산업혁명이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석유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부의 집중과 적자생존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이 종언을 고하고, 오픈 소스와 협력이 주도하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이미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대표적인 실례로 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무료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들었다. 고대 신화시대의 구두문화, 농경사회의 문자문화에 이어 인쇄기술이 초래한 1차 산업혁명, 전기통신기술이 촉발한 2차 산업혁명, 21세기 분산 네트워크 혁명과 에너지 제도 혁신이 이끄는 분산 자본주의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의식변화와 경제·사회·정치에 3차 산업혁명이 몰고 오는 파급효과를 예언하고 있다.
 
공감 의식이 갑자기 확대되는 현상은 지구 곳곳을 황무지로 만들고 많은 인류를 더욱 가난에 빠뜨린 엔트로피 흐름의 증가를 등에 업고 나타난 결과라고 저자는 풀이한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 엔트로피 총량은 계속 증가한다’는 열역학 법칙에 따라 사용가능한 에너지의 손실을 엔트로피라고 한다.
 
저자는 최근 생물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문명의 명멸 원인을 공감의 물결과 엔트로피의 상호관계에서 찾는다. ‘공감 뉴런’이라는 별칭이 뒤따르는 ‘거울신경세포’ 이론이 그것이다. 
 
저자는 공감의 확장이 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적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접착제이며, 범위를 넓혀가는 공감의 연대감은 수많은 사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이어준다고 설명한다. 현재의 전 세계적 경제 위기도 20세기의 지정학적 권력투쟁에서 21세기에는 ‘생물권 정치’로의 이동을 의미하는 분산에너지 경제체제가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서식지가 생태계 안에서 기능하듯, 통치 제도도 다른 통치 제도나 전체 통치 제도로 통합되는 관계의 협력적 네트워크 안에서 생물권과 마찬가지로 상호의존적이고 호혜적으로 작동한다는 게 생물권 정치론이다.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공감 본능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한 이해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모처럼의 분위기도 흐지부지되어 버릴 공산이 크고, 심지어 조롱이나 희화화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도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그의 견해가 희망사항이 혼재돼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즐겨 읽었던 <유러피언 드림>을 넘어서지만 속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유러피언 드림>에서부터 ‘공감의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고 시사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 <바이오테크 시대>가 생명과학, <노동의 종말>이 첨단기술의 일자리 박탈 문제, <소유의 종말>이 접속권(Access) 개념, <수소 혁명>이 석유시대의 종말 등 단일 카테고리를 다룬 역작이었다면 <공감의 시대>는 인류사 전반을 섭렵하며 거시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사람으로 읽는 한국사 기획위원회/동녘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는 1953년 4월16일, 지금이었더라면 온통 세상이 발칵 뒤집혔을 만한 발언을 한다.
“이 형법만 가지고도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할 대상을 처벌하지 못할 조문은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것이다.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도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회 연설에서다. 그렇다면 김병로는 ‘빨갱이’란 말인가.
 
그는 불과 다섯 달 전인 1952년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기념일 기념사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공산주의자들의 발악적 만행을 방임하여 시일을 지연한다면, 시기의 장단(長短)은 있을망정 우리 인류는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말 것이다.”

그의 두 발언은 모순일까. 김병로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한 반공주의자’다.
그는 ‘인권변호사’의 원조이기도 하다. 그는 1959년 4월3일 경향신문에 이런 수상단편을 썼다.

“내가 변호사 자격을 얻고자 했던 것은 일제의 박해를 받아 비참한 질곡에 신음하는 동포를 위하여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하려 함에 있었다… 변호사라는 직무가 자기의 생활직업으로만 하지 아니한다면 인권 옹호와 사회방위에 실로 위대한 사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승만 독재정권에 맞서 대한민국 사법부의 토대를 닦은 김병로를 말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낱말은 단연 ‘청렴’과 ‘강직’이다. 그는 ‘법관이 청렴할 자신이 없으면 법원을 떠나라’고 죽비를 내리쳤다. 화장실에서 휴지 대신 신문지를 사용하고, 사법부 예산 가운데 쓰고 남은 돈은 한 푼도 빼놓지 않고 국고에 반납하는 등 그에게 얽힌 절약의 일화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오늘날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에게서 찾아보기 드문 사례다.
 
이 책은 우리 역사 속에서 김병로 같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범’ 여섯 사람을 뽑아 진정한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이 어떠했는지를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박정희 정권과 대립각을 세운 민족주의자 장준하, 가문의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회영, 망국을 보며 조선 선비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황현, 농민과 노비도 사람답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꾼 실학의 비조 유형원,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고 원칙에 충실해 ‘영웅적인 장군’으로 추앙받은 최영. 이들의 행적을 통해 사이비 보수주의자들에게 참 보수의 길이 어떤지를 제시하고 있다.
 
장준하는 이승만 정권 아래서 감시자 역할을 자임하고 박정희 정권 시절엔 민족통일운동의 일환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 돌베개를 벤 민족주의자다. 그는 일제시대에 우익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해방 이후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진력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회영은 ‘삼한갑족’(三韓甲族)으로 불린 명문 출신으로 여섯 형제와 더불어 가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쏟아붓고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또 다른 전형이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자결한 매천 황현은 개화에 부정적인 전통·보수주의자였지만 평생 지위와 재물을 탐하지 않은 ‘조선의 마지막 선비’로 꼽힌다. 그가 ‘절명시’(絶命詩)와 함께 남긴 ‘유자제서’(遺子弟書)는 처연하다.

“(국록을 먹지 않은) 내가 가히 죽어 의를 지켜야할 까닭은 없으나, 다만 국가에서 선비를 키워온 지 500년에 나라가 망하는 날을 당하여 한 사람도 책임을 지고 죽는 사람이 없다. 어찌 가슴이 아프지 아니한가?”
 
하나같이 병역의무를 다하지 않은 보수 진영의 수장 대통령·국무총리·집권당 대표, 온갖 불법·탈법·탈세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않는 지금의 수많은 보수주의자들이 이 책을 보고도 덤덤할까.
 

■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년이 지나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다고 했다던가. 예외 없이 실천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구한 세월에 걸쳐 검증된 고전만 탐독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리라.
 
그렇다면 2500년 넘게 숙성된 노자(老子)의 ‘도덕경’은 무라카미의 마음을 얻고도 넘친다. 하지만 ‘도덕경’이야말로 주석과 해설이 올바르지 않으면 읽어내기 쉽지 않은 책이다. 게다가 ‘무위자연’에서 노니는 대범무쌍한 이야기여서 따분하리란 선입견이 지배하기 십상이다.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주석서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겠다. 중국에서만 1500권이 넘는 주석서가 쓰였다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른 길을 따라 노자 곁으로 걸어갔을지 짐작이 가고 남는다.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삼인)는 수많은 ‘도덕경’ 주석서나 해설서 중에서 가장 쉽고도 재미있는 책에 속하지 않을까 싶다. 따지고 보면 이 책은 엄격한 의미의 주석서가 아니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1928~94)이 직접 쓴 게 아니라 그를 스승이자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처럼’ 따랐던 이현주 목사와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어서 소설마냥 편안하게 읽힌다.
유명한 한문학자였던 선친으로부터 배운 장일순처럼, 한학에 남다른 조예를 가진 이목사와 더불어 고대와 현대를 넘나들며 초교파적 담론으로 원문을 해석하고 풀어나가는 걸 따라가다 보면 법열마저 느낀다.
매 장마다 도교, 유교, 기독교, 불교, 심지어 동학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도가(道家)의 관(冠)을 쓰고 유가(儒家)의 신발을 신고 불가(佛家)의 옷을 걸치니, 세 집안이 모여 한 집안을 이루도다”라고 한 부대사(傅大士)의 문장에 ‘기독’과 ‘동학’을 넣었다고나 할까. 
 
‘…노자 이야기’는 일본이 자랑하는 대표적 석학 모로하시 데쓰지의 독특한 역저 ‘공자·노자·석가’를 연상케 한다. 저자의 탁월한 상상력을 동원해 세 성현의 가상 대담으로 엮은 ‘공자·노자·석가’는 모로하시의 나이 100세 때 펴낸 책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욱 화제몰이를 했던 것 같다.
‘…노자 이야기’는 여기에 예수를 더해 현대의 거목들이 현실 담론으로 감흥 높게 펼쳐가는 쾌작(快作)이다. 덧붙이자면 책이 미처 완성되기 전에 장일순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후반부는 이목사가 이심전심으로 대화하며 마무리지었지만 읽는 이는 전혀 감지할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다.
 
‘원주의 예수’로 불리는 장일순은 스스로 노자의 삶을 살았다. 중국에서 ‘노자’를 제대로 읽은 사람으로 손꼽히는 장자(莊子)와 장자방(張子房)은 각기 글과 삶으로 노자를 표현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장일순은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장자방처럼 노자의 가르침을 체현한 인물로 추억된다.
 
스스로를 ‘좁쌀 한알(일속자·一粟子)’이라 일컬을 만큼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삶을 영위해 일반인들에게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석 유영모와 씨알 함석헌에 버금가는 민족의 스승으로 손색이 없는 장일순이다. 민주화운동의 기둥이었지만 훗날 박정희와 전두환조차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친 넓은 가슴의 지성.
학창시절을 제외하곤 거의 치악산 자락의 원주를 떠나지 않은 채 세상의 중심에서 멀찍이 산 은둔자. 지학순 주교의 든든한 동지. 김지하 시인의 둘도 없는 스승. 당대의 지성 리영희 선생이 ‘살아있는 노자’ ‘벗으로 사귀게 된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이라고 그리워한 분이 바로 장일순이다. 편벽되지 않은 해박과 언제나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삶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노자 이야기’는 장일순의 그런 삶이 녹아나 노자를 그저 이해하는 데 머물지 않고 올곧은 삶의 가치를 전도한다. ‘한살림운동’을 새로운 생명운동으로 제창한 그가 진정 깨달음을 실천한 자유인이었음이 은연중에 스며 나온다. 말년의 호를 제목으로 삼은 ‘좁쌀 한알’(도솔)이란 책을 함께 읽다보면 장일순의 삶을 온전히 가늠할 수 있는 일화들이 따사로운 봄볕처럼 다가온다.
 

■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탐구--김영수/알마


 
마오쩌둥이 장제스의 국민당을 패퇴시키고 베이징에 입성했을 때 그의 행낭에는 네 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고난의 대장정 동안 침대 옆에 놔두고 틈날 때마다 지혜의 샘물을 마신 책들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중국어휘사전인 <사해(辭海)>, 어원사전인 <사원(辭源)>이 그것이다.
공산주의자 마오쩌둥에게 카를 마르크스나 블라디미르 레닌의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것은 의외다. 그는 그 뒤에도 어딜 가든 <사기>와 <자치통감>을 거의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마오쩌둥에게 역사책은 방향을 일러주는 나침반이었고 현재를 해석하는 거울이었다.
 
중국 근대 문학의 거장 루쉰(魯迅)은 <사기>를 “역사가의 절창이요, 운(韻)이 없는 이소(離騷)”라고 격찬했다. ‘이소’는 초나라 굴원이 쓴 중국 문학 요람기의 걸작시다. 중국 근대의 계몽사상가 량치차오(梁啓超)는 사마천을 “역사학계의 태조대왕이고 역사학의 조물주”라고 숭앙했다. 
 
<사기>를 읽지 않고서는 중국 역사에 대해 얘기하지 말라고 한 까닭을 알 만하다. 이처럼 <사기>는 중국을 읽는 첫 번째 코드다. 웬만한 언어로는 모두 번역되어 읽히는 세계인의 고전이자 동양적 지혜의 정수라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한국인 가운데 사마천과 <사기>에 관해 가장 깊이 천착하고 몰두하고 있는 이는 단연 역사학자 김영수가 아닌가 싶다. 20년 이상 <사기>를 연구해 온 그는 100여 차례 중국을 돌며 사마천의 흔적과 <사기>의 무대를 탐사했다.
최근 10여 년 동안에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사마천의 고향 마을을 찾아갔다. 문서로 된 자료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종군기자 로버트 카파가 “당신이 찍은 사진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충분히 가까이 가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던 명언으로 답한다.
그의 정성과 애정이 얼마나 깊었던지 사마천의 고향인 산시(陝西)성 한청(韓城)시에서는 명예촌민이자 홍보대사로 위촉할 정도였다. 비중국인으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국인 최초로 사마천학회 정회원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렇게 태어난 책이 <난세에 답하다: 사마천의 인간탐구>(알마)이다. 이 책에는 <사기>를 감흥 깊고 쉽게 풀어 쓴 이야기와 발품을 비싸게 판 현장의 토향이 진하게 풍기는 르포르타주가 함께 버무려져 있다. ‘읽히게 쓴다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한 미국 역사학자 데이비드 매컬로의 말이 떠오른다. 국내의 사마천 책들이 단순 번역서가 대부분인데다 그것도 <사기열전>에만 편중돼 있는 한계를 훌륭하게 극복해 준다.
 
‘<삼국지>를 한번도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속언도 있지만 지은이는 <삼국지>를 백번 읽기보다 <사기>를 한번 읽는 게 낫다고 단언한다. 그는 <사기> 읽는 보람을 열네 가지나 든다.
진한 감동은 물론 진퇴의 지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통렬한 비판, 능력과 재능은 있지만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로이 틔울 만한 풍자 등이다. 그는 <사기>의 86%가 인물에 관한 얘기여서 ‘최고의 인간학 교과서’라고 권면한다.
 
저자는 사람을 알고 세상을 논하는 ‘지인논세’(知人論世)라는 한 마디로 <사기>를 요약한다. 인간 군상의 함축판인 <사기>를 읽지 않고 세상과 인간을 안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일침을 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못난 정치가는 백성과 다투는 자다”란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화식열전’을 읽지 않고선 <사기>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바로 그 대목에서다. “한번 민심을 잃으면 홍수보다도 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백성의 입을 막기란 물을 막기보다 힘들다”는 구절들도 각다분한 현실과 겹쳐 보인다.
 

■ 만들어진 신…리처드 도킨스/김영사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접하면 가장 불편하고 짜증스러워할 사람들은 종교계 지도자와 종교적 신념이 강한 신도들임에 틀림없다. 그것도 기독교와 가톨릭 교계 인사들일 게다. 독실한 신앙인일수록 그 강도는 정비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잖아도 도발적인 글쓰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전투적인 무신론자로 손꼽혀온 영국 과학자 리처드 도킨스에 대한 종교인들의 반감은 이미 만성화한 상태다.
문제의 과학전사(科學戰士) 도킨스가 펴낸 최신작 ‘만들어진 신(원제 The God Delusion)’은 종교에 대한 선전포고문이나 다름없다. 특히 ‘지적 설계’라는 새로운 방어무기를 장만한 창조론에 깊은 신뢰감을 가졌다는 기독교와 가톨릭교계 지도자들에 대한 도전장이다.
그만큼 논쟁적인 저작이 될 수밖에 없다. 종교를 비판하는 책의 출간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처럼 통렬하고 파란을 일으키는 경우도 흔치 않다. 가위 과학과 종교의 대충돌로 봐도 좋겠다.
 
그는 모든 책에서 그렇듯이 여기서도 결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독자의 구미를 사로잡기 위한 수사학의 전주곡부터 강렬하다. 그는 들어가는 글에서 존 레논의 노랫말처럼 “상상해 보라, 종교 없는 세상을”이라고 유혹한다. 그러면서 “무신론자가 되고 싶다는 소망이 현실적인 열망이고 용감한 행위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 썼다”고 당당하게 밝힌다.

 
 
스티븐 굴드와 더불어 찰스 다윈 이후 최고의 진화생물학자로 평가 받는 도킨스는 1976년 ‘이기적 유전자’를 시작으로 ‘눈먼 시계공’ ‘확장된 표현형’ 등 일련의 진화론 베스트셀러 저서를 통해 종교계에 도전장을 낸 지 오래다.
그에게 ‘진화생물학의 마키아벨리’란 별명을 붙여줘도 좋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과학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물론 웬만큼 책을 읽는 독자가 그를 모른다면 수준을 의심받아도 하소연할 길이 없을 정도다.
 
‘만들어진 신’이 지난해 9월 첫 출간된 뒤 10개월째 영미권에서 베스트셀러 상단을 지키고 있는 것만 봐도 그의 대중적인 과학전도가 여전히 먹혀들고 있음을 방증한다. 옥스퍼드 대학이 그에게 ‘과학의 대중적 이해’ 교수라는 특별한 경칭을 부여한 것 역시 이런 능력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특장인 대중적인 인기와 학술논쟁을 교묘하게 접합하는 기술이 이 책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그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유로 몇 가지 논리적이고 과학적 근거를 내세운다. 먼저 신의 우주창조설을 뒷받침하는 지적 설계론의 허점을 파고 든다. 가장 진화된 존재인 창조적 지성은 우주에서 맨 나중에 출현할 수밖에 없어 우주를 설계하는 일을 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지적 설계자 가설은 “설계자는 누가 설계했는가?”라는 더 큰 문제를 제기한다.
 
신의 존재 여부는 현재진행형 가설이며 논증의 숙제로 남아 있다는 것을 두 번째 이유로 제시한다.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등에서 제시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못한 ‘이야기’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능(全能)과 전지(全知)가 상호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다는 논리학자들의 견해를 그 근거로 들었다.
그는 신이 전지하다면 자신이 전능을 발휘해 역사의 경로에 개입하고 어떻게 바꿀지를 이미 알고 있어야 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자기 눈으로 신의 모습을 보았다고 간증하지만 환각에 불과하다는 증거를 과학적으로 조목조목 들이댄다.
 
신이 없는 거의 확실한 이유로 그는 자연선택이론을 든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독창적이고 강력한 이론적 무기는 자연선택을 통한 다윈의 진화라는 견해다.
 
과학자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종교에 집착하는 주된 이유는 종교가 주는 위안 때문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의 교육체계에 따른 무의식적인 수용과 대안에 대한 인식 부재 때문이라고 역설한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종교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진실과 자신들이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것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고질적인 습성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지구상에서 신이 사라진다면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심리적 위안을 찾을 대안이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인간 스스로 도덕과 희망을 찾을 수 있다고 변호한다. 그는 도리어 종교의 부작용으로 인해 불필요한 사회악을 조성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상당수의 전쟁이 종교에서 비롯되는 것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이스라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실험에서 대량학살을 비난하거나 용납하는 견해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 바로 종교였다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이 책에 대한 기독교계와 학계의 반격도 만만찮다. 도킨스와 같은 옥스퍼드대의 앨리스터 맥그래스 교수는 신적 권위에 대한 부정과 무신론의 근본주의적 성향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도킨스의 착각(The Dawkins Delusion)’이란 책에서 “도킨스는 학자적인 기본 절차를 무시하고 중상·비방으로 일관해 학자가 지켜야 할 금도를 저버렸다”고 반박한다. 교계와 다른 학자들 사이에서도 도킨스가 지나치게 대중에 영합한다는 비난이 적지 않다.
이 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든 저작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공통적인 연결고리인 ‘과학적 사고로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가 이 책에서도 강조된다. 이한음 옮김. 2만5000원
 

■ 승자독식사회--로버트 프랭크·필립 쿡/웅진지식하우스


 
할리우드 스타 톰 행크스는 지난해 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개런티를 기록했다. 행크스가 계약한 영화 ‘천사와 악마’의 출연료는 물경 455억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장동건이 2004년 영화 한 편의 출연료로 8억5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는 달리 10만명이 훨씬 넘는 미국 영화배우들 가운데 12%만이 출연료를 받는다고 한다. 10여년 전의 통계지만 그 12% 중에서도 90%는 연간 5000달러 이하의 출연료를 손에 쥔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대부분의 연예인 지망생들은 웨이터나 택시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다 결국 꿈을 포기하고 만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여자 체조 금메달을 딴 메리 루 레턴은 한동안 매일 아침 미국인들에게 얼굴을 내밀었다. 금메달을 딴 뒤 수백만달러를 받고 광고모델 계약을 맺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로 작은 점수차로 은메달을 딴 선수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한국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며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을 장식한 적도 있다.
 
이처럼 이긴 사람이 모든 것을 독차지하는 현상은 이제 어느 나라, 어느 분야든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다. 승자독식현상이 문화·예술·연예, 스포츠, 투자금융업, 학계, 법조계, 의료계 유명인사들의 노동시장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긴 사람들이 독과점하는 부와 권력은 보통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어느덧 씁쓸한 유행어로 자리잡았다.
 
미국 경제학자 로버트 프랭크와 필립 쿡이 함께 쓴 ‘승자독식사회(원제 The Winner-Take-All Society)’는 전세계적인 일등만능주의 현상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13년 전인 1995년 미국 사회의 승자독식시장을 적나라하게 해부하고 나름의 처방을 내린 책이지만 우리 사회의 오늘을 보는 듯하다. 아니 지은이들이 묘사한 생생한 현장은 진도가 훨씬 많이 나가고 있다. 

 
‘승자독식사회’란 용어도 지은이들이 사실상 처음 만들어냈다. 물론 팝그룹 아바가 80년대에 이미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네(The Winner Takes It All)’란 노래를 불렀고, 카지노에서도 승자독식의 법칙이 적용돼 오긴 했다.
 
승자독식시장을 탄생시킨 핵심 요인으로 저자들은 원거리 통신과 정보기술의 발달을 꼽는다. 컴퓨터가 결정타를 날린다. 네트워크 경제에서 경로의존성은 일등에 대한 쏠림현상으로 나타나 승자독식주의를 구조화하고 고착시킨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짧은 기간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된 것도 정보화 사회에서 승자독식의 원리가 작동한 결과다. 영어의 국제어 시장 독점도 마찬가지다. 
 
‘이코노믹 씽킹’이란 베스트셀러로 우리에게 낯익은 프랭크와 쿡은 흔히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는 레이건-부시 행정부와 대처-메이저 행정부 때문도 아니며, 노조의 쇠퇴 탓도 아니라고 진단 결과를 내놓는다. 문화적인 요소와 무역의 확대는 부차적인 이유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모든 사회가 가장 곤욕스러운 모순인 형평성과 효율성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있긴 하다. 승자독식사회가 멈출 수 없는 까닭은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낳는 악순환 때문이다. 저자들은 ‘성공이 성공을 부른다’는 표현도 착안점으로 삼았다. 
 
지은이들이 초점을 맞추는 것은 승자독식시장의 폐해와 부작용이다.

“승자독식시장에서 벌어지는 최고를 향한 경쟁은 실제로 가장 뛰어난 실력자들을 매료시키지만, 동시에 두 가지 형태의 낭비를 조장한다. 첫째는 너무 많은 경쟁자들을 끌어들이고, 둘째는 경쟁과정에서 비생산적인 소비와 투자를 초래한다.” 
 
저자들은 최고상을 향한 수많은 경쟁이 엄청난 비용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비생산적이고 불평등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자극하기보다는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에 이른다. 합의를 통해 최고상의 크기를 줄이고 경쟁을 완화해야만 비참한 사회로 추락하지 않게 된다고 충고한다. 승자독식사회는 승자에게도 독약일 뿐이라고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부의 편중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일류 대학병, 출판시장의 눈물겨운 베스트셀러 만들기, 유명인사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에 대한 관심도 승자독식의 문화시장이 낳은 폐해다. 지은이들은 독식을 향한 승자들의 눈물겨운 투쟁을 ‘군비경쟁’에 빗댄다. 
 
이 책은 승자독식시장의 부작용을 줄이는 방법도 제시한다. 누진세 확대, 소송남발 규제, 의료비 개혁, 교육 혜택 증대, 선수연봉 상한제, 사회안전망, 문화상품에 대한 정부 지원, 조금 덜 일하는 사회 같은 것들이다. 불평등을 줄이려면 평등이 가장 요구되는 영역부터 정부가 지원하라고 우선 순위를 주문한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경쟁을 막는 것은 하수이고, 위험을 동반하며, 해결책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해답이 썩 만족스럽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들이 ‘군축협정’으로 일컫는 각종 대책들이 실제론 큰 도움을 주지 못했던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금 덜 일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제안 같은 것은 지금 한국 사회라면 돌팔매의 표적이 될 분위기다.
 
그렇지만 우리가 ‘승자독식’에 눈길을 주지 않았던 10여년 전에 이미 통찰한 것만으로도 혜안이 느껴진다. ‘88만원세대’처럼 승자독식시대를 개탄하고 처방하는 신간이 속속 등단하지만 이 책이 원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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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나무에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나무에는 사람들의 애환도 숱하게 담겼다. 수백 년, 운이 좋으면 천년도 넘게 사는 나무는 스스로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리나무의 세계 1,2>(김영사)가 단순히 한국의 나무에 관한 생태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인문서가 되는 것도 바로 감흥 깊은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임학자로 출발했던 지은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나무 문화재 연구의 한국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기에 이같은 역작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1000종이 넘는 한국나무 가운데 242종을 골라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가로수로 심는 나무’ 등 쓰임새별로 나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가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4대 역사서를 비롯해 고전소설,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근ㆍ현대 문학작품 등 나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내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퇴계에게 반해 전전긍긍하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희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퇴계의 마지막 유언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한국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동백나무에 얽힌 얘기들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동백꽃은 예부터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명사다. 멀리는 고려 말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부터 가까이는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에 이르기까지 늘 여성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선운사 동구> 

선운사 동백꽃은 4~5월이 제철이다.

동양의 꽃인 동백은 서양으로 건너가서도 비련의 여인상을 그대로 이어간다. 동백은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8년 발표한 소설 <춘희>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백꽃 부인>이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일본에서 <춘희>(椿姬)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녀인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동백꽃을 매개로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과 순수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비련의 스토리를 지녔다. 이 소설은 5년 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돼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온다.
                                                                            


도종환 시인의 시 ‘목백일홍’으로 거듭난 배롱나무도 흥미롭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서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시인은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환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꽃을 이렇게 맛깔스러운 시로 승화시켰다. 시인의 관찰력은 정확하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해 백일홍나무로 불렸지만 꽃 하나가 오래 피는 건 아니다. 꽃 하나하나가 이어 달리기를 하듯 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착각했다.

                                                            

 
농촌 풍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마을 어귀 아름드리 고목의 대부분은 느티나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고목 1만3000여 그루 가운데 느티나무가 7100여 그루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다. 고려 말 문신 최자가 쓴 <보한집>에 나오는 전북 임실 오수읍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김개인이라는 선비가 잔디밭에서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들불에 휩싸일 위기에 처하자 개가 연못을 들락거리며 몸을 물에 적셔 불길을 막고 숨졌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감읍한 주인이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그 자리에 싹이 트고 자라 큰 느티나무가 됐다고 한다.


등나무와 팽나무의 전설도 애절하다. 신라 때 마을에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좋아하던 옆집 청년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어느 날 청년의 전사 소식을 전해들은 자매는 함께 마을 앞 연못에 몸을 던져버렸다. 그 후 연못가에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리가 시작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두 자매의 사연을 듣고 괴로워하던 그 청년도 결국 연못에 뛰어들어 버렸다. 다음해가 되자 두 그루의 등나무 옆에 한 그루의 팽나무가 갑자기 쑥쑥 자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굵은 팽나무에 등나무 덩굴이 걸쳐 자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나무의 사랑이 너무 진한 탓인지,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팽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비실비실한다.


나도밤나무에 서린 사연은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옛날 깊은 산골에 가난한 부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몇 월 며칠까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물려 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계시를 내린다. 그날부터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자라는 밤나무는 모조리 캐다가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999그루를 심고 마지막 한 그루는 아무리 해도 채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산신령이 말한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도무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엉뚱하게, 율곡 선생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밤나무골이라는 그의 호 율곡(栗谷) 덕분에 밤나무와 관련돼 여러 전설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선생이 가까이 있는 한 나무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네가 밤나무를 대신하라”고 이르자, 이 나무는 냉큼 “나도! 밤나무요!” 하고 나선다.



해마다 봄철이면 온갖 수난을 당하는 게 고로쇠나무다. 수액이 몸에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단맛을 내는 성분인 자당, 과당, 포도당이 들어 있고 칼슘과 마그네슘 등 몇 가지 미네랄이 있는 정도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저명한 화가 김홍도, 신윤복, 정선의 작품 소재가 된 나무,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김소월, 유치환 시의 주인공이 된 나무 이야기도 나온다. 700여장의 나무 사진과 50여장의 옛 그림 같은 시각 자료도 풍성하다. 지은이의 앞선 저작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궁궐의 우리나무> <우리문화재 나무 답사기> 등을 함께 읽으면 한층 유익할 것 같다.


식목일이 낀 4월이 되자 사연 많은 우리네 나무들이 문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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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애기똥풀꽃>
 
‘담벼락에 기대어 핀 꽃/ 네 이름이 무엇이냐/ 너의 혈통을 알 수가 없구나/ 노란 꽃잎이 꼭 개나리를 닮았지만/ 다소곳한 얼굴이/ 찬바람에 얼어 있구나/ 늙어 백발이 되는 꽃이 있구나/ 목숨이 다하여/ 떨어져서 흙에 누워도/ 여전히 꽃이란 이름을 간직한/ 꽃이 있구나’

 ‘이름 모를 꽃’이란 제목의 이 시를 쓴 김영배 시인은 작고한 소설가 김동리나 김정한 선생 같은 분이 살아 계셨다면 혼쭐이 날법하다. <그리움은 이름 모를 꽃으로 피어나고>라는 시집을 낸 9명의 바다시 동인들도 분명 마찬가지리라. 단편소설 <이름 모를 꽃>(소설문학)을 남긴 고 선우휘 선생이나 시집 <이름 모를 꽃>(형설출판사)을 펴낸 이영성 시인도 예외는 아닐 게다.


 “세상에 이름 없는 꽃이 어딨노. 시인이라면 낱낱이 찾아서 붙여주어야지.” 부산을 대표하는 토박이 문인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김정한 선생(1908~1996)이 제자 시인 최영철에게 꾸짖으며 했다던 말이다. 대학원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이해웅 시인도 똑같은 닦달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이름 모를 꽃, 이름 모를 새, 이런 식으로 쓰면 크게 야단을 치셨지요. 작가는 꽃이름 풀이름을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고.”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을 손수 만든 리얼리스트 김정한 선생은 이처럼 생전에 젊은 작가들이 ‘이름 모를 꽃’ 같은 표현을 쓰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했다.


 김동리 선생이 소설가 문순태의 소설 습작을 읽다가 ‘들판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원고를 집어던졌다는 일화는 후배 문인들에게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이름 모를 꽃이 어디 있어! 네가 모른다고 이름 모를 꽃이냐!” 선생은 들꽃 이름을 알기 위해 농부들에게 묻고 메모해서 소설을 쓰고, 패랭이꽃이라는 꽃 이름 역시 그렇게 알게 된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작품 속에 풀, 나무와 꽃들을 더욱 진지하게 담는 것은 문화의 깊이를 더하는 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뜻이렷다.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도 <우리말 살려쓰기>(아리랑나라)란 책에 이런 고언을 남겨 놓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나는 풀이름, 나무이름, 꽃이름을 제대로 모릅니다. 시인이고 수필가이고 소설가란 사람들은 글을 쓸 때 기껏해야 ‘들에 나가면 이름 모를 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산에 가면 이름 모를 산새가 울어대고...’ 따위로 쓸 줄 밖에 모릅니다. 세상에 제 땅에 피고 지는 꽃이름도 모르고 우는 새 이름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나라를 사랑합니까?”
 

  안도현 시인은 서른다섯이 되도록 ‘애기똥풀꽃’도 모르고 시를 썼다는 게 부끄러웠다고 고백한 일이 있다. 실제로 수년전에 한 문학잡지에서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시, 소설 같은 문학작품에서 ‘이름 모를 꽃’이라는 표현이 다른 나라에 비해 유달리 많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생태학의 터전을 마련한 1세대 생태학자 김준민 선생은 교양과학입문서 <들풀에서 줍는 과학>(지성사)에 이렇게 회고했다. “어릴 적에, 초반 긴 페이지에 걸쳐 나무와 꽃이름을 열거해가던 어느 소설의 묘사부분을 읽으면서 이름도 희한한 외국 식물들이 도통 어떻게 생겼을지 몰라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가는 어떻게 그리 많은 식물의 이름을 알고 있는지 늘 신기하였다.”
                                                            



 ‘이름 모를 꽃’만 만발한 우리 현실을 딱하게 여긴 ‘야생화 전도사’ 김태정 박사<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꽃 백가지 1, 2>(현암사)를 통해 몰상식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준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을 소개한 1권은 철따라 피는 100가지를 골라 생생한 컬러 화보와 더불어 꽃의 생태와 쓰임새, 숨은 이야기까지 감흥 깊게 들려주고 있다. 높은 산에서 만날 수 있는 꽃을 담은 2권은 지은이가 ‘걸어 다니는 식물도감’이란 별명에 걸맞게 40여 년간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전국 곳곳의 산을 직접 답사한 결과물이다.
                                                                       
                                                                                 <며느리밥풀꽃>

 ‘며느리밥풀꽃’에 얽힌 얘기를 보자.
옛날 어느 산골 마을에 착한 아들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항상 귀여워했으며, 아들 역시 효성이 지극해 어머니의 명령에는 반드시 복종했다. 아들이 커서 장가들 가게 되었는데 며느리의 효성은 아들보다 극진하였다. 아들은 결혼한 지 며칠 만에 먼 산 너머 마을로 머슴살이를 떠나게 됐다. 그 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구박하고 학대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착한 며느리는 군소리 한마디 없이 구박을 받아들였고, 야단을 치면 용서를 빌고 일만 부지런히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저녁밥을 짓기 위해 쌀을 솥에 넣고 불을 땠다. 밥이 다 익어갈 무렵 뜸이 잘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솥뚜껑을 열고 밥알 몇 개를 씹어 보았다. 방에 있던 시어머니는 솥뚜껑 소리를 듣자마자 이때다 싶어 몽둥이를 들고 부엌으로 달려 나왔다.
어른이 먹기도 전에 먼저 밥을 먹느냐며 다짜고짜 며느리를 때렸다. 쓰러진 며느리는 며칠 동안 앓다가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들은 단숨에 달려와 통곡하며 마을 앞 솔밭 길가에 색시를 묻어주었다. 그 뒤 색시의 무덤가에는 하얀 밥알을 물고 있는 듯한 꽃들이 피었다. 사람들은 착하 며느리가 밥알을 씹어보다 죽었기 때문에 한이 되어 무덤가에 꽃으로 피어난 것이라고 여겼다. 꽃색깔도 며느리의 입술처럼 붉었다. 이때부터 이 꽃을 며느리밥풀꽃이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우리는 꽃이름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꽃이 지구의 생태계에 어떤 혁명적 기여를 해왔는지 제대로 모른다. 미국 인류학자 로렌 아이슬리(1907~1977)는 역작 <광대한 여행>(강)에서 놀라운 사실을 전해준다.

꽃이라는 자연의 선물과 그 꽃이 만들어낸 다양한 종류의 열매가 없었더라면 인류와 조류는 비록 그들이 계속해서 생존해 오기는 했겠지만 오늘날처럼 서로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 형태였던 시조새는 세콰이어 나뭇가지 사이에서 딱정벌레를 잡아먹는 야행성 동물에 불과할 것이다. 가냘프고 가벼운 꽃잎 하나가 지구의 얼굴을 바꾸었고, 오늘날 우리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어느 단 하나의 녹색식물 종이 지구상에서 종의 폭발을 이끌어낼 동물 집단을 만들어가는 엄청난 변화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그것도 외부로부터의 영향이나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고, 만약 우리 인류에게 그 책임이 주어졌다면 이를 견뎌낼 수 있었을까? 이것은 꽃잎을 가진 식물, 또는 최소한 꽃을 달고 있는 식물 말고는 아무도 해낼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저명한 식물학자 윌리엄 C. 버거<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바이북스)에서 한층 전문적인 연구결과를 들려준다.

“인간의 존재를 지구촌의 주인으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이다. 인류가 위대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것도 꽃 덕분이다. 꽃피우는 식물은 인간의 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농경생활을 통해 인간이 지구촌에서 지배력을 거머쥐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원숭이의 진화를 도왔고, 양팔을 교대로 흔들며 이동하는 유원인의 등장을 도와주었다. 꽃을 피우는 식물이 없었다면 인간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월등한 힘을 가질 수 없었다. 25종의 꽃피우는 식물이 우리가 채식으로 얻는 에너지의 90%를 제공하고 있다. 26만종의 꽃피우는 식물 중 선택된 25종이다.”
                                                                        


 코넬대 생물학자 칼 니클라스 코넬대 교수는 “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손을 퍼뜨리고, 피나 뇌가 없어도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며, 근육이 없이도 살아 움직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며 자신의 생각과는 관계없이 세상을 먹여 살리는 생명체이다.”라고 예찬한다.


 올 겨울 동장군의 위세는 유난스러웠다. 겨울이 길고 모질면 봄꽃이 더 화려하게 핀다는 속설이 맞는다면 올봄에 대한 기대가 커질 듯하다.

 이제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김춘수 시인의 명시 ‘꽃’을 떠올려 보자.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모든 꽃은 그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진정한 존재가 인정되고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이름 모를 꽃’으로만 여겨지던 꽃도 새롭게 느껴질 게 틀림없다. 시인의 말처럼 꽃을 만나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마음속에는 아름다운 꽃이 풍성하게 피어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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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해적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면 놀랄 게 틀림없다. 엄청난 주인공은 ‘치카이’라는 중국 여성이다. 이 전설적인 여자 해적은 역사상 어떤 해적보다도 많은 남성들과 선단을 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완벽한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했다는 게 무엇보다 대단하다. 게다가 약탈품들을 끝까지 소유했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살았다.

매춘부였던 치카이는 1801년 악명 높은 해적지도자 칭위와 해적선장의 첩이된다. 정략결혼의 대가로 남편 재산의 절반을 요구해 얻어내고 1807년 남편이 죽자 선단의 전권을 쥐게 된다. 상당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교활한 협상가였고, 조직화에도 천재였다.

3년 동안 그녀는 5만 명 이상의 부하들과 1000척 이상의 해적 선단을 거느렸다. 그녀의 해적 선단은 당시 강대국의 어떤 해군보다도 규모가 컸다. 그녀는 철권을 휘둘러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수중에 넣었다. 지나가는 배와 해변 마을을 습격하고,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국가의 해군들을 격퇴했다.

1809년 그녀는 부하들에게 엄격한 규칙을 정하고 지키게 했다. 만약 이를 어기면 혹독한 형벌이 뒤따랐다. 이를테면 여자 포로를 강간하는 경우 곧바로 사형이었다. 하지만 포로 여자가 자신을 납치한 사람과 성행위에 동의한 경우는 둘 다 죽여 남자는 참수하고 여자는 바다에 던져 버렸다.

1810년 영국, 포르투갈, 청나라가 치카이를 공격하기 위해 연합 함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이 가져올 엄청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청나라 황제는 먼저 그녀에게 사면을 제안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여성의 본능이 있다면, 언젠가는 평화와 후손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게 지금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좋은 제안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정부 관리와 개인적으로 협상한 끝에 그녀와 7000여 명의 해적들은 배와 무기를 버렸지만 탈취한 보물은 계속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그 후로도 30년을 더 살았고, 마지막까지 부유하게 살다가 죽었다. 역사상 어떤 해적도 치카이만큼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녀는 200대의 범선으로 구성된 선단을 거느렸다. 각 범선에는 20~30문의 대포와 800척의 해안 착륙용 배, 강에 띄우는 배도 10여 척이나 있었다. 그녀의 휘하에 있던 5만 명의 해적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전투력 또한 세계 어느 나라 해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다. 당시 미국 전체의 해군은 5만 명 이하였고,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치카이 선단의 절반에 불과했다. (릭 바이어, <서프라이즈 세계사 100>, 한숲출판사)
                                                  

서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해적들 가운데 하나는 2명의 여자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가 그 주인공이다.

악명 높은 해적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해적규약 6조에서도 ‘여성은 승선해서는 안 되며 여자를 데려온 선원은 죽인다’라고 명시했다. 그 밖에 대부분의 해적규약에서도 여성의 승선은 금지되어 있다. 한잉신·뤼팡의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베이직 북스)는 그럼에도 카리브 해 해적선 윌리엄 호에는 남장한 여성이 2명이나 타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1720년 당시 이들에 대한 재판은 일대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앤 보니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변호사의 사생아였다. 영국 출신인 메리 리드는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남장을 하고 자랐다고 한다. 서인도제도로 가는 배의 선원이 된 그녀를 나포한 해적선이 바로 윌리엄 호였다. 그 후 메리 리드도 해적이 되었다.

1720년 말 윌리엄 호가 자메이카 서쪽 끝에 정박한 동안 바넷 선장이 이끄는 전함의 기습을 받아 잡혀 재판을 받게 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더없이 방탕하고 불경한 말을 쏟아내었으며, 못하는 짓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고 재판기록에 적혀 있었다.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둘 다 임신 중이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현실 속의 해적은 대부분 고달픈 신세에 외로움이 찌든 악당이거나 더러 이채로운 여성이지만 작품 속의 해적은 꿈과 모험, 사랑이 버무려진 낭만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소설 <피터팬>의 후크 선장, 동화 <보물섬> 속의 실버 선장, 만화 <원피스> 속의 루피와 그 친구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속의 잭 스패로가 그렇다. 문학, 영화, 민간전승 속의 해적은 이국적인 장소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매는 낭만적이고 용감한 바다 사나이가 주류를 이룬다. ‘낭만적인 해적’은 수많은 할리우드 서사 작품을 통해 영웅으로 포장돼 고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이처럼 현실과 작품 속의 해적 모습이 다른 이유는 뭘까. 자유분방해 보이는 해적들의 ‘삶의 방식’과 ‘일탈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흥미로운 대목의 하나다. 이런 작품이 후세 사람들의 해적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영국 국립해양박물관 책임 큐레이터이자 해양역사학 박사인 데이비드 코딩리의 <낭만적인 무법자 해적>에 펼쳐지는 해적의 실상은 생각보다 덜 낭만적이긴 하지만 매혹적이다. 카리브 해 해적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노무자였거나 전직 유럽 해군이었다. 대부분은 상선에서 선원생활을 시작했다. 사랑스럽거나 호탕한 악당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진짜 해적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잔혹하고 일부는 완전히 미친 사람들도 있었다.

이따금 럼주 한 병, 품속의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비가 내리는 회색지대를 떠나 태양을 따라가는 삶. 산호섬과 코코넛 나무,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먼 바다를 정처 없이 항해하는 그들은 자유와 해방, 규범에서 탈피한 모습이 엿보이긴 한다. 중요한 사실은 보통 사람들이 모험담, 연극, 영화 등에서 보아온 해적의 세계가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개한 고문이나 교수형, 난파되어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할리우드가 오랜 세월 동안 바르바리 해적을 미화한 결과 해적의 폐해에 일반인들이 둔감해진 것이다.

 해적들은 민주적인 집단이었다. 행선지나 선장을 선정할 때 선원들은 찬반의사표시를 해서 다수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최초의 의료보험제도와 같은 것도 있었다. 전설적인 해적 바돌로뮤 로버츠의 선원들이 작성한 내규 조항은 가장 포괄적인 편이다. 이 조항들은 해적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모든 사람은 중대한 일에 대한 투표권을 지니고 있고, 식량이나 술을 포획할 때마다 동일하게 지급받을 권한이 있으며,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돈을 걸고 카드 게임이나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소년이나 여자는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여성을 유혹하거나 여성을 위장시켜 데려온 이가 발견되면, 그는 사형에 처해진다.’ ‘갑판 위에서 어느 누구도 때려서는 안 되며, 다툼은 해안에서 칼과 권총으로 끝내야 한다.’ ‘각자 1000파운드씩 배분받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해적 행위를 그만둘 수 없다. 만약 업무 수행 중에 사지를 잃거나 신체불구자가 될 경우 공공 재산에서 800달러를 받을 수 있으며, 그보다 덜 다친 자는 그에 맞게 배당금을 지급 받는다.’

앵거스 컨스텀의 <해적의 역사>(가람기획)도 새로운 시각에서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게 한다. 그들 나름의 문화를 추구했던 해적들은 계급 제도를 거부한 것은 물론 자유와 평등, 의리를 중시했다. 훗날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해적에 관한 눈길을 끄는 일화 하나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노략질을 일삼던 한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잡혀왔다. 대왕이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해적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폐하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와 같습니다. 단지 저는 배 한 척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부르고, 폐하는 큰 함대를 거느리고 일을 하기 때문에 황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신의 나라>에 나오는 예화다. 그는 여기서 전쟁을 통한 제국의 확장이 해적의 강탈행위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묻는다. 그리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해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예화를 키케로가 쓴 <공화국>에서 빌려 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도 <해적과 제왕>이란 책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며 국제테러전쟁을 비판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기승을 부려 10여 개국 첨단 군함들이 약탈방지 작전을 벌이고 있으니 별 소용이 없다. 어이없게도 소말리아 해적들은 의적 로빈 후드를 자처하며 아이티에 구호성금도 내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적극적인 소탕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해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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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인간관계론>의 저자 데일 카네기가 아프리카 여행에서 막 돌아온 한 부자 여성을 축하하는 파티에 초대받았다. 그 부자 여성이 카네기에게 물었다. “선생께서 뉴욕에서 가장 말을 잘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카네기가 말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부인. 최근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곳으로 여행을 떠나신 이유가 궁금하군요.” 이 여성이 아프리카 여행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자 카네기는 곧바로 다른 질문을 연이어 던졌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셨습니까?” “언제 아프리카로 떠나셨나요?” “언제 돌아오셨습니까?” “어디 어디를 돌아보셨는지요?” 질문이 거듭되자 이 부자 여성은 대답만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20여분간의 대화에서 그녀가 대답한 시간은 95%인 반면 카네기가 이야기한 시간은 5%에 불과했다. 다음날 한 신문에 그 부자 여성의 촌평이 실려 있었다. “카네기는 역시 뉴욕에서 가장 대화를 잘하는 분이었다.”

이 일화를 들으면 자연스레 소크라테스가 먼저 떠오른다. 소크라테스에게 한 철학자가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대화를 잘할 수 있을까요?” 소크라테스는 한마디로 정리한다. “대화를 잘하는 비결은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지요.” 소크라테스가 왜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반대논증을 편 상호대화의 전범(典範)인지 금방 눈치챌 수 있다.

프리랜서 칼럼니스트이자 에세이스트 스티븐 밀러의 <소크라테스가 에미넴에게 말을 걸다-대화의 역사>(부글북스)는 대화의 기술을 가르치려는 게 아니라 대화의 위기에 경종을 울리며 대화의 참 가치를 깨우쳐준다. 대화를 필생의 주제로 잡고 연구해온 밀러가 “대화는 인간 존재와 다른 동물들을, 문명인과 야만인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는 영국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의 말로 책을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밀러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18세기 영국인과 프랑스인들이다. 이 시기의 영국인들이 경제와 군사력은 물론 커피하우스와 클럽에서 대화의 기술도 갈고닦아 나라의 품격을 세계 수준으로 높였다는 게 지은이의 분석이다. 프랑스의 살롱 문화도 마찬가지다.

지은이가 대화를 멸종위기로 만든 주범으로 꼽은 것은 1960년대 이후 미국 사회를 사로잡은 ‘반체제문화’다. 분노와 적의로 가득 찬 ‘상스러운 말투의 제왕’인 미국 백인 래퍼 ‘에미넴’이 대표적이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아이콘으로, 의회에서 상원의원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딕 체니 전 부통령도 주범의 하나다.

여기에다 저자가 ‘대화 회피장비’라고 이름 붙인 휴대폰, MP3, 비디오 게임, 컴퓨터의 범람은 대화의 문을 닫는 또 다른 주범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능력은 대화 회피장비들의 신호음과 노래, 호출, 윙윙거림에 의해 훼손되고 있다.” 게다가 대화의 대용품조차 문자메시지, e메일 등에 밀려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밀러가 내다보는 대화의 미래는 한층 더 우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상현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가 잠깐씩 다른 사람과 교류할 뿐이다. 다른 사람과의 짧은 대화도 주로 무례하고 흥분된 목소리로 이뤄질 것이다.”

작금 대화의 위기는 동서양을 가리지 않는다. 대화의 부재로 가정이 위기에 몰리고 정치권과 사회도 대립과 갈등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남북한 간에도 어느덧 대화하는 법을 잊고 다툼에만 익숙해져 가고 있다. 한동안 <개그콘서트> 프로그램 ‘대화가 필요해’가 인기를 누렸던 것도 대화 부재의 시대를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세밑에 더욱 걱정스러운 건 ‘잃어버린 대화의 품격’은 고사하고 ‘대화의 빈곤’ 자체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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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자체나 작품보다 솔직담백한 자서전 덕분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대표적인 인물이 르네상스 예술가 벤베누토 첼리니(1500~71)다. 미켈란젤로의 제자인 그의 자서전은 우리나라에서도 번역돼 있을 정도다. 기행(奇行)을 일삼은 그의 자서전은 르네상스라는 시대적 상황에 걸맞게 진솔하게 써내려간 문체로 인해 오늘날까지 뛰어난 자서전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첼리니의 자서전을 처음 독일어로 번역한 문호 괴테는 낯 뜨거운 정사 장면들은 아예 빼버렸을 정도다. 이렇듯 자신의 이름에 치명적인 사실도 솔직하고 대담하게 드러낸다. 심지어 적과 경쟁자를 살인한 사실도 숨김없이 기록했다. 괴테는 첼리니야말로 르네상스 정신의 실체를 보여준다고 여겼다. 첼리니는 자서전의 집필 자격을 언급하기도 했다. “상당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라면 누구든 출신에 관계없이 자기 업적을 기록한 자서전을 남겨도 괜찮다. 다만 나이는 적어도 마흔 이상이어야 한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1904~89)도 홍보 전략의 하나로 자서전을 출간하는 놀라움을 보였다. 대부분의 화가가 책을 쓴다는 생각조차 못하던 때다. 글 솜씨도 뛰어난 달리는 책 출판이 예술가의 이름을 선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걸 일찌감치 깨달았다. 그는 자서전이 잘 팔리도록 자위행위, 성체험, 10살 연상이며 유부녀인 갈라와의 운명적인 사랑과 결혼, 독특한 예술관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얘기로 가득 채웠다.

 흔히 세계 5대 자서전으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장 자크 루소의 <참회록>, 괴테의 <시와 진실>, 한스 안데르센의 <내 생애의 이야기>,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한 혁명가의 회상>을 꼽는다. 크로포트킨 자서전에 대해선 덴마크 작가 게오르그 브란데스가 책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류의 큰 발자취를 남긴 대가들의 자서전은 크게 3가지 가운데 하나다. ‘이제까지 나는 길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참다운 길을 발견했다.’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나보다 낫다고 감히 나설 수 있는 자는 누구냐.’ ‘천재는 바로 이런 좋은 환경에서 내면으로부터 서서히 발전해 왔다.’ 첫 번째 사례는 아우구스티누스이고 두 번째는 루소이다. 세 번째는 괴테다. 크로포트킨의 자서전은 3가지 유형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내가 본 자서전 중에서 최고다.”

아우구스티누스와 루소의 자서전은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자서전과 더불어 3대 고백록으로도 일컬어진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명실상부한 최초의 자서전으로도 자리매김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널리 읽힌 자서전은 <벤저민 프랭클린 자서전>일 가능성이 높다. 하나같이 작품성이 탁월하면서도 솔직하게 썼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손꼽히는 자서전이 모두 서양에서 나온 것은 현대적인 의미의 자서전이 동양에선 20세기 이후에야 등장한 영향이 크다. 흥미로운 일화가 이를 잘 말해준다. 마하트마 간디가 1925년 무렵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을 때 한 친구가 중단하라면서 이렇게 충고했다고 한다. “어째서 모험을 시작할 마음을 먹었는가? 자서전을 쓰는 일은 서양에만 있는 관습이라네. 알다시피 동양에서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자서전을 쓴 사람이 없다네.” 중국에서도 1933년 후스(胡適)가 40세 때 쓴 <사십자술(四十自述)>이 사실상 첫 자서전으로 꼽힌다.

자서전처럼 중요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저술도 없지만 자서전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는 저술도 없다. 자서전이 ‘반(反) 자서전’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긴 듯하다. 이청준의 소설 <자서전들 씁시다>에 나오는 대필업자 윤지욱이 의뢰자인 인기 코미디언 피문오에게 대필을 중단하겠다며 보낸 마지막 편지가 무척 시사적이다. ‘과거가 아무리 추하고 부끄럽더라도 솔직히 시인할 정직성과 참회할 용기, 자신의 것을 사랑할 애정이 없으면 자서전 발간을 단념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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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2월 아프리카 남동부의 모잠비크에 강타한 태풍으로 말미암아 50년 만의 최대 홍수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수도 마푸토 북쪽 200㎞쯤 떨어진 초크웨라는 도시에는 교도소까지 물이 밀려와 초비상이 걸렸다. 교도관들은 긴급회의를 열어야 했다. 그대로 있을 경우 자신들은 물론 재소자들까지 수장될 위험에 처했기 때문이다. 교도관들은 고심 끝에 45명의 재소자 전원을 풀어 주기로 결정했다. 홍수가 지나간 뒤에도 살아남아 있으면 다시 돌아오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하지만 살인 혐의자들까지 있었던 터라 이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다.

 초크웨 교도소와 경찰서까지 휩쓴 홍수가 잦아든 열흘 후 기적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 떠났던 재소자들이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6명의 재소자들이 자진해서 복귀했다. 고향으로 가서 가족을 구하고 물에 잠긴 집을 복구한 뒤 돌아온 사람도 있었고, 물에 떠내려가는 사람을 구해 준 이도 있었다. 경찰은 조사 결과, 돌아오지 않은 재소자들은 가족을 구하려다 실종되었거나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당시 전국에서 16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든 위대한 일은 믿음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오구스트 본 시레겔의 말을 뒷받침하는 듯한 사례다. 이미 2500년 전 공자도 국가경영에서 무기와 식량보다 중요한 게 신뢰라고 <논어>에서 역설한 바 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0년대 중반 <트러스트>(한국경제신문사)에서 신뢰사회의 중요성을 학문적으로 갈파했다. 신뢰는 한 나라의 번영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문화적 덕목이며, ‘사회적 자본’을 일구는 밭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자발적 사회성에 근거하며, 자발적 사회성을 확대시키는 것이 바로 신뢰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자발적 사회성은 사회적 자본의 구성요소다. 신뢰는 공동체 내에서 예측 가능한 약속이다. 신뢰가 두텁게 형성된 사회는 불필요한 규제와 법치, 사회적 비용을 줄여준다고 한다. 인간관계를 규정하는 법에 대한 의존이 크면 클수록 신뢰는 작아진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후쿠야마는 독일, 일본, 미국 등을 사회적 자본이 잘 형성된 고신뢰사회 국가로 꼽는다. 그는 저신뢰사회인 한국이 더 훌륭한 문화를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경제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공동체사회에 대한 영역을 넓혀가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신뢰지수는 선진국보다 크게 낮다는 통계가 나라 안팎에서 모두 나와 있다. 2005년 세계가치관조사 결과 ‘낯선 타인을 믿는다’는 한국인은 30.2%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68%인 스웨덴은 물론 52.3%인 중국, 52.1%의 베트남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특히 국회와 정부에 대한 신뢰도는 각각 10.1%, 28.8%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각각 38.3%, 34.6%)을 크게 밑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9월 조사한 한국의 신뢰지수는 10점 만점에 5.21점으로 OECD 29개국 가운데 24위이며, 사회적 자본 수준은 22위로 모두 하위권이다.

정부의 주요 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의 해명보다 네티즌의 글에 더욱 전폭적 지지를 보내는 현실은 신뢰를 잃은 정부와 지도자들 때문임을 통계까지 방증해 주고 있다. 요즘 검찰의 이중 잣대가 수사결과를 곧이곧대로 믿지 못하게 하고 천안함 침몰사고 조사결과에 대한 의혹 증거가 끊이지 않는 것은 저신뢰사회의 단면이다. 후쿠야마가 반 세대 전에 울렸던 경종이 아직 우리 사회에는 들리지 않는 곳이 많은지, 듣고도 무시하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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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도자들의 한시 외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큼 유별나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8년 4월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 때 건배 답사를 하면서 두보(杜甫)의 시 ‘망악(望岳·태산을 바라보며)’을 인용했다.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의 작음을 한 번에 보리라(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무역 불균형, 위안화 절상 등의 현안에서 두 나라의 견해가 다르지만 상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은유한 것이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6월8일 베이징에서 천영우 외교통상부 차관(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소동파(蘇東坡)의 시가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세상에 큰 용기를 지닌 이는/ 돌연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 억울하고 당혹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그가 가슴에 품은 것이 매우 크고/ 그 뜻은 매우 원대하다(天下有大勇者, 卒然臨之而不驚, 無故加之而不怒, 此其所挾持者甚大, 而其志甚遠也).’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성급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실어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는 중국 문화와 문학의 정수다. 중국에선 초등학생들조차 한시를 몇백수씩 외우게 할 정도다.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시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인과 상담하기 전에 한시 몇수를 준비해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에서 시는 ‘문화권력’이나 다름없다.

중국 시의 발전과정에서 <시경>과 <초사(楚辭)>는 빼놓을 수 없는 양대 기둥이다. <시경>이 황허 유역 북방문학의 꽃이라면 <초사>는 양쯔강 유역 남방문학의 대표주자다. 흔히 <시경>이 평민들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인 작품임에 비해 <시경>보다 200년쯤 늦게 태어난 <초사>는 작가의 이상이나 꿈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이고 귀족적인 작품이라고 평한다.
                                                            <소동파의 시를 쓴 서예작품>
김근 서강대 교수는 <한시의 비밀>(소나무)에서 <시경>과 <초사>로 대표되는 한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중국의 역대 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해 시의 속성을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시를 감성 자체로 보지 않고 이치로 이해하도록 백성들에게 길들인 권력이 체제 위협요인인 ‘개성 있는 문화’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이 시를 왜곡한 최초의 원형이 <시경>과 <초사>라고 지목하고 있다. <시경>을 황제나 고위층에 직간하지 않고 비유로 아뢰거나 완곡하게 풍자해 간언한다는 뜻의 주문·휼간(主文·譎諫)으로 바라본다. 한시를 읽을 때 격률의 맛을 느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자구의 의미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시’ ‘시삼백(詩三百)’ ‘3백5편’ 등으로 불리다가 공자의 손을 거쳐 <시경>으로 높여 부르게 된 것부터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사>를 낭만주의나 충간(忠諫), 우국, 의(義)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대 권력이 초사문학의 창시자인 굴원(屈原)을 우국충정의 표상으로 만들었던 것도 체제유지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시경>처럼 <초사>의 대표작인 굴원의 <이소(離騷)>를 왕필(王弼)이 <이소경>으로 부른 것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중국 한시를 곁들인 서화>
김 교수는 중국 사상사에서 지식인들 사이에 진리에 대한 담론이 결여된 것도 시를 통해 가르치려 드는 훈고학의 전통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러고 보면 차기 대권자로 부상한 시진핑 부주석이 최근 6·25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왜곡한 것도 이런 전통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중국에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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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고전 반열에 오른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돌베개·전태일기념사업회)은 ‘노동운동의 불꽃’ 전태일과 경향신문 이야기를 매우 극적으로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시작은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1970년 11월13일 분신자살하기 바로 한 달여 전인 10월7일의 일이다.
서울 소공동 경향신문 본사 앞에서 가슴을 조이며 기다리던 전태일은 방금 나온 석간신문 한 부를 사들고 미친 듯이 평화시장으로 달렸다. ‘인간시장’(평화시장 노동자들은 그곳을 이렇게 슬픈 이름으로 불렀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삼동회(전태일이 만든 평화시장 종업원 친목회) 회원들은 바라던 기사가 난 것을 확인하자 환호성을 터뜨리며 모두 얼싸안았다.
그날 경향신문에는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이라는 큰 제목과 ‘소녀 등 2만여명 혹사’ ‘근로조건 영점…평화시장 피복공장’이라는 부제의 기사가 사회면 머리에 실렸다. 지은이 조영래는 몇 줄의 기사가 어째서 평화시장의 젊은 재단사들을 기쁨에 미쳐 날뛰게 만들었던 것일까 하는 물음표를 던지며 당시 상황을 벅찬 가슴으로 전한다.
삼동회 회원들은 경향신문사로 달려가서 신문 300부를 샀다. 가진 돈이 없어서 우선 회원인 최종인이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어서 신문사 측에 담보로 맡겨놓고 신문 대금은 신문을 팔아서 갚기로 했다. 그렇게 산 신문 300부를 들고 그들은 다시 평화시장으로 달려갔다. 큰 모조지를 잘라서 붉은 글씨로 ‘평화시장 기사특보’라고 쓴 단장을 만들어 어깨에다 두르고 시장 내 이 건물 저 건물을 쫓아다니며 신문을 돌렸다. 삽시간에 다 팔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한 부에 20원 하는 신문 값으로 1000원을 내놓은 노동자도 있었다.





신문이 높은 사람들만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 바로 그 신문에 하찮은 쓰레기 인간들인 자신들의 비참한 현실이 고발이라도 하듯 실려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은 깊은 지층 속을 숨 죽여 흘러가던 용암이 분출구를 만나 지맥을 찢고 드디어 터져 오르는 듯 오랫동안 쌓이고 쌓였던 통곡과 탄식과 울분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순간이었다고 저자는 표현했다.
“우리도 인간인가 보다. 우리 문제도 신문에 날 때가 있나 보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신문 역시 강한 자, 부유한 자의 속성에 비틀거리고 있음을 고발하는 대목에서는 폐부가 찔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평화시장 노동자 문제가 신문 보도로까지 발전했을 때 전태일은 불의한 억압의 손길에 강요되었던 침묵은 반드시 깨질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여기서 전태일은 자신의 죽음이 어떤 성과를 거두리라는 걸 확신하게 되었던 것 같다고 저자는 분석했다.
지은이는 탁월한 인권변호사이자 사회개혁가였다. 한동안 익명으로 남아 있던 저자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공개하고,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전태일의 분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현장으로 달려갔던 장기표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의 비유가 흥미롭다. ‘바울이 없었다면 예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하듯 조영래가 있었기에 전태일의 뜻을 더 힘 있게 펼칠 수 있었다.’ 조영래는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고 신신당부한 전태일의 뜻을 올곧게 실천하는 촉매가 된 것이다.
<전태일 평전>에서는 단순한 투사의 얼굴이 아니라 정으로 뭉쳐진 인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 현대사에서 거대한 획을 그은 전태일 분신과 그 40주년을 맞는 지금, 이 평전은 그의 산화 정신을 새삼 찾아보게 한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전태일이 죽어가면서 남긴 말은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복음으로 전해오고 있다. 사람들은 그래서 그의 죽음을 ‘인간 선언’이라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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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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