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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사상 최고의 해적은 여성--현실과 작품 속의 이미지가 다른 해적 이야기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한 해적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면 놀랄 게 틀림없다. 엄청난 주인공은 ‘치카이’라는 중국 여성이다. 이 전설적인 여자 해적은 역사상 어떤 해적보다도 많은 남성들과 선단을 지휘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녀는 완벽한 무패의 기록으로 은퇴했다는 게 무엇보다 대단하다. 게다가 약탈품들을 끝까지 소유했으며 늙어 죽을 때까지 평화롭게 살았다.

매춘부였던 치카이는 1801년 악명 높은 해적지도자 칭위와 해적선장의 첩이된다. 정략결혼의 대가로 남편 재산의 절반을 요구해 얻어내고 1807년 남편이 죽자 선단의 전권을 쥐게 된다. 상당한 미모를 지녔던 그녀는 교활한 협상가였고, 조직화에도 천재였다.

3년 동안 그녀는 5만 명 이상의 부하들과 1000척 이상의 해적 선단을 거느렸다. 그녀의 해적 선단은 당시 강대국의 어떤 해군보다도 규모가 컸다. 그녀는 철권을 휘둘러 남중국해 거의 전역을 수중에 넣었다. 지나가는 배와 해변 마을을 습격하고, 자신을 방해하는 모든 국가의 해군들을 격퇴했다.

1809년 그녀는 부하들에게 엄격한 규칙을 정하고 지키게 했다. 만약 이를 어기면 혹독한 형벌이 뒤따랐다. 이를테면 여자 포로를 강간하는 경우 곧바로 사형이었다. 하지만 포로 여자가 자신을 납치한 사람과 성행위에 동의한 경우는 둘 다 죽여 남자는 참수하고 여자는 바다에 던져 버렸다.

1810년 영국, 포르투갈, 청나라가 치카이를 공격하기 위해 연합 함대를 구성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공격이 가져올 엄청난 인명피해를 줄이기 위해 청나라 황제는 먼저 그녀에게 사면을 제안했다. “당신의 마음속에 여성의 본능이 있다면, 언젠가는 평화와 후손을 바라게 될 것이다. 그게 지금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녀는 아이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지만 좋은 제안이라는 것을 금세 알 수 있었다. 정부 관리와 개인적으로 협상한 끝에 그녀와 7000여 명의 해적들은 배와 무기를 버렸지만 탈취한 보물은 계속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그 후로도 30년을 더 살았고, 마지막까지 부유하게 살다가 죽었다. 역사상 어떤 해적도 치카이만큼 완벽한 삶을 살 수는 없었다.

그녀는 200대의 범선으로 구성된 선단을 거느렸다. 각 범선에는 20~30문의 대포와 800척의 해안 착륙용 배, 강에 띄우는 배도 10여 척이나 있었다. 그녀의 휘하에 있던 5만 명의 해적은 실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전투력 또한 세계 어느 나라 해군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월등했다. 당시 미국 전체의 해군은 5만 명 이하였고,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르마다’는 치카이 선단의 절반에 불과했다. (릭 바이어, <서프라이즈 세계사 100>, 한숲출판사)
                                                  

서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해적들 가운데 하나는 2명의 여자다. 앤 보니와 메리 리드가 그 주인공이다.

악명 높은 해적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해적규약 6조에서도 ‘여성은 승선해서는 안 되며 여자를 데려온 선원은 죽인다’라고 명시했다. 그 밖에 대부분의 해적규약에서도 여성의 승선은 금지되어 있다. 한잉신·뤼팡의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베이직 북스)는 그럼에도 카리브 해 해적선 윌리엄 호에는 남장한 여성이 2명이나 타고 있었다고 전한다. 이 때문에 1720년 당시 이들에 대한 재판은 일대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앤 보니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으로 변호사의 사생아였다. 영국 출신인 메리 리드는 재산을 상속받기 위해 남장을 하고 자랐다고 한다. 서인도제도로 가는 배의 선원이 된 그녀를 나포한 해적선이 바로 윌리엄 호였다. 그 후 메리 리드도 해적이 되었다.

1720년 말 윌리엄 호가 자메이카 서쪽 끝에 정박한 동안 바넷 선장이 이끄는 전함의 기습을 받아 잡혀 재판을 받게 됐다. 이들은 법정에서 더없이 방탕하고 불경한 말을 쏟아내었으며, 못하는 짓이 없을 것 같아 보였다고 재판기록에 적혀 있었다.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둘 다 임신 중이어서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현실 속의 해적은 대부분 고달픈 신세에 외로움이 찌든 악당이거나 더러 이채로운 여성이지만 작품 속의 해적은 꿈과 모험, 사랑이 버무려진 낭만적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소설 <피터팬>의 후크 선장, 동화 <보물섬> 속의 실버 선장, 만화 <원피스> 속의 루피와 그 친구들,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 속의 잭 스패로가 그렇다. 문학, 영화, 민간전승 속의 해적은 이국적인 장소에 숨겨진 보물을 찾아 헤매는 낭만적이고 용감한 바다 사나이가 주류를 이룬다. ‘낭만적인 해적’은 수많은 할리우드 서사 작품을 통해 영웅으로 포장돼 고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이처럼 현실과 작품 속의 해적 모습이 다른 이유는 뭘까. 자유분방해 보이는 해적들의 ‘삶의 방식’과 ‘일탈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흥미로운 대목의 하나다. 이런 작품이 후세 사람들의 해적에 대한 이미지를 결정하게 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영국 국립해양박물관 책임 큐레이터이자 해양역사학 박사인 데이비드 코딩리의 <낭만적인 무법자 해적>에 펼쳐지는 해적의 실상은 생각보다 덜 낭만적이긴 하지만 매혹적이다. 카리브 해 해적들의 대부분은 가난한 노무자였거나 전직 유럽 해군이었다. 대부분은 상선에서 선원생활을 시작했다. 사랑스럽거나 호탕한 악당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진짜 해적들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버림받아 잔혹하고 일부는 완전히 미친 사람들도 있었다.

이따금 럼주 한 병, 품속의 사랑하는 여인, 그리고 비가 내리는 회색지대를 떠나 태양을 따라가는 삶. 산호섬과 코코넛 나무, 모래사장을 배경으로 먼 바다를 정처 없이 항해하는 그들은 자유와 해방, 규범에서 탈피한 모습이 엿보이긴 한다. 중요한 사실은 보통 사람들이 모험담, 연극, 영화 등에서 보아온 해적의 세계가 진짜라고 믿고 싶어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미개한 고문이나 교수형, 난파되어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 따위는 잊어버리고 싶어 한다. 할리우드가 오랜 세월 동안 바르바리 해적을 미화한 결과 해적의 폐해에 일반인들이 둔감해진 것이다.

 해적들은 민주적인 집단이었다. 행선지나 선장을 선정할 때 선원들은 찬반의사표시를 해서 다수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최초의 의료보험제도와 같은 것도 있었다. 전설적인 해적 바돌로뮤 로버츠의 선원들이 작성한 내규 조항은 가장 포괄적인 편이다. 이 조항들은 해적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모든 사람은 중대한 일에 대한 투표권을 지니고 있고, 식량이나 술을 포획할 때마다 동일하게 지급받을 권한이 있으며, 부족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돈을 걸고 카드 게임이나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소년이나 여자는 허락되지 않는다. 만약 여성을 유혹하거나 여성을 위장시켜 데려온 이가 발견되면, 그는 사형에 처해진다.’ ‘갑판 위에서 어느 누구도 때려서는 안 되며, 다툼은 해안에서 칼과 권총으로 끝내야 한다.’ ‘각자 1000파운드씩 배분받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해적 행위를 그만둘 수 없다. 만약 업무 수행 중에 사지를 잃거나 신체불구자가 될 경우 공공 재산에서 800달러를 받을 수 있으며, 그보다 덜 다친 자는 그에 맞게 배당금을 지급 받는다.’

앵거스 컨스텀의 <해적의 역사>(가람기획)도 새로운 시각에서 인류의 역사를 더듬어 보게 한다. 그들 나름의 문화를 추구했던 해적들은 계급 제도를 거부한 것은 물론 자유와 평등, 의리를 중시했다. 훗날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해적에 관한 눈길을 끄는 일화 하나는 또 다른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노략질을 일삼던 한 해적이 알렉산더 대왕에게 잡혀왔다. 대왕이 꾸짖었다. “너는 도대체 왜 사람들을 괴롭히느냐?” 해적이 거침없이 대꾸했다. “폐하가 사람들을 괴롭히는 이유와 같습니다. 단지 저는 배 한 척으로 일을 하기 때문에 해적이라 부르고, 폐하는 큰 함대를 거느리고 일을 하기 때문에 황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얘기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쓴 <신의 나라>에 나오는 예화다. 그는 여기서 전쟁을 통한 제국의 확장이 해적의 강탈행위와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묻는다. 그리고 명쾌하게 결론을 내린다. 정의가 없는 국가는 해적과 근본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예화를 키케로가 쓴 <공화국>에서 빌려 왔다. 미국의 대표적인 비판적 지식인 노엄 촘스키도 <해적과 제왕>이란 책에 이 이야기를 예로 들며 국제테러전쟁을 비판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이 기승을 부려 10여 개국 첨단 군함들이 약탈방지 작전을 벌이고 있으니 별 소용이 없다. 어이없게도 소말리아 해적들은 의적 로빈 후드를 자처하며 아이티에 구호성금도 내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적극적인 소탕 말고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하지만 <단숨에 읽는 해적의 역사>가 마지막으로 던지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해적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