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도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숨 쉬고 있다. 나무에는 사람들의 애환도 숱하게 담겼다. 수백 년, 운이 좋으면 천년도 넘게 사는 나무는 스스로 설화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우리나무의 세계 1,2>(김영사)가 단순히 한국의 나무에 관한 생태학적 지식뿐만 아니라 탁월한 인문서가 되는 것도 바로 감흥 깊은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다. 임학자로 출발했던 지은이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나무 문화재 연구의 한국 최고 권위자로 우뚝 섰기에 이같은 역작이 탄생한 것이다.  
                                                 

 

 


저자는 1000종이 넘는 한국나무 가운데 242종을 골라 ‘꽃이 아름다운 나무’ ‘과일이 열리는 나무’ ‘약으로 쓰이는 나무’ ‘정원수로 가꾸는 나무’ ‘가로수로 심는 나무’ 등 쓰임새별로 나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은이가 적지 않은 발품을 팔아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4대 역사서를 비롯해 고전소설, 선비들의 문집, 시가집, 근ㆍ현대 문학작품 등 나무와 관련된 각종 자료를 찾아내 꼼꼼히 정리하고 분석했다고 한다.


매화에 대한 시 91수를 모아 <매화시첩>으로 묶을 정도로 매화 사랑이 각별했던 퇴계 이황이 단양군수로 재직할 때 두향이란 기생과 매화로 맺어진 사랑 이야기를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퇴계에게 반해 전전긍긍하던 두향은 퇴계의 각별한 매화 사랑을 알고 희면서도 푸른빛이 도는 진귀한 매화를 구해 그에게 선물했다. 매화에 감복한 퇴계는 결국 그녀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 후 퇴계는 그녀가 선물한 매화를 도산서원에 옮겨 심었다. 퇴계의 마지막 유언도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것이었다. 한국 1000원권 지폐에도 퇴계의 얼굴과 함께 도산서원의 매화나무가 담겨 있다.
                                                            


동백나무에 얽힌 얘기들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동백꽃은 예부터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명사다. 멀리는 고려 말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서부터 가까이는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구’에 이르기까지 늘 여성과 함께 등장하곤 한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했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선운사 동구> 

선운사 동백꽃은 4~5월이 제철이다.

동양의 꽃인 동백은 서양으로 건너가서도 비련의 여인상을 그대로 이어간다. 동백은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가 1848년 발표한 소설 <춘희>의 주인공이 되었다. <동백꽃 부인>이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일본에서 <춘희>(椿姬)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나라에서도 여전히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녀인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동백꽃을 매개로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과 순수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비극으로 끝나는 비련의 스토리를 지녔다. 이 소설은 5년 후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돼 세계적인 선풍을 불러온다.
                                                                            


도종환 시인의 시 ‘목백일홍’으로 거듭난 배롱나무도 흥미롭다.

“한 꽃이 백일을 아름답게 피어 있는 게 아니다/ 수없는 꽃이 지면서 다시 피고/ 떨어지면서 또 새 꽃봉오릴 피워 올려/ 목백일홍나무는 환한 것이다/ 꽃은 져도 나무는 여전히 꽃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제 안에 소리 없이 꽃잎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 온몸 다해 다시 꽃을 피워내며/ 아무도 모르게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다.”

시인은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환하게 피어나는 배롱나무의 꽃을 이렇게 맛깔스러운 시로 승화시켰다. 시인의 관찰력은 정확하다. 꽃이 오래 핀다고 해 백일홍나무로 불렸지만 꽃 하나가 오래 피는 건 아니다. 꽃 하나하나가 이어 달리기를 하듯 피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를 100일 동안 피는 꽃으로 착각했다.

                                                            

 
농촌 풍경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마을 어귀 아름드리 고목의 대부분은 느티나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는 고목 1만3000여 그루 가운데 느티나무가 7100여 그루로 가장 많다. 이 때문에 느티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끝이 없다. 고려 말 문신 최자가 쓴 <보한집>에 나오는 전북 임실 오수읍의 의견(義犬)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김개인이라는 선비가 잔디밭에서 술에 취해 잠든 사이 들불에 휩싸일 위기에 처하자 개가 연못을 들락거리며 몸을 물에 적셔 불길을 막고 숨졌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감읍한 주인이 개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두었더니 그 자리에 싹이 트고 자라 큰 느티나무가 됐다고 한다.


등나무와 팽나무의 전설도 애절하다. 신라 때 마을에 두 자매가 살고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좋아하던 옆집 청년이 전쟁터에 나갔는데, 어느 날 청년의 전사 소식을 전해들은 자매는 함께 마을 앞 연못에 몸을 던져버렸다. 그 후 연못가에는 등나무 두 그루가 자리가 시작했다. 얼마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 청년은 훌륭한 화랑이 되어 마을로 돌아왔다. 그러나 두 자매의 사연을 듣고 괴로워하던 그 청년도 결국 연못에 뛰어들어 버렸다. 다음해가 되자 두 그루의 등나무 옆에 한 그루의 팽나무가 갑자기 쑥쑥 자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굵은 팽나무에 등나무 덩굴이 걸쳐 자라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등나무의 사랑이 너무 진한 탓인지, 광합성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팽나무는 예나 지금이나 비실비실한다.


나도밤나무에 서린 사연은 빙그레 웃음 짓게 한다. 옛날 깊은 산골에 가난한 부부가 힘겹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몇 월 며칠까지 밤나무 1천 그루를 심지 않으면 호랑이한테 물려 가는 화를 당할 것이라는 계시를 내린다. 그날부터 부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주위에 자라는 밤나무는 모조리 캐다가 열심히 심었다. 그러나 999그루를 심고 마지막 한 그루는 아무리 해도 채울 수가 없었다. 해가 지고 산신령이 말한 운명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 도무지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이런 이야기에 조금은 엉뚱하게, 율곡 선생이 밤나무 지팡이 하나를 들고 나타난다. 밤나무골이라는 그의 호 율곡(栗谷) 덕분에 밤나무와 관련돼 여러 전설마다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선생이 가까이 있는 한 나무를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네가 밤나무를 대신하라”고 이르자, 이 나무는 냉큼 “나도! 밤나무요!” 하고 나선다.



해마다 봄철이면 온갖 수난을 당하는 게 고로쇠나무다. 수액이 몸에 좋다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단맛을 내는 성분인 자당, 과당, 포도당이 들어 있고 칼슘과 마그네슘 등 몇 가지 미네랄이 있는 정도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저명한 화가 김홍도, 신윤복, 정선의 작품 소재가 된 나무, 국민 시인으로 불리는 김소월, 유치환 시의 주인공이 된 나무 이야기도 나온다. 700여장의 나무 사진과 50여장의 옛 그림 같은 시각 자료도 풍성하다. 지은이의 앞선 저작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나무, 살아서 천년을 말하다> <궁궐의 우리나무> <우리문화재 나무 답사기> 등을 함께 읽으면 한층 유익할 것 같다.


식목일이 낀 4월이 되자 사연 많은 우리네 나무들이 문득 생각난다.

저작자 표시
신고

Posted by 김학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