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자들의 한시 외교는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만큼 유별나다.
 
후진타오 주석은 2008년 4월20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오찬 때 건배 답사를 하면서 두보(杜甫)의 시 ‘망악(望岳·태산을 바라보며)’을 인용했다. ‘반드시 산 정상에 올라, 뭇 산의 작음을 한 번에 보리라(會當凌絶頂, 一覽衆山小).’ 무역 불균형, 위안화 절상 등의 현안에서 두 나라의 견해가 다르지만 상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은유한 것이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외교부 부부장은 지난 6월8일 베이징에서 천영우 외교통상부 차관(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에게 소동파(蘇東坡)의 시가 담긴 액자를 선물했다. ‘세상에 큰 용기를 지닌 이는/ 돌연 일을 당해도 놀라지 않으며/ 억울하고 당혹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니/ 그가 가슴에 품은 것이 매우 크고/ 그 뜻은 매우 원대하다(天下有大勇者, 卒然臨之而不驚, 無故加之而不怒, 此其所挾持者甚大, 而其志甚遠也).’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성급하게 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중을 실어 보낸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시는 중국 문화와 문학의 정수다. 중국에선 초등학생들조차 한시를 몇백수씩 외우게 할 정도다. 중국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시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인들이 중국인과 상담하기 전에 한시 몇수를 준비해 감동을 주려고 애쓰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만큼 중국에서 시는 ‘문화권력’이나 다름없다.

중국 시의 발전과정에서 <시경>과 <초사(楚辭)>는 빼놓을 수 없는 양대 기둥이다. <시경>이 황허 유역 북방문학의 꽃이라면 <초사>는 양쯔강 유역 남방문학의 대표주자다. 흔히 <시경>이 평민들의 일상생활을 바탕으로 한 현실주의적인 작품임에 비해 <시경>보다 200년쯤 늦게 태어난 <초사>는 작가의 이상이나 꿈을 바탕으로 한 낭만적이고 귀족적인 작품이라고 평한다.
                                                            <소동파의 시를 쓴 서예작품>
김근 서강대 교수는 <한시의 비밀>(소나무)에서 <시경>과 <초사>로 대표되는 한시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 놓는다. 그는 중국의 역대 권력이 체제유지를 위해 시의 속성을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시를 감성 자체로 보지 않고 이치로 이해하도록 백성들에게 길들인 권력이 체제 위협요인인 ‘개성 있는 문화’를 용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권력이 시를 왜곡한 최초의 원형이 <시경>과 <초사>라고 지목하고 있다. <시경>을 황제나 고위층에 직간하지 않고 비유로 아뢰거나 완곡하게 풍자해 간언한다는 뜻의 주문·휼간(主文·譎諫)으로 바라본다. 한시를 읽을 때 격률의 맛을 느끼기보다 무의식적으로 자구의 의미에 집착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시’ ‘시삼백(詩三百)’ ‘3백5편’ 등으로 불리다가 공자의 손을 거쳐 <시경>으로 높여 부르게 된 것부터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초사>를 낭만주의나 충간(忠諫), 우국, 의(義)의 이데올로기로 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대 권력이 초사문학의 창시자인 굴원(屈原)을 우국충정의 표상으로 만들었던 것도 체제유지가 목적이었다고 한다. <시경>처럼 <초사>의 대표작인 굴원의 <이소(離騷)>를 왕필(王弼)이 <이소경>으로 부른 것도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본다.
     
                                                            <중국 한시를 곁들인 서화>
김 교수는 중국 사상사에서 지식인들 사이에 진리에 대한 담론이 결여된 것도 시를 통해 가르치려 드는 훈고학의 전통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그러고 보면 차기 대권자로 부상한 시진핑 부주석이 최근 6·25 전쟁을 정의로운 전쟁으로 왜곡한 것도 이런 전통의 영향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중국에는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지 못한다’는 속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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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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