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극우가 주류 보수정당을 수렁으로 몰아넣는다. 내란사태 책임을 극복하고 합리적 보수정당으로 거듭 나야할 직전 집권당이 다시 ‘아스팔트 극우’ 세력에 포획됐다. ‘아스팔트 극우’를 대표하는 유튜버들을 등에 업고 선출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갓 출범한 이재명정권 타도를 내걸었다.
취임사를 통해 “윤석열 전 대통령 재입당을 허용하고 면회를 가겠다”고도 했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사수를 위해 싸우겠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민주공화국의 가장 중요한 두 가치를 결정적으로 파괴해 탄핵당하고 구속된 사람이 윤 전 대통령 아닌가. 극우논리는 이처럼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
김민수 국민의힘 신임 최고위원은 한술 더 뜬다. 윤 전 대통령 접견 신청을 이미 해놨다고 밝혔다. 김 최고위원은 윤석열의 계엄을 적극 옹호하고 탄핵을 반대한 초강경파다. 윤석열 탄핵이 역사적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주장하다가 방송 진행자의 제지를 받을 정도였다.
국민의힘의 새 지도부가 ‘극우’ 딱지에 도끼눈을 뜨겠지만 자초한 일이다. ‘아스팔트 극우’에 사로잡힌 보수 주류정당은 나라나 당의 미래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오로지 눈앞의 권력뿐이다. 극우세력은 국익이 걸린 외교문제에도 국제연대로 매국이나 다름없는 행위를 일삼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주 한미 정상회담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소셜미디어에 황당한 글을 올린 것도 한국의 극우세력과 연관성이 있다.
“한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숙청이나 혁명처럼 보인다. 그렇게는 함께 사업을 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해를 풀었다고 말해 다행이지만, 윤석열을 줄곧 옹호해 온 국민의힘 중진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혼쭐나 정상회담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듯한 메시지를 냈다. “그간 이재명 민주당 정권이 보여준 독재적 국정운영, 내란 몰이, 사법 시스템 파괴, 야당에 대한 정치보복, 언론에 대한 전방위적 장악이 결국 미국의 눈에 숙청과 혁명처럼 비치고 있는 것 아니겠느냐.”
끊임없이 ‘윤 어게인’을 외치고 장동혁 대표의 후원자로 알려진 유튜버는 더 가관이다. 윤석열에 대한 인권유린 실태를 알리겠다며 미국 워싱턴으로 갔다. 한국의 부정선거를 주장해 온 모스 탄 미국 리버티대 교수 같은 이는 한국 극우세력의 국제연대자다. 모스 탄의 방한 행적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내 극우세력과 연계 정황은 뚜렷하다.
극우정당으로 한층 더 변한 제1야당에 대응하는 집권당 대표는 어떤 대화도 거부하는 무시 전략을 편다. 제1야당의 기세를 꺾어놓고 독주하겠다는 자세다. ‘내란정당’이라는 게 이유다. 여기에도 강성팬덤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협치나 온건 전략보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자기 정치적 입지를 굳건하게 해준다고 보기 때문이리라.
국민의힘이 개혁적이고 합리적인 지도부로 바뀌지 않는 게 내년 지방선거와 다음 총선, 더 나아가 대선까지 더불어민주당에 유리하리라는 계산도 깔려 있는 듯 하다. 중도층이 극우상태인 국민의힘으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잠금(고착)효과를 노리는 목적임이 분명하다.
합리적인 보수 정치인들이 이탈해 신당을 창당하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과거 사례를 보면 하나같이 실패 경험으로만 점철됐기 때문이다. 거대 야당이 극우와 합리적인 세력으로 분당하면 더 나은 정치환경이 조성되는 효과도 얻는다. 극우 지지층은 유권자의 20% 안팎으로 추산된다. ‘계엄 지지 여부’를 기준으로 삼은 통계다. 지난 주말 발표된 가장 최근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23%다.(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은 44%)
국민의 눈에는 집권당의 강경노선도 위험부담이 커 보인다. 중도층의 민심은 오만한 집권당에는 언제나 선거에서 철퇴를 내려왔다. 민주당이 과격하게 밀어붙이는 개혁법안과 정책은 극우정치에 동력을 실어주기 십상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와 대통령은 입장이 다르다”며 극우 야당과 대화하겠다는 뜻을 나타내자, 정부와 여당의 이중플레이를 의심하기도 한다. 이른바 ‘굿캅’‘배드캅’식 역할 분담이라는 의미다.
그렇더라도 국민의힘이 단기적으로 극우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울 개연성은 높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하면 극우성향 지도부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될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나쁜 정치가 제풀에 지치도록 하는 게 최선이지만 합리적 제1야당이 없는 나라가 걱정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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