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윤석열 현 검찰총장은 운명처럼 맺어진다. 두 사람은 서울대 법대 선후배인데다 오랫동안 검찰 특수통의 상하관계로 일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연’으로 표현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윤 총장이 박근혜 정권에서 핍박을 받은 것은 채 전 총장과의 이런 인연 때문이었다. 역설적이지만 윤 총장의 현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과 기무사 등의 조직적인 댓글공작 도움을 받아 대선에서 이겼다는 의혹을 받았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윤석열 여주지청장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수사팀은 경찰 수사가 지지부진하자 사건을 송치 받아 속전속결의 자세로 임했다.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 무소불위의 국정원을 압수수색하는 등 거침이 없었다.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박근혜 정부의 정통성이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정권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것은 ‘역린(逆鱗)’을 건드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역린을 건드리면 용은 그 사람을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만다는 전설이 왕조시대엔 무시무시하게 여겨졌다.

                                                                             


 그러자 국정원은 검찰 수사를 막기 위한 조직적인 공작에 나섰다. 여당인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에서는 특별수사팀 소속 검사의 과거 전력을 문제 삼아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동의를 얻어 이명박 대통령이 지명한 채 총장이지만, 어느 순간 전 정권의 인물로 매도됐다.

 

  한 보수신문의 보도로 느닷없이 채 총장의 혼외자녀 의혹이 불거졌다. 채 총장은 황교안 법무장관의 감찰 압박 카드에 밀려 끝내 사표를 냈다. 특별수사팀도 보호막이 사라지자 거센 압력에 시달렸다. 윤석열 팀장은 상부 보고 없이 수사를 진행했다는 이유로 수사팀에서 배제됐다. 박근혜 정부 내내 좌천 인사가 됐음은 물론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 총장을 운명공동체로 보던 여권 핵심부가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관련 수사로 불현듯 긴장관계로 돌아선 것도 ‘역린’을 떠올리게 한다.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 검찰이 수사권을 들이댄 사상 초유의 사례여서다. 문재인 정부 들어 윤석열이 수사의 핵심인 서울지검장으로 발탁된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다. 실제로 윤 지검장은 적폐청산의 선봉장 역할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법연수원 선배 기수를 제치고 현 정부 두 번째 검찰총장으로 임명될 당시 검찰 개혁의 적임자로 환영받을 때도 수순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윤 총장 지명 당시 일부에서 ‘양날의 검’이라고 우려한 일이 ‘조국 정국’에서 현실이 되자 분위기가 표변했다. 정부와 여당을 가릴 것 없이 격앙된 목소리로 가득하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가장 나쁜 검찰의 적폐가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낙연 국무총리도 “자기들이 정치를 하겠다는 식으로 덤비는 것은 검찰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라며 매우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심지어 청와대 선임행정관까지 “미쳐 날뛰는 늑대마냥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물어뜯겠다고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다”고 나섰다.


 “대통령이 윤석열 총장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여당의원의 노골적인 언술은 눈을 번쩍 뜨게 한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무상 기밀 누설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에 40만명 이상이 참여한 것도 이례적이다. ‘채동욱 찍어내기’와 흡사한 윤석열 축출 주장과 억측도 성급하게 나온다. 박근혜 정권이 시끄럽지 않게 공작적인 수법을 동원했던 것과 다르다면 다르다. 채 총장 당시에도 핵심 피의자인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수사팀 의견을 황교안 법무장관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조 후보자의 장관 임명이 어떻게 귀결되든 윤 총장 취임 두 달도 되지 않아 정권과 검찰의 밀월은 물건너 간 듯하다.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윤 총장에게 당부한 일을 상기하면, 당장 특단의 조치가 뒤따르기 쉽지 않다. 그렇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체제의 예상 밖 검찰 정치와 복잡하게 꼬인 검찰개혁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 문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에게 윤석열 검찰 해법 찾기라는 돌발적인 시험이 또 다른 난제로 추가된 것만은 틀림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관행으로 여겨온 반칙과 특권이 청년들의 꿈을 포기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2019년 6월20일 반부패정책협의회) “촛불 민심이 명한대로 국정농단, 반칙과 특권이라는 적폐 체제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 공정하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길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2019년 5월9일 취임2주년 KBS 특집 대담)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반드시 끝내야 합니다.”(2019년 4월9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앞둔 국무회의) “오늘부터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2017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


 이처럼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특권과 반칙 없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끊임없이 다짐했다. 그 실천의 선봉장은 ‘문재인 아바타’로 불리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진보의 아이콘’이기도 한 조 전 수석이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상황이 홀변했다.


 조 후보자의 인사청문요청 사유서에는 ‘특권과 반칙 없는 사법정의 실현을 위해 법학자로서 소임을 다했다’고 적혀 있다. ‘공정’ 같은 따뜻한 낱말도 눈에 띈다. 실제로 그는 정의와 공정성을 오랫동안 설파해 개혁과 적폐청산의 상징적 인물이 됐다. 무엇보다 특권의식과 불공정이 용이 되지 못한 개천의 개구리·붕어·가재 같은 젊은이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가를 열변해 우상으로 떠올랐다.

                                                                     


 그의 언행과 쌓아온 이미지가 부메랑이 된 건 개인을 넘어서 국가적 비극이다. 각종 개인 의혹과 더불어 딸의 명문대학 입학과정, 대학원 장학금 특혜 의혹이 촛불 혁명 때의 최순실과 정유라까지 소환할 정도니 말이다.


 외고 2학년생이던 딸이 같은 학교 학부모가 교수로 있던 단국대 의대 연구소에서 2주간 인턴생활을 한 뒤 병리학 논문의 제1저자로 등재된 건 누가 봐도 명백한 반칙이자 특혜다. 고3 학생이 학기 중에 서울도 아닌 충남의 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에서 연구실 인턴활동을 하고 그해 도쿄 국제조류학회 공동 발표자로 추천된 것도 상식을 초월한다.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배려하는 장학금을 2학기 연속해서 받은 것과,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옮겨 낙제 성적임에도 6학기 내리 1200만원의 격려장학금을 수령한 것도 특혜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조 후보자는 당초 명백한 가짜뉴스라고 했다가 어제(25일) “아이 문제에 불철저하고 안이한 아버지였다”고 사과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뿔난 20대 젊은이들은 ‘이게 특권과 반칙 아니면 뭐냐’고 따진다. ‘촛불정부’의 탄생을 위해 촛불을 들었던 이들이 촛불정부를 성토하는 촛불을 든 것이 무엇보다 아프게 다가온다.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사실과 다른 의혹이 부풀려지고 있다”며 청문회 개최를 촉구한 것은 정치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보다 조 후보자의 위상 추락을 안타까워하며 옹호하는 사람들의 행태가 외려 화를 더 돋운다는 비판이 많다. 대학총장과 장관을 지낸 한 진보교육감은 2주간 인턴생활을 한 고교생이 논문 1저자가 된 것이 뭐가 문제냐고 되묻는다.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청와대 1부속비서관은 장관 후보자가 아닌 딸의 사생활을 파헤칠 권리는 국회의원도, 언론도 없다고 일갈했다. 한 여당 국회의원은 조 후보자가 아닌 입시제도와 교육, 직업 귀천, 사회 현실의 문제라고 돌라댄다. 진보 인사들이 개인의 잘못이나 비극을 이따금 사회 문제로 치환하는 습성과 흡사해 놀랍다. 대통령이 지명했으니 무조건 지지한다는 유명 작가는 그나마 애교에 가깝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민초들은 조 후보자의 불법이나 위법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와 가족에게도 기회는 평등한가, 과정은 공정한가, 결과는 정의로운가를 묻는다. 그래서 ‘공정과 정의를 대변할 수 있는가’ ‘사법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도덕성을 지녔는가’를 묻는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물해 청와대 비서실마다 걸린 액자 ‘춘풍추상(春風秋霜·남에겐 봄바람 같이 나에겐 가을서리 같이)’처럼 하라는 것도 아니다. 남에게 하는 만큼 내편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충분하다. 여론은 조 후보자를 장관으로 임명하느냐 마느냐의 차원을 넘어 특권과 반칙만은 없애겠다는 촛불정부의 정당성을 묻는 것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불가능한 음식으로 생각되던 ‘임파서블 버거’ 바람이 돌풍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쇠고기 맛과 같게는 낼 수 없을 것으로 여겼던 식물성 고기가 대중의 입맛 시험에 너끈히 통과해 글로벌 체인업체에서까지 본격 판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 햄버거 체인점 버거킹은 식물성 패티로 만든 ‘임파서블 와퍼’ 판매를 지난 8일부터 미 전역 7000개 매장으로 확대했다. 이 회사는 지난 3월 세인트루이스에서 쇠고기 와퍼를 주문한 손님들에게 몰래 임파서블 와퍼를 제공하는 실험을 했다. 손님들은 진짜 쇠고기 버거를 먹은 것으로 감쪽같이 속았다.


 눈치를 보던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업체 맥도날드도 내년 초부터 ‘임파서블 버거’를 출시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의 2만여 햄버거 식당들은 이미 임파서블 버거를 메뉴에 올려놓았다. 20~30대인 밀레니얼 세대가 이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임파서블 버거’는 지구 온난화와 환경 보호의 화급함을 절감해온 패트릭 브라운 전 스탠퍼드대 생화학 교수의 집념어린 소산이다. 축산업은 기후와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꼽힌다.

                                                                             


 채식주의자이기도 한 브라운 교수는 2009년 연구년(안식년)을 맞아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도전에 나섰다. 출시된 지 30년이 넘은 식물성 콩고기가 동물 고기의 풍미를 결코 흉내 낼 수 없다는 한계를 극복해 보겠다는 각오가 당찼다. 1년 반 동안 쇠고기를 쓰지 않고도 쇠고기 맛을 재현하는 연구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그는 혈액 헤모글로빈 속의 ‘헴(heme)’이라는 분자가 고기 맛의 핵심이란 사실을 발견했다. 시카고대에서 DNA를 전공한 브라운은 1988년부터 스탠퍼드 의대에서 관련 연구를 이어오던 터였다. 그는 곧이어 분자화학을 활용해 콩에서 ‘헴’을 추출하고 아몬드와 밀 등을 첨가해 실제 고기처럼 붉은 육즙이 흐르고 맛과 질감, 영양분도 같은 버거를 구현하는 비법 개발에 성공했다.


 막상 문제는 상용화였다. 관련 학회에서도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러자 브라운 교수는 2011년 대학에 사표를 내고 900만 달러를 투자받아 ‘임파서블 푸즈’ 회사를 직접 설립하는 결단을 내렸다. 그 후 5년 간 추가 연구와 시제품 생산에 온힘을 쏟았다. 이윽고 효모를 이용한 발효기술로 헴 분자를 대량생산해 식물성 햄버거 패티를 거의 무제한 공급할 수 있는 기술을 발명했다. 브라운의 꿈에 공감한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더스틴 모스코비치, 구글벤처스 같은 저명 기업인과 기업이 임파서블 푸즈에 투자했다. 2016년엔 뉴욕의 한국계 셰프인 데이비드 장이 ‘임파서블 버거’를 처음 시판하면서 시장화에 들어갔다.

                                                                        

임파서블 프드를 발명한 패트릭 브라운 박사


 2018년 6월 까다롭기로 소문난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임파서블 푸즈의 안전을 승인하면서 신뢰도는 더욱 높아졌다.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국제비정부기구인 유엔지원SDGs협회가 지난 7월 ‘임파서블 버거’를 지속가능한 브랜드 1위로 선정해 날개를 달아주었다. 디즈니, 스타벅스, 구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그 뒤를 잇는 걸 보면 얼마나 대단한 미래산업인지 방증한다. 브라운 박사의 목표는 2035년까지 임파서블 푸즈가 동물고기 식품을 완전히 대체하기를 바랄만큼 야심차다.


 임파서블 버거의 성공은 일본의 첨단 소재·부품·장비 수출규제로 겁박을 받고 있는 한국 기업과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절박한 상황과 동기부여, 집념이 어우러지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도 해낼 수 있다는 교훈이 그것이다. 브라운 박사의 집념은 10년 만에 성공가도에 들어섰다.


 소재·부품·장비의 국산화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며 회의적인 사람들이 다수다. 원료 확보, 기술개발,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풀어야 할 난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어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도발했다는 설이 유력한만큼 한국은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일본의 경제전쟁 촉발은 다소 느슨해졌던 도전의식과 동기부여에 안성맞춤이다. 카이스트 전·현직 교수 100여 명과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기술자문단으로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은 임파서블 버거의 탄생 때처럼 상서로운 징조다. 자유기업인의 표상으로 불리는 제이 밴 앤델은 자서전에서 “세상에 끈기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천재도 끈기를 대신할 수 없다.”고 갈파했다. (뉴욕에서)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세계화 전도사’로 불리는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냉전시절 일본이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 체제에 훨씬 더 가깝다고 평했다. 프리드먼은 명저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에서 자민당 치하의 일본이 엘리트 관료가 경제자원 배분문제까지 결정해 노멘클라투라 체제의 소련 공산주의나 다름없다고 했다. 실제로 소련 학자들이 일본을 둘러보고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 출신의 저명한 IT 칼럼니스트 월트 모스버그도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공산주의 국가였다’는 말을 즐겨썼다.


 프리드먼은 여기에다 일본 언론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온순해 본질적으로 정부 지침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다. 그는 일본 국민 역시 지독하게 획일주의에 순응하고 이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일본판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고 표현했다. 일본에서는 획일적 모델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창가족’라는 딱지를 붙여 알게 모르게 차별했다. ‘창가족’은 창문을 내다보는 책상에 앉혀 따돌린다는 의미를 지녔다.


 일본 작가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를 일본 특유의 ‘공기(空氣)’론으로 설명한다. 일본 사회와 조직이 논리나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공기’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공기’는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는 물론 이불 속까지 파고들어 절대적인 구속력을 발휘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일본 국민의 성향을 교묘하게 이용해 장기집권을 구가하고 있다. 그는 일본의 혐한 ‘공기’를 팽배하게 만들어 정치적 무기로 삼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인의 한국 호감도는 사상 최저로 나타났다. 아베 정권이 반도체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강화에 더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 대상국에서 제외해 1112개 핵심 부품·소재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를 확대하려는 시도도 마찬가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때리기 수법을 한국에 그대로 써먹는 아베는 외교적 사안을 무역으로 보복하는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일본 경제산업성 간부는 지난주 문재인 정부가 계속되는 한 규제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고 했을 정도다. 아베 정권의 속내가 ‘타도 문재인’임을 분명하게 표출했다. 일본은 자신들도 피해를 입는 ‘자해적인 수단’까지 동원해 한국을 손보겠다고 나선 것은 과거의 침략적 망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일본군 위안부 합의 파기,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명분에 지나지 않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한국은 숙명적으로 일본이라는 굴레와 멍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굴레는 소나 말이 한번 쓰면 죽을 때까지 벗어날 수 없고, 멍에는 일을 할 때만 쓰는 것이어서 해방될 수 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일본과 영구히 떨어질 수 없는 굴레가 씌었다. 하지만 경제적 예속이라는 멍에는 노력하면 벗을 수 있다.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처음으로 교역을 시작한 이래 2018년까지 54년간 한국의 대일 무역적자 총액은 708조원에 이른다. 한국은 단 한 차례도 대일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한국은 소재·부품 기술력을 일본에 의존한 채 첨단산업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당시 일본보다 나은 나라를 만들자는 목표 아래 ‘반일(反日)’을 넘어서는 ‘극일(克日)’을 선언한 이래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경제적 종속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독도영유권 주장과 역사왜곡 망언은 사실과 원칙, 명분의 문제지만, 경제 문제에는 사활이 걸렸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실망스럽지만, 아베 정권이 한국의 굴복을 명확한 목표로 내세운 만큼 유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나쁜 선례를 남길수록 일본은 한국을 얕잡아 보고 기회 있을 때마다 길들이려 나설 게 분명하다.


 국면을 냉철하게 관찰하면 단기적인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정부, 기업, 국민 모두가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위기를 기회로 삼을 때다. 기업들은 치열한 첨단기술 개발 노력보다 일본 첨단부품 수입에 의존해 쉽게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정부와 대기업이 우리 기술, 우리 중소기업을 키워내는 노력을 게을리 했음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외교적 노력을 동반하면서도 차분하고 비상한 각오로 응전에 나서야 일본의 오만을 깨부술 수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일반 국민보다 10배가량 많다. 재산이 5억 원 이상인 국민은 10%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은 80%가 넘는다. 19억 원 이상인 국회의원은 30%가 넘지만 국민은 1%밖에 안 된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원의 지난해 평균 재산은 23억9767만원으로 나타났다. 500억 원 이상인 국회의원 3명을 제외하고도 그렇다. 정당별로는 자유한국당 의원이 31억7784만원으로 1위를 차지했다. 자영업자를 포함한 서민들의 삶은 더욱 핍진해졌으나, 국회의원들은 지난해 평균 1억1521만원의 재산을 늘렸다.


 이런 부자 국회는 경제적으로 국민의 대표성을 지닌다고 보기 어렵다. 국회의원들은 서민을 대표한다면서 입만 열면 서민경제를 걱정한다. 말과는 달리 실제로는 서민경제와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입법이나 정책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기 일쑤다.


 국회의원의 대다수는 재벌 총수 일가의 재산상황, 취득경위, 상속증여세 납부실적 등을 조사해선 안 된다는 생각을 지녔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세금 감면과 규제완화로 부자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여긴다. 소상공인·자영업 기본법, 공정거래법 개정안 같은 입법 과제도 보수적인 국회의원들이 막고 있는 실정이다. 38년 만에 전면 개편하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속고발권 일부를 폐지해 공정위의 고발 없이도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하면 기업의 부담이 커진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추가경정 예산안만 해도 그렇다. 보수야당 의원들은 서민 생각보다 내년 총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추경은 정부의 설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민생과 직결된 부분이 많다. ‘고용위기와 산업위기 지역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적기에 긴급 경영안정 자금이 지원되지 않으면 도산위기에 내몰릴 수 있다.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은 사방공사가 지연돼 집중 호우가 내리면 산사태 같은 2차 피해를 당할 수도 있다. 청년 추가고용 장려금이 이미 소진돼버려 추경이 없으면 일자리를 찾는 청년들을 도와줄 수 없다. 추경이 더 늦어지면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투자도 늦어져 국민의 일상을 더 오래 위협하게 된다.’


 역설적인 건 강원도 산불 발생 후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피해 보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정부를 공격하는 보수야당 국회의원의 말이다. 주민들의 불만이 엄청나다면서 예산 뒷받침은 하지 않는 모순적인 언행이다.


 주택시장안정 대책의 종합부동산세 인상을 세금폭탄론으로 몰고 가는 것도 서민경제에 반한다. 종합부동산세가 늘어나는 비서민(非庶民)은 22만 명으로, 전체 주택 보유자(1331만 명)의 1.6%에 불과하다. 100만 원 이상 늘어나는 사람도 2만5504명뿐이다. ‘폭탄’이라는 낱말을 붙여 많은 서민이 치명적 타격을 입는 세금을 내야하는 것처럼 호도한다. 국회 공직자 재산등록 현황에 따르면 집값이 수억 원씩 올라간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가진 국회의원이 74명이나 된다. 이 가운데 55%인 41명이 자유한국당 소속이다.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의 처지에 비유되는 청년 주거 문제에도 국회의원들은 소극적이다. 여야 할 것 없이 선거 운동 기간에는 청년 행복주택, 셰어하우스 임대주택, 연합기숙사 등을 건립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어느 것 하나 법안으로 만드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서민 코스프레하기에만 바쁜 국회의원들이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아이러니하다. 생활수준이 높은 유권자일수록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고 가난할수록 자유한국당을 더 지지한다. 외국에서도 저소득층은 보수 정치인을 더 지지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 세력도 저소득층이 다수다.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은 세금 감면, 복지 확대 경계 같은 부유층 입맛에 맞는 정책을 펴고, 진보 정당은 서민 지원, 복지 확대 등 저소득층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토마스 프랭크는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을 분석해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라는 흥미로운 책을 썼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경제적 약자와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진보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투표 결과는 정반대였다. 보수 정치인들의 언행 불일치에 서민들이 낚이고 있다는 게 프랭크의 결론이지만, 이해하기 쉬운 현상은 아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스포츠계 명장(名將)들의 선수 시절 이력서를 보면 이름이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례가 유난히 많다. 축구 역사상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박지성을 키운 퍼거슨은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정상만 13번, 영국 프로축구팀 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을 비롯해 손가락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선수 퍼거슨은 감독 퍼거슨에 비해 보잘것없다. 스코틀랜드의 수준 낮은 퀸스파크팀에서 데뷔한 그는 글래스고 레인저스로 이적했으나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한 채 밀려났다. 끊임없는 공부와 특유의 지도력으로 세계적인 명장의 반열에 오른 그는 파리목숨 같다는 감독으로 맨유에서만 무려 27년 간 명성을 이어가다 72세에 용퇴했다. 한국을 사상 최초로 월드컵축구대회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도 스타선수 출신이 아니다.


 한국의 퍼거슨 같다고 ‘학범슨’이란 별명을 얻은 김학범 올림픽대표팀 감독은 선수시절 프로 무대도 밟지 못한 무명이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을 이기고 축구 우승을 일궈내자 비로소 인정받은 철저한 비주류였다. 김학범은 “태극 마크조차 달아보지 못한 사람이 대표팀 감독이냐”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그의 선수 경력을 보면 선입견을 가질만도 하다. 명지대 졸업 후 국민은행 팀에서 선수생활을 한 게 전부다. 서른두 살에 은퇴한 뒤 은행원으로 일하다 축구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이듬해 지도자로 변신했다. 43세 때 성남 일화 감독을 맡아 팀을 K리그 정상에 올렸다. 그의 힘은 부단한 공부에서 나왔다. 그는 틈만 나면 유럽과 남미로 날아가 선진축구를 공부했다.


 U-20 월드컵축구대회에서 사상 처음 준우승이라는 전과를 올린 정정용 감독은 감학범 못지않다. 이번 대회가 있기 전까지 웬만한 축구팬은 그의 이름조차 몰랐다. 이번 대회를 통해 ‘제갈용’(삼국지 제갈량과 정정용의 합성어)이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무명의 우려를 떨쳐내고 누구도 이루지 못한 큰일을 해냈다. 경일대를 졸업하고 실업축구 이랜드 푸마에 창단멤버로 참여했으나 부상으로 28살에 선수생활을 접어야 했다.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최고 경력이 2부 리그였던 대구 FC 수석코치였다. 대학원에서 스포츠 생리학을 공부하고 지도자 수업을 통해 ‘선수 조련사’로 거듭 났다. 학구파 ‘제갈용’의 마법 노트가 한국 축구 역사를 바꿨다고 할 만큼 치밀한 지략가가 됐다. 경기마다 상대에 맞춰 변화하는 용병술과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작전으로 ‘팔색조 전술’을 펼쳤다. 무엇보다 시대 흐름에 맞는 따뜻한 지도방식과 소통의 승리였다.

                                                                  


 정정용 감독을 비롯한 무명 선수의 명장 변신이 던지는 메시지는 화려한 경력이 아니라 조직에 맞춤한 리더십의 중요성이다. 주목받지 못한 선수생활을 거친 감독은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력을 발휘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반면에 스타 선수였던 감독은 타고난 재능이 워낙 뛰어나 평범한 선수들의 상황이나 심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진단도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는 정부의 요직 인사에서도 어렵잖게 눈에 띈다. 이름값과 이미지만 믿고 임명한 요인 가운데 무능의 상징으로 드러난 사례는 숱하다.

 

  명문 대학의 지명도 높은 교수라는 이유로 장관이 됐지만, 업무평가 최하위 수준임에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참신함으로 포장된 장관이 얼굴 노릇만 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대개 조직관리 능력과 경험이 전무함에도 각종 인연으로 발탁된 인물이다. 언론 프로필에 ‘요직을 두루 거친 엘리트’로 등장하는 인물이 실망감만 잔뜩 남긴 일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선출직에도 그 같은 무능 모델은 허다하다. 우리는 깜냥도 되지 않는 인물이 이미지 관리 하나로 지도자가 됐다가 나라까지 망친 사례를 경험했다. 어떤 지도자든 능한 스포츠 감독처럼 조직 관리의 연금술사 정도는 아니어도 최소한 조직이 수긍하는 수준의 능력은 갖춰야 한다. 이미지와 현실의 이중성을 꿰뚫어본 프랑스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이미 갈파한 바 있다.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지 만들기와 상품화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문재인 정부의 현 상황에는 ‘사면초가’라는 표현이 그리 무리하지 않다. 내우외환이 겹치는 정도를 넘어 더 높이 쌓여가는 형국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던 수출의 둔화는 7년 만에 처음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낳았다. 위기에 처한 경제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기업들이 선택을 강요받아 설상가상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세계 교역랑의 감소 추세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불길한 조짐마저 어른거린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이 0.4% 감소세로 돌아서 10년 만에 최저수준으로 내려앉았다는 사실이 위기의식을 부추긴다. 설비투자가 21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는 통계는 낙관적이지 않은 경제의 미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때문에 국내 시장은 최저임금인상, 근로시간 단축 같은 소득주소성장 정책의 수정을 끈질기게 요구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올려 소비를 촉진하고, 생산과 기업투자를 확대하는 선순환 구조로 성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 차질을 빚은 탓이다.


 문재인 정부가 거의 유일하게 잘한다던 남북관계와 외교안보 분야도 허공 속의 메아리 신세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물꼬를 튼 한반도 평화는 1년 만에 교착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새로운 남북정상회담 제의에 미사일 발사로 응답했다.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붙었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이 모레로 1주년을 맞지만 북한 비핵화 협상의 발걸음에는 도돌이표가 찍혔다. 주변 4대 강국으로부터 외교적 따돌림을 당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정부 관료들은 집권 4년차처럼 말을 듣지 않고 복지부동이 심해졌다고 정권의 핵심실세가 실토할 정도다.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로 개혁 대상인 검찰의 수장도 반기를 들었다.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조가 필수불가결하지만, 발목을 잡고 있는 보수 야당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의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둘러싼 대치 정국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치는 실종되고 국회는 식물로 변했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보수 야당의 경제위기론 공세는 한층 거세질 게 분명하다. 마치 국내외의 구조적 문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득주도성장 하나 때문에 외환위기에 버금가는 경제위기가 닥친 것처럼 호도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중간평가 성격으로 치러질 내년 총선이 점점 가까워 오면서 정부와 여당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국면은 녹록치 않다. 갈 길은 먼데 날은 저물어가는 형세다.


 여기서 떠올려야할 게 ‘우생마사(牛生馬死)’의 교훈이다. 헤엄을 잘 치기로는 소가 말을 당할 수 없다. 널따란 호수나 저수지에 소와 말을 동시에 몰아넣으면 웬만큼 먼 거리에서도 모두 헤엄쳐 나온다. 이때 말의 헤엄 속도는 소의 두 배에 가깝다. 하지만 홍수가 져 물살이 센 강물이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소는 살아서 나오지만, 말은 익사할 확률이 높다. 헤엄을 잘 치는 말은 자기 실력만 믿고 강한 물살을 이겨내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려고 발버둥친다.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다 물살에 떠밀려 뒤로 밀려나기를 반복하다 끝내 지쳐서 익사하고 만다. 자기 헤엄 실력을 아는 소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물살을 등지고 떠내려가면서 아주 조금씩 강가로 나간다. 그러다 강가의 얕은 곳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면 뭍으로 걸어 나온다. 물살에 편승하는 소는 살고 헤엄을 잘 치는 말은 고집 때문에 죽는다는 ‘우생마사’ 이야기는 이렇게 생겨났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진정한 실력은 위기 때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면초가인 문재인 정부는 위기 타개를 위해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그 같은 유혹은 말이 물살을 이기려는 기질과 같다. 경제문제에서는 구조적 문제를 감안할 때 당분간 저성장은 불가피한 흐름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부문도 거센 흐름을 넘는 게 살길이라고 여기다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보다 우선 생명을 건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국가균형발전을 명목으로 내건 예비타당성 면제 사업을 남발하는 것도 장기적으로는 낭비와 자멸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때의 4대강 사업에 들인 돈보다 많다는 쓴소리를 외면해선 안 된다. 수십조 원의 예산은 4차 산업혁명 분야에 투자해도 부족할지 모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선진국으로 손꼽히는 노르웨이와 싱가포르의 공통점은 독립할 때 국토 대부분이 쓸모없는 땅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노르웨이는 스웨덴으로부터 독립할 당시만 해도 북유럽에서 가장 살기 힘든 나라였다. 노르웨이 국가(國歌)에도 이를 상징하는 가사가 담겼다. ‘그래, 우리는 이 땅을 사랑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이 땅을. 바위가 많고 파도 속에 깎여 나갔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집이 되는 이곳을~’. 전 국토의 5%만이 경작할 수 있는 땅이어서 1905년 독립 직후엔 임업과 어업이 중심이었다.

 

  지금이야 정보통신기술(IT), 종이, 가구, 실리콘 합금, 기술제품들이 주요 산업인데다 산유국을 자랑하게 됐지만, 지도자와 온 국민의 각고면려(刻苦勉勵)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마침내 여러 면에서 스웨덴을 역전하기에 이르렀다.


 싱가포르는 노르웨이보다 훨씬 열악했다. 싱가포르가 종주국 말레이시아로부터 독립할 때 받은 땅은 마실 물조차 부족한 열대우림의 늪지대 섬에 불과했다. 그들은 좁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기 위해 인종적 차이를 극복하고 각별한 정체성과 가치관을 더해 금융과 국제 교통의 허브 국가로 우뚝 섰다. 이제 말레이시아는 물론 식민종주국이었던 영국보다 더 잘살게 됐다.

                                                                   


 두 나라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나와 세계’라는 책에서 밝힌 ‘잘사는 나라와 못사는 나라’의 기준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기준은 네 가지다. 첫째, 열대 지방은 못 살고 온대지방은 잘 산다. 둘째, 바다를 끼고 있는 나라가 잘 산다. 셋째, 좋은 제도가 있는 나라가 잘 산다. 마지막은 천연자원이 없는 나라가 잘산다. 열대 지방인 싱가포르와 한대 지방인 노르웨이는 첫째 기준에서만 사실상 예외 국가였다.


  반면에 남미의 베네수엘라와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는 풍요로운 석유 자원의 축복을 받았음에도 외려 ‘자원의 저주’가 된 대표적인 국가다. ‘자원의 저주’는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적은 국가보다 경제성장, 민주주의 같은 사회발전 수준이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빗대 랭커스터대 리처드 오티 교수가 처음 붙인 용어다. 지도자와 사회지도층이 정치·경제적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하고 풍부한 자원을 산업과 인적 자원 등에 효율적으로 투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석유 매장량 세계 1위인 베네수엘라는 망해버린 경제 때문에 ‘한나라 두 대통령’이라는 기이한 사태를 맞았을 정도다.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급진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받은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어서다.

                                                                          


 세계 10위 석유매장량 국가 나이지리아도 경제 난국에다 치안마저 불안해 무장괴한들이 고속도로에서 활개를 친다. 종교, 부족 갈등으로 산유지대를 둘러싸고 벌어진 오랜 내전 탓에 차라리 석유가 없었더라면 좋겠다는 한탄이 나온다고 한다.


 한국은 다이아몬드 교수가 잘 사는 나라의 기준으로 제시한 네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국가다. 무엇보다 자원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라 가운데 인구 5000만 명 이상,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달성한 유일한 국가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정보통신기술은 최선진국 수준이나 다름없다. 한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IT, 반도체, 자동차, 철강·화학 소재는 공급과잉을 걱정할 만큼 풍요의 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여기서 ‘풍요의 역설’이 출현한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일자리는 사라진다. 기술 진보,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생활이 편리해지고 풍요로워졌지만 일자리는 빠르게 줄어든다. 10~20년 내에 AI나 로봇으로 대체돼 사라질 가능성이 높은 직업이 순위별로 나온 연구결과도 많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청년 실업의 냉혹한 현실이 담긴 정규직 게임이 유행하는 걸 보면 안쓰럽게 느껴진다. ‘내 꿈은 정규직’이라는 제목의 인기 게임이 그것이다. 이는 사회현상을 투사한 거울인 셈이다.


 ‘풍요의 역설’은 거부한다고 쉽게 제어되지 않는 것이어서 더 큰 문제다. 우리에게 복지국가 개념과 사고방식을 재고하라고 촉구하는 듯하다. 노르웨이 청소년들은 축복받은 경제적 풍요와 자연환경을 두고 숲과 순록 똥밖에 없는 심심한 나라라고 투덜거린다고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비둘기가 국민적 애물단지로 변한 일은 정부 정책의 낭만적 단견을 보여주는 상징의 하나다.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들뜬 정부는 평화와 희망의 의미를 가득 담아 외래종 비둘기를 전국으로 날려 보냈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 때 각각 3000마리의 비둘기가 방사됐다. 당시 삼천리 금수강산에서 숫자를 생각해냈다는 얘기도 들린다. 비둘기를 날리는 행사는 1985년부터 2000년 사이 모두 90차례나 열렸다.


 그러자 비둘기의 개체 수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 도심 속은 물론 제주도까지 골칫거리가 된 지 오래다. 평화의 상징이던 비둘기는 급기야 2009년에는 ‘야생동물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유해야생동물로 낙인이 찍혔다. 이 같은 정책의 결과는 통합적 사고의 결여에서 비롯됐다.


 통합적 사고는 선택 사안에서 단조롭고 이분법적인 생각을 벗어나 복합적인 요소를 최대한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통합적 사고는 돌출적인 요인에 한층 폭넓은 관점을 지녀야 가능하다. 무엇보다 상반되는 요소를 동시에 떠올릴 수 있는 성향과 능력이 요구된다. 조직의 리더는 단순한 가정에 집착하기 쉽다. 모범답안이 하나라는 생각 때문이다.

                                                                


 문재인정부의 다양한 정책 실패 사례도 통합적 사고 빈곤과 직결된다. 문 대통령이 취임 2주년을 맞아 9일 KBS와 가진 ‘대통령에게 묻는다’ 대담 프로그램에서 최저임금 정책 실패를 고백한 것은 정부의 통합적 사고 부족 자인과 다름없다.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급격한 인상에 앞서 정부 차원에서 자영업자 대책을 비롯한 사회 안전망을 함께 고려하지 못한 점이 송구스럽다고 할 정도였다. 한국 자영업자가 전체 취업자의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네 번째로 많다는 사실을 정책입안 때 감안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최저임금의 다급한 인상이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타격을 주는 요인임을 계산에 넣지 않은 점도 정책 검토과정에서 통합적 사고를 하지 못한 후과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일자리가 감소한다는 내용은 대학에서 가장 기초적인 과목인 경제학 원론에도 나온다. 뒤늦게 대통령까지 속도 조절 의지를 밝힌 것은 부작용의 심각성이 생각보다 큰 탓이다.

 

  최저임금을 2년 연속해서 급격하게 인상한 것은 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론을 뒷받침하는 근거의 하나였다. 주 52시간 근무제는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시행에 앞서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임금 삭감, 업종 간 노동시간 균형 같은 문제의 보완책이 동반됐어야 한다. 버스업계의 전국적인 파업 예고도 이와 맞물려 있는 사안이다.

                                                                     


 탈원전 논쟁에서 밀리고 있는 것 역시 통합적 사고의 빈약과 연관된다. 탈원전 부작용이 잇따르자 여권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 여론에서도 밀린다.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원전의 유지·확대 찬성 비율이 61%인 반면 축소 의견은 27%에 그쳤다. 대통령의 선거공약과 친환경 에너지정책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탈원전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는 까닭은 급격한 정책전환이 부를 부작용 때문이다.

 

 원전 정책은 국민적 관심사인 미세먼지·기후변화 대책과도 상관관계가 많다. 석탄 화력발전소를 폐쇄하는 대신 2017년 중단된 원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 미세먼지를 피하면서도 안정적 전력수급을 보장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장을 공론에 붙여 최종 결정하는 아이디어도 고려해 봄직하다. 장기적인 탈원전 정책을 지키더라도 속도조절은 필요해 보인다. 민주당 정권이 연장되더라도 탈원전 정책이 뒤집힐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책 추진과정에서 국정의 모든 분야를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통찰하는 기능이 떨어져 보인다. 통합적 사고에 바탕을 둔 정책은 취임 2주년을 맞은 문재인정부가 진지하게 복기해 봐야할 숙제다. 사회구조가 복잡다기할수록 통합적 사고능력은 필수다. 주식을 손해 보고 팔 수 있는 용기가 손해를 줄이듯 문제가 드러난 정책은 과감하게 손절매(損切賣)를 하는 결단이 국가와 정권의 장래를 위해서도 득이 될 수 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고대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지혜의 표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의 실패는 학문적 연구대상으로 꼽힌다. 그의 성공은 번성기를 누렸던 외양만 보면 나무랄 데가 없다. 아이의 진짜 엄마 찾아주기 판결 일화에서 보듯이 그는 출중한 슬기로 나라의 기초 질서를 세웠다. 빼어난 경영 마인드로는 막대한 국부를 쌓았다. 전국을 요새화해 외침의 공포를 차단했다. 탁월한 외교적 수완과 리더십으로 국제 질서까지 다졌다. 이만하면 뭘 더 바랄 게 있을까 싶다.


 하지만 강력한 중앙권력과 웅장하고 화려한 왕궁은 실패의 지름길이었다. 위대한 치적이 외려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는 원흉이었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솔로몬의 실패 원인을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지목하지만, 세속에서 보면 자기 문제에 대한 판단력 결핍이 첫 손가락에 든다. 과다한 부역과 조세 부담은 국가 분열로 가는 길을 닦았다. 그에겐 1000명에 달하는 이교도 첩과 후궁들로 북적였다는 기록도 전해온다.


 캐나다 워털루대의 이고르 그로스먼 심리학 교수 연구팀은 자기 일과 남의 일을 해결하는 방법을 대학생 실험을 통해 관찰했다. 연구팀은 상당 기간 연인 관계인 학생 집단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에는 자기 애인이 몰래 다른 사람과 성관계를 맺은 사실을 알게 된 상황을 제시했다. 다른 그룹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의 연인이 친구를 속인 채 바람을 피워온 일을 인지한 상황을 과제로 주었다. 연구팀은 그 뒤 참가자들에게 똑같이 바람피운 파트너들과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고, 지혜롭게 처리하는 지 살펴봤다.

                                                                          


 그 결과, 내 일이 아닌 친구의 일로 생각한 참가자들이 더 현명하게 판단하고 수습해 나갔다. 자기 애인이 바람을 피운 상황에 있던 학생들은 전혀 슬기롭게 대처하지 못했다. 또 자기 애인이 다른 사람과 바람피운 상황이 제시된 학생들 가운데 일부에게 ‘나’ 대신 ‘그’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생각하도록 해 봤다. 이처럼 ‘거리 두기’를 한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에 비해 더 지혜롭게 해결책을 찾았다. 슬기로운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제3자 관점에서 사고해야 한다는 사실이 실험결과 밝혀졌다. 연구팀은 자기 일이 아닌 타인의 문제에 현명한 판단을 내리는 현상을 ‘솔로몬의 역설’이라고 명명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은 서울대 교수 시절 족집게 예측으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평이 났다. 2016년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공천 개입에 대해 ‘내가 김무성(당시 새누리당 대표)이라면 항의 시늉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표 직인 들고 최소 1주일 사라진다.’라고 글을 올리자 실제 상황이 벌어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박근혜가 대통령 되면 MB(이명박)를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라는 글에서도 소름이 돋았다는 평이 뒤따랐다. 2010년 출판한 ‘진보집권플랜’은 진보진영 필독 지혜가 담겼다는 평판을 얻었다. 문재인 후보를 비롯한 ‘정치권의 멘토’로 불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 조 수석이 청와대에 입성하자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막상 자신의 일에 맞닥뜨리자 ‘솔로몬의 역설’을 떠올리게 할 때가 적지 않다. 야당의 공격 표적임을 감안하더라도 재야 시절의 판단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다. 부실한 인사검증, 조직관리 실패, SNS를 통한 과도한 국정 참견, 개혁 과제의 지지부진이 비판의 대상이다.

                                                                        


 부실 인사검증 논란은 문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감을 안겨준다. 최근 개각과 헌법재판관 임명 때 비판의 정점에 이르렀다. 두 명의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고, 이미선 헌법재판관은 현 정부 들어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15번째 고위공직자가 됐다. 박근혜 정부 4년 동안 청문회 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한 고위직은 9명이었다. ‘진보정권이 보수정권보다 더 나은 게 뭐냐’는 비판이 나오는 데는 고위공직자 도덕성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사법 개혁,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 같은 개혁안도 국회에서 막혀 버리면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민정수석실 내부 기강 문제는 역대 정권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일이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폭로사태 등을 처리하는 정무 감각에서도 아쉬운 부분이 드러났다. 대통령의 의중보다 ‘국민의 눈높이’이라는 제3자의 관점에서 국정을 보면 ‘솔로몬의 역설’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