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의사들은 ‘체 게바라의 자존심’으로 통한다. 카리브해 섬나라 쿠바의 의료수준이 세계적으로 정평이 난 역사적 배경에는 체 게바라를 빼놓을 수 없다. ‘혁명의 아이콘’ 체 게바라가 아르헨티나 의사 출신이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쿠바가 의료강국이 된 것은 1959년 혁명 이후 교육·농업·의료 3대 개혁이 거둔 열매다.

 

 피델 카스트로 형제와 함께 쿠바 혁명에 참여한 체 게바라는 한 연설에서 의료 접근성을 역설했다. “의사는 씨를 뿌리고 가꾸는 농부와 같다. 어디서 무슨 일이 생겨도 의사는 환자와 가장 가까이 있어야 하고 그들의 마음 깊은 곳까지 알고 있어야 한다.”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쿠바혁명 직후 “학교와 병원은 부자들만 가는 것이 아니다. 쿠바 인민 모두를 무지와 질병으로부터 해방하겠다”고 다짐한 뒤 은퇴할 때까지 실천했다.


 쿠바의 전면 무상 의료제도는 세계 최상급으로 인정받는다. 쿠바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8.4명으로 세계 최고다.(2018년 세계은행 통계) 세계 평균 1.5명, 한국 2.4명에 비하면 독보적이다. 이처럼 풍부한 의료인력은 연간 65억달러 안팎을 벌어들인다. 의사 해외파견은 쿠바 외화벌이의 절반에 이른다.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는 해외 파견의사 월급의 80~90%가 국가수입으로 잡힌다. 1963년부터 시작된 쿠바의 해외파견 의사 누적 인원은 40만명에 이른다.

                                                                     

                                                                    

  쿠바는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관광수입이 격감한 대신 의료 붕괴를 맞은 나라로 파견 의사수를 늘렸다. 올 초까지 3만명 선을 유지하던 파견 의사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남아공 등 27개국에 3000여명이 추가로 나갔다. 쿠바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따뜻하기로도 유명하다. 이탈리아는 코로나19 퇴치에 힘쓴 쿠바의 해외지원의료진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을 정도다.


 14개 의과대학은 쿠바의 의료인력 확보를 뒷받침한다. 쿠바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의대도 무상교육이다. 인구 1120만 명의 쿠바는 넉넉한 의료 자원에 힘입어 코로나19 방역도 선방하고 있다. 21일 미국 존스홉킨스대 집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7763명, 사망자는 131명이다. 쿠바 정부는 수만명의 가정 주치의, 간호사, 의대생들이 날마다 모든 가정을 돌며 주민의 상태를 점검하도록 한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쿠바가 자체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 2개가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두번째 코로나19 백신 후보 ‘소베라나2’가 임상시험에 들어갔다. 이미 지난 8월 시작한 후보물질 ‘소베라나1’ 임상시험은 큰 부작용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핀라이백신연구소를 비롯해 20개 연구기관이 참여한 개발연구팀은 올 연말까지 2가지의 새로운 후보물질도 임상시험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한다. 쿠바는 내년에 자신들이 개발한 백신을 국민에게 보급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다.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의 백신이 뜨는 바람에 관심밖에 있지만, 쿠바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에는 희소식이 될 게 틀림없다. 쿠바의 코로나19 백신은 수십년간 축적한 기술력 덕분이다. 쿠바는 항수막염 백신, B형 간염 백신을 비롯해 8가지 백신을 자체 개발해 40여 나라에 수출한다. 쿠바산 B형 간염백신은 미국산보다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는 1980년대부터 생명공학·생물의학에 집중투자한 결과물이다.


 똑같이 미국의 경제봉쇄를 겪고 있는 북한과 쿠바를 비교 연구하다 보면 국가 목표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한명도 없다는 북한의 보건·의료는 외부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열악하다. 아직 완공하지 못한 평양종합병원이 북한 주민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북한 해커 단체가 코로나19 백신 개발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 글로벌 제약사들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장도 믿거나 말거나 안타깝다. 쿠바의 친환경 유기농산물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북한은 여전히 식량난으로 허덕인다. 북한이 동병상련의 우방국 쿠바에 진정으로 본받을 게 뭔지 확연하지 않은가.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민주주의 모범국인 미국이 반면교사로 전락한 것은 이율배반의 비극이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는 민주주의 교과서는커녕 세계적 조롱거리가 됐다.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의 승리와 별개로 수렁에 빠진 민주주의를 건져내는 게 급선무처럼 보인다. 대선 부정 논란으로 3개월째 정국 혼란에 빠진 벨라루스의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이 미국을 비웃을 정도니 말이다.


 뉴욕타임스의 개탄이 뼈저리다. ‘이번 대선에서 미국 정치·사회의 추악한 이면이 낱낱이 폭로됨에 따라 대통령이 누가 되든 대외적 국가이미지가 이미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민주주의 가치들이 반민주적 세력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일이 미국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걸 올 미국 대선이 드러냈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키며 인종차별의 역사를 치유했던 미국 정치시스템이 불과 몇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까지 낳았다.


 투표 전부터 부정선거 음모론을 들고 나온 현직 대통령 트럼프는 기어이 무더기 소송을 제기하고 불복을 선언했다. 바이든 후보측이 표를 도둑질했다는 게 이유다. 근거도 대지 못했다. 야당이 부정 투개표를 했다는 주장은 정치 후진국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억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바이든의 승리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며 곳곳에서 시위를 벌이고 경찰과 충돌했다.

                                                                                 


 미국 대선에서 패자의 승복문화는 1896년 이후 한번도 깨지지 않은 120년 전통이다. 1896년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민주당 후보가 윌리엄 매킨리 공화당 당선인에게 축하 전보를 보낸 게 시초였다. 2016년 힐러리 클린턴 후보도 경쟁자 트럼프 당선인에게 전화와 연설로 축하했다.


 트럼프가 부정행위라고 비난한 부재자 우편투표는 1812년 이래 200년 이상 미국 민주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단이었다. 미국의 우편투표는 고향이나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파견된 군인들이 투표권을 행사하도록 마련된 제도다. 어느 쪽의 몰표를 위해 조작할 수 있는 투표 방법이 아니다. 올해 선거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우편투표 선택권이 늘어났을 뿐이다.


 미국의 선거관리는 참담할 정도로 허술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연방대법원의 판결로 당선이 확정된 2000년 대선 때 큰 혼란을 겪었음에도 그리 개선되지 않았다. 주 정부와 지방정부들이 예산을 핑계로 투표소를 줄여 주민의 선거참여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저소득층과 소수 인종의 참정권이 제한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그보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간 민주주의를 망가뜨린 죄과는 입에 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인종차별, 성차별, 뻔뻔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 절차 무시, 내로남불, 억지 같은 행태는 한숨이 절로 나오게 했다. 민주주의의 붕괴는 나라의 추락을 동반한다. 세계 민주주의 수준이 미국 때문에 덩달아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 대선 과정에서 지지 후보나 정당이 다르면 얼굴을 맞대기조차 싫어하는 현상이 유난스러워졌다. 가족 간에도 정파 갈등이 끓어 넘쳤다. 바이든 당선인이 찢어진 미국 사회의 통합과 단결을 다짐하고 호소했지만, 정치적 양극화를 단시간에 치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인기영합주의에 매몰된 미국 정치의 적대적 정치구조는 앞으로 10년간 혼란 상황을 정리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분석까지 나온다.


 취임 초에는 누구든 ‘모든 국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천한 대통령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공화당 못지않게 고루한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에게 희망을 걸기 어렵다는 얘기도 들린다. 갈등해소 역할을 해야 할 언론 지형 역시 정파성을 지나치게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졌지만, ‘트럼피즘(Trumpism)의 패배’라고 보긴 어렵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온갖 악재에도 트럼프의 득표가 4년 전보다 700만여 표 늘어난 데다, 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이 의석수를 외려 늘렸다. 백인 유권자와 농촌 지역에서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이 함께 쓴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안타까워했듯이 미국 사회는 세계에서 가장 역사가 깊고 가장 성공적인 민주주의 체제의 쇠퇴와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지자들만 바라보는 저급 정치 탓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카데미상 4관왕 영화 ‘기생충’이 세계인의 공감을 얻은 것은 불평등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어서다. 반지하와 저택에 사는 두 가족은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생생한 표상이다.


 영화의 메시지를 담은 한국 사회의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국회 국정감사에서 나왔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한국은행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9년 한국의 불평등지수(피케티지수)는 8.6으로 전년보다 0.5나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선진국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다. 스페인 6.6, 일본 6.1, 영국 6.0, 프랑스 5.9, 미국 4.8, 독일 4.4 등이다.


 한국의 ‘피케티지수’는 최근 10년간 줄곧 악화했다. 특히 문재인정부 들어 급증했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피케티지수는 7.6~7.8 수준이었다. 이 지수는 ‘21세기 자본’이란 저서로 이름을 떨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가 만들었다. 수치가 높을수록 소수의 사람이 고가의 자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불평등 정도를 가늠하는 지표인 이 수치가 높으면 평균적인 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재산을 늘리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의 피케티지수 상승은 부동산 가격 급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걱정스러운 점은 일본과 스페인에서 부동산 거품이 정점을 찍었던 때보다 높다는 사실이다. 부동산 거품이 극심하던 1990년 일본의 피케티지수는 8.3이었다. 내년에 나올 2020년 한국의 피케티지수는 2019년보다 훨씬 높을 가능성이 크다.


 이보다 하루 전인 22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자산 불평등에서 주택의 역할’ 보고서를 보면 서울에 사는 20~30대 무주택 가구는 극심한 자산불평등을 겪고 있다. 주택가격이 최근 급등한 서울 지역은 소득 불평등도보다 자산 불평등도가 훨씬 심각하다. 앞으로 소득불평등 문제보다 자산불평등 문제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김종철 정의당 신임 대표의 우려를 입증하는 자료다.


 서울대 분배정의연구센터 주병기 교수의 ‘개천용지수’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 현상을 민감하게 반영한다. 주 교수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이란 논문에서 명명한 ‘개천용지수’는 한국이 갈수록 개천에서 용이 나기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음을 수치화한 것이다. 1990년 이후 26년 동안 한국의 기회불평등 정도는 두배 가량으로 커졌다. 1990년 19에서 2016년 34로 높아졌다.


 이 지수는 소득하위 20%인 부모를 둔 사람이 소득상위 20%로 올라설 확률이다. 기회가 평등했으면 상위 20%에 진입했을 하위 20% 출신 100명 가운데 34명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의미다. ‘계층이동 사다리’가 없어진 비율이라고 봐도 좋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이런 추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이 “용이 돼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지만, 막상 자기 자녀를 용을 만들려고 했다고 도마에 올랐다.

                                                                       


 영국 사회학자 리처드 윌킨슨은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고소득자들은 우월감을 느끼고, 저소득자들은 자신을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기게 된다”고 했다. 불평등과 자수성가를 모두 경험한 미국 심리학자 키스 페인은 저서 ‘부러진 사다리’에서 “가난하고 불평등하면 사람의 마음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평등은 진보정권이 보수우파정권보다 강조하는 가치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할 것이고, 과정은 공정할 것이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약속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법이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라는 국정 목표를 세운 문재인정부가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불평등지수와 함께 올해 최대 화두였던 ‘공정’ 문제에 관해서도 압도적인 다수가 한국 사회의 불공정을 지적했다. 최근 한 언론사의 창간 기념 여론조사 결과, 한국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국민이 10명 중 7명꼴이었다. 그 가운데 ‘법 집행’이 가장 불공정하다는 답변은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피케티가 불평등의 해결방법을 ‘경제’ 아닌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한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치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 원칙만 지켜져도 걱정할 일이 획기적으로 줄어들 게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기’는 법률용어로 ‘금반언(禁反言) 원칙’에 해당한다. 신의성실 원칙의 한 갈래다. 소송에서는 자신이 이미 한 언행을 바꿀 수 없는 금반언 원칙이 엄격하게 적용된다. 국제법에서도 금반언 원칙은 중요한 요소다.


 말 바꾸기의 달인들이 모인 정치세계에서는 ‘내로남불’이 금반언 원칙을 쓰레기처럼 만들어놨다. 금반언 원칙의 훼손은 여야가 바뀌는 상황에서 특히 심각하다. 어느 쪽이든 야당 때 하는 말과 여당 때 하는 말이 180도 달라지는 경우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의 문제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더라도 지적자가 이미 똑같은 잘못을 저질러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재정 건전성과 직결되는 국가채무비율이 논란거리로 떠오른 것은 대통령의 야당 대표 시절과 정반대되는 발언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19 상황 이전인 지난해 5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 40%의 근거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정부의 건전재정 원칙을 뒤집었다. 올해 4차 추가경정예산을 기준으로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이미 43.9%다. 다음 정부 때인 2024년엔 이 비율이 58.3%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된다는 느슨한 재정준칙을 기획재정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때 국가채무비율 40%를 넘어선 박근혜정부의 2016년 예산안을 가혹하게 비판했다. 당시 문 대표는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40% 선을 넘어 재정 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이 깨졌다”고 경고했다. 문 대표는 외환위기 속에서 출범한 김대중정부가 흑자로 전환해 노무현정부에 넘겼고, 노무현정부도 흑자재정을 만들어 이명박정부에 넘겼다는 점을 유독 강조했다.


 정치에서 ‘한 입으로 두말하기’는 특정 개인을 넘어 정당의 공식 입장도 해당한다.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현역병에 매달 2박3일 외박 제공, 예비군 동원훈련수당 5배 인상’을 4.15총선 ‘1호 공약’으로 내세웠다. 2018년 국방부가 병사 복지·병영 문화 개선 방안을 발표하자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대변인은 “대한민국 군대를 수학여행 온 놀이터쯤으로 만들 것인가”라는 논평을 낸 바 있다.


 비리 의혹으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각각 탈당한 국회의원들을 둘러싼 비난 논쟁은 전형적인 내로남불 사례의 하나다. 비슷한 시기에 이상직·김홍업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이 특권과 공정성 의혹에 휘말리자 소속 정당은 제 식구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당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비리특권 수호경쟁이 점입가경”이라며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서로를 향한 내로남불 삿대질은 초록은 동색이란 것만 확인해 줄 뿐”이라고 꼬집었다.

                                                                        


 금반언의 원칙은 사회의 공정성과 직결되는 사안이다. 내로남불이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의 잘못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이중성이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내로남불이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라는 조사결과가 나온 적도 있다.


 금반언의 원칙은 위선의 정치를 추방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하다. ‘한 입으로 두말하기’를 법으로 처벌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럼에도 정치윤리적 제재를 검토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국회의원과 고위당직자, 행정부 고위공직자 등이 금반언의 원칙을 명백하게 어겼을 경우 중립적인 정치윤리위원회의 결정을 거쳐 주의나 경고 같은 윤리적 제재를 가하는 방법을 검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정당의 금반언의 원칙 위반 사례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를 유권자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홈페이지에 낱낱이 기록하고, 언론이 보도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금반언의 원칙을 현저하게 어긴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다음 선거에 나설 경우 선거관리위원회의 기록에 담는 것도 검토해봄 직하다. 정치인들의 속성으로 보면 실천에 옮길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지만, 그만큼 중증을 앓고 있는 건 분명하다. 금반언의 원칙을 지켜 내로남불만 줄여도 선진 K-정치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겠는가. 국회 차원에서 금반언 원칙 선언이라도 나오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대나무의 상징어는 ‘직절허심(直節虛心)’이다. 순서를 바꿔 ‘허심직절(虛心直節)’이라고도 한다. 속이 비고 곧아 절개가 있는 나무여서다. 대나무가 소나무와 더불어 송죽지절(松竹之節)의 짝을 이루는 것도 차디찬 겨울을 견디며 푸른 잎을 굳건히 간직하기 때문이다. 속이 빈 것은 헛된 마음을 버려서이고, 부러질지언정 굽히지 않는 건 정절을 지키기 위한 표상이다.


 겨우내 잎이 푸른 것은 고결한 기품을 잃지 않겠다는 각오로 읽힌다.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에서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곧기는 누가 시킨 것이며 속은 어이 비었는가/ 저렇게 사계절 푸르니 그를 좋아하노라’라고 대나무를 상찬했다.


 대나무는 땅 밖으로 싹이 나기 전 땅속으로 먼저 자란다. 대나무 씨앗은 1년은커녕 2~3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곳에 대나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즈음, 5년째 되는 해에 딱딱한 땅을 뚫고 죽순을 내밀기 시작한다. 죽순을 틔우기 전에 4년 간이나 뿌리를 십수미터까지 뻗는다. 땅속의 영양분과 수분을 충분히 빨아올릴 수 있도록 촘촘하게 뿌리를 뻗어 나간다. 대나무밭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태풍이 불어도 쓰러지지 않는 바탕이 여기서 길러진다.

                                                                             


 죽순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하루에 무려 30~65㎝씩 성장한다. 이렇게 석달이면 16~26m를 자란다. 약 5주 만에 울창한 대나무숲을 이룬다. 줄기와 잎을 만들기 훨씬 전부터 뿌리를 튼튼히 해놓은 준비성 덕분에 대나무는 가뭄이 심하고 맹렬한 추위가 닥쳐도 죽지않는다.


 대나무는 60~120년의 평생 단 한번 꽃을 피운다고 한다. 그것도 하루 만에 피고 곧바로 지고 만다. 대나무는 줄기가 시들어갈 무렵 꽃이 핀다. ‘대꽃처럼 귀하면서도 아픈 꽃이 없다’는 말이 생겨난 것은 이런 연유에서다. 생의 마지막에 후손을 위해 꽃대를 밀어올리고선 그 자리에서 모두 말라죽는다. 한 나무가 꽃을 피우면 너도나도 따라 한다. 같은 뿌리에서 나온 줄기는 나이에 상관없이 같은 해에 꽃을 피우고, 어느날 갑자기 대나무숲이 한꺼번에 사라진다.


 일생에 단 한번 피는 흰꽃이 지면 씨앗은 떨어져 땅속으로 들어간다. 엄마 대나무는 살아서 정성껏 광합성 작용을 해 자신이 쓰는 것이 아니라 훗날 아기 대나무를 위해서 땅속에 자양분을 저장해둔다. 성장속도가 보통 나무의 수백배에 이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번에 쑥쑥 자라나버리니 나이테도 없다. 대나무는 나이테가 없는 유일한 나무다. 대나무 줄기는 비어 있으므로 자신을 단단하게 보호한다. 중간중간 매듭을 짓고 자라기 때문에 강풍에도 쓰러지지 않는다. 사람도 성찰하면서 성장하고 발전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대쪽같다’는 말은 예부터 절개와 정절을 표상하는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지킨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원칙주의자’로 불렸던 국가 지도자는 어느새 스스로 설정한 정의와 공정의 원칙을 무너뜨리고 말았다는 비판을 비켜나지 못한다. 얼마 전 청와대에서 열린 제1회 청년의 날 기념식에서 ‘공정’이란 단어를 37회나 언급했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시민이 더 많은 것 같다.


 법치주의의 보루인 검찰에서는 ‘대쪽검사’들이 사라지고, ‘애완견검사’ ‘어용검사’들로 채워졌다는 한숨소리가 들린다. 떡검(떡값 받는 검사), 섹검(성추행 검사), 벤츠검사, 스폰서검사, 정치검사 같은 말들이 상징처럼 됐던 시절을 벗어나는 듯하지만, 또 다른 수식어가 자리잡는다.


 ‘전관예우를 거부하고 로펌도 마다한 대쪽검사’로 소개됐던 검사는 여당 국회의원으로 변신했다.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대쪽같은 공직자’라고 떠받들던 인물들은 축출대상으로 전락했다. ‘한국의 피에트로’(이탈리아의 추상같고 깨끗한 검사)라는 별칭이 붙는 청렴강직 검사는 검찰 역사서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이름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더 관대한 판결을 내린다는 의구심을 받는 사법부의 판사들도 ‘대쪽’이란 수식어를 그리워지게 한다. 지나치게 대쪽 같아서 악명이 자자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후 대쪽 법조인에 대한 그리움은 커진다.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문득 떠오른 단상이 ‘대쪽같은’ 공직자에 대한 그리움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프랑스 좌파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 레비는 조 국 전 법무부장관이 좋아하는 지식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레비는 대표작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전체주의 비판을 바탕으로 한 ‘신철학’을 주창한 참여지식인이다.


 조 전 장관은 오래 전 한 칼럼에서 레비의 다른 저서 ‘그럼에도 나는 좌파다’의 제목을 빌려 좌파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조 전 장관은 이 글에서 “설사 누가 나를 ‘좌파 부르주아’라고 부르며 폄훼할지라도, 나는 의식적으로 왼편에 서서 나의 존재에 대한 ‘배신’을 계속하고자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나는 사회주의자다”라고 했다.


 ‘우울한 좌파’라는 별명을 지닌 레비는 이 책에서 “오늘날의 좌파는 인권, 자유와 평등, 진보와 성장, 분배와 복지 등 좌파가 중시했던 가치를 잊어버렸다”고 슬퍼했다. 그는 이런 말로 자신이 속한 좌파를 통타했다. “불의가 아무리 사소하고 대수롭지 않을지라도, 혹은 그것을 바로잡는 데 아무리 많은 비용이 든다 할지라도 좌파에게 중요한 건 도덕이다.”

                                                                       

         
 여전히 진행형인 ‘조국사태’와 추미애 현 법무부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의혹을 다루는 진보정권과 팬덤의 행태는 레비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두 전·현직 법무장관에 대한 무리한 옹호는 한국 사회의 정의와 상식의 기준을 파괴한다. 집권여당에서는 현직 법무장관 아들 의혹이 불거지면서 조 국 옹호 움직임까지 다시 일고 있다. 내년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친조국 표를 얻으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유력하게 나온다.


 지난달 나온 ‘조국백서’의 조 전 장관 옹호는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조국백서는 조 국 딸의 입시 비리 의혹을 ‘견강부회’하기에 여념이 없다. ‘자녀 입시와 관련한 이 사건은… 사회적 연줄망 안에서 작동하는 우리 사회의 평균적 욕망 실현 방식과 비교하면 특별히 부도덕하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모펀드에 대해서도 이렇게 두둔한다. ‘재테크와 관련해서는 투자에 안목이 있는 친인척이나 지인, 하다못해 은행창구 직원의 도움이라도 받는 게 상식이다.’


 문재인정부 198명의 고위공직자 가운데 사모펀드에 가입한 사람이 조 전 장관 외에 왜 아무도 없는지는 무시해버린다. 고위공직자 비위를 감시하는 최고책임자 청와대 민정수석이 이처럼 무심해도 되는가 싶은데도 말이다. 필진은 조 전 장관이 오랫동안 설파하면서 명성을 쌓은 철학과 정반대의 논리를 펴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조국백서의 결정적인 위선은 개혁 인물에겐 잘못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궤변적 발상이다. ‘예부터 지배세력 내 개혁 운동가들은 한편으로 자기존재 자체에 주어진 혜택을 받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자기 존재를 부정하려는 이율배반적 면모를 보이곤 했다. 이런 존재와 의식의 불일치를 비난하면 개혁은 불가능하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의 ‘군 휴가 미복귀’ 의혹사건은 “소설 쓰고 있네”라며 일축해온 장관 자신이 일을 더 키우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뒤늦게, 그것도 페이스북을 통해 송구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흠집난 도덕성은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를 무마하려는 집권여당의 비상식적 벌떼 대응은 논리가 꼬여 도리어 사과하고 자책골을 넣는 희극을 낳았다. 공익제보자의 실명을 공개하고 범죄자로 매도하는 황 희 의원의 언행은 국회의원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역풍을 불러왔다. 박근혜정부 때 우병우 민정수석 아들의 ‘꽃보직 스캔들’을 일제히 비난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호위무사처럼 방어하는 모습이 희극 같다는 게 평범한 시민들의 반응이다.


 공교롭게도 정의와 공정을 주 업무로 삼는 두 전·현직 법무장관의 처신은 위법 여부를 넘어서는 도덕적 중대 사안이다. 국민의 평범한 삶에 좌절과 상처를 주는 특권과 반칙의 시대는 반드시 끝내겠다고 약속한 문 대통령의 다짐에 금이 가게 한 일이다. 소시민들은 여전히 법무장관 추미애의 공정과 정의는 무엇인지 물을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도덕성이 살아야 정의도 살 수 있고, 무너진 원칙도 다시 바로 세울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뭘 덧붙인다면 사족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민에게 생색나는 개혁을 해보고 싶으면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책사 얘기를 먼저 떠올려 보면 좋겠다. 촉나라 유비의 제갈량에 비견된다는 야율초재는 칭기즈칸의 셋째아들인 2대 황제 오고타이가 개혁 방안을 자문하자 명언을 들려준다. “한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가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합니다.”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겠느냐”고 오고타이가 물은 데 대한 답변이었다.


 4.15총선에서 민주화 이후 유례없는 180석을 얻은 여권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대표 체제 출범과 때맞춰 성찰할만한 지혜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총선 이후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는 시간에 쫓기는 듯 개혁을 명분삼아 독주를 거듭해왔다. 국회 상임위원장을 독식하고, 부동산 법안을 비롯한 각종 의안을 일방 처리했다. 충분한 검토없이 통과된 개혁 법안들이 서로 모순되는 일이 벌어진다는 비판까지 받아 정당 지지율이 추락한 것은 업보였다.


 하지만 특정 교회와 8.15 광화문집회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확산해 지지율이 다시 반전되자 여당은 말 폭탄과 손봐야 할 특정인의 이름을 딴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당 의원들은 ‘전광훈방지법’ 5건과 함께 ‘박형순금지법’까지 발의해 총공세에 나섰다. 정청래 의원은 재난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사람에 대한 개인정보 제공 요청에 불응하는 경우 처벌 수위를 높이는 재난안전관리기본법 개정안을 냈다.

                                                                      


 김성주 이원욱 오영환 전용기 의원도 각각 감염병의 예방·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사실 강화된 감염병 관련법은 얼마 전에 개정됐다. 최고위원 후보였던 이원욱 의원은 광화문집회를 허용한 판사를 ‘판새(판사 새X)’라고 비하하며 그의 이름을 딴 ‘박형순금지법’(집회시위법 및 행정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은 ‘가짜뉴스’(허위조작정보)를 보도한 언론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언론중재법 일부 개정안도 대표로 냈다. 언론·출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의 소지가 커 보인다. 모든 법안의 취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처벌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법으로 모든 것을 규제하려는 것은 악덕을 교정하기보다 도리어 일으킨다”고 일침을 놓았다. 최종 통과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는 않으나 정치적 함의는 분명하다.


 부동산 3법이 전격적으로 통과돼 시행되고 있음에도 부작용이 우려되자 민주당 의원들이 너도나도 새로운 보완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검토되지 않은 일부 부동산 대책 법안들이 ‘반헌법’ 논란을 빚자 김태년 원내대표가 “정책위원회 검토를 먼저 받으라”며 제동을 걸어야 할 상황이라고 한다. 개별 의원이 발의한 부동산 관련법들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보도되면서 시장에 혼란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끊이지 않는 논란성 언행과 검찰 인사는 검찰개혁의 목적을 점점 더 의심스럽게 만든다. 추 장관의 언행은 ‘인성’의 문제로 비약했다. ‘사람의 성품은 역경을 이겨낼 때가 아니라 권력이 주어졌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한 에이브러햄 링컨의 철언을 입증하듯이 말이다. 민주당 대표를 지낸 추 장관의 처신은 편파수사 지침을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의과대학(공공보건의료대학) 문제도 시기와 공정성 시비를 낳는 신입생 선발 요강 의혹 등으로 선의(善意)를 훼손한다. 의료계의 이기주의가 비난받아 마땅하더라도 이를 여론전으로 손보려고 의도적으로 코로나19와 사투를 벌이는 시점을 택한 게 적절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만리장성 축조보다 어려웠다는 거대 토목공사 싼샤댐의 설계자 장샤오형은 극심한 반대를 고마워한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97년 싼샤댐이 완공됐을 때 “반대한 사람이 없었다면 위대한 일을 결코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반대파들이 집요하게 반대했기 때문에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촛불정부의 상당수 개혁정책이 자부심과 달리 삐걱거리거나 부작용이 만만찮은 까닭을 찬찬히 곱씹어보면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하는 국회’를 표방한 21대 국회에 첫발을 들여놓은 초선의원들의 ‘처음’은 명암이 엇갈린다. 몇몇 야당의원들은 낡은 관행을 깨고 산뜻한 바람을 일으켰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나 열린민주당 소속 초선의원들은 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표현처럼 ‘거수기’라거나 정부 방패막이라는 조롱을 들어야 했다. 심 대표는 임대차 3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초선의원 151명(전체의 과반)이 처음으로 경험한 임시국회 입법과정에서 여당 초선의원들은 생각이 다른 야당과 대화와 타협보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배우지 않을까”라고 쓴소리를 냈다.


 조정훈 시대전환당 의원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조정훈 의원만큼만’이라는 상찬을 얻을 정도로 ‘지극히 당연한’ 신선미를 풍겼다. 범여권인 더불어시민당 소속으로 당선한 조 의원은 문재인정부의 핵심 정책인 ‘한국판 뉴딜’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조정훈 의원>

  그는 한국판 뉴딜의 일자리가 ‘쓰레기 같다’며 예의를 갖춰 경제부총리를 몰아붙였다. 국무총리에게도 목청을 높이지 않은 채 ‘8월 17일 임시공휴일’이 중소기업 직원, 일용직에는 실효성이 없다고 따져 갈채를 받았다. 조 의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호칭 혁명’을 단행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보좌관들에게 ‘의원님’ 대신 ‘정훈님’이라고 부르게 한 것이다. 호칭을 수평적으로 바꾼 것은 특권 누리기에 여념이 없던 국회 관행을 부수는 첫걸음과 같다.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의 국회 본회의 5분 발언은 ‘따라하기 증후군’을 낳았다. 윤 의원의 연설은 저격수로 명성을 날리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가 “(통합당이) 이제야 제대로 한다”고 칭찬했을 만큼 독보적이다. 야당이면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 장관들을 강하게 몰아붙여야만 잘한다는 게 지금까지의 틀이었다. 그의 견해가 정답이냐는 논란이 있으나 색깔론과 막말 없이도 논리적이고 호소력 있게 정부 정책을 비판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21대 국회 최연소 류호정(28) 정의당 의원은 ‘국회 복장 관례’를 깨부순 공로가 작지 않다. 사실 류 의원이 붉은색 계통 원피스를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나온 게 국회 권위에 맞지 않는다며 비난을 퍼부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그의 ‘박원순 전 서울시장 조문 불가’ 발언에 대한 불만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는 일반인들의 출근복인 청바지 차림으로 등원하기도 했다. 국회 안에선 남성 중심의 국회 관례에 경종을 울렸다는 걸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의원 배지를 거의 달지 않고, 사무실에도 보좌관들보다 먼저 나온다. 첫 법안으로 ‘비동의(非同意) 강간죄’ 발의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윤희숙 의원>


 이들과 달리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이른바 ‘조 국 키즈’ 초선의원들은 윤석열 검찰총장 퇴출이나 추미애 법무부 장관 호위대 같은 언행으로 시선을 끌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대정부 질문 때 추 장관을 향해 “연일 노고가 많으신데 저까지 불편을 드려 송구하다”라고 했다.


 최 의원은 추 장관의 ‘법무부 공지 사전유출’ 사건으로 제2국정농단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그는 당선 일성으로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검찰과 언론에 으름장을 놓았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에서 통합당 의원들이 추 장관에게 공세를 펴자 “예의를 갖춰 질문하라”며 ‘호위’ 역할을 자청했다. 김용민 의원도 흡사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은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통합당을 공격해 ‘정부 호위대’ 논란을 일으켰다. 이 의원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한 대정부 질문 취지와 다른 발언을 이어가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며 본회의장이 난장판이 됐다. 김상희 국회부의장까지 나서 “대정부 질문에 맞는 질의를 해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소주 ‘처음처럼’은 글씨 저작권자인 진보지식인 신영복 선생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됐다. ‘우리 시대의 스승’이란 수식어가 붙은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서민들이 즐기는 대중적 술에 내 글씨가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라면서 선뜻 브랜드 이름 사용을 승낙했다. 선생은 ‘처음처럼’이란 잠언집 ‘여는 글’에서 수많은 ‘처음’이란 결국 끊임없는 성찰이라고 했다. 거대여당 독주라는 따가운 시선을 받는 것도 모자라 새내기 의원들까지 더 낡은 행태를 보이는 것은 환골탈태를 내세운 국회를 무색하게 만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악수만 하고 끝나는 G7, G20 정상회의는 그만두고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10개 나라 회의체 D10(Democracies10)으로 바꿔라.’ 2013년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과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달아 이런 주장을 들고나왔을 때는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그때 D10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호주 한국에 유럽연합(EU)을 포함한 것이었다. 한국이 회원국으로 언급됐으나 당시 박근혜정부나 한국 언론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해 6월 북아일랜드에서 열린 G7+러시아 정상회의를 앞두고 ‘G8은 잊어라. 이제는 D10시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G8보다 더 단단한 민주주의 동맹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경제적 갈등이 혼재하는 G8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이유를 댔다. 타임은 그해 9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직후 D10 회의체를 제안했다. 경제 규모와 민주주의 성숙도에서 격차가 큰 G20은 화급하고 민감한 정치·군사적 국제 현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실패를 반복한다는 게 대안의 사유다.

                                                                   


 7년 전 조명받지 못하던 D10의 실현 가능성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9월로 연기된 G7 정상회의에 한국 호주 인도 등을 초청하고 싶다는 뜻을 천명한 게 첫번째 계기가 됐다. 폼페이오 장관도 23일 캘리포니아주 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연설에서 ‘생각이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새로운 동맹체’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D10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으나 D10 구성의 필요성을 주창해온 지도자들과 언론의 논리를 그대로 들고나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달 ‘G7은 잊어버리고, D10을 만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책임 공방, 홍콩 국가보안법 갈등, 중국의 소수민족 인권 탄압 등 현안에 대해 G7과 G20이 아무런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D10은 민주주의의 가치와 세계평화에 대한 신념을 공유하는 신뢰 동맹체여서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내다본 것은 7년 전의 주장과 거의 같다. 다른 점은 회원으로 EU 대신 인도가 들어간 것이다.


 이보다 앞서 존슨 영국총리는 지난 5월 말 중국 화웨이를 대신하는 5세대 이동통신(5G) 장비 공급업체를 찾기 위해 ‘D10 동맹’ 구성을 제안했다. 영국이 주도하는 5세대 이동통신용 D10은 기술적인 협의체이지만,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의 G7 추가 초청 발언과 같은 날 발표돼 사전 교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하다. D10은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당선하든 상관없이 진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7년 전부터 한국이 D10 회원국으로 거론된 것은 종합적인 국력 평가에 바탕을 두고 있음이 분명하다. 세계 대국이 되기 위한 3가지 필수요소로 생존력, 발전력과 더불어 국제적 영향력이 꼽힌다. 머지않아 한국은 선택의 순간을 맞아야 한다. 세계 주류 정치의 흐름을 타지 않으면 퇴보를 각오해야 한다. 글로벌 차원의 경쟁력은 동맹체를 떠나서는 축적되기 어렵다. 한국을 포함한 G7 확대 개편에 일본이 견제구를 던지고 있으나 끝내 막지는 못할 게다.


 한국의 고민은 D10이 궁극적으로 민주국가 진영의 중국 견제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포린폴리시는 D10이 반중국전선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으나 미국의 속내는 이미 드러나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새로운 민주주의 동맹이 중국 공산당의 패권 전략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급격한 부상으로 세계는 이미 ‘경제 냉전’으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말하는 경제 제1법칙은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말이다. 중국은 이미 반(反)화웨이 전선에 대응해 맨큐의 제1법칙을 경고장에 담았다. 5G 선택도 국가 간 문제를 배제할 수 없지만, 세계 최고 지도자들의 회의체인 G7과 G20을 대체하려는 D10은 차원이 다르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선택할 수 있는 만만한 카드는 없다. 국익을 사안별로 나눠 원칙을 정해 일관성 있게 대응하는 방법이 가장 현명할지도 모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인권과 시민운동의 상징이 맞은 비극적인 결말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박원순’이라는 이름은 인권과 시민운동을 빼놓고 호명할 수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인권변호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암울하고 참담했던 1980년대 인권변호사로서 부천경찰서 권인숙 성고문, 박종철 고문치사 같은 야만적 인권 유린 사건의 피해자 변론을 맡아 민주주의 수호에 앞장섰다. 참여연대·아름다운재단·희망제작소 같은 시민단체를 주도적으로 세워 시민운동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것도 박원순의 몫이었다. 낙천·낙선 운동, 소액주주 운동을 비롯한 혁신적 프로그램은 시민운동의 차원을 높이고 영역을 넓혔다. 3차례 연임한 서울시장으로서도 균형발전 도시재생 복지 등 실질적인 생활 행정으로 승화시켰다.


 무엇보다 그는 평생토록 여성 인권 옹호자로 기억돼왔다. 1993년 한국 1호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신모 교수의 우 조교 성희롱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아 ‘아이콘’으로 떠올랐다. 이 사건은 성희롱도 명백한 범죄행위임을 각인시킨 한국 최초의 직장 내부 성희롱 소송으로 유명하다. ‘성희롱’(sexual harassment)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법률가 캐서린 매키넌 미시간대 로스쿨 교수가 1979년 만든 새로운 개념이다. 박 변호사는 이후에도 여러 성폭력 사건을 맡아 피해자를 도왔다.


 서울시장 재임 때도 모든 정책을 성평등 관점에서 추진했다. 스스로 “감히 페미니스트라고 자처한다”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방정부 가운데 최초로 성평등위원회를 설치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모든 예산에 성인지적 시각을 반영하고, 성평등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2019년 1월에는 성평등 문제를 보좌하는 ‘젠더특보’를 시장실 직속으로 신설하기도 했다.

                                                                          

   
 놀라운 반전에는 이처럼 여성 인권을 역설하고 실천해온 자신의 삶이 송두리째 부정될 수 있다는 중압감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삶의 마지막 장면에서 성추행 고소 사건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그의 발자취가 부정적 이미지로만 덧칠되는 것은 안타깝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와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에 이은 지방정부 수장의 의혹이어서 부가적인 파장과 정치적 논란을 낳는다. 올곧게 살아왔다고 여긴 박 시장마저 성적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남성 고위공직자의 ‘성인지 감수성’이 또다시 숙제를 남겼다.


 전직 비서였던 여성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한 일로 말미암아 흔히 일컫는 ‘권력형 위력’에 초점이 모인다. 절대적 인사권을 가진 지방자치단체장의 위상과 잇단 성추행 사건이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꾸준히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음에도 지자체장들의 잇따른 일탈이 막강한 권력에서 비롯된다는 진단은 정치권 모두가 새겨들어야 한다. 공교롭게도 진보 진영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잇달아 연루되는 현상에 대한 성찰은 필수불가결하다.

                                                                      


 한국의 50~60대 남성들, 특히 갑의 위치에 있는 이들이 사회적 빨간불을 심각하게 내면화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부쩍 유행어처럼 등장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용어를 귀담아듣지 않거나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다. 권한이 막강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에게 ‘성인지 감수성’을 높일 수 있는 ‘성평등과 인권교육’을 필수과목으로 지정해 봄직하다. 이미 대학에서는 몇년 전부터 누구든 ‘성평등과 인권교육’을 해마다 반드시 이수하고 정해진 시험 점수를 받아야 한다. 성평등 인권교육 프로그램을 보면 기성세대들이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까지 생생하게 감전된다.


 시대변화는 개인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에만 맡겨 놓을 단계를 넘어섰다. 정부나 정당에서 부적절한 성적 언행을 눈감아주는 행태도 중지돼야 한다. 상징적인 인물이 추문에 휘말리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2차 피해가 확산하는 현상도 본질을 흐리는 요인의 하나다.

 

  일부에서 “여성 비서를 고용하지 말자”면서 ‘펜스룰’(Pence Rule)을 들먹이는 것도 편견을 부추긴다. ‘펜스룰’은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하원의원 시절 “아내를 제외한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지 않고, 아내 없이는 술자리에 가지 않는다”고 천명한 데서 유래했다. 성인지 감수성 결여의 피해자는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 됐다. 성별과 관계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여성과 무작정 거리를 두려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