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러시아 여행작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중년 남성 둘이 석 잔의 커피값을 내고 “한 잔은 소스페소”라고 말한 뒤 두 잔만 마시고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이어 들어온 네 명의 여성도 다섯 잔의 커피를 주문하고선 “하나는 소스페소”라고 했다. 궁금증을 견디다 못한 작가가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소스페소 커피가 뭐죠?” 주인은 잠깐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옮겨 ‘올해의 번역상’을 받은 작가 코스튜코비치는 카페 주인이 답을 주기 전에 궁금증을 풀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들어와 “여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나요?” 하고 묻자 카페 주인은 “네!” 라는 대답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맡겨둔 커피’라는 뜻을 지닌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는 나폴리만의 독특한 온정이었다. 어렵게 살아도 커피 한 잔은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커피 한 잔도 마시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누군가 짜낸 지혜가 ‘소스페소 커피’다. 여분의 커피 값을 치른 후 영수증을 가게에 비치된 통에 놓아두거나, 창문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는다.

                                                                              

  그 영수증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어르신이나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주로 주문해 마신다. 가게 입구에는 ‘소스페소 커피’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나폴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시작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커피값이 싸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지만, 두 잔 값을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부담되면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고 ‘나눔’이 지속되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던 중 세계 인권의 날인 2010년 12월 10일 이탈리아에서 ‘소스페소 커피 네트워크’란 조직이 만들어진다. 나폴리에 온 관광객들도 이 흥미로운 운동에 동참했다. 나폴리에서는 소스페소 운동이 피자,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식사와 책 나눔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나눔은 이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다양한 음식의 1+1 나눔 운동으로 승화하는 추세다. 캐나다에서는 ‘맡겨둔 식사(suspended meal)’도 등장했다. 입소문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스웨덴, 영국, 불가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지에서도 흡사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구시 수성구의 수성아트피아가 2013년 공연 객석을 기부하는 ‘맡겨둔 티켓’ 운동으로 변형해 펼치기 시작했다. ‘미리내 가게’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운동은 돈을 미리 낸다는 뜻과 은하수의 순우리말 ‘미리내’의 별처럼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중의적으로 담겼다. ‘미리내 가게’는 음식점, 학원, 목욕탕, 미용실, 복싱 클럽 같은 다양한 업종으로 넓혀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익명의 동참자가 많아졌음은 물론이다.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사회적 도움이 간절해지는 계층이 폭증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빈부 격차를 결정적으로 키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크고 오래 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시 짜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게 분명하다.


 ‘맡겨둔 커피’를 본뜬 1+1 나눔 운동이 전국적이고 다양한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몸이 열 개면 좋을 택배 기사나 납입금 채우기에 힘든 택시기사를 위한 설렁탕 한 그릇 나눔은 가뜩이나 힘든 음식점 자영업자들까지 돕는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생일을 맞은 소년소녀 가장에게 동네 빵집의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 책 살 때 서점에 맡기는 한 권의 책 티켓은 젊은이들의 독서와 출판사의 숨통을 틔워 주는 일거양득이 된다.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적은 액수로 큰 뜻을 나눌 수 있는 곳과 방법은 널려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 SNS 운영자들이 캠페인을 돕고 가게들이 호응하면 ‘카페 소스페소’처럼 사회적 체온을 따사롭게 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악용하는 얌체족을 걱정을 목소리도 있겠지만, 작은 부작용은 극복해야 한다. 특정 인물과 상황을 지정해서 나눔을 실천해도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게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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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전체로 번진 코로나19는 모든 나라의 정부와 시민의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대중의 공포를 먹고 사는 코로나19는 자연스레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국민 수준을 저울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던 확진자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방역 당국의 눈물겨운 투쟁과 더불어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해외에서 한국의 발 빠른 방역작업과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한결같이 주목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해외 주요언론은 한국의 시민의식을 아낌없이 호평한다.


 해외 주요언론은 최초 발병국이자 최다 발병국인 중국과 차별화한 한국의 대응을 롤모델로 꼽는다. 이들은 무자비할 정도로 강제적인 중국의 확산저지 작전과 달리 한국에선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이 효험을 보고 있다는 점에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전체 확진자의 대다수가 나온 대구를 ‘도시 봉쇄’ ‘이동 통제’ ‘제재’ 같은 조치 없이 시민들의 자제로 관리하는 게 놀라워 보이는 것 같다.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가 북부 지역에 내렸던 봉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는 것과 사뭇 대비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국인들은 나라 밖에서 민주적 시민의식의 표상으로 불린다. 대구에서 의료 봉사를 이어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대구시민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높은 점수를 준다. 모임을 취소하고 종교 행사를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도 모두 자발적이다. 거의 모든 건물에 손 소독제가 자발적으로 비치되고, 열화상 카메라로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세계인의 주목거리다.


 모범적인 자가 격리와 다양한 활동으로 코로나19 확산과 싸우는 시민들도 박수를 받을만하다. 울산의 24번째 확진자는 귀감 사례였다. 양성 판정을 받은 이 30대 여성은 조모상을 당하자 자기 승용차로 집단감염 중심지인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장례식을 마친 후에는 가족이 함께 사는 자택이 아닌 원룸으로 가 대부분 시간을 홀로 보냈다.


 온라인상의 ‘마스크 안 사기 운동’도 화제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지속하자 취약계층에 구매 기회를 양보하자는 취지다. ‘악마는 제일 뒤에 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서양 속담을 떠올리며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갸륵한 마음씀씀이다. 임대료를 낮춘 ‘착한 건물주’ 같은 시민의식에 대한 칭찬도 빼놓을 수 없다.

                                                                      


 ‘승차 검진(드라이브 스루 검진)’이 세계적 표준의 하나로 꼽히는 것을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유전자’에 대입해 보는 분석도 흥미롭다. 주요 외국 방송들은 승차검진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미국의 한 국회의원은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저력이 ‘비판과 시험에 개방된 특성에서 비롯한다’는 관점이 눈길을 끈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책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덧붙여졌다. 실제로 한국은 올해 초 발표된 민주주의 지수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정치인들이 점수를 까먹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일본보다 높고, 심지어 미국에도 앞선다.


 소수이지만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 시민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에게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발견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이 벌어지던 때에 1박2일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확진자가 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강해이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방역의 주무 부처다. 자가격리 대상자인 대전의 한 군인은 거주지 부근 마트와 의원을 제멋대로 방문하기도 했다. 대구의 한 구청 공무원이 자가격리 중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한 확진자는 마스크 구매 대열에 섞여 있다가 들통났다. 시민들의 분투에 힘을 빼는 일이다.


 끊이지 않는 일부 개신교회의 오프라인 예배 강행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또 다른 위험요소다.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언론사와 정부 부처 명의로 유포하는 악의적인 수법으로 코로나 19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세력들도 방역의 장애물이다. 한풀 꺾였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함께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한층 절실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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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天災)는 단합을 불러오고 인재(人災)는 분란을 초래한다고 한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지진·홍수·가뭄 같은 자연현상으로 재해가 닥치면 우선 한마음으로 뭉쳐 재난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사람이 낳은 재앙은 책임을 놓고 다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놓고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코로나19 슈퍼 전파자가 ‘중국이냐, 신천지교냐’의 논쟁으로 인해 화급한 방역전선에 힘이 집중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서 방역 당국의 사투조차 빛이 바랠 정도다.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은 여전히 중국인 입국금지가 근본대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전파 초기라면 몰라도 방역당국이 지역민에 의한 감염 확산 사실을 역학조사로 입증하고 있음에도 우기다시피 하는 것은 순수성을 의심받기 쉽다.


 실제 2월 4일부터 중국인 특별입국 절차를 시행 중인데다 그 가운데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중국인 전면 차단이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건 정부만의 견해도 아니다. 물론 정부의 초기 대처방법에 관한 잘잘못과 책임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과정은 나중에라도 필요하다.

                                                                          


 신천지교(공식명칭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가 코로나19 대량전파의 주원인이라는 점은 대부분 국민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외국의 주요 언론도 하나같이 한국의 돌연한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2월 18일 31번 확진자부터 폭발한 신천지교단에서 찾는다. 그런데도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 신천지교단에 조사협조를 촉구하거나 당부하는 말을 아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신천지교인의 연락두절로 방역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특정 교단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당 대표가 특정 교단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면 정통과 이단 같은 종교 프레임으로 엮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당 관계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온적인 태도는 외려 여권 열혈 지지자들의 공격소재가 됐다. 지금 유튜브에서는 신천지교와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관계를 의심하는 주장이 넘친다. 급기야 미래통합당이 새누리당의 당명을 자기가 지어줬다고 자랑했다는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게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 중국인 입국금지가 코로나19 확산저지 비책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모습도 도드라진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는 정부를 융단폭격하듯 비난하는 반면 신천지교단에 대한 당부의 의견기사를 한번도 싣지 않는 편벽성을 드러낸 언론도 있다. 힐문하는 자세도 강파르고 표독한 언사를 깡그리 동원한 듯 격정적이다. 미운 사람이 당한 불행을 고소하게 여길 때 쓰는 ‘잘코사니’라는 말이 연상되곤 한다. 보수진영의 편벽성은 신천지교의 책임론이 부각될수록 정부의 방역실패에 면죄부를 주거나 공격소재의 고갈을 가져올 수 있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상당수 개신교 등이 교단 차원에서 미사 법회 예배를 전면중단한 것과 달리 일부 교회가 정부의 자제요청에 호응하지 않은 것도 분란 요인의 하나다. 보수정당과 일부 언론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낳는 교회의 예배 자제에 대한 권면도 일절 하지 않는다. 지지층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밀폐된 공간 예배의 위험성은 신천지교가 뼈저리게 입증했다. 조호진 시인의 ‘아멘’이라는 시가 새삼스레 가슴에 꽂힌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가 아니고/ 십일조를 내지 않은 죄도 아니고/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눈 맑은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 했다.’


 정부와 여권 고위 인사들의 가벼운 언행과 일부 정책혼선이 신뢰상실과 분란요인으로 떠오르는 것도 숙제다.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생활 인프라 위기,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나선 의료진에게 부족한 보호장구 같은 것들 역시 분란의 빌미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보다 화급하고 중요한 건 없다. 여야와 진보·보수진영 가릴 것 없이 편벽과 잘코사니를 넘어서야 한다. 대구·경북을 응원하고, 성금을 보내며, 방역전선으로 자원해 들어가는 이들이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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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과 편견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닐 때가 많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은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서 명문장으로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판 칼럼 필자와 게재한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한 일은 오만과 편견이 교직된 사고의 발로로 보인다. 오스틴은 남녀 간의 애정에 대한 단상을 담았지만, 집권당의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모순으로 읽힌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주장을 펼친 글의 맥락을 보면 쓴소리에 불과하다. 민주적 정당이 쓴소리를 좋은 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의 심판을 요구한 발상은 협량의 정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겁박해 비슷한 사례를 방지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있으나, 비판적인 칼럼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되치기한 것은 프레임 전환을 노린 정치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때 지지자였던 지식인과 논객들까지 ‘나도 고발하라’며 반발한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집권당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에 대한 죽비소리다. 이 같은 민주주의 가치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의 다수가 독재자의 억압에 맞서 몸을 던져 투쟁하며 얻어낸 덕목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명만 무색하게 만들었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권의 자기 부정이라는 질타도 뒤따른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군부 독재자나 보수정권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때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유명한 말을 빼놓지 않고 인용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민주당은 고발을 취하하면서도 진솔한 반성이 없어 비난의 여진을 남겼다. 도리어 고발 취하 메시지에 칼럼의 필자가 특정 정치인 캠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혀 반대 진영에 대한 복수가 아니냐는 편협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두고 표밭을 누비는 민주당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현장의 민심 때문이었을 게다. “오만은 위대한 제국과 영웅도 파괴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어쩌다가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촛불 정부와 집권당의 협량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문제점이 상존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왜곡하고,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보면 진보정권의 도덕적 우월성에 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유재수 비리 감찰무마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의혹 사건 같은 것을 이중잣대로 재단하는 무리수가 상식을 믿는 시민을 뿔나게 했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집권층의 팬덤이다. 폐쇄적인 스타 연예인 팬덤을 방불케 하는 이들은 칼럼 고발 취하 후에도 ‘우리가 고발해줄게’란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에서 칼럼 필자와 신문 고발 운동을 벌인다. 몇몇 인사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신고를 마쳤다고 공표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이 칼럼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 아래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장 낮은 수준의 권고 조치를 내렸음에도 말이다. 지지자들이 다시 고발하면 후폭풍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층 팬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쓰는 언론인과 변심한 지식인을 마녀사냥식으로 난도질하는 지지세력이다. 조국 사태 이후 더욱 심각해진 표적 공격은 무자비하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일수록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면 집단으로 달려들어 단칼에 매도하는 양상이 실로 섬뜩하다. 신상털이를 곁들인 인신공격은 기본이다.

 

   특정 포털사이트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가 뜨면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의 공격 댓글이 달리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여기서 진보의 오도된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애정을 가진 비판적 지지자들의 마음까지 떠나게 하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여당보다 야당의 승리를 기대하는 의견이 처음으로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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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시간대학교가 있는 미국 앤아버에는 ‘실패박물관’이라는 이색적인 공간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정식 명칭이 ‘신제품 작업소(New Product Works)’인 이 박물관에 전시 중인 13만 점 이상의 실패 상품을 보러 기업경영인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찾아온다. 다양한 실패 사례에서 교훈을 얻기 위해서다. 1990년 설립된 이곳에는 마케팅 전문가이자 실패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로버트 맥매스가 40년 넘게 수집한 소비자 외면 제품이 가득하다. 미국에는 해마다 3만 개 이상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지만 80~90%가 곧 사라진다고 한다.


 미국의 조직심리학자이자 혁신 연구가인 새뮤얼 웨스트는 2017년과 2018년에 스웨덴 남부도시 헬싱보리와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에 실패박물관(Museum of Failure)을 잇달아 열었다. 여기에는 플라스틱 자전거, 할리 데이비슨 향수, 초록색 케첩을 비롯한 100여 개의 실패작이 전시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2009년 ‘실패 콘퍼런스(FailCon)’가 처음 열렸다. 실패 콘퍼런스는 그 뒤 이스라엘 텔아비브,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도 벵갈루루, 프랑스 툴루즈 등지로 퍼졌다. 핀란드에서는 해마다 10월13일 ‘실패의 날’ 행사가 열린다. 하타무라 요타로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가 21세기 초 ‘실패학’을 창시한 이후 한국 대학에서는 한동안 실패학 강의 바람이 불기도 했다.

                                                                                 


 적폐청산을 첫손가락에 꼽은 문재인 정부는 세계 최초의 ‘실패박람회’를 2018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었다. 2019년에는 광화문광장을 비롯한 4개 권역으로 넓혔다. 다양한 실패 경험을 공유하고 실패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 재도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돕는다는 게 행사 취지다.


 그런 문재인 정부가 직전 박근혜 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려운 아이러니다. 가장 중요한 일의 하나인 권력 감시와 부정부패방지 의무를 지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의 실패는 상당 부분이 평행이론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무한신뢰를 받은 민정수석 자신의 비리 의혹, 감찰 실패, 비리 적발 이후 대응방법은 하나같이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정권의 위상을 결정적으로 훼손한 점에서도 비슷하다. 우병우 전 수석과 조국 전 수석의 개인 비리 존재 외에도 민정수석의 직무 의무, 감찰 개시의 정황·조건은 손바닥을 앞뒤로 뒤집은 정도의 차이로 보는 시각이 많다.


 살아 있는 권력의 잘못을 수사하는 검찰을 윽박지르고 수사팀을 해체하는 모습도 흡사하다. 검찰개혁 명분을 감안하더라도 검찰을 무력화하고 수사를 가로막는 방법에서는 현 정부가 더 엄혹하다는 평가조차 나온다.

                                                                        


 불과 얼마 전 실패의 실상을 생생하게 목격하고 비판까지 했던 촛불 정권이 똑같은 실패를 되풀이하는 까닭을 납득하기 힘들지만, 드러나는 행태에서 유추해 볼 여지는 있을 것 같다. 우선 적폐 정권보다 도덕적 우위에 있는 촛불 정권에게 이 정도의 비리와 불법은 그리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인식이 자락에 깔린 게 아닌가 싶다. 심리학에서 ‘도덕적 면허효과(moral licensing effect)’로 일컬어지는 현상이다.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시위 구호가 “박근혜 무죄!”이듯 서초동 시위대가 “조국·정경심 무죄!”를 외치는 것도 이러한 심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흔히 들먹이는 ‘내로남불’의 이중잣대도 작용하는 듯하다. 이와 더불어 ‘우리 정권과 나에게서는 이런 종류의 비리와 불법이 결코 탄로가 나지 않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엿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권력 비리가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부에서 불거져 나왔다. 살아 있는 권력이 애써 막아서더라도 정권이 끝나면 어김없이 단죄가 뒤따른다는 걸 잊고 싶어 하는 모습 같다.


 실패학의 하타무라 교수는 ‘필요한 실패’와 ‘있어서는 안 될 실패’를 분명히 나눈다. ‘필요한 실패’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것이고, ‘있어서는 안 될 실패’는 알면서도 자만심과 부주의로 반복하는 실패를 말한다. 모든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는 아니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 답습은 ‘있어선 안 될 실패’의 전형이다. 맥매스 역시 ‘큰 실패보다 실패의 반복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실패는 감출수록 커지고 드러내면 성공과 창조를 가져온다”는 하타무라 교수의 덧붙이는 고언은 문재인 정부에 한결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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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딜레마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게 동맹안보 딜레마다. 최악의 경우 나라의 존망까지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맹안보 딜레마는 동맹 의존성이 높은 나라가 처하게 되는 안보상의 딜레마를 일컫는다. 방기(放棄)와 연루(連累)라는 상반된 위험에 맞닥뜨려 한쪽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노력이 다른 위험을 불러오는 상황이다. 동맹을 맺지 않으면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할 때 방치될지 모른다는 것이 방기의 위험이고, 동맹국을 지원해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릴지도 모르는 게 연루의 위험이다.


 대부분의 딜레마는 합리적 판단을 허용하지 않아 진퇴양난의 상황을 초래한다. 연초부터 한층 첨예해진 미국과 이란의 갈등 국면에서 미국이 한국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강하게, 그것도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있는 모습이 예사로운 건 아니다.

 

  그렇지않아도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과 북한 관광 문제로 한미 동맹 마찰이 최고조에 이른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의 최고위 관리들과 주한 미국대사까지 나서 불편한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고 있을 정도다. 중동의 맹주 이란은 석유·건설·사회간접자본 같은 경제 분야와 한류를 비롯한 문화 분야 등 다방면에 걸쳐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는 처지다.

                                                                             


 호르무즈 해협 파병에 관한 국내 여론은 반대가 우세하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정부의 지지층을 이루고 있는 진보진영에서는 파병반대 비율이 월등히 높다. 이들은 미국의 요구에 응해 파병하면 상당 수준의 국익이 걸려 있는 이란과의 관계가 나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이와는 달리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한미동맹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고, 걸프 지역을 통과하는 한국 선박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파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이럴 때를 비추어 주는 역사의 거울이 하나 있다. 곡예 같은 줄타기 외교술로 타개책을 찾아낸 조선조 광해군의 지혜는 단연 빛난다. 광해군은 선대의 어느 왕도 마주친 적이 없던 국제외교 과제를 떠안았다. 떠오르는 해였던 후금(훗날 청나라)이 조선이 하늘처럼 섬기던 명나라를 거칠게 밀어붙일 때였다. 명나라는 조선에 지원군을 요청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의 지원을 받은 조선이 거부하기 어려운 요구였다.


 하지만 후금의 힘이 워낙 강해져 명나라 편만 들었다가는 후환이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광해군은 나라의 여러 사정과 왜구가 다시 침입할 조짐이 있다는 핑계로 파병을 몇 차례 미뤘다. 명나라의 파병 요구가 점차 강경해지고, 사대주의에 찌든 조정 대신들의 채근도 거세지자 광해군은 고심 끝에 묘책을 찾아낸다. 지원군을 보내지만 싸우지는 않는다는 계략이다.

                                                                            

   광해군은 1만3000명의 병력을 파견하면서 측근들도 모르게 도원수 강홍립에게 후금군과 가급적 싸우지 말라는 밀명을 내렸다. 중국어를 잘하는 강홍립은 일단 랴오둥 명나라 진영에 가서 적당히 싸우는 척하다가 후금 지도자 누르하치에게 ‘명나라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일 뿐 당신들과 싸울 뜻이 없다’는 편지를 보내고 투항했다. 후금은 강홍립을 볼모로 잡아놓고 조선 군대를 귀국시켰다. 광해군의 줄타기 외교는 훗날 인조반정으로 빛이 바래긴 했으나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성공작이었다.


 광해군의 예지는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도 원용할 수 있다. 여러 방면에서 미국의 압력을 받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파병을 거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파병을 하되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해양안보구상(호르무즈 호위연합) 참여가 아니라 한국군의 독자활동 형태로 하는 구상이 무난해 보인다.

 

  미국 측에도 모양새 좋게 이해시키는 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강홍립이 후금에 ‘전투의사 없음’을 보여줬듯이 이란에도 파병이 두 나라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임을 자세히 설명하면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을 듯하다. 파병 한국군의 실제 활동도 사려 깊게 진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진보진영의 파병반대 여론은 남북관계 해법 같은 더 ‘큰 국익’을 위해서도 불가피하다는 점을 들어 돌파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 국민의 생명과 기업을 보호하고 한국 선박의 안전한 자유항행을 확보한다는 대의 명분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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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은 세계에서 마라톤 경기가 없는 유일한 나라다. 1974년 테헤란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을 때 개최국 이란은 마라톤 종목을 제외해 버렸다. 이란이 마라톤을 금기시하는 데는 뼈저린 역사가 깔려 있다. 마라톤이 올림픽과 국제경기 종목으로 채택되는 연원에 아테네 마라톤 평원 전투에서 고대 이란의 페르시아 제국이 참패한 악몽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 병사가 약 40㎞를 달려가 승전보를 전하고 숨을 거뒀다는 일화는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창설할 때 한 지인이 감동적인 이야기로 각색한 것이라는 설이 있긴 하다.


 무적의 정예부대로 불리던 페르시아군이 치욕적인 첫 패배를 당한 마라톤 전투는 지금의 이란인들에게도 아픈 기억으로 고스란히 전해온다. 마라톤 전투는 동서양 간의 최초 전쟁에서 동양이 패배한 기록으로도 남아 있다.


 제국을 경영한 경험을 지닌 이란의 자존심은 지금도 중동 지역의 맹주로 성이 차지 않는다. 중동 최초의 민중 혁명인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세계 최강 미국과 맞서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것도 페르시아 제국의 후예라는 자긍이 작용하고 있어서다.

                                                                               


 이란 정예부대인 혁명수비대의 영웅 거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지난 3일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사건은 이란과 미국 간의 정면충돌 개연성을 높여주고 있다. 이란이 남부 시아파 성지 쿰의 주요 사원에 붉은 깃발을 내건 것은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상징이다.

 

  이란이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복수를 끝낼 때까지 깃발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고 중동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누가 우리 아버지의 복수를 하느냐”는 솔레이마니 장군 딸의 질문에 “이란 모든 국민이 선친의 복수를 할 것이다. 걱정 안 해도 된다”라고 답했으니 보복이 불가피해 보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함무라비 법전의 정신은 이란인들에게도 흐른다.


 트럼프는 이란이 보복에 나서면 중요한 목표물 52개를 선정해 놓았다면서 더 강경한 공격을 경고했지만, 이란이 당하고만 있을 리 없다. 52곳을 설정한 이유는 1979년 이란 혁명 당시 444일간 테헤란 주재 미 대사관에 인질로 잡혔던 미국인 숫자가 52명이어서다. 아이러니하게도 트럼프는 신년 전야 파티에서 “나는 평화를 원한다. 이란이 누구보다 평화를 원해야 한다”라고 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대표로 나서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중동의 미국 관련 시설을 겨냥한 공격을 모의할 것이라는 정보가 있었다는 이유로 제거 작전의 정당성을 내세웠지만, 주권 침해와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은 피할 수 없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을 제거하는 전쟁을 개시할 때도 은닉한 대량살상무기로 테러를 지원한다는 걸 명분으로 삼았으나, 전쟁 후 조사결과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


 트럼프에게 국제법은 큰 의미가 없다. 힘이 곧 정의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그의 참모였던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미국에게 국제법은 없다”고 공언하곤 했다.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폭살 작전은 오는 11월 재선을 위한 카드의 하나라는 데 초점이 모인다. 이란과 북한에 대한 외교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이 나오자 반전 카드로 꺼내 들었다는 의미다. 앞으로 국면이 트럼프의 의도대로 흘러갈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40년 전 지미 카터 대통령도 재선을 위해 무리한 인질 구출에 나섰다가 참혹하게 실패하고 재선마저 수포로 돌아갔다.


 미국 내 여론은 전쟁 반대가 대세인 듯하다. ‘세계 3차 대전 발발을 막자’ ‘전쟁을 재선 전략으로 삼지 말라’는 구호까지 나왔다. 미국 전역 80여 곳에서 반전 시위가 벌어지고,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악몽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뉴욕시민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미국과 이란이 사실상의 전쟁상태라고 우려했다.


 9·11 테러사건 이후 미국인들이 애송하던 시가 새삼 떠오른다. 영국 출신 미국 시인 위스턴 휴 오든의 ‘1939년 9월1일’이다. 아돌프 히틀러의 폴란드 공격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날을 제목으로 쓴 시다. 오든은 히틀러를 ‘정신병을 앓는 신’으로 묘사하고 평화를 갈구한다. ‘우리의 삶을 속속들이 사로잡으며/ 분노와 공포의 물결이/ 밤낮없이/ 온 세상을 휘감는다/ 형언할 수 없는 죽음의 냄새는/ 9월의 밤을 범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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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양 역사학자들이 중국 역사에서 가장 궁금해하는 점 가운데 하나가 송나라의 쇠퇴와 멸망이다. 송나라는 당시 유럽 어느 나라도 감히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의 문명과 산업 발전을 구가하고 있었다. 저명한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송나라는 인류의 생활에 가장 적합한 왕조다. 만약 내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중국 송나라 시절로 돌아가 살겠다.”라고 했을 정도다.


 송은 나침반, 화약, 인쇄술을 세계 최초로 발명했다. 용광로, 수력방직기, 강노(剛弩), 물시계, 건축의 아치형 받침대 같은 것들도 송나라 때 처음 만들어졌다. 수력 터빈을 사용하는 조선업, 항해술 역시 탁월했다. 12만5000톤에 이르렀던 1078년 송나라 철강 생산량은 1788년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에 조금 못미쳤다고 한다.


 이 정도면 영국보다 500년 앞서 산업혁명을 이루고 남음이 있었다. 그랬다면 세계 역사의 흐름은 판이했을 게 틀림없다. 학자들은 왜 송나라가 산업혁명의 여건이 성숙했음에도 목전에서 주저앉았을까 의아하게 여긴다. 자본주의의 비조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송나라의 법률제도에서 원인을 찾는다. 그는 명저 ‘국부론’에 중국의 사법행정이 백성들의 재부 축적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고 썼다. 송의 사법체계가 공정성과 일관성을 잃어 경제성장 잠재력을 떨어뜨렸다는 의미다.

                                                                       


 또 다른 요인은 주자로 대표되는 성리학이다. 성리학이 사농공상 이념을 정착시키는 바람에 관료들은 경제적 타당성이나 효율성에는 시큰둥했다. 돈이 남아돈 송은 몽골, 금, 요나라 같은 주변국의 위협에 군사력 대신 돈으로 평화를 샀다가 결국 쇠망했다.


 송나라의 성리학을 신봉한 우리 조상들도 흡사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호머 헐버트 박사는 꼭 120년 전에 이를 너무나 안타까워했다. 헐버트 박사는 1899년 뉴욕에서 발행되던 월간지 ‘하퍼스’에 ‘한국의 발명품’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선교사로 한국 땅을 밟은 지 13년만의 일이다. 헐버트 박사는 한민족이 만든 세계 최초의 발명품으로 이동식 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 네 가지를 들었다. 한글은 세계 최초는 아니지만, 세계 문화사를 빛낸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기고문은 한국의 발명품을 국제사회에 소개한 최초의 글이기도 하다.


 현수교를 한국인이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얘기는 생소하지만,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서애 류성룡이 ‘징비록’에 자신의 아이디어로 임진강에 현수교를 지었다는 기록을 남겼다. 일본군을 추격하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임진강에 다다랐을 때 명나라 군사들이 안전한 다리가 없으면 강을 건너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당시로선 기상천외한 현수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남미 안데스산맥에 밧줄로 만든 다리가 먼저 있었으나 다리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헐버트 박사의 견해다. 폭발탄도 임진왜란 때 세계 최초로 발명됐으나, 비법은 남아 있지 않다.

                                                                      


 헐버트는 놀라운 발명의 성과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사장(死藏)한 것을 한탄했다. 7개 국어를 구사한 언어학자이자 역사학자이기도 했던 헐버트는 무엇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인 한글을 오래전에 발명해 놓고도 한자에 매몰돼 쓰지 않은 것을 탄식했다. 그는 당시 새로 탄생한 중화민국에 한자 대신 한글을 쓰라고 제안하고, 일본도 자신들의 문자로 한글을 채택했다면 참으로 현명한 처사였을 것이라고 했을 만큼 한글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한국에 온 지 4년 만에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출간한 천재교육자이기도 하다.


 근대 이후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상품 가운데 한국에서 최초로 발명된 것도 적지 않긴하다. MP3 플레이어, 커피믹스, 우유 팩, 쿠션팩트, PC방, 밀폐용기 반찬통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에 이해관계집단의 발목잡기와 행정·입법부의 눈치보기 때문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들이 숱하다. 골든타임을 놓치면 치명상을 입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인공지능(AI)·빅데이터 산업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우여곡절 끝에 이달 초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었으나 정쟁에 휘말려 있는 상태다. ‘타다 금지법(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은 외국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작지 않다. 세계 최고의 의료 빅데이터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도 경직성과 무관하지 않다. 각종 규제혁신안도 마찬가지다. 미래의 먹거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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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세계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퍼즐 게임의 하나가 ‘바바 이즈 유(Baba is you)’다. ‘바바 이즈 유’의 인기는 ‘퍼즐 게임의 신기원’이라고 불릴 만큼 폭발적이다. 2017년 당시 23살이던 핀란드 대학생 아비 타케아리가 개발한 뒤 올해 초 완성도를 더욱 높여 극찬받는 분위기다. 인디 게임계를 강타한 비결은 플레이어가 경기 도중 규칙을 바꿀 수 있다는 묘미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난도가 급상승해 머리에 쥐가 날 정도라고 한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일찍이 “게임을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꿀 수 있다고 세계의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친다.”라고 했다. 불리하면 룰을 바꾸라는 역발상과 같다. 경기 규칙을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바꾸면 승리는 떼놓은 당상이나 마찬가지다. 어느 사회든 자신이 불리하면 룰을 바꾸는 규칙파괴자가 등장하곤 한다. 그렇지만 사이버 게임이 아닌 현실 경기 도중 규칙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차원을 넘어 독재적인 발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같은 동맹국에 느닷없이 방위비를 몇 배씩 더 내라고 강박하는 행태는 경기 도중 룰을 바꾸는 것과 다름없다. 한국에 현재보다 5배를 올려달라는 트럼프의 요구에는 미국 내에서조차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다.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에서 한국의 부담 범위는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 건설비, 군수 지원비까지다. 그런데도 트럼프행정부는 이 규칙을 한참 벗어나 주한미군 인건비,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비용까지 포함하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현재 연간 10억 달러를 50억 달러(6조 원)로 늘려달라는 것은 생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억지가 반 벌충’이라는 속담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방위비분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무역 관세 보복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을 최근 나토 창설 70주년 정상회의 때 놓은 바 있어 한국에도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감축으로 8.9% 삭감된 2005년 6차 협정을 제외하고 해마다 2.5~25.7% 범위 안에서 증액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중에도 같은 규칙을 적용해 왔던 것은 미국 측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은 1991년 1차 협정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모두 10차례 방위비분담 특별협정을 개정했다.

                                                                  

  
 지난 4일 영국 런던에서 막을 내린 나토 70주년 정상회의 때 트럼프는 29개 회원국 가운데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을 방위비로 쓰고 있는 8개국 정상들만 초청해 별도의 오찬 행사를 여는 협량을 드러냈다. 게다가 나토 동맹국들이 이미 GDP 대비 방위비 비율을 2024년까지 2%대로 늘리겠다고 약속한 상황에서 “4%는 돼야 한다”며 터무니없는 증액을 요구했다. 미국의 방위비 인상 압박이 70주년이라는 뜻깊은 나토 정상회의의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는 비난이 쏟아진 것은 경기 도중 규칙을 바꾼 트럼프 탓이다.


 트럼프 특유의 협상술이 녹아 있는 방위비 압박으로 ‘정박(닻내림)효과’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도 한다. 처음에 비싼 값을 부른 뒤 소액을 깎아주는 정박효과 협상술은 같은 상대가 첫 번째 협상일 때는 유용한 수단이 될지 모르나 두 번째부터는 잘 통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가 간 외교에서는 중장기적인 신뢰를 훼손할 여지가 크다.


 무리한 방위비 요구에 미국 의회와 언론이 동맹을 방어하는 주한미군을 마치 돈을 받고 파견하는 용병 같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지만, 트럼프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다. 한국으로서는 막무가내 압박에 쉽사리 굴복하기보다 과잉 청구의 불합리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해 나가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GDP의 2.5% 수준인 한국의 국방비 지출은 이미 미국 동맹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은 부자이기 때문에 주한미군 주둔비를 대폭 올려야 한다는 트럼프의 수사학은 설득력이 없다. 트럼프가 싫어하는 뉴욕타임스의 충고처럼 동맹을 돈으로만 바라보면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미군 장갑차의 중학생 효순·미선 압사 사건 이후 거셌던 반미 감정이 되살아날지도 모른다. 인기 사이버 게임이 아닌 현실 외교에서 경기 도중 규칙을 바꾸는 것은 반칙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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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비주류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백악관의 주인이 된 사례가 적지 않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모두 젊은 피가 끓는 비주류 40대였다. ‘앵글로색슨계 백인 신교도(WASP)’가 주류인 미국에서 비주류 가톨릭신자였던 존 F. 케네디가 40대 초반에 대통령이 된 것도 비슷한 예다.


 내년 대선의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 대항마 선출 경선과정에서도 70대 민주당 후보 3강 구도를 깨트리고 돌풍을 예고한 30대 성소수자 후보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내년 2월 초 공식적으로 막이 오르는 민주당 예비선거를 앞두고 조 바이든(77)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78) 상원의원, 엘리자베스 워런(70) 상원의원의 3강 후보가 아성을 구축하고 있었다.


 첫 경선지이자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주와 다음 경선지인 뉴햄프셔주에서 37살에 불과한 피트 부티지지 후보가 지난주 여론조사 선두로 치고 나갔다. 아이오와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여론조사에서 부티지지는 25% 지지율로 ‘3강 후보’를 모두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두 번째 경선지 뉴햄프셔주에서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도 그는 역시 25% 지지율로 3강 후보를 꺾었다.

                                                                            

                                    
 부티지지가 심상찮은 조짐을 보이는 것은 트럼프를 꺾을 대안찾기 고민에 빠진 민주당 유권자들의 심경 변화로 읽힌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민주당 지지 유권자들 가운데 좌파 선명성 경쟁에 몰두하는 고령 후보 3명이 본선에서 트럼프를 꺾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표의 확장성을 지닌 온건진보 후보를 원한다는 뜻이다.

 

  부티지지는 진보적 가치를 공유하면서도 이념에 치우치지 않는 정책을 내걸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최근 좌편향 전략으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고 경고했다. 연설 능력이 탁월한 부티지지는 ‘진보적 가치를 보수적 언사로 설파한다’는 호평을 받는다.


 3강 후보들과 다른 점은 현안에 접근하는 방법론이다. 부티지지는 오바마의 유산인 전국민건강보험제도(오바마케어)를 선호하지만 점진적인 확대 적용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법인세 인상과 자사주 매입 금지 등을 내세운 과격한 샌더스와, ‘오바마케어’보다 한발 더 나아간 ‘중산층 증세 없는 전국민의료보험’과 징벌적 부유세 도입을 공약으로 내놓은 워런과 차별화한 정책이다.

                                                                          


 부티지지는 인디애나주 인구 10만 명의 소도시인 사우스벤드 재선 시장이 경력의 거의 전부인 데다 동성애자라는 약점을 지녔지만, 엘리트 코스를 밟은 애국적 밀레니얼 세대로 평가받는다. 명문 하버드대(역사·문학)를 거쳐 로즈 장학생으로 선발돼 옥스퍼드대에서 학사 학위(정치·경제·철학)를 받았다.

 

  어학에도 천재적인 소질을 지녀 프랑스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노르웨이어·몰타어·아랍어·다리어 등 7개 외국어를 구사한다. 해군 예비군 정보관으로 복무하는 동안 7개월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 생활도 했다. 독실한 성공회 신자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일부 주류 신문은 ‘게이인데 게이스럽진 않다’는 표현을 쓴다.


 그가 시장을 맡은 뒤 실업률을 11.8%에서 4.4%로 낮추는 성과를 냈다. 부티지지는 후보 토론회에서 ‘경험 부족’에 집중 공격이 가해지자 “지금 이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의 워싱턴 경력만 합쳐도 100년이 넘지만, 그래서 지금 이 나라가 어떻게 됐느냐”고 받아쳤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정치인을 구성하는 필수 요소들을 가져다가 실험실에서 적절히 배합하면 부티지지가 나올 것 같다’고 극찬한다.

                                                                         


 부티지지는 2015년 사우스벤드 시장에 출마하면서 동성애 정체성을 밝혔다. 2018년 현 남편인 교사 채스턴 글래즈맨과 결혼했다. 미국은 2015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동성혼을 합법화한 나라에 합류했다.


 그는 소수자들을 대표하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점을 앞세우고 있으나, 소수자 정체성이 극복해야 할 역설적인 관건의 하나다. 역시 소수자인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들의 마음을 사는데 고전하고 있어서다. 전국 지지도에서 4위에 머무는 것도 이런 영향이 어느 정도 미쳤다. 부티지지가 모든 것을 극복하고 백악관에 입성한다면 미국 최연소 대통령이자 최초의 동성애자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쓴다.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이긴 하지만,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에 이은 성소수자 정치인의 용기 있는 도전임에 틀림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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