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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부끄러움 모르는 파면 대통령과의 절연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박완서의 단편소설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는 수치심을 궁구한다. 주인공은 학생 시절 6·25 전쟁을 겪는다. 피난 간 마을에 미군 부대가 생기자 많은 사람이 미군과 가까이 하고 싶어한다. 주인공의 어머니도 딸에게 양갈보짓이라도 하라고 들볶는다. 주인공은 이를 피해 이른 결혼을 선택한다.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다 세번 결혼하게 된다. 어릴 때 유난히 부끄러움이 많았던 주인공은 그러는 사이에 부끄러움을 잊어버린다. 그는 고위층 부인이 된 친구를 만나 서울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다니게 된다. “여러분, 이 부근부터 소매치기를 조심하십시오.” 일본어로 안내하는 가이드의 말을 알아듣곤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그는 문득 학원 간판 밀림 사이에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라는 깃발을 휘날리고 싶어 한.. 더보기
최악 산불에 음모론 진영싸움이라니 영남지역의 동시다발 초대형 산불은 한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재난으로 기록될 것 같다. 이번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9명이 크게 다치는 등 모두 75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밝혔다. 현재까지 피해 면적은 서울의 80%인 4만8000여헥타르에 달한다. 국가유산 주택 공장 같은 시설물 5000여곳이 불에 탔다. 대형산불은 이상기후로 말미암아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뉴노멀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캐나다 스페인 호주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도 최근 산불재앙을 겪었다. 재난은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 재난은 인간의 힘을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재난극복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각계각층에서 전해지고 있다는 소식이 반갑기 그지없다... 더보기
‘애국시민’의 아이러니 가슴 뭉클한 ‘애국시민’이란 말이 아스팔트 도로에서 고생한다. 속절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 이후 ‘애국시민’을 소환하자 그예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윤 대통령은 지난 정초 관저에서 ‘실시간 유튜브를 통해 애쓰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자유와 민주를 사랑하는 애국시민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시민을 넘어 여당 현역 국회의원들까지 이 대열에 합류한 지 오래다. 지난 주말에도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한 집회에서 “애국시민이 있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왔다. 가짜 내란 몰이로 불법구금과 불법수사로 헌법과 법치가 무너졌다”고 억설(臆說)했다. 헌법과 법률을 심대하게 어겨 심판대에 오른, 정의롭지 못한 대통령을 옹호하는 이들이야말로 ‘애국시민’이라는 .. 더보기
트럼프 한 달, ‘미국을 다시 저열하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한달은 지구촌을 공포와 경악, 혼란과 당혹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일로 점철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막상 현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 동안 나름대로 자유주의 국제질서와 규범을 주도해왔다고 자부한다. 이를 트럼프가 일거에 허물고 약육강식의 아프리카 사파리처럼 바꾸고 있다는 세계인의 공분이 거세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73가지 행정명령(각서·포고문을 포함하면 111개)에 서명해 한달 만에 무려 8년 치에 해당하는 개혁을 추진했다고 자랑했다. 트럼프 발 ‘퍼펙트 스톰’의 위력은 집권 1기 때와 비교불가다. 행정명령으로 가장 먼저 한 일은 파리기후변화협약과 세계보건기구,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구호기구와 인권이사회 같은 국제기구 탈퇴다. .. 더보기
저급해진 한국의 보수 ‘보수세력은 있어도 보수주의는 없다.’ 한국 보수진영이 광복 이후 80년 동안 벗어나지 못하는 아킬레스건 같은 말이다. 한국 보수진영은 철학이 빈곤한 반면에 목소리는 크다. 사회 주류를 자처하는 보수 엘리트 계층은 사상적 무장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의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그저 국가 발전주의와 반공이면 충분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국면에서 한국 보수는 한결 천박하고 저급해졌다. 품격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보수의 우두머리인 윤 대통령은 위신 따위는 깡그리 내팽개치고 온갖 비열함과 치졸함만 노정하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궤변·요설·기행의 목회자와 아스팔트 극우세력에 휘둘려 ‘아무말대잔치’에 합류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민주적 문화강국으로 .. 더보기
윤석열의 ‘정신승리’에 멍드는 나라 앞날 현대 중국문학의 아버지 루쉰은 소설 ‘아큐정전(阿Q正傳)’에서 어떤 상황도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합리화하는 아큐를 조롱했다. 아큐는 자기가 당한 수모와 무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려 자신이 우월하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그는 동네 깡패에게 얻어맞아도 육체적으로는 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저들이 나보다 수준이 떨어지므로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정신승리법’을 구사한다. 오늘날 흔히 쓰는 ‘정신승리’라는 낱말은 여기서 유래했다. 정신승리는 아큐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다. 정신승리는 아큐를 더욱 고립시키고 현실을 외면하게 만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죄 수사 출석요구와 체포영장 집행에 응하지 않고 관저에서 장기농성 중인 것은 전형적인 ‘정신승리’의 발로다. 여기에 역술인 무속인 극우.. 더보기
윤석열 엄벌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는 언제나 반동이 버티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위헌·불법 계엄령은 피 흘려 쌓아 올린 민주주의에 대한 반동적 폭거다. 그런데도 그는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행위”라고 강변한다. 자유민주주의와 헌정의 기본질서를 파괴해 놓고선 외려 지키려 했다고 우긴다.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서겠단다. 전형적인 혹세무민(惑世誣民)이다. 끝까지 비루한 변명으로 국민을 호도하려 든다. 측근 대리인을 내세워 내란사태를 ‘소란’이라고 주장한다. 소가 웃을 일이다. 나라 밖에선 45년을 후퇴할 뻔했다고 혀를 차는데도 본인 입으로 “두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느냐”고 되레 반문한다. 국격과 나라경제를 망가뜨려 놓고 뻔뻔하기 그지없다. 다음날엔 대리인이 “(주요 인물) 체포의 ‘체’ 자도 꺼낸 적이 없.. 더보기
모범 민주국가의 황당한 추락과 회복력 미국 언론인이 자기 나라 국무부장관에게 던진 질문 하나가 한국인들에겐 참담하게 다가온다.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한 것은 실수였을까요?”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다음날 마이클 번바움 워싱턴포스트 기자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기자 질문은 지난 3월 서울에서 열린 제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가리킨다. 군사독재정권에서나 있을 법한 비상계엄령을 발동한 윤 대통령이 (지난 일이지만) 110여 국가가 참석하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주최할 자격이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블링컨 장관이 “한국은 민주주의와 민주적 회복력이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례 중 하나”라며 “한국이 그 모범을 보여주기를 계속 기대할 것”이라고 안도하긴 했다. 미국이 아닌 나라가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 더보기
양극화 해소? 병 주고 약 주나 느닷없다는 느낌부터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임기 후반부 핵심 국정목표로 ‘양극화 해소’를 들고 나와서 말이다. 2년 반 동안 양극화를 심화하더니 인제 와서 타개하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22일)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임기 후반기에는 양극화 타개로 국민 모두가 국가 발전에 동참하도록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윤 대통령은 임기 후반부 첫날인 지난 11일 수석비서관회의 때도 양극화 해소를 천명했다. 대통령 지지율이 최저치를 기록하자 위기탈출 방안으로 내놓은 카드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윤 대통령이 양극화 불만이 표출됐던 미국 대선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는 말도 들린다. 양극화의 불만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 요인이라고 보는 듯하다. 한국의 양극화는 고소득층과 저소득층, 대기.. 더보기
윤석열의 아킬레스건, 공감능력 부족 권력과 공감의 관계는 얄궂다. 공감능력은 권력을 만든다. 공감능력이 떨어지면 권력이 위기를 맞는다. 지도자가 되고 권력을 얻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지게 된다고 뇌과학자와 심리학자들이 한목소리로 얘기한다. 권력을 쥐면 뇌가 바뀌기 때문이다. 회사의 팀장 같은 작은 권력에도 취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기 어려워진다. 사람은 대개 사회적으로 성공하려고 ‘거울뉴런(mirror neuron)’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다른 사람과 같은 감정을 느끼는 능력을 키운다. 거울뉴런은 모방과 공감을 가능하게 하는 뇌세포다. 다른 사람의 특정한 행동을 보거나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직접 행동하거나 겪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한다. 임기 반환점(10일)을 지난 윤석열 대통령이 최악의 위기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