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출현하기 오래 전 공룡은 지구상의 최고 포식자이자 지배자였다. 4.15 총선으로 정치권의 공룡이 된 더불어민주당은 21대 국회 초반부터 무한질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개헌을 빼곤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힘을 지녀 ‘거칠 것 없다’는 걸 실증하려는 듯하다.


 공룡 민주당은 53년 만에 단독 국회 개원을 강행한 데 이어 눈엣가시 같은 검찰총장 몰아내기의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치기에는 설 훈 최고위원이 지난 19일 먼저 총대를 멨다. “제가 윤석열이라고 하면 벌써 그만뒀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버티고 있겠느냐”는 설 최고위원의 언설은 민주당 지도부 최초의 노골적인 사퇴요구다. 설 최고위원은 윤 총장 임명 당시에는 “(윤 후보자가) 돈이나 권력에 굴할 사람이 아니다. 검찰총장으로서 적임자다”라고 했다.


 윤석열 압박에는 김종민 김용민 신동근 의원 같은 민주당 국회 법사위원들도 가세했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 진정 사건 처리 과정에서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어기고 재배당한 것을 빌미로 삼았다. 법사위가 열리면 윤석열을 가장 먼저 부르겠다는 언명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으름장과 같다. 앞서 황희석 열린민주당 최고위원도 비슷한 주장을 펴며 지원사격에 나섰다. 더불어시민당 공동대표를 지낸 우희종 서울대 교수는 더 적나라하다. 그는 “눈치가 없는 것인지, 불필요한 자존심인지”라며 사퇴를 다그쳤다.

                                                                         


 내년 7월까지 보장된 검찰총장의 임기가 여권에는 참기 어려운 1년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살아있는 권력 측근들에게 거침없이 칼날을 들이댄 미국 연방 뉴욕 남부지검장을 끝내 내친 게 응원 깃발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민주당이 윤 총장을 찍어내려는 것은 신속한 검찰개혁 의지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개혁 과제 가운데 하나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순조롭게 하려면 걸림돌 같은 윤 총장의 퇴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권에 불리한 수사에 나서자 박근혜정권이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나선 때를 연상케 한다.


 윤석열을 강제로 도중하차시키는 것은 문재인정부에 부메랑이 되기 쉽다. 득보다 실이 크다는 뜻이다. 이미 인사로 윤 총장의 손발을 잘라낸 상태라 검찰은 머리카락 잘린 삼손과 다름없다. 그나마 윤석열의 이름만으로도 문재인정부의 도덕성을 지켜준다는 상징성을 지닌다. 힘 빠진 보수야당은 윤석열이 사퇴하면 조국사태, 윤미향 회계부정 의혹,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고 공세를 편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아오던 관행을 깨고 민주당이 가져온 속내가 다른 곳에 있다는 관측이 많다. 정권 말기 불거질 권력형 비리를 미리 관리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나오는 정황이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임기말 혈육이 검찰수사를 받았으나 모두 감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둘째 아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이 검찰수사로 처벌을 받았지만 검찰총장을 건드리지 못했다. 문재인정부는 대통령 혈육이 아닌 우군 비리 수사도 견디지 못한다는 따가운 시선이 사라지지 않는다.

                                                                          


 1948년 제헌국회 이후 처음인 국회의장단 단독 선출에 이어 여야합의 없이 상임위원을 배정하고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한 일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일하는 국회’를 더 늦출 수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민주주의가 빠진 민주당’이라는 비판에 항목 하나를 더 추가한 꼴이다.


 고위공직자 비리를 더 공정하게 수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다는 공수처도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주고, 검찰과 법관들에게는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언행들이 이어진다. 진보진영의 원로들이 요즘 부쩍 경고의 목소리를 내는 까닭을 흘려들어선 안된다.


 쪼그라든 보수야당은 공룡 여당의 발목을 잡고 싶어도 동물국회로 돌아가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선거에 대패한 보수야당이 발목을 잡을 수도 없어 공룡 여당의 무한책임만 남았다. 최근 출간된 ‘완전히 새로운 공룡의 역사’의 인기 저자 스티브 브루사테는 “공룡의 진화와 멸종 연대기는 인류를 비추는 거울이며 기억해야 할 교훈이 있다면 ‘겸손’이다”라고 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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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주에 살았던 원주민 이로쿼이 부족 연맹은 중요 정책을 결정할 때마다 7세대 후손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으면 7세대는 210년이다. 먼 장래를 내다보는 계획을 일컫는 백년대계와 비교해도 차원이 다르다. 지금의 결정이 향후 7세대 후손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먼저 검토해야 한다는 ‘7세대 원칙’(Seventh Generation Principle)은 이로쿼이 연맹의 독특한 지혜로 회자한다.


 이로쿼이 연맹 헌법은 미국 헌법에 지대한 철학적 영향을 미쳤다. ‘모든 사람은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미국 헌법의 무계급사회 개념은 유럽에서 유입됐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이로쿼이에서 본떴다고 한다. 이로쿼이 헌법은 남녀노소, 지위고하, 심지어 동식물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의 평등을 주창한 게 특징 가운데 하나다.


 미국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선출된 대표를 갖는 것이 이로쿼이족의 민주정부 모델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록에 썼다. 특히 프랭클린은 이로쿼이족 특유의 ‘공동주택’에 오래 머물면서 이들의 생활상에 감명을 받아 미국 헌법을 만들 때 참고했다고 한다. 미국이 여러 주를 연합한다는 발상도 모호크 카유가 세네카 오네이다 오논다가 투스카로라 등 6개 부족으로 이뤄진 이로쿼이 연맹으로부터 빌려왔다고 미국 독립의 아버지들은 기록했다. 이로쿼이가 연맹이었기 때문에 이를 잘 운영하려면 지혜로운 규율과 법이 필요했다.

                                                                     


 이로쿼이 연맹은 믿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정치체제를 지녔다. 부족 전체 일을 관장하는 평의회, 부족들의 연맹을 관장하는 대의회가 존재했다. 의회의 구성원들은 모두 민주적인 절차로 뽑혔다. 모계사회인 이 부족은 남성 추장 해임 여부를 결정하는 권한을 여성이 가졌다. 정치는 남성들이 했지만 거부권과 탄핵권은 여성들이 가진 셈이다. 연맹에는 여성과 남성, 2개의 젠더가 아니라 3~5개의 젠더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쿼이 정신에 비하면 한국의 현실은 미래세대에 빚 남기기와 짐 떠넘기기 경쟁을 하는 듯하다. 임기 5년의 정권쟁취와 지키기만 골몰하는 게 한국 정치권의 참모습 같다. 21대 총선에서 돈의 위력을 실감한 여야가 너나없이 돈 쓸 일만 궁리하고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나랏빚 문제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외려 국가채무비율이 다른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건전하다면서 더 많이 쓰는 걸 부추긴다.


 일찍이 지자체 단체장들이 제기했고 총선에서 참패한 보수야당이 맞장구치는 기본소득 논의는 언젠가는 검토해야 할 정책이긴 하다. 하지만 돈이 나올 곳에 관한 얘기는 전혀 없다. 국민 주머니에서 나올 세금을 대폭 올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보다 더 잘사는 선진국들이 몰라서 먼저 도입하지 않는 건 아니다. 세금인상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도 없다. 미국의 조지 W. 부시(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중 어떤 형태의 증세도 하지 않겠다고 공약했다가 이를 어겨 흔치 않게 재선에 실패하고 말았다.

                                                                              


 7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는 한국의 구조적 재정수지가 그리스에 이어 두번째로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는 경종을 울렸다. 한 나라의 재정건전성을 측정하는 관리재정수지도 2001년 관련 통계가 작성된 이후 역대 최대 적자 규모인 112조원을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효율적인 나랏돈 쓰기가 절실함을 보여준다.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공무원·군인연금 부채만 해도 정권마다 폭탄 돌리기에만 급급할 뿐 미래세대의 부담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불과 4년 만에 200조원 넘게 불어나 940조원을 넘어섰으나 선거 표 계산에만 신경을 곤두세운다. 저출산으로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과 반비례해 공무원·군인연금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따라 2022년까지 공무원 17만4000명이 증원되면 설상가상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자신의 임기 중이나 다음 선거 때까지만 국민의 환심을 사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미래세대에 빚을 무더기로 떠넘기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죄를 짓는 일이다. 무슨 일을 하든 210년 뒤의 후손들에게 피해가 될지를 먼저 생각했다는 이로쿼이 부족의 혜안을 몇분의 일만 생각해도 좋겠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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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최대의 자선기금 단체이자 공동모금회의 원조(元祖)인 유나이티드 웨이(United Way)는 13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범 공익단체이지만 대표 비리 혐의로 한때 엄청난 아픔을 겪었다. 1990년대 초반 윌리엄 아라모니(William Aramony) 회장의 공금 유용, 호화 씀씀이, 고액 연봉 등이 탄로가 나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아라모니는 1954년 유나이티드 웨이 평직원으로 출발해 1970년부터 1992년까지 22년간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면서 창의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호평을 받고 있었다. 1990년 무렵 아라모니가 부인과 이혼한 뒤 10대 여자친구와 호화여행을 다니며 씀씀이가 헤프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급기야 유나이티드 웨이 이사회와 언론에 투서가 들어가 비리혐의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으나 아라모니는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미국 연방 수사기관이 나서 아라모니가 두명의 직원과 짜고 71차례에 걸쳐 100만달러를 불법 유용하고 자금을 세탁한 혐의를 밝혀냈다. 아라모니가 젊은 연인과 비행기 일등석을 타고 런던 이집트 등지로 호화 여행을 일삼았고, 여자친구에게 8만달러 상당의 선물까지 준 것으로 드러났다. 아라모니의 연봉은 46만달러(약 5억원)가 넘었다.

 

   아라모니는 결국 버지니아 지방법원에서 회계부정 사기음모 자금세탁 등 23개 혐의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연방교도소에서 수형생활을 했다. 30만달러의 추징금도 뒤따랐다. 아라모니를 겨냥한 가장 큰 비판은 공금과 사비를 구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유나이티드 웨이의 모금 활동은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후 유나이티드 웨이는 10여년 동안 운영방식과 지배구조를 바꾸고 윤리강령도 정비하는 등 뼈를 깎는 쇄신 노력으로 신뢰를 되찾았다. 평직원에서 성장한 브라이언 갤러거 회장이 2002년 새 리더가 된 이후 40여 개국에 1800개 지부를 두는 유나이티드 웨이 월드와이드 조직으로 거듭났다.


 유나이티드 웨이를 롤모델 삼아 1998년 설립된 한국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10년 전 공금을 흥청망청 낭비하는 비리 때문에 회장, 이사 전원, 사무총장까지 사퇴한 일이 벌어졌다.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 ‘사랑의 열매’로 상징되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7억원이 넘는 돈을 부당하게 집행하고, 다른 공공기관 직원들보다 임금을 세배나 많이 올려 도덕적 해이가 만연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무용 카드를 단란주점과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유흥비로 써 질타를 받았다. 이 때문에 2010년 ‘사랑의 온도탑’ 모금액이 사상 처음 100도 미만으로 끝났다. 그 뒤 투명한 단체로 새롭게 태어나 신뢰를 회복하고 모금활동도 정상을 되찾았다.


 21대 국회의원 비례대표로 당선한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을 겨냥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인권운동가의 기자회견으로 불거진 의혹은 당사자의 거듭된 해명에도 의심이 걷힐 줄 모른다. 구체적 물증으로 증명하지 않는 한 설득이 어려운 상황에 이르렀다.

                                                                   


 윤 당선자와 정의연의 의혹은 단순한 회계 부적절성을 넘어 횡령과 배임 의혹으로 번졌다. 안성 위안부 할머니 쉼터 매입과 매각 과정, 윤 당선자 아버지 관리자 채용, 개인 아파트 구입자금, 국고보조금과 기부금의 공시 누락, 개인계좌 기부금 모금 등 밝혀져야 할 돈의 규모는 10억원대를 훌쩍 넘어선다. 해명 과정의 잇따른 말 바꾸기는 불신의 폭을 더욱 넓혔다.


 사회적으로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예상외로 무책임한 일탈 행위를 많이 한다는 연구결과가 ‘도덕적 면허효과’(moral licensing effect)다. 윤 당선자도 도덕적 면허효과 함정에 빠졌을 수 있다. 이제 정의연의 활동을 지지하고 돕는 것과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가 됐다.


 기부활동이 왕성한 미국에는 남이 준 돈을 사용하는 데에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는 사회적 동의가 존재한다. 기부에 의존하는 공공단체들이 회계에 더 투명해야 하는 까닭이다. 윤 전 이사장이 벌여온 30년간의 정의로운 활동이 폄훼되지 않아야 하지만, 도덕적 책임이 있다면 분명하게 져야 한다. 그렇지만 정의연의 일본군 위안부 인권운동을 왜곡하거나 방해하려는 시도는 단연코 막아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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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근육질을 자랑하는 스트롱맨 지도자들에게 굴욕을 한 바가지씩 안겼다. 반면 침착하고 세심한 여성 지도자들에게는 비교적 다소곳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지도자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하나같이 리더십에 균열이 생겼다. 이와 달리 코로나19를 상대적으로 잘 관리하는 나라의 지도자 가운데 여성이 많은 게 두드러진다.


 전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5월 10일 존스홉킨스대 집계 기준으로 400만명을 넘어서고 사망자가 28만명에 육박한 가운데 미국은 213개 코로나19 발생국 중 압도적 1위를 지켰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미국은 확진자 130여만명에 사망자가 8만명에 근접했다. 세계 최강 미국의 불명예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트럼프의 리더십을 소환한다.


 코로나19 첫 발생국인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책임회피와 은폐 의혹으로 세계적인 공세에 시달린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먼저 코로나19를 통제국면으로 돌렸지만 총체적인 후유증은 만만찮다. 도쿄 올림픽 욕심 때문에 안일하게 대처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정권이 흔들릴 정도로 위기에 빠졌다. ‘아베노마스크’가 상징하듯 아베의 코로나19 대책 부실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다.

                                                                           


 어느새 코로나19 확진자 세계 5위로 올라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견고했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대통령 연임 제한을 없애 종신집권을 꿈꾸던 푸틴은 4월 말로 예정됐던 개헌 국민투표가 연기되는 악재를 만났다.


 확진자가 10만명을 넘어 10위에 오른 이란의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국민 건강 대신 정치적 이해관계를 앞세워 위기를 키웠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코로나19 환자와 사망자가 중국을 뛰어넘어 세계 8위를 기록 중인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부실대응과 개념 없는 발언으로 탄핵 위기에 놓였다.


 4위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국민 건강을 지켜주지 못한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코로나19를 우습게 여기다가 자신이 중환자실에 실려가는 망신을 당했다. 세계 2위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 3위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6위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역시 지도력에 상처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다. 남성 지도자를 둔 방역 모범국은 현재까지 한국 베트남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스트롱맨들과는 대조적으로 대만 뉴질랜드와 유럽 여러 나라의 여성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차별화한 지도력을 보여주었다는 중평을 받는다. 여성이 최고지도자인 나라는 152개 선출직 국가(올해 1월 기준) 중 10곳에 불과하다. 대표주자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다. 대만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확진자 440명, 사망자 6명(10일 기준)으로 가장 선방한 나라에 속한다. 치밀한 방역대책이 호평을 받아 대만을 세계보건기구(WHO) 옵서버로 인정해야 한다는 호의적인 국제여론까지 생겨났다.


 저신다 아던 총리가 이끄는 뉴질랜드는 확진자 1494명, 사망자 21명 상태(10일 기준)에서 사실상 코로나19 종식을 선언했다. 주도면밀, 과감한 판단, 신속한 의사결정이 그 비결로 보인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독일은 다른 유럽 주요국과 달리 대규모 선별 검사를 처음부터 추진해 확진자가 17만여명이지만, 사망자는 7500여명으로 최소화했다.


 덴마크의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는 최초로 아이들을 위한 데이케어센터 문을 연 국가에 속하면서 방역 모범 유럽국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번주 중·고교가 개학하는 노르웨이의 에르나 솔베르그 총리, 핀란드의 산나 마린 총리, 아이슬란드의 카트린 야콥스도티르 총리도 흡사하다.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리더십으로 한국 방역의 중심인물로 떠오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연상케 하는 지도자들이다.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유일한 남성 총리 스테판 뢰벤이 최고지도자인 스웨덴은 사실상 코로나19 방역포기 국가를 선언했다.


 일반화하기에는 성급할 수 있으나 방역 시스템, 문화와 시민의식의 동질성 등을 고려하면 여성지도자들이 코로나19 국난 극복에 보여준 모범사례는 여성 리더십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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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가는 길은 설렘과 걱정을 함께 안고 떠난다. 이미 있는 길이 아니라 새로 만들어 가야 하는 길이라면 한결 그렇다. 건국 이래 처음 도입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꼭 그런 느낌을 준다. 공수처는 문재인 정부의 숙원이자 검찰 개혁의 핵심이다.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권,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공수처가 넘겨받아 검찰의 정치 권력화를 막아보자는 게 도입 취지다.


  4·15 총선 결과가 거대여당 탄생으로 끝나자마자 시선이 공수처로 쏠리는 일이 잇따른다. 더불어민주당과 비례 위성정당 당선자들 가운데 첫 소감으로 검찰개혁부터 선언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례대표 당선 일성으로 검찰을 겨냥해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수처 수사 대상 1호’로 점찍기도 했다.

 

  종편 방송 기자와 검사장의 유착 의혹을 공수처 수사로 규명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검찰 수사가 개시되기 전 잠시 들려왔다. 지난주에는 공수처 설립준비단이 2차 자문위원회를 비공개로 열어 공수처의 조직, 예산, 인사, 후속 법령 정비 같은 현안을 논의했다. 공수처가 오는 7월 출범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다.

                                                                     


 공수처의 신설 정신이 제대로 지켜지면 기대할 게 수두룩하다. 우선 권력형 비리를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따라 엄정하게 처벌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동안 검찰이 죽은 권력에만 칼을 더 야멸차게 들이댄다는 ‘부관참시’ 논란이 잦아들면 좋겠다. 유난히 많았던 ‘검찰 제 식구 감싸기’ 구설도 어느 정도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지금까지 검찰 비리는 경찰이 수사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수사권, 기소독점, 편의주의 같은 막강한 권한을 견제할 수 있는 구조가 생겼다는 것도 소득이다. 한국 검찰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수사권, 수사지휘권, 공소제기권, 공소유지권, 영장청구권을 모두 가진 무소불위의 사정 권력이라는 악명을 지녔다.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진 것도 이 같은 기대효과 때문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이 실질적인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대한 우려가 첫 번째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비리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검찰 수사에서 보듯이 대통령 측근에 대한 수사가 권력과 지지자들의 등쌀 탓에 얼마나 어려운지 생생하게 목격했다.

                                                                         

  공수처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처음부터 보안 유지가 어렵고, 축소되거나 왜곡될 개연성이 있다는 지적도 새겨들어야 할 대목의 하나다. 공수처장 외에 공수처 검사들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규정도 주시할 대상이다. 살아있는 권력에 쉽게 면죄부를 주는 공수처라면 지난날 정치검찰과 다름없다는 비판에 직면하기 쉽다.


 공수처의 성공 여부는 전적으로 독립성에 달려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진보 진영의 대표적인 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국회에서 법이 통과되기 전부터 공수처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지난 주말 국회방송에서 열린 ‘대한민국 민주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토론회에서도 대통령이 공수처장 임명권을 갖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공개 경고장을 보냈다. 공수처가 행여 대통령 직속 사정기관으로 변질되면 입법부와 사법부에 대한 통제에 주력할 소지가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초안에 없었다가 막판에 끼워 넣은 ‘수사 통보 조항’은 시행과정에서 논란의 여지가 엿보인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검찰을 비롯한 다른 수사기관이 고위공직자 범죄를 인지한 경우 이를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도록 한 부분이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왔다. 시행해 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는다는 반박이 있으나 기우로 끝날 수 있는 운용의 묘를 찾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서양 격언을 잊지 말아야 한다. 처음 가는 길이기에 시행 이후에도 보완과 개선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자칫 꼼수로 얼룩진 연동형 비례대표제 같은 신세가 될 수 있다는 과격한 전망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공룡 국회권력을 확보한 여권엔 조금만 잘못해도 오만하다는 질타가 쏟아지기 쉽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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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 정부가 의회 의사당을 새로 짓는데 2년간 4000만 파운드(약 600억원)를 들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5년간 4억 파운드가 들어갔다. 시공회사는 돌발적인 일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에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을 요구했다. 그때마다 정부 결정권자들은 이렇게 의견을 모았다. “이 공사에 이미 수천만 파운드를 쏟아부었는데 공사를 그만두면 국민의 신임을 잃고 말 겁니다. 승인해 줍시다.” 얼마 후 비슷한 일이 다시 벌어졌다. 공사를 포기할 수 없었음은 물론이다. 같은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최종 공사비는 애초 산정했던 것보다 10배로 늘었다.


 용인 경전철은 ‘세금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붙은 대표적인 토목 행정실패 사례로 꼽힌다. 사업 초기에 수요를 뻥튀기한 데다 민간업자의 이윤 맞추기 사업으로 추진해 약 2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건설비용이 투입됐다. 2013년 개통 후에도 30년간 2조5천억 원에 가까운 추가세금이 소요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자 지방자치단체이던 용인시가 재정난을 겪게 된 결정적 원인도 이 때문이다. 시장의 개인 욕심으로 추진한 최악의 사업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호명된다. 전형적인 행정실패 사례로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 과정에 채택됐을 정도다. 용인시의 반발로 철회되긴 했으나 여전히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승우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노무현 정부 때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에 관한 경험담을 씁쓸하게 털어놓은 적이 있다. ‘정치권에서 행정부에 요구하는 대형 토목사업은 대개 효율성과 경제성이 그리 없다. 총선이나 대통령선거 때 유권자들에게 내건 선심 공약이 대다수다. 새 도로가 필요하다고 해서 현장에 가 보면 얼마 전 뚫린 옆길에도 차가 드문드문 보인다. 그래서 어렵다고 하면 엄청난 압력이 끊임없이 들어온다. 여야를 가릴 게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애당초 책정한 예산은 속칭 ‘껌값’에 불과하다. 사업계획을 통과시켜야 하니 우선 최소 사업비를 책정한다. 일단 사업이 확정되면 그때부터 온갖 핑계를 끌어대면서 설계변경과 더불어 추가 예산을 끌어낸다. 완공 사업비는 애초 예산의 2~3배에 쉽사리 이른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미운털이 박혀 자리를 오래 지킬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여당과 제1야당이 4·15 총선에서 공약한 도로·철도 건설 공약 사업비 추산액만 100조 원에 달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전체 나라 살림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하나같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사태로 신음하는 서민층의 실생활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다.


 이틀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끝나면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회가 나서 경제 위기·복지 대책을 창안하는 일이 화급하다. 긴요하고 실질적인 것은 돈 마련이다. 추경 외에도 올해 정규 예산 가운데 불요불급한 부문의 항목 변경을 위한 의견 수렴이 필요해 보인다. 가장 먼저 들여다볼 부문은 사회간접자본 예산이다. 사회간접자본 예산은 국회 심사를 거치면서 정부 예산보다 9000억 원이나 늘어났다. 선거를 의식해 정부안에 없던 지역사업이 줄줄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느닷없이 끼어든 작은 하천 호안 블록 교체비용도 수십억 원에 이른다. 경제성이 높지도 않은 여비 타당성 면제 공사가 많다. 코로나 19사태로 추진할 수 없게 된 사업, 요긴하지 않은 사업은 미루거나 접어야 마땅하다.

                                                                 


 말썽 많은 실세 국회의원들의 ‘쪽지 예산’ ‘카톡 예산’도 전용 대상으로 삼아 논의하면 좋겠다. 편성 근거도 남아 있지 않은 이 ‘깜깜이 예산’은 따지고 보면 반칙의 산물이다. 쪽지 예산에는 해마다 5천억 원 이상의 혈세가 불공정하게 투입된다. 그런데도 실제 집행률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사업계획 자체가 부실하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무리하게 끼워 넣었기 때문이다. 최근 예산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고스란히 반납한 사업도 수십 건에 이른다고 한다.


 국회·지방의회의 관광성 해외연수 같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프로그램도 중단해야 한다. 적은 액수이지만 코로나 19 이후 경제위기 극복과 주민 복지에 돌아가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자발적으로 보여주는 게 도리다. 사법부 예산조차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부분이 있는지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코로나 19 사태는 지구촌 전체를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로 불리는 비상 국면으로 몰아넣었다. 비상시에는 여야 없이 비범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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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러시아 여행작가 엘레나 코스튜코비치가 이탈리아 나폴리의 작은 카페에 들러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중년 남성 둘이 석 잔의 커피값을 내고 “한 잔은 소스페소”라고 말한 뒤 두 잔만 마시고 나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곧이어 들어온 네 명의 여성도 다섯 잔의 커피를 주문하고선 “하나는 소스페소”라고 했다. 궁금증을 견디다 못한 작가가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소스페소 커피가 뭐죠?” 주인은 잠깐 기다려 보라고만 했다.

 

  어렵기로 소문난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옮겨 ‘올해의 번역상’을 받은 작가 코스튜코비치는 카페 주인이 답을 주기 전에 궁금증을 풀었다. 남루한 옷을 입은 한 남성이 들어와 “여기 나를 위한 커피가 있나요?” 하고 묻자 카페 주인은 “네!” 라는 대답과 함께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맡겨둔 커피’라는 뜻을 지닌 ‘카페 소스페소(caffe sospeso)’는 나폴리만의 독특한 온정이었다. 어렵게 살아도 커피 한 잔은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는 게 이탈리아 사람들이다. 커피 한 잔도 마시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누군가 짜낸 지혜가 ‘소스페소 커피’다. 여분의 커피 값을 치른 후 영수증을 가게에 비치된 통에 놓아두거나, 창문같이 눈에 잘 띄는 곳에 붙여놓는다.

                                                                              

  그 영수증으로 경제적 여유가 없는 어르신이나 노숙자 같은 사람들이 주로 주문해 마신다. 가게 입구에는 ‘소스페소 커피’ 표지판이 붙어 있다. 나폴리에서는 2차 세계대전 때 시작된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커피값이 싸기로 유명한 이탈리아지만, 두 잔 값을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부담되면 여러 사람이 참여하기 어렵고 ‘나눔’이 지속되기 쉽지 않아서다.

                                                                         

 그러던 중 세계 인권의 날인 2010년 12월 10일 이탈리아에서 ‘소스페소 커피 네트워크’란 조직이 만들어진다. 나폴리에 온 관광객들도 이 흥미로운 운동에 동참했다. 나폴리에서는 소스페소 운동이 피자,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식사와 책 나눔으로까지 확산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운 나눔은 이제 세계 여러 나라로 퍼져 다양한 음식의 1+1 나눔 운동으로 승화하는 추세다. 캐나다에서는 ‘맡겨둔 식사(suspended meal)’도 등장했다. 입소문과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스웨덴, 영국, 불가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호주 등지에서도 흡사한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구시 수성구의 수성아트피아가 2013년 공연 객석을 기부하는 ‘맡겨둔 티켓’ 운동으로 변형해 펼치기 시작했다. ‘미리내 가게’라는 이름이 붙은 이 운동은 돈을 미리 낸다는 뜻과 은하수의 순우리말 ‘미리내’의 별처럼 나누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염원이 중의적으로 담겼다. ‘미리내 가게’는 음식점, 학원, 목욕탕, 미용실, 복싱 클럽 같은 다양한 업종으로 넓혀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익명의 동참자가 많아졌음은 물론이다.

                                                                         


 코로나 19가 어느 정도 진정되더라도 우리 사회는 전례 없이 사회적 도움이 간절해지는 계층이 폭증할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빈부 격차를 결정적으로 키운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크고 오래 가는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어서다. 코로나 19로 말미암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다시 짜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모자랄 게 분명하다.


 ‘맡겨둔 커피’를 본뜬 1+1 나눔 운동이 전국적이고 다양한 차원에서 벌어진다면 어떨까. 몸이 열 개면 좋을 택배 기사나 납입금 채우기에 힘든 택시기사를 위한 설렁탕 한 그릇 나눔은 가뜩이나 힘든 음식점 자영업자들까지 돕는 일석이조가 될 것 같다. 생일을 맞은 소년소녀 가장에게 동네 빵집의 케이크 한 조각을 나눠줄 수 있다면 좋겠다. 책 살 때 서점에 맡기는 한 권의 책 티켓은 젊은이들의 독서와 출판사의 숨통을 틔워 주는 일거양득이 된다. 생각의 폭을 넓혀보면 적은 액수로 큰 뜻을 나눌 수 있는 곳과 방법은 널려 있다.


 언론과 시민단체, SNS 운영자들이 캠페인을 돕고 가게들이 호응하면 ‘카페 소스페소’처럼 사회적 체온을 따사롭게 데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악용하는 얌체족을 걱정을 목소리도 있겠지만, 작은 부작용은 극복해야 한다. 특정 인물과 상황을 지정해서 나눔을 실천해도 코로나 19 이후 우리 사회는 더욱 따뜻하고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어 나갈 수 있을 게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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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전체로 번진 코로나19는 모든 나라의 정부와 시민의식을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대중의 공포를 먹고 사는 코로나19는 자연스레 정부의 위기관리능력과 국민 수준을 저울질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던 확진자가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방역 당국의 눈물겨운 투쟁과 더불어 성숙한 시민의식 덕분이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해외에서 한국의 발 빠른 방역작업과 시민사회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한결같이 주목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해외 주요언론은 한국의 시민의식을 아낌없이 호평한다.


 해외 주요언론은 최초 발병국이자 최다 발병국인 중국과 차별화한 한국의 대응을 롤모델로 꼽는다. 이들은 무자비할 정도로 강제적인 중국의 확산저지 작전과 달리 한국에선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이 효험을 보고 있다는 점에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전체 확진자의 대다수가 나온 대구를 ‘도시 봉쇄’ ‘이동 통제’ ‘제재’ 같은 조치 없이 시민들의 자제로 관리하는 게 놀라워 보이는 것 같다. 확산을 막기 위해 이탈리아가 북부 지역에 내렸던 봉쇄 조치를 전국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는 것과 사뭇 대비되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한국인들은 나라 밖에서 민주적 시민의식의 표상으로 불린다. 대구에서 의료 봉사를 이어온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대구시민의 자발적인 사회적 거리두기에 높은 점수를 준다. 모임을 취소하고 종교 행사를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것도 모두 자발적이다. 거의 모든 건물에 손 소독제가 자발적으로 비치되고, 열화상 카메라로 위생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것도 세계인의 주목거리다.


 모범적인 자가 격리와 다양한 활동으로 코로나19 확산과 싸우는 시민들도 박수를 받을만하다. 울산의 24번째 확진자는 귀감 사례였다. 양성 판정을 받은 이 30대 여성은 조모상을 당하자 자기 승용차로 집단감염 중심지인 대구에 있는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장례식을 마친 후에는 가족이 함께 사는 자택이 아닌 원룸으로 가 대부분 시간을 홀로 보냈다.


 온라인상의 ‘마스크 안 사기 운동’도 화제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지속하자 취약계층에 구매 기회를 양보하자는 취지다. ‘악마는 제일 뒤에 처진 꼴찌부터 잡아먹는다’는 서양 속담을 떠올리며 취약계층을 배려하는 갸륵한 마음씀씀이다. 임대료를 낮춘 ‘착한 건물주’ 같은 시민의식에 대한 칭찬도 빼놓을 수 없다.

                                                                      


 ‘승차 검진(드라이브 스루 검진)’이 세계적 표준의 하나로 꼽히는 것을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유전자’에 대입해 보는 분석도 흥미롭다. 주요 외국 방송들은 승차검진 모습을 직접 보여주고, 미국의 한 국회의원은 한국에 가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코로나19 대응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저력이 ‘비판과 시험에 개방된 특성에서 비롯한다’는 관점이 눈길을 끈다.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와 정부의 책임 사이의 균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근거가 덧붙여졌다. 실제로 한국은 올해 초 발표된 민주주의 지수가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다. 정치인들이 점수를 까먹고 있긴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지수는 일본보다 높고, 심지어 미국에도 앞선다.


 소수이지만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 시민이 걱정스러운 부분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공직자들에게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발견된다. 정부세종청사에서 일하는 보건복지부 소속 공무원이 사회적 거리두기운동이 벌어지던 때에 1박2일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확진자가 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강해이다. 더구나 보건복지부는 코로나19 방역의 주무 부처다. 자가격리 대상자인 대전의 한 군인은 거주지 부근 마트와 의원을 제멋대로 방문하기도 했다. 대구의 한 구청 공무원이 자가격리 중 주민센터를 방문하는 어이없는 일도 벌어졌다. 한 확진자는 마스크 구매 대열에 섞여 있다가 들통났다. 시민들의 분투에 힘을 빼는 일이다.


 끊이지 않는 일부 개신교회의 오프라인 예배 강행으로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경계를 늦출 수 없는 또 다른 위험요소다.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언론사와 정부 부처 명의로 유포하는 악의적인 수법으로 코로나 19를 선거에 이용하려는 세력들도 방역의 장애물이다. 한풀 꺾였지만 위기감은 여전하다. 더불어 사는 사람들의 안전을 함께 지키려는 시민의식이 한층 절실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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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天災)는 단합을 불러오고 인재(人災)는 분란을 초래한다고 한다. 고금과 동서를 막론하고. 지진·홍수·가뭄 같은 자연현상으로 재해가 닥치면 우선 한마음으로 뭉쳐 재난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만 사람이 낳은 재앙은 책임을 놓고 다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놓고서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의 코로나19 슈퍼 전파자가 ‘중국이냐, 신천지교냐’의 논쟁으로 인해 화급한 방역전선에 힘이 집중되지 못하는 형국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4000명을 넘어서 방역 당국의 사투조차 빛이 바랠 정도다. 보수 야당과 일부 언론은 여전히 중국인 입국금지가 근본대책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한다. 전파 초기라면 몰라도 방역당국이 지역민에 의한 감염 확산 사실을 역학조사로 입증하고 있음에도 우기다시피 하는 것은 순수성을 의심받기 쉽다.


 실제 2월 4일부터 중국인 특별입국 절차를 시행 중인데다 그 가운데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현 상황에서 중국인 전면 차단이 실효성도 떨어진다는 건 정부만의 견해도 아니다. 물론 정부의 초기 대처방법에 관한 잘잘못과 책임을 꼼꼼히 되짚어보는 과정은 나중에라도 필요하다.

                                                                          


 신천지교(공식명칭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가 코로나19 대량전파의 주원인이라는 점은 대부분 국민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국면에 이르렀다. 외국의 주요 언론도 하나같이 한국의 돌연한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2월 18일 31번 확진자부터 폭발한 신천지교단에서 찾는다. 그런데도 보수야당인 미래통합당에서 신천지교단에 조사협조를 촉구하거나 당부하는 말을 아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신천지교인의 연락두절로 방역이 어렵다는 우려가 있자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특정 교단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당 대표가 특정 교단에 대해 메시지를 던지면 정통과 이단 같은 종교 프레임으로 엮일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당 관계자의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미온적인 태도는 외려 여권 열혈 지지자들의 공격소재가 됐다. 지금 유튜브에서는 신천지교와 미래통합당 전신인 새누리당 관계를 의심하는 주장이 넘친다. 급기야 미래통합당이 새누리당의 당명을 자기가 지어줬다고 자랑했다는 이만희 신천지교 총회장을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한 게 이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일부 언론이 중국인 입국금지가 코로나19 확산저지 비책인 것처럼 몰아가고 있는 모습도 도드라진다.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는 정부를 융단폭격하듯 비난하는 반면 신천지교단에 대한 당부의 의견기사를 한번도 싣지 않는 편벽성을 드러낸 언론도 있다. 힐문하는 자세도 강파르고 표독한 언사를 깡그리 동원한 듯 격정적이다. 미운 사람이 당한 불행을 고소하게 여길 때 쓰는 ‘잘코사니’라는 말이 연상되곤 한다. 보수진영의 편벽성은 신천지교의 책임론이 부각될수록 정부의 방역실패에 면죄부를 주거나 공격소재의 고갈을 가져올 수 있어서라는 분석도 나온다.

                                                                         

                                                                

 천주교 불교 원불교 상당수 개신교 등이 교단 차원에서 미사 법회 예배를 전면중단한 것과 달리 일부 교회가 정부의 자제요청에 호응하지 않은 것도 분란 요인의 하나다. 보수정당과 일부 언론은 코로나19 확산 우려를 낳는 교회의 예배 자제에 대한 권면도 일절 하지 않는다. 지지층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밀폐된 공간 예배의 위험성은 신천지교가 뼈저리게 입증했다. 조호진 시인의 ‘아멘’이라는 시가 새삼스레 가슴에 꽂힌다.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주일을 지키지 않은 죄가 아니고/ 십일조를 내지 않은 죄도 아니고/ 피눈물 흘리는 이웃을 보고도/ 눈 깜짝하지 않고 밥 잘 먹는/ 무정한 죄가 가장 큰 죄라고/ 눈 맑은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무조건 아멘 했다.’


 정부와 여권 고위 인사들의 가벼운 언행과 일부 정책혼선이 신뢰상실과 분란요인으로 떠오르는 것도 숙제다. 마스크조차 구하기 어려운 생활 인프라 위기,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나선 의료진에게 부족한 보호장구 같은 것들 역시 분란의 빌미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 공동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막는 일보다 화급하고 중요한 건 없다. 여야와 진보·보수진영 가릴 것 없이 편벽과 잘코사니를 넘어서야 한다. 대구·경북을 응원하고, 성금을 보내며, 방역전선으로 자원해 들어가는 이들이 누구보다 아름다워 보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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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만과 편견은 바늘과 실처럼 따라 다닐 때가 많다. 영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제인 오스틴은 대표작 ‘오만과 편견’에서 명문장으로 그 상징성을 보여준다. ‘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


 더불어민주당이 비판 칼럼 필자와 게재한 신문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가 취하한 일은 오만과 편견이 교직된 사고의 발로로 보인다. 오스틴은 남녀 간의 애정에 대한 단상을 담았지만, 집권당의 행태는 민주주의에 대한 자기모순으로 읽힌다. 촛불혁명을 주도한 국민의 기대를 배신한 ‘민주당만 빼고’ 투표하자는 주장을 펼친 글의 맥락을 보면 쓴소리에 불과하다. 민주적 정당이 쓴소리를 좋은 약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법의 심판을 요구한 발상은 협량의 정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겁박해 비슷한 사례를 방지하려는 의도였다는 분석이 있으나, 비판적인 칼럼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되치기한 것은 프레임 전환을 노린 정치기술이 아닌가 싶다.


 한때 지지자였던 지식인과 논객들까지 ‘나도 고발하라’며 반발한 것은 흔치 않은 현상이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집권당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다른 의견에 대한 존중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위반한 것에 대한 죽비소리다. 이 같은 민주주의 가치는 더불어민주당 정치인의 다수가 독재자의 억압에 맞서 몸을 던져 투쟁하며 얻어낸 덕목이다. 이 때문에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명만 무색하게 만들었다. 촛불 민심으로 탄생한 정권의 자기 부정이라는 질타도 뒤따른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군부 독재자나 보수정권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때마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유명한 말을 빼놓지 않고 인용했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


 민주당은 고발을 취하하면서도 진솔한 반성이 없어 비난의 여진을 남겼다. 도리어 고발 취하 메시지에 칼럼의 필자가 특정 정치인 캠프 출신이라는 사실을 밝혀 반대 진영에 대한 복수가 아니냐는 편협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총선을 앞두고 표밭을 누비는 민주당 예비후보들 사이에서 우려와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 건 현장의 민심 때문이었을 게다. “오만은 위대한 제국과 영웅도 파괴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어쩌다가 작은 핀잔도 못 견디고 듣기 싫어하는지 모르겠다.” “한없이 겸손해야 한다.”


 촛불 정부와 집권당의 협량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데 문제점이 상존한다.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왜곡하고, 검찰 개혁 프레임으로 치환하는 과정을 보면 진보정권의 도덕적 우월성에 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유재수 비리 감찰무마 의혹,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의혹 사건 같은 것을 이중잣대로 재단하는 무리수가 상식을 믿는 시민을 뿔나게 했다.

                                                                            


 그에 못지않게 심각한 것은 집권층의 팬덤이다. 폐쇄적인 스타 연예인 팬덤을 방불케 하는 이들은 칼럼 고발 취하 후에도 ‘우리가 고발해줄게’란 해시태그를 달고 온라인에서 칼럼 필자와 신문 고발 운동을 벌인다. 몇몇 인사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공직선거법 위반 신고를 마쳤다고 공표했다. 언론중재위원회 산하 선거기사심의위원회가 이 칼럼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유권해석 아래 법적 강제성이 없는 가장 낮은 수준의 권고 조치를 내렸음에도 말이다. 지지자들이 다시 고발하면 후폭풍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집권층 팬덤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사를 쓰는 언론인과 변심한 지식인을 마녀사냥식으로 난도질하는 지지세력이다. 조국 사태 이후 더욱 심각해진 표적 공격은 무자비하다.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매체에서 일하는 기자일수록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를 쓰면 집단으로 달려들어 단칼에 매도하는 양상이 실로 섬뜩하다. 신상털이를 곁들인 인신공격은 기본이다.

 

   특정 포털사이트에 조금이라도 불리한 기사가 뜨면 순식간에 수천, 수만 개의 공격 댓글이 달리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이해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여기서 진보의 오도된 가치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나마 애정을 가진 비판적 지지자들의 마음까지 떠나게 하고 있다. 4월 총선에서 여당보다 야당의 승리를 기대하는 의견이 처음으로 높아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까지 나왔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Posted by 김학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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