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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중·러엔 약하고 동맹만 때리는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대 위협국인 중국 견제를 최우선 순위에 올려놨다.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14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거창하게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중국이 125% 상호관세 맞불과 함께 반도체 전기차 같은 미국 핵심산업에 없어서는 안될 희토류 수출을 막겠다는 반격 카드를 내밀자 속수무책이었다. 트럼프가 물러서서 관세를 30%로 낮추고 중국도 10%로 내려 휴전상태에 들어갔다.


 미국이 중국에 공세를 취하다 후퇴한 건 이뿐만 아니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5월 중국 유학생 비자를 대거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중국인 유학생이나 학자들이 미국의 첨단 기술과 핵심정보를 빼돌리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명분이 깔렸다. 그러자 미국 대학들이 들고 일어났다. 중국 학생을 받지 않으면 대학 운영이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내 중국 유학생은 27만여명에 이른다.


 트럼프는 어쩔 수 없어 두손을 들고 말았다. 게다가 수용 인원을 60만명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지금보다 두 배 이상 많아 놀라운 숫자다. 그는 “외국 학생들을 받지 않으면 미국의 대학 시스템이 폭삭 망한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초에는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용 칩 H20의 중국 판매를 갑자기 허용했다. 중국에만은 H20 칩을 팔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불과 석 달만이었다. 민감기술 유출을 우려해 내린 결정을 곧 뒤집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부장관은 H20의 사양이 낮아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둘러댔다.


 이 때문에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선다(Trump Always Chickens Out)’는 풍자 신조어 ‘타코(TACO)’까지 생겨났다. 트럼프가 중국에 굴욕적인 저자세를 보이자 지지자들조차 불만을 쏟아냈다. 미국 언론은 트럼프가 중국을 상대로 벌여온 무역 전쟁에서 중국이 외려 승리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러시아를 대하는 트럼프의 기세도 이해하기 어렵다. 취임 당시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수 있다”고 장담한 호기는 온데간데 없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끌려다니는 모습이 ‘협상의 달인’과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웬일인지 자기가 들고 있는 패를 먼저 보여주고 상대방을 이기겠다고 나섰다. 아무리 게임의 달인이라 해도 패를 다 보여주고선 이기긴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영토를 떼어주고 향후 안전보장도 사실상 명확하지 않은 상태로 평화협정을 맺으려 했지만 그마저 푸틴은 거부했다. 트럼프는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기 전부터 푸틴의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였다. 그런데도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푸틴은 최근 기록적인 수준인 800기 이상의 드론과 미사일을 우크라이나에 퍼부었다. 공격 대상에는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의 미국 제조공장, 키이우에 있는 영국 문화원과 유럽연합(EU) 대표부 본부가 포함됐다. 트럼프는 러시아에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말로만 으름장을 놓았다.


 트럼프는 푸틴과 미래의 경제협력에 관해 얘기한다. 러시아를 중국과 멀어지게 하는 게 트럼프의 목적이라지만 푸틴이 호락호락할 리 없다. 푸틴은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 참석해 트럼프를 비웃는 듯했다.

                                                                                         


 러시아산 원유를 구매한 인도에 50%라는 세계 최고율 관세 폭탄을 투하한 일은 트럼프의 중국 견제 의지에 의구심을 품게 한다.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는 눈을 감았다. 인도는 일본 호주와 더불어 미국 편에 서서 중국 견제에 앞장서는 쿼드 회원국이다. 뿔이 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트럼프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대신 7년 만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주석의 손을 잡았다. 인도가 쿼드에서 발을 빼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미국의 현대 외교정책 가운데 최악의 자책골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은 한국 일본 유럽연합(EU) 같은 오랜 동맹에는 더 가혹하다. 높은 관세와 함께 천문학적인 투자를 압박한다. 한국에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미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일본과 비슷한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고 위협한다. 일본과 EU는 각각 5500억달러 6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브라질에는 초고율 관세와 더불어 제재를 가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30% 관세와 미국이 제공하는 해외지원금 전액 삭감에 직면했다. 심지어 인접국 멕시코 캐나다에 이르기까지 모욕 경멸 무시에 시달리는 동맹국 목록은 끝이 없다. 이제 어떤 동맹국도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한다. 그것 못지않게 트럼프의 막무가내 미국 우선주의로 말미암아 전 세계 민주주의가 약화하고 자유주의 질서가 붕괴하지 않을까 두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