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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편리함 과잉시대

  우리 동네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는 고장이 잦기로 악명이 높다. 사흘이 멀다고 멈춰서곤 한다. 지난해에는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숨지는 사고도 일어났다. 고장이 날 때마다 사람들은 투덜거리면서 장애인이나 노약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승강기(엘리베이터)로 몰린다. 걸어서 올라가는 이들은 극소수다. 편리함에 익숙해지자 점점 불편함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고층건물에서 단 한층을 오르내릴 때도 사람들은 계단을 외면한다. 5분을 넘게 기다려서라도 승강기를 타고 만다. 젊은이일수록 그렇다. 버스 한 정거장 거리도 좀처럼 걷는 법이 없다. 편리하다 못해 운동부족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고대의 우리 조상들은 사냥하느라 하루 20km 정도 걸었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집안 청소는 일반 청소기로 하는 것조차 귀찮아 로봇에 맡긴다. 세탁기는 자동으로 세제를 풀고 건조까지 할 수 있는 것만 쓴다. 조리하고 설거지하는 게 성가셔 먹을 것도 웬만하면 배달시킨다. 온갖 첨단정보통신·디지털 기기의 속도가 조금만 느리면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낸다. 디지털치매 증후군을 염려해야 할 형편이다.


 불편함에서 얻는 이익도 많다. 알맞은 사례 가운데 하나가 등산이다. 사서 고생하는 여정에서 몸과 마음의 곳간을 옹골지게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공원 설악산의 오색케이블카 설치 사업이 본격화하는 것은 정권이 경제적 편익만 생각하고 ‘불편이익’을 외면하기로 작정한 탓이다. 40년 가까이 참을성 있게 허용하지 않았던 걸 윤석열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라는 이유로 빗장을 풀었다.


 강원도 양양군은 이제 다수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27년 운행을 목표로 연내 착공 속도전에 나섰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나타냈다.(코리아리서치 조사) 설악산 남쪽의 밋밋한 풍경과 귀때기청봉 옆모습 정도만 보려고 우리는 환경훼손을 감수해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설악산 케이블카 하나로 끝나지 않는 데 있다. 환경부가 설악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허용하자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너도나도 케이블카 설치전에 뛰어들었다.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하는 지역은 20여곳에 이른다고 한다.


 우선 1호 국립공원 지리산쪽 여러 곳에서 들려온다. 경남 산청군은 케이블카 설치 추진 전담 부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관광으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는 기치를 내세웠다. 경남 함양군 역시 관광 활성화를 명분으로 케이블카 유치위원회를 발족했다. 전남 구례군도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전에 나섰다. 구례군은 1990년부터 무려 다섯번째 케이블카 건설에 도전장을 냈다. 전북 남원시는 케이블카 구상을 접는 대신 산악열차 계획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밖에도 경북 영주시의 소백산국립공원, 경북 상주시의 속리산과 금오산, 경북 문경새재 도립공원, 대전시 보문산 등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케이블카 설치 계획 난립에 환경단체의 반발이 극에 달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편리함을 명분으로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는 사례는 무수하다. 전남 장성군의 명물 편백숲이 폭 8.6m 아스팔트도로 계획으로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개발업자들의 짧은 생각 때문에 불편이익이 사라지지 않을까 근심스럽다.


 편리하다고 언제나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불편하다고 다 불행하지는 않다. 운동을 하면 몸은 불편하지만, 기분은 상쾌해지는 일이 대표적이다. 편리한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하는 이들은 불편을 행복의 도구로 삼는다. 낡은 한옥에 ‘불편당(不便堂)’이라는 이름을 짓고, 불편을 즐기는 삶도 근사하지 않은가.


 제품을 불편하게 만들어 인기를 얻는 지혜도 눈여겨 볼만하다.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는 불편함으로 전세계를 장악한 글로벌 가구공룡으로 불린다. 오랜 시간 매장을 돌아다니며 고른 가구를, 직접 카트로 끌고 와서 조립까지 하게 만드는 전략이 통했다. ‘불편을 파는 상품’은 디지털 가구보다 불편하지만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한가? 그럼, 당신은 퇴보 중’이라는 글귀가 우아하게 풍유한다. 진보적 복음주의 계열의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같은 곳은 자발적 불편운동을 벌인다. 이웃과 약자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면, 자발적으로 편리함을 누릴 권리를 포기하고 공동체에 바람직한 변화를 추동하기 위해서다.


 편리한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우리는 불편에 취약해져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호들갑을 떤다. 세상은 점점 더 편해지지만 우리는 더 불행해지는 듯하다. 편리한 세상이 오면 늘 안락하고 행복해질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 조금 불편하지만 공동체를 지키고 미래세대를 위하는 마음이 미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