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대한민국은 분명 1919년에 태어났다

  친일·보수세력의 대한민국 원년 쟁취를 향한 집념이 눈물겹다. 이종찬 새 광복회장이 "대한민국의 원년은 1919년"이라고 못 박자 친일·보수진영 인사들이 득달같이 공격하고 나섰다. 1919년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4월 11일)된 해다.


 이 회장 공격에 나선 인물로는 역사학자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필두로 또 다른 학자들, 중견 언론인 등이 줄을 잇는다. 이인호 교수는 ‘이종찬 신임 광복회장께 보내는 공개서한’에서 “상해임시정부 출범이 우리 대한민국의 수립이었다는 주장은 분명한 역사왜곡"이라고 공박했다. 1919년 원년설이 "맹목적 통일지상주의자들 일부가 대한민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국민의식을 마비시키기 위해 내놓은 주장”이라는 극언까지 덧붙였다.


 뉴라이트 성향의 이인호는 박근혜정부 때 친일·독재 미화논란을 일으킨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지지했던 인물이다. 그의 조부 이명세가 일제 강점기 친일 행적이 뚜렷했던 인물이어서 더욱 논란이 됐다. 할아버지가 친일파이면 손녀도 친일파라는 연좌제적 생각은 금물이지만 이인호 자신의 위험한 뉴라이트계 역사관이 큰 문제다.


 이에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장관은 지난 4월 뉴스1과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1919년 중국 상하이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이 아닌 1948년 이승만 수립 때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일련의 언행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이명박정부 때 득세했던 ‘1948년 건국론’이 다시 고개를 드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건국절은 식민지근대화론을 펴는 뉴라이트계열의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2006년 동아일보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칼럼을 올리면서 본격화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건국 60년 기념식’을 거행함에 따라 논란이 증폭됐다.


 1948년 건국론 집착에는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평가절하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일제에 부역하거나 동조한 경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세력과 후손이 남북분단과 반공을 무기로 정의로운 역사를 가로채려 한다. 이들은 국가 정체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스스로 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을 약화하는 모순을 드러낸다.


 뉴라이트들은 1919년 건국론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김구를 띄워 이승만 대통령을 깎아내리려는 좌파의 역사인식에 비롯됐다고 우긴다. 하지만 뉴라이트들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이승만 자신이 ‘1919년 대한민국 건국’을 줄기차게 천명했다는 사실은 애써 무시한다.


 이승만은 초대 대통령 취임사, 정부수립 축사에서 일관되게 1948년을 ‘대한민국 30년’이라고 역설했다. 이승만정부는 1948년 9월 1일 발간된 대한민국 관보 제1호 발행일을 ‘대한민국 30년 9월 1일’로 공식 표기했다. 대한민국 제헌 헌법은 전문은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라고 분명히 규정했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뉴라이트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정부의 요건인 영토 확보, 주권적 지배권, 법률 제정, 집행이 가능한 물리적 강제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깎아내린다. 국제적 승인을 받지 못한 점도 결격사유라고 덧댄다.


 건국은 구속력 없는 국제법이 아니라 민족의 총의(3.1독립선언서와 임시정부 헌법)를 바탕으로 한 자주적인 정부수립이 관건이다. 미국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임시정부를 폄훼하는 것은 전형적인 외세의존적 시각이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우리나라를 일본에 넘긴 공범이 아닌가. 대한민국의 정통성만 해도 그렇다. 대한민국이 1919년에 건국됐다면 북한은 자연스레 반역집단이 된다.


 이승만정부의 법적 시각을 보여주는 이인 초대 법무부장관의 국회 발언도 같은 맥락이었다. “3.1 독립정신을 계승하는 우리가 결국 8월 15일 이전에 국가가 없었느냐 하면 국가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가 있드래도(있더라도) 정부가 없는 법이 있읍(습)니다. 국가가 있어도 정부가 일시에 총사직을 한다든지 미처 조직을 못했다든지 할 때 정부가 없을망정 국가는 여전히 있읍(습)니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법률적으로 역시 시종일관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국민 대다수가 1919년을 대한민국 건국 기점으로 여긴다는 두차례 여론조사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박근혜정부 때인 2015년 대한민국 건국 시점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 64%가 3·1운동에 이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이라고 응답했다. 해방 후 수립된 1948년 정부라는 응답 21%보다 3배나 많다. 1919년이라는 응답이 모든 지역과 연령층에서 큰 편중 없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2018년 여론조사 결과도 이와 비슷했다. 국민 62%가 대한민국 건국 연도를 1919년 임시정부 수립부터라고 생각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정권에서도 제기하지 않았던 1948년 건국론을 왜곡된 ‘국가정체성’으로 새삼스레 되살리려는 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