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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곡선에서 배워야 할 정치의 지혜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1852~1926)가 남긴 명언은 건축·예술 철학의 정수다. 그가 만든 일곱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만큼 독보적이다. 141년째 건축중인 성당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미완공 상태에서 등재될 정도로 상찬을 받는다. 완공되면 세계 최고층 성당(172.5m)으로 기록될 이 성당은 세계 최초의 ‘현수선 아치’ 초고층 건물이 된다. ‘뒤집힌 현수선’의 이 건축물은 독립적인 아치 구조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인 형태를 띤다. ‘신의 곡선’이라고 불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곡선의 마에스트로’로 일컬어지는 디자이너 루이지 콜라니(1928~2019)도 "자연은 각을 만들지 않으며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고 외쳤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진리조차 직선이 아니라 모두 곡선이라고 못박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느 지도자보다 직선적이다. 검사 시절은 물론 정치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 줄곧 그렇다. 윤 대통령은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도구인 말부터 직설화법을 즐긴다.


 대통령의 직선적인 성격은 모든 국정에 그대로 투영된다. 대통령실 용산 이전은 온갖 어려움에도 망설임 없이 취임과 동시에 입주를 강행하는 직선을 택했다. 입법권력이 여소야대인 ‘분점정부’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협치없이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국정이 지속되지만 야당을 설득하거나 끌어안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다수당인 야당 대표와 한번도 단독으로 만난 적이 없는 신기록을 써간다. 형사피의자인 제1야당 대표라는 명분으로 만날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민주당도 이런 대통령이 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줄 뜻이 없는 게 분명하다. 거대 야당이 대통령이 원하지 않는 법안을 통과시키면 거부권 행사(재의 요구)로 맞서는 대결정치가 이어진다. 양곡관리법과 간호법 제정안에 이어 노란봉투법까지 거부권을 행사하면 취임 후 세번째다.


 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 인사에서도 초기부터 직선으로 일관했다. 핵심 자리에 검사 출신을 과도하게 쓰는 일방적인 인사 스타일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내세우고 싶어 하는 3대 개혁은 장애물을 만났으나 직진을 고수하는 바람에 한발짝도 앞으로 못나가고 있다. 교육·노동·연금 개혁은 나라의 미래가 걸린 중대사안이지만 21대 국회 임기 종료일인 내년 5월 29일까지 어떤 진전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


 화물연대 건설노조 같은 노동자 조직을 직진으로 밀어붙이는 대통령의 스타일은 지지율 상승효과와 겹쳐 점점 애호하는 듯하다. 법치회복이라며 박수를 보내는 계층이 결집하는 맛을 잊지 못해 달라질 여지가 없다. 개혁은 기득권 해체가 필수적으로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돌아가야 할 길을 직진하면 불필요한 반발만 초래한다. 반발을 극복하려는 곡선적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자유’를 역설하면서도 ‘집회의 자유’를 옥죄는 모순적인 일에는 직선적으로 나섰다. 윤 대통령이 국민 불편을 내세워 시위를 비판하자 다음날 당정은 불법 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집회·시위, 출퇴근 시간대 주요 도심에서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위헌적 발상까지 꺼내 들었다. 지지율이 소폭 오르는 조짐을 보이자 집토끼 쪽을 의식한 직선정치가 부쩍 늘어난 모양새다.

                                                                           

 야당과 국민은 물론 여당인 국민의힘에 대해서도 직선 일변도다. 정치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을 떨어트린 원인 가운데 하나는 여당 지도부 교체과정 개입이었다. 대통령의 등록상표였던 공정과 상식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직선 정치는 민주주의 후퇴로도 나타났다.


 윤 대통령은 국내정치 못지않게 나라의 운명이 걸린 외교에서 직선을 많이 그렸다. 한일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명분 아래 반대여론이 높은 일제 강제동원 제3자 변제안을 밀어붙였다. 한국이 양보해 물컵 반잔을 먼저 채우면 일본도 나머지 반잔을 채워주리라고 기대하지만 어음 결제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한미동맹의 강화는 자연스레 중국 거리두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 거리두기가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제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길이 늘어났다.


 외교의 곡선인 전략적 모호성은 윤 대통령에게 존중의 대상이 아니다. 우크라이나와 대만 문제를 직선적으로 언급해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전략적 모호성은 포기했다. 새로운 시대 흐름의 도전에 직면해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 시절 구도로 회귀하는 위험부담이 커졌다. 다변화 외교에서 직선은 금기처럼 여겨왔다. 직선 외교에는 감당 못할 비용이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직진형 리더십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게 명징하게 드러난다. 흐르는 강의 물줄기는 장애물에 부딪혔을 때 장애물을 뚫고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곡선으로 흘러간다. 종합예술이라는 정치야말로 곡선미가 긴요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