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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심리적 G8국가’가 먼저 해야 할 일

 한국만큼 등수나 서열에 민감한 나라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인이 지위 순위를 중시하는 문화·정서적 경향이 강하다는 점은 국내 사회학자들도 인정한다. 외국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인들이 학생 시절 시험점수와 등수로 평가되고 사회생활에까지 이어지는 것을 보고 ‘미친 듯하다’고 표현한 외국인이 있을 정도다. 연봉 재산 수능점수처럼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는 것에는 한결 예민하다.


 한국의 비교의식은 개인뿐만 아니라 나라 단위로도 유난스럽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 세계 7대 우주강국, 세계 6위 군사력 같은 경성권력(하드파워)을 더없이 자랑스럽게 여긴다. 여름올림픽 겨울올림픽 월드컵축구대회 3대 스포츠 행사를 모두 개최한 일곱번째 나라여서 뿌듯하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000만명 이상인 ‘30-50클럽’ 일곱번째 국가라는 말도 스스로 만들어냈다. 한 언론사가 2019년에 만든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등수 순위에 유난스레 민감한 것은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침략과 지배만 당하던 나라에서 벗어나 단군 이래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도약한 게 스스로 대견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리라. 경쟁주의 비교의식 서열의식은 집단주의 가치관이라는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국가 자격으로 참석한 이후 최선진국 클럽 회원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듯 여권이 잔뜩 들떠 있다. 여권은 ‘심리적 G8국가’라는 용어까지 만들어 자화자찬한다. 내치에서 내세울 만한 업적이 없자 외교적 능력을 발휘해 최선진국 클럽으로 도약했다고 과시하고 싶은 심정도 있겠다.


 G7에 가입해 G8국가가 되려면 회원국의 만장일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G7에서 캐나다를 제외하면 모두 ‘30-50클럽’ 국가다. 한국이 경제력으로는 G7에 가입할 자격이 부족하지 않다.


 윤 대통령이 굽히고 들어가 관계개선에 나섰다고 열쇠를 쥔 일본이 한국의 가입을 선뜻 찬성할까.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했고 지금도 얕잡는 일본이 그처럼 순수한 나라라고 생각하면 오판이다. 일본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나라는 자신밖에 없다는 자부심으로 뭉쳐 있다. 한국과 동급으로 묶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할지 모르지만 속마음(本音 혼네)과 겉표현(建前 다테마에)이 다른 게 일본이다.


 게다가 G7이 회원국수를 늘리면 기존의 특권의식이나 의사결정 효율성 면에서 장점을 발견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필요할 때마다 특정 국가를 초청하면 된다는 생각을 더 합리적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G7 확대는 국제정세와 여러 나라 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다. G7이 언젠가 회원국 확대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한국을 단독으로 가입시킬 개연성은 낮아 보인다. 태평양 지역에 무게를 둘 수 있도록 한국 호주를 더해 G9으로 하거나, 성격이 약간 애매한 인도까지 넣어 G10으로 재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이미 미국과 영국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10개 나라 회의체’(D10)를 제안한 적이 있다. 확대개편을 하더라도 정부여당의 희망사항처럼 가까운 시일 안에 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듯하다.


 윤석열정부는 김칫국부터 마시기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다른 선진국에 한참 못 미치는 여성과 소수자 권익 신장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한다.


 한국의 ‘성 격차지수’를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2023년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146개국 가운데 105위다. 지난해보다 외려 여섯 계단이나 떨어졌다. 현재 추세로는 여성이 남성과 같은 기회를 얻는 데까지 131년이 걸린다고 한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 결과, 한국의 남녀 성별 임금격차는 주요 39개국 가운데 가장 크면서 26년째 불명예 1위다.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이라고 뻐기고, 문화강국 반열에 올랐다는 한국의 창피한 현주소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은 물론 복지 고용 교육문제에 이르기까지 성평등 정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런데도 집권세력은 득표전략으로 젠더 갈등의 골만 깊게 파는 현실을 방조한다.


 장애인 성소수자 차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의 장애인 정책 수준이 OECD 주요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서울시장이 지하철 시위를 하는 장애인 단체는 약자가 아니라고 겁박하고, 퀴어축제를 방해하는 게 한국이다. 한국은 ‘인권 후진국’이란 오명을 동경하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게 한다.


 일본은 얼마 전 성소수자 인권 향상을 위한 ‘LGBT 이해증진법안’을 국회에서 가결했다. 한국이 ‘심리적 G8국가’라고 우쭐댈 게 아니라 나라의 품격을 높이는 게 급선무다. G7국가에 한국처럼 약자와 소수자를 박대하는 부박한 나라는 없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