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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선택적 자유’와 함께 한 1년

 윤석열 대통령만큼 ‘자유’를 부르짖는 국가지도자는 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10일 취임사부터 1년 동안 나라 안팎에서 500번 넘게 ‘자유’를 역설했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기념사 축사 격려사 같은 모든 메시지를 합하면 1000번에 가깝다고 한다. 빼앗긴 자유를 쟁취하려는 투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자유’라는 말에 깊이 꽂힌 것은 미국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할 자유’라는 책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이 ‘인생의 책’이 경제학자였던 아버지(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가 대학입학 선물로 준 것이라고 밝혀 더욱 눈길을 끌었다.


 윤 대통령이 그토록 예찬하는 자유가 현실에서는 뒷걸음질하는 모습을 보여 역설이 느껴진다. 자유와 민주주의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는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나오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다. 이처럼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국의 언론 자유가 국제기구 평가 점수에서 4계단이나 떨어졌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이달 초 발표한 ‘2023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7위를 기록했다. 국민이 체감하는 언론자유도 퇴행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언론자유가 후퇴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10명 중 6명으로 나타났다.

                                                                                         

   언론자유지수 하락에는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 윤 대통령이 지난해 뉴욕 유엔본부를 방문했을 때 ‘비속어 논란’을 처음 보도한 MBC 취재진은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조처를 받았다. 한국의 주요 언론단체는 물론 국제기자연맹까지 위험한 선례라고 규탄 논평을 냈다. 언론자유를 훼손하는 이 보복조치 사례는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실렸을 정도다. 동남아 순방 일정에선 기자단의 취재를 제한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통령실의 교묘하고 다양한 언론 통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주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권을 언론의 자유로 보는 헌법학자들이 있다. 세계 최초의 앵커맨 월터 크롱카이트는 "언론의 자유는 단지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자체가 민주주의다"라고 했다.


 대통령실과 여당이 민간기업 대표이사 선임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듯한 행태는 윤 대통령의 자유 설파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 KT 차기 대표이사 최종후보가 여권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사퇴한 일은 기업의 자유를 훼손하는 ‘관치’ 논란을 불러왔다. KT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가 여권 지원자들을 떨어뜨리자 여기저기서 벌떼처럼 나서 최종후보를 낙마시켰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우리금융 회장 선임 때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삼아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낸 것도 자유시장 경제를 손상한 대표적 행위 가운데 하나다.


 국민의힘 대표 선출 때 대통령실은 후보들의 출마 자유, 유세 자유를 사실상 박탈해 논란을 일으켰다. 유력한 당 대표 후보들이 대통령실로부터 공격당해 주저앉는 사례가 줄을 이었다. 반칙으로 최하위 후보를 일등 후보로 바꿔놓았다는 비난을 샀다. 당내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자유로운 경쟁이 설 자리를 잃었던 상처로 남았다.

                                                                                           

 윤 대통령은 노동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노동자들의 결사 자유를 억압하는 일도 벌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 당시 노동자들을 위협했다. 유엔 국제노동기구(ILO)는 윤 대통령이 노동자들의 결사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우려했다. 올해 들어서는 건설노동자들을 싸잡아 ‘건폭’(건설폭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대통령은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자유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열변해 갈채를 받았다. 그런 윤 대통령이 실제로 다른 이의 자유도 소중히 여기고 실행했는지 의구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사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실체가 모호하다. 국민이 생각하는 자유와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에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의 개념은 시장의 자유에 치우쳐 있는 느낌을 준다. 인간 본연의 자유의지 같은 맥락은 드러나지 않는다. ‘시민’과 관련한 자유는 다섯번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제시하는 이도 있다. 그나마 권력 불평등 빈곤으로부터 시민을 지키기 위한 자유라는 뜻으로 쓰지는 않았다.


 ‘자유’라는 낱말을 즐겨 써야 할 사람은 권력자가 아니라 상대적 약자인 시민이어야 한다. 윤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에 있다. 권력자가 시민의 자유 갈망을 스스로 실현해주기는 쉽지 않다. 자유주의의 토대가 다양성 존중임에도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에서 가장 부족한 것으로 다양성이 꼽히는 건 아이러니다.


 윤 대통령의 자유는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충돌하는 국제질서 속에서는 힘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국민은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를 더 원한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자유는 프리드먼이 강조한 ‘선택할 자유’라기보다 자신이 ‘선택적으로 방점을 찍는 자유’에 가깝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