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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고위공직자 재산의 정치학

 "기자가 버스를 타고 다니느냐, 비싼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필치가 달라진다." 뉴욕타임스의 신화적인 칼럼니스트 제임스 레스턴의 명언은 언론인의 경제력이 기사 내용과 관점을 바꿀 수 있다는 경구다. 최근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를 보면서 문득 레스턴의 소회가 떠올랐다. ‘처지가 다르면 생각도 달라질 수 있겠구나.’


 대통령비서실 고위공직자의 평균 재산은 무려 50억원에 가깝다. 정확하게 48억3000만원으로 일반 국민 평균의 10배가 넘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대통령비서실 고위공직자 37명의 재산신고서를 분석한 결과다. 윤석열 대통령도 76억9725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전 정부에서 논란거리였던 과다부동산 보유 고위공직자도 15명에 이른다. 일반 국민 가구의 평균 재산은 4억6000만원이다.


 윤석열정부의 국무위원들도 대통령비서실에 그리 뒤지지 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18명의 국무위원은 평균 40억9027만원의 재산을 보유했다. 문재인정부 1기 19억9000만원, 박근혜정부 1기 18억4000만원에 비하면 두배가 넘는다.


 국무위원 18명 가운데 절반은 ‘대한민국 1% 부자동네’로 꼽히는 ‘서울 강남 3구’에 집을 갖고 있다. 부동산·교육 같은 주요 정책결정 과정의 영향력이 큰 고위공직자들 가운데 서울 강남권 주택보유자 비중이 작지 않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윤석열정부의 고위공직자 전체 평균 재산도 이전 정부 때보다 20%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상승 같은 요인을 고려하더라도 이전 정부보다 부자 공직자가 늘어났다는 의미다.                                                                                       

                                                                                     


 공직자라도 재산이 많은 게 잘못은 아니다. 재산증식 과정이 합법적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런데도 가장 먼저 드는 느낌은 이분들은 예외없이 어떻게 이처럼 많은 재산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더불어 대통령 비서관과 장관이 되려면 경제력도 좋아야 하는가 하는 감상마저 밀려온다. 앞 정권에서도 재산이 많은 공직자가 적지 않았지만 윤석열정권에서는 차원이 다르다.


 부자 공직자는 정책을 입안하더라도 서민이 아닌 자신들의 ‘눈높이’를 먼저 생각하기 쉽다. 현 정부의 전반적인 부자감세 정책이 비판을 받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위공직자 중 상당수가 윤석열정부의 종합부동산세 완화 정책으로 세금감면 혜택을 받는다.


 ‘눈높이’란 말은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송곳’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송곳처럼 폐부를 찌른다. 많은 재산과 큰 권력을 가진 공직자들의 눈에 서민의 모습이 온전히 보일까 싶다. 사람이란 본능적으로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곤 한다.


 경실련은 특히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인 이원모 인사비서관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공정한 인사를 해야 할 이 비서관의 재산이 유독 많은 것으로 드러나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취지다. 이 비서관은 대통령실에서 가장 많은 446억원을 신고했다. 그는 배우자 명의로 상가만 무려 64개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기득권 혁파와 개혁에 성심을 보인다. 올해 신년사에서는 "기득권 유지와 지대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고 역설했다. 며칠 전 대구 서문시장 100주년 행사에 참석해서도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는 국민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공직자들에게도 기득권 저항을 극복하고 연금·노동·교육 등 3대 개혁을 완수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그런데 과녁이 이상하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를 보면 기득권 세력은 대통령실 고위공직자들과 국무위원들이 아닌가 싶다. 개혁대상이라는 노동조합과 연금수급자들 가운데 특권과 독점적 지위에 기대 지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중을 보면 이들은 지대추구자 사다리에서 맨 아래쪽 어디쯤 자리한다. 사다리의 맨 위쪽에 있는 사람들은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 과다 보유자다. 이 지대추구자들은 막강한 기득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


 모든 경제문제의 뿌리에 부동산이 똬리를 틀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부동산 때문에 불평등과 양극화가 유난히 심해졌다.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피하고 있는 것도 부동산 탓이 크다.


 공직자의 재산은 이해충돌 논란을 낳는 일도 흔하다. 대통령비서실은 특히 공정성을 요구받는 곳이다. 직무와 관련한 이해충돌방지제도 강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정치에서 민생보다 정쟁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도 국민 평균의 삶과 유리됐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도 전년보다 3억원 넘게 증가한 34억8000여만원이다. 여당 국민의힘 의원 평균 재산은 야당 의원보다 훨씬 많다. 보수 언론조차 ‘슈퍼리치’란 표현을 서슴지 않는 ‘부자정부’ 정체성은 여러모로 달갑지 않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