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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평균실종 시대의 ‘최소량 법칙’

  독일 식물학자이자 화학자인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식물의 성장을 연구하다가 놀라운 현상을 목격했다. 나무랄 데 없이 좋은 환경에 있는 식물이 예상 밖으로 잘 자라지 못하는 사례가 발견됐다. 의아하게 여긴 리비히는 원인을 캐기 시작했다. 마침내 필요한 영양소 가운데 양이 가장 적은 한가지 요소 때문에 성장이 더디어지거나 심지어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식물은 가장 부족한 영양소의 양 만큼 같은 비율로 다른 영양소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영양소가 100%씩 공급돼도 가장 부족한 영양소가 10%면 나머지 역시 10%만 사용된다. 식물은 종(種)이나 장소에 따라 필요한 양분을 적절한 수준으로 얻어야 잘 생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다량 수확이 필요한 환경에서는 풍부한 이산화탄소나 물과 같은 양분이 아니라, 토양에 극소량밖에 없는 붕소와 같은 원소의 부족으로 말미암아 생장(生長)이 억제되는 예도 있다. 리비히는 최소량의 원소가 식물의 생육을 좌우한다고 해서 ‘최소량의 법칙’이라고 이름 지었다. 리비히의 발견 이후 많은 연구자가 무기질 외에 시간적 요소 같은 여러 요인을 이 법칙에 포함해 개념을 확대했다.

                                                                                                   

    균형잡힌 성장을 위해 고른 배분이 필요하다는 ‘최소량의 법칙’은 다양한 영역에 적용된다. 가정 교육 기업 행정 정치 같은 분야도 마찬가지다. 공무원 변호사 의사 국가시험, 자격증 시험에서 총점이 아무리 높아도 한 과목의 성적이 합격최저점수에 못 미치면 ‘과락(科落)’으로 실패하는 사례는 최소량 법칙에 해당한다.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은 최소량의 법칙으로 성장과 발전에 걸림돌이 될 분야가 늘어났다. 평균을 내는 게 의미가 없는 ‘평균실종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각종 유형을 조사해 그래프를 그리면 대개 완만한 종 모양이 나와야 한다. 중심이 되는 평균 주변의 수치가 가장 높고,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낮아진다. 통계학에서 ‘정규분포’라고 일컫는 형태다.


 한국 사회는 평균이 실종되면서 양극단으로 몰리는 양극화, 개별값이 산재하는 N극화, 한쪽으로 쏠리는 단극화 현상이 뚜렷하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올해 트렌드 가운데 하나로 ‘평균실종’을 꼽는다. ‘평균실종’은 사회적으로 보편값이 사라지고 있다는 뜻을 담은 신조어다.


 가장 큰 불균형은 세계 최고속도인 인구의 초고령화와 세계 최저 수준의 저출생이다. 사회 양극화와 중산층 약화를 불러오는 최대 걱정거리다. 양극화는 이미 사회 전반의 문제로 등장했으나 그 정도와 분야가 급속히 확산하면서 심각성을 더한다. 

 

  ‘빈익빈 부익부’로 대변되는 양극화로 소득과 집값 격차를 꼽을 수 있다. 2022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 처분가능소득은 807만1000원인 반면 하위 20% 처분가능소득은 90만2000원이어서 그 차이가 약 9배에 이른다. 지난해 상위 10%와 하위 10%의 평균 주택자산 가액도 약 50배 차이가 난다. 이 밖에도 성별 세대 간, 노동시장에서 양극화가 짙다.

                                                                                             


 단극화는 양극화를 넘어 개인화와 쏠림으로 생겨난다. 쏠림 현상은 승자 독식, 양자택일의 구조 때문에 부작용이 한결 심화한다. 단극화는 플랫폼 경제에서 두드러진다. 메신저 앱은 ㅋ사, 배달 앱은 ㅂ사, 중고거래 앱은 ㄷ사, 패션 앱은 ㅁ사처럼 키워드를 들으면 단번에 떠오르는 플랫폼이 압도한다. 수도권 일극 체제로 대변되는 국가 불균형은 절박하다. 전체 국토의 12%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총인구의 50.3%, 청년 인구의 55%, 일자리의 50.5%, 1000대 기업의 86.9%가 쏠렸다. N극화는 사회적 현상과 소비에서 주로 드러난다. 자연스레 평균이라는 대푯값이나 특정한 추세를 산출해 내기 어려워진다.


 평균실종은 정치에도 들어맞는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정파와 당리당략에 따른 양극화가 최고조에 달했다. 권력과 이익, 특혜를 향해서는 같은 방향으로 쏠리는 단극화가 극명하다. 대중영합주의 이해관계를 놓고서는 개인이 철저하게 N극화를 지향한다.


 평균실종시대 원년임에도 윤석열정부는 사회통합 같은 건 사실상 내팽개치다시피 했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자유’를 35번이나 언급했지만 통합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른 연설에서도 ‘자유’라는 낱말을 많이 쓰지만, 평균과 정규분포를 이끌어내는 통합의 언행은 사라졌다. 집단적 갈라치기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만 도드라질 뿐이다.


 정치 진영, 경제적 계급, 세대 간, 젠더 간 적대는 마치 내전상태처럼 느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의 최대 취약점으로 사회통합을 꼽는다. 나라를 경영하는 지도자와 집권당이라면 ‘평균실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최소량의 법칙’이라는 함정을 읽어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미 충분한 영양소를 애써 더 챙겨주려는 어리석음만은 피해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