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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우주비행사 쿠퍼는 딸 이름을 ‘머피(Murphy)’라고 짓는다. 딸은 이름에 대한 불만을 아빠에게 털어놓곤 했다. 좋지 않은 일이 거푸 일어난다는 머피의 법칙이 연상되어서다. 그러자 아빠는 이렇게 받아넘긴다. "머피의 법칙은 나쁜 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게 돼 있다는 말이란다." 물리학자들도 양자역학을 빌려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윤석열정부의 잇따른 인사 참사 역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이 새로 임명한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이 하루 만에 사퇴한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인사가 낳은 후과다. 

 

  가뜩이나 ‘검찰공화국’ 아니냐는 시선이 불편한 터에 경찰 수사독립의 상징인 국가수사본부 수장마저 대통령의 측근으로 꼽히는 검사 출신이 임명되자 보수 언론까지 우려했다. 공모에 응한 3명 가운데 경찰 출신 2명을 제외하고 정 변호사를 단수 후보로 대통령에게 추천해 모양새를 갖췄으나 내정설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다.

                                                                                               

 아들의 고등학생 시절 학교폭력과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아빠찬스’ 논란이 불거지자 스스로 물러났지만, 대통령의 뜻을 무리하게 반영하려다 빚어진 참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경찰청이 "충분히 알아보지 못하고 추천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밝혔으나 상식적인 사람이라면 경찰청의 인사검증 잘못으로 여길 리 없다. 아들의 학교폭력으로 말미암은 전학처분을 막으려고 소송에 나서 대법원 패소 판결까지 받았던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앞서 벌어진 인사참사도 공정과 상식이 의심스러웠을 때 늘 일어났다. 윤 대통령의 40년 지기로 알려진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는 두 자녀 경북대 의대 편입과 아들의 신체검사 4급 판정 의혹 등 ‘아빠찬스’라는 비난을 견뎌내기 어려웠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역시 부인과 자녀의 장학금 문제로 낙마했다. 정 후보자에 뒤이은 김승희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는 정치자금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자진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음주운전 전력과 각종 의혹으로 논란이 컸던 박순애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인사청문회 없이 무리하게 임명됐지만 결국 단명에 그쳤다. 윤석열정부 초대 공정거래위원장 후보로 지명됐던 송옥렬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자진 사퇴했다. 윤 대통령의 사법연수원 동기로 사상 첫 법조인 출신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라는 아름답지 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지명 이후 과거 성희롱 논란 등이 심적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이 많다.

                                                                                           

   
 이 무렵부터 윤 대통령이 정치 입문의 가장 큰 명분으로 내세운 ‘공정과 상식’이 무색한 인사가 많다는 비판이 따르기 시작했다. 공정과 상식이 윤 대통령 자신과 가족, 야당과 비판자들에게는 다른 잣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시민의 목소리가 커졌다. 야당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는 엄격하게 법을 들이대는 반면, 자신과 가족의 일에는 느슨하기 그지없다는 뜻이 담겼다.


 4개월이 거의 다 된 10·29 이태원 참사야말로 국가기관의 무책임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없다.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이 참사 직후 "경찰이나 소방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라고 발뺌한 것에서 반증됐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참사 분향소 유지를 둘러싸고 유가족측과 서울시가 여전히 갈등을 빚고 있는 상태가 더욱 안타깝다.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주최자 없는 행사에 군중이 과도하게 몰렸을 때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 안전확보와 사전통제 지침을 마련해 운영한다. 미국 일본 홍콩 같은 곳에서는 과거 사고에서 교훈을 얻어 인파가 몰리는 대형행사가 있으면 경찰이 경계강화에 나선다. 

 

   2001년 7월 일본 효고현 인근 육교에 불꽃놀이를 보러 인파가 몰리면서 11명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홍콩에서는 30년 전인 1993년 새해 전야를 맞아 ‘홍콩의 이태원’이라고 할 수 있는 란콰이퐁 거리에 과다 군중이 몰려들어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부상한 전례가 반면교사다. 과거에 비극을 겪은 나라들은 당국이 스스로 책임을 인정하고 지금까지 애도와 반성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다른 나라의 선례를 미리 보고도 배우지 못한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책임 회피로 급급했다. 정부가 명백한 참사를 ‘사고’로 표현해 축소하거나 희생자를 ‘사망자’로 표현해 책임을 회피하려는 논란까지 일으켰다. 표현을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지지 않는다.


 우연히 좋은 일만 계속 생기고, 나쁜 일도 전화위복이 되는 ‘샐리의 법칙’은 상식을 거스를 땐 일어나기 어렵다. 나쁜 일은 상식적이지 않을 때 더 자주 일어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