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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매슬로의 망치’와 검사 정치인 전성시대

  망치를 든 사람에게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망치의 법칙’은 인간의 욕구를 잘 투영한다. ‘욕구 5단계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언급한 이 말은 ‘친숙한 도구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인지편향’을 뜻한다. 미국 철학자 에이브러햄 캐플런도 "어린아이에게 망치를 주면 두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다닐 것"이라는 ‘도구의 법칙’을 제시했다. 특정 해법을 모든 분야에 적용하려고 하는 심리를 족집게처럼 짚어냈다.


 나라를 경영하는 권력은 망치질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 특정 도구에 몰입하면 시야가 좁아질 확률이 높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망치가 있으면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 사람의 경험이 부동산 거래로 제한돼 있으면 모든 게 임대계약 협상으로 보인다"고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꼬집은 바 있다.


 법으로 일하는 사람은 모든 상황을 법의 시각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경향이 짙다. 역사상 첫 검사 출신인 윤석열 대통령에게 두드러진다. ‘법과 원칙’을 유난히 강조하는 모습도 여기서 드러난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인사편중으로 말미암아 ‘검찰공화국’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이어졌음에도 최근 국민의힘 당원협의회(당협) 조직위원장으로 검사 출신이 다수 발탁돼 색깔을 더욱 짙게 했다. 당협 조직위원장은 다음 총선에서 국회의원 후보 공천에 유리하다. ‘비윤(비 윤석열계) 솎아내기’라는 딱지가 붙은 데다 윤 대통령과 가까운 검사 출신 인사들이 차기 국회에 한층 약진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걸 의미한다.

                                                                                         


 윤석열정부에서는 사상 처음 검사 출신이 금융감독원장(이복현)에 임명되고, 공정거래위원장(한기정)에도 법률가 출신이 등용됐다. 심지어 국가유공자와 유족의 복리 증진을 담당하는 국가보훈처장에까지 검사 출신 전 국회의원(박민식)이 기용됐다. 대통령실 인사책임자인 인사기획관(복두규) 인사비서관(이원모) 총무비서관(윤재순)이 검찰 출신인 것도 새로운 기록이라 할만하다.


 벌써 정치권에는 검사를 비롯한 법조 출신이 직업군의 규모에 비해 엄청나게 과대 대표되고 있다. 21대 국회의원에 법조 출신 46명이 포진했다. 전체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15.3%나 차지한다. 한국 법조인 수는 판사 3000여명, 검사 2000여명, 변호사 3만여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0.1%에 불과하다.


 윤 대통령은 정부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를 지나치게 중용한다는 지적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미국 같은 선진국을 보면 법조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정·관계에 폭넓게 진출하고 있다.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나." 법조인의 능력을 유별나게 여긴다는 인식이 담겼지만 법조인이 법으로 다스리는 나라가 법치국가라는 왜곡된 인식까지 함축됐다.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이 많은 데 대해 일반적인 인식은 의회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기능인 입법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렸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법조 경력이 입법 활동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주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잡다기한 현대는 모든 일이 합법과 불법으로 나뉘는 단순 사회가 아니다. 실타래처럼 얽힌 다양한 난제와 정치현안에 적절하게 대응하는 게 누구도 쉽지 않다.

                                                                                           

       윤석열정부는 노동자의 삶도 법이라는 이름으로 단순하게 재단하고 단죄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게 지지율을 높이기도 해 더 신이 난 듯하다.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도 ‘수사’라는 망치로 해결하려 든다. 책임 문제라도 돌출하면 위법 여부로 판단한다. 10·29(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판사 출신 측근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진퇴 문제도 합법이냐 불법이냐만 따진다.


 법조 출신은 법에 어긋나지 않게,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갈 수 있는 자기 보신의 법 기술자들이기도 하다. 정치는 갈등을 풀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며 약자를 보듬는 일인데도 말이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서울대 법대 출신이 정치에서 실패하는 이유를 흥미롭게 분석한 적이 있다. "(이들은) 정치를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한다. 정치를 혼자 한다.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할 줄 모른다."


 세상은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컴퓨팅(Cloud Computing),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이라는 새로운 ICBM을 중심으로 4차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한 지 오래다. 이 시대의 4대 속성은 지능화 초연결성 개인화 융합이다.


 법조인은 과거를 먹고 산다. 법조인은 과거에 누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가려내는 일에 익숙하다. 윤 대통령 주변에는 유달리 좋아하는 오래된 법조 지인이 많다. 인사 다양성 결여의 폐해는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대거 나서 4차산업혁명 시대의 거버넌스(국가경영)에 앞장선다는 것은 시대착오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