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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주목경제 시대의 숨은 공로자들

 이보다 더 모질고 악독한 말을 하기도 어렵다. "우려먹기 장인들. 자식 팔아 장사한단 소리 나온다. 제2의 세월호냐. 나라 구하다 죽었냐." 국민의힘 소속 김미나 창원시의회 의원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 자식들이 날 때부터 국가에 징병되었나요?? 다 큰 자식들이 놀러 가는 것을 부모도 못 말려놓고 왜 정부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깁니까?! 언제부터 자유 대한민국 대통령이 ‘어버이 수령님’이 되었나요??" 망언의 끝판 대장을 보는 듯하다. 김성회 전 대통령실 종교다문화비서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성 소수자들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물러난 바로 그 사람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대구 서구)은 공식회의에서 이렇게 말을 했다. "지난 세월호 사태에서 우리는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국가적 참사가 발생했을 때 이를 숙주로 삼아 기생하는 ‘참사 영업상’이 활개치는 비극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들은 참사가 생업입니다. 진상이 무엇인지는 관심이 없습니다." ‘튀어야 산다’는 주목경제(attention economy) 시대가 낳은 서글픈 단면들이다.


 김미나 의원은 이 혐오발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지만, 단번에 전국적인 인물로 떠올랐다. 그는 자기편 유권자뿐만 아니라 정부·여당의 고위층에도 눈도장을 확실히 찍었다는 역설적인 평가를 받는다. ‘정치인은 자기가 죽었다는 부고 기사만 빼고는 다 반긴다’는 속설이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는 게 여기서도 입증된다.

                                                                               

 정치인이야말로 타인의 주목을 먹고 사는 대표적인 주목경제인이다. 미국에서 ‘워싱턴과 할리우드는 경쟁관계다’라는 말이 통용되는 것은 정치인이 연예인과 같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진보·보수의 구분도 없다.


 사이버 공간은 주목을 쟁탈하는 아수라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인터넷에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건 타인의 주목을 받기 위한 투쟁의 하나다. 사회적 물의를 빚는 저명인사들의 과격 발언이 한결 잦아진 것도 ‘주목경제’가 조성하는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이 깊다.


 주목경제 개념은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허버트 사이먼이 처음 이론화했다. 정보가 넘쳐나면 주목도는 떨어진다. 이 때문에 수용자의 주목도가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도록 분배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 뒤 토마스 데이븐포트, 마이클 골드하버 같은 학자가 ‘주목경제’란 용어로 확장했다.


 광고·홍보·PR이 전통적인 주목산업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주목경제가 아닌 게 거의 없다. 대중의 관심과 주목을 쟁취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선 넘는 발언으로 관심을 끄는 유튜브, 자극적인 뉴스 제목, 액션 영화의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 감각적인 에세이집 표지처럼 거의 모든 이가 주목경제의 중심권에 들어섰다. 주목을 받는 데는 충격만큼 효과적인 게 없다. 주목경제에서는 모든 말과 이미지가 충격을 주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경쟁자가 극단적으로 많아지는 ‘초경쟁’(hyper-competition) 단계에서는 소비자의 주목받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산업 경계마저 점차 사라져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도 주목받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무한경쟁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과는 달리 타인들의 주목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공동체의 버팀목들이 더 많다. 모든 분야에 보이지 않는 공로자들이 숨어 있다. 자기과시시대에 그들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면서 조직이나 사회에 소금처럼 존재한다. 이들은 잘할 땐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못 해야 비로소 드러나는 사람들이다. 숨은 공로자들에겐 타인의 주목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치밀성, 무거운 책임감, 전문성과 탁월성을 향한 매진 같은 특성이 보인다. 우리 사회는 이런 수많은 투명인간의 힘으로 지탱한다.


 이들은 주목하는 눈이 없더라도,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를 최고 덕목으로 삼는 존재다. 이를테면 공연장 음향담당은 문제가 생기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잘하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화려하고 장엄한 공연장의 조명을 담당하는 사람은 조명을 받지 못한다. 일선 경찰관과 소방관, 환경미화원은 실수를 하거나 자신의 목숨을 잃어야 비로소 사회가 알게 되는 존재들이다.


 가정의 엄마, 전기·서비스 기술자, 간호사, 신문과 책을 최종 단계에서 완성하는 편집자·교열기자 같은 이들도 그렇다. ‘대통령’(大統領)을 ‘견통령’(犬統領)이라는 오자로, ‘대통령’을 ‘대령’이라는 탈자로 만든 작은 실수로 중징계를 받는 사례가 있었다. 그럴 때라야 주목을 받는 사람들이다.


 지렛대이자 버팀목인 이들이 존중받는 공동체가 진정으로 건강한 사회다. 여느 해 못지않게 힘든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막말’로 튀어서 주목받아 생존하려는 인간말종 같은 정치인들이 아니라 작은 영웅들이 인정받는 터전이 다져지길 소망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