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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미래’ 간판 걸고 ‘과거’ 상품 파는 새 정권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금언은 예수가 처음 한 말이어서 한결 무게가 실린다. 이 잠언에는 과학이 담겼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포도주를 양의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담았다. 이때 낡은 부대에 새 포도주를 오래 담아 두면 발효과정에서 독한 가스가 생겨나 부대가 터져버린다. 오래된 가죽부대 안에 당분이 묻어 가죽이 딱딱해지기 때문이다. 새 가죽부대는 포도주가 발효하는 만큼 늘어난다. 이 과정에서 좋은 술이 만들어진다.


 ‘새 부대’는 흔히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 인물과 정신을 상징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나라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주 국무회의에서도 "나라의 미래에 대한 계획을 청년들과 함께 만든다는 각오로 소통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약속과는 달리 인사와 정책은 과거로 달리는 모습이 역력하다. 가장 미래지향적이어야 할 교육이 특히 그렇다. 시행착오 끝에 마무리한 교육부장관과 국가교육위원장 인사에서 시대정신과는 거리가 먼 ‘낡은 부대’를 선택했다. 10년 전 이명박 대통령 시절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을 지낸 이주호 후보자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교원단체도 우려를 표명할 정도다. 그가 당시 추진한 정책은 교육현장을 황폐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윤 대통령은 낡은 인물을 같은 자리에 다시 중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무위원후보자 인사청문 요청사유서’까지 이명박 대통령 것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 무성의할 뿐만 아니라 10년 전 정부의 교육철학과 같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 후보자가 정식 임명되면 ‘이명박정부 시즌 2’에 가깝다는 낙인이 뚜렷해진다. 윤석열정부에는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등 ‘이명박정부 인물’이 두드러지게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중장기 교육정책을 설계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수장인 이배용 위원장은 더욱 부적절한 인물이다. 이화여대 총장을 지낸 그는 박근혜정부에서 한국학중앙연구원장을 맡아 친일·독재 미화 역사 국정교과서 편찬에 앞장섰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정 역사교과서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나치 독일, 군국주의 일본, 독재정권 시절의 한국이 채택했고, 현재 북한 같은 곳에서나 국정 역사교과서로 배울 뿐이다. 그는 ‘위안부가 일본군을 따라갔다’ 같은 표현으로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교학사 교과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등 갈등과 분열을 유발했던 장본인이다.


 ‘자유’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하는 윤 대통령이 무슨 생각으로 정파를 초월하는 미래 교육정책 수립 책임자로 시대를 거꾸로 산 인물을 임명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교육이야말로 미래 국가 동량을 키우는 일이다.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단순한 부적격자를 넘어선다. ‘극우 유튜버’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인물을 사회통합을 이뤄내야 할 책임자로 발탁한 것은 사회적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그는 노동운동가 출신이면서도 ‘반노동 인식’으로 가득 찼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후에는 ‘태극기부대’에 합류해 극우 발언을 일삼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주 국정감사에서 문제 발언으로 퇴장당한 데 이어 방송에 출연해서도 "문재인은 김일성주의자" "총살감"이라는 등 극단주의자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옹호했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강행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의 기치를 걸고 과거를 파는 대표적인 행태의 하나다.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 여성가족부를 폐지한다"는 윤 대통령의 출근길 약식회견 발언은 나라 안은 물론 해외언론의 비아냥감이 되고 있다. 전담 부처를 없애는 것이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라니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여가부는 30여년 전 민주화 헌법 탄생 직후 노태우정부 때(이름이 다르지만)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해외언론은 한국 여성이 만연한 성희롱과 온라인 괴롭힘과 더불어 남성 임금의 2/3를 받고 있는 게 현실이며, 이는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큰 성별 임금격차라고 꼬집는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래를 상징하는 30대 장관이 여러명 나올 것이라고 공약했지만 아직까지 빈말이다. 윤 대통령의 낡은 인식은 지난주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 기념식에서도 제대로 드러났다. "(박정희 시대의) 새마을운동이 제 정치비전과 정확히 일치한다."


 ‘미래’ 간판을 걸고 ‘과거’라는 상품을 팔고 있으니 20~50대의 미래세대는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출범 반년을 향해 가고 있는 새정권이 미래를 위해 하는 일은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앞 정권의 비리나 실정만 들춰 지지율을 지키려는 전략이 처연해 보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