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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맥베스의 운명, 윤석열의 길

  윤석열 대통령이 권좌에 오르는 과정은 공교롭게도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 전반부를 연상시킨다. 스코틀랜드의 용맹한 장군이자 충신인 맥베스는 반란군을 진압하고 돌아오던 길에 정체불명의 세 마녀와 마주친다. 마녀들은 맥베스가 장차 왕위에 오를 것이라고 예언한다. 깜짝 놀란 맥베스는 들은 얘기를 아내에게 털어놓는다.

 

  맥베스는 전공을 세운 자신에게 영주 작위까지 하사한 던컨 왕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주저한다. 야심만만한 아내는 남편의 나약함을 타박하며 왕을 살해하라고 부추긴다. 용기를 낸 맥베스는 승전을 축하하기 위해 자기 성에 들어와 잠자던 던컨 왕을 시해한 뒤 왕위에 오른다. ‘맥베스’는 실존 인물인 스코틀랜드 국왕 ‘막 베하드 막 핀들라크’가 모델이다.


 윤 대통령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로 명성을 쌓은 칼잡이 검사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법과 정의의 칼을 들이댔던 윤 검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파격적인 발탁으로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으로 승승장구한다. 윤 검찰총장이 사표를 던진 뒤 자신을 키워준 문 대통령과 정권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권력을 장악한 과정은 우리가 지켜본 대로다.


 이 과정에서 맥베스의 마녀 예언에 비유할만한 역술가들의 예언이 있었는지, 박사학위 논문 주제가 역술이었던 부인 김건희 여사의 입김이 있었는지는 명확히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윤 대통령 주변에 역술가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여러 경로로 드러났다.

                                                                                                 

                                                                                     

  맥베스에게 왕위는 생각만큼 기쁨을 주지 못했다. 맥베스는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왕위를 지키기 위해 폭정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떨쳐내기 위해 다시 마녀들을 찾아간다.


 마녀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 몇가지를 들려주며 맥더프라는 인물만 조심하라고 예언한다. 맥베스는 맥더프의 아내와 아이들을 죽이며 또 칼에 피를 묻힌다. 맥베스의 아내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괴로워하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다. 혼자 남은 맥베스는 인생이 공허하다고 한탄한다. 맥베스는 끝내 맥더프의 칼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윤 대통령이 초반의 총체적 난맥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실패한 대통령’이란 낙인이 찍혀 5년 만에 정권을 넘겨주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맥베스의 운명과 흡사한 길을 걷게 된다.


 맥베스에게 불안감이 문제였다면 윤 대통령은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이 탈을 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근자감’에는 ‘더닝-크루거 효과’라는 인지편향이 바탕에 깔렸다. 잘못된 판단을 내렸지만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실수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속언과 통한다.


 윤 대통령은 휴가를 끝내고 와서도 “더 열심히 일하겠다”고만 했다. 대통령이란 그저 열심히 한다고 되는 자리가 아니다. 잘한다는 걸 증명하는 자리다. 윤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실력 없는 정부는 하면 할수록 마이너스다. 지금 정부(문재인정부)는 실력 없는 정부”라고 비판했다. 그랬던 윤 대통령과 정부는 초반부터 거의 모든 방면에서 실력 부족이 도드라져 보인다.


 윤 대통령은 “각 분야에서 최고 경륜과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고 천명하고, 실제로 그랬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라며 감쌌던 박순애 교육부장관은 최악의 무능 장관이라는 오명과 함께 최단기에 낙마했다. 최고 엘리트라는 다른 각료들이나 대통령실 참모들도 정책 혼선을 빚거나 존재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의 물난리 대응에서도 혼란과 무능이 고스란히 노정됐다.

                                                                                           

 대통령을 뒷받침한다는 명분으로 국민의힘을 장악해 차기 총선 공천권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윤핵관’의 권력게임은 대통령과 당의 지지율 추락을 가속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에 공이 적지 않은 젊은 당대표를 ‘내부총질죄’로 몰아내는 뺄셈정치는 권력 공고화의 고수처럼 여기지만 실상으로는 하수다. 시간은 자기들 편이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예부터 권력게임에 능한 자가 권력게임으로 망한다고 했다. 불과 5~6년 전의 선례도 나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무능하면서도 무리한 권력게임 때문에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맥베스의 부인처럼 오늘의 윤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것으로 알려진 김 여사의 보이지 않는 힘을 통제하는 일도 대수로운 숙제다. 지금까지 드러난 잡음 외에도 다잡아야 할 일이 적지 않다는 세론을 무시하다가는 더 큰 낭패를 당할지도 모른다. 윤 대통령 주위에서 김 여사를 언급하는 게 금기사항이라는 풍설은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한다.


 내일(17일)이면 모든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취임 100일인데도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의원내각제라면 의회해산 후 총선거를 해야 할 수준인 20%대다. 성공한 대통령을 기대하기가 이토록 어려울까 싶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