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파를 초월해 오랫동안 모범적인 고위 공직자로 활약한 대표적인 인물로는 한스 디트리히 겐셔 전 독일 외무장관을 첫손가락에 꼽을 만하다. 독일통일의 주역 가운데 한사람인 겐셔는 18년 동안 한자리에서 일해 ‘직업이 외무장관’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헬무트 콜 총리로 이어지는 세차례의 정권교체와 통일 직후에도 최장수 ‘외교 사령탑’은 바뀌지 않았다. ‘외교의 귀신’이란 별명까지 붙은 그는 ‘겐셔리즘’이라는 외교용어를 낳을 만큼 탁월한 역량을 체현했다. 겐셔리즘이란 외교정책과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발전과정으로 파악해 패권과 영향력 행사 지역으로 세계를 분할하는 것을 막고 다극체제 속에서 공존하자는 취지다.
겐셔는 미국 소련 등 주변 4대 강국과 인접 9개국 어느 쪽도 적으로 만들지 않는 외교로 통일을 이끌어냈다. 동서냉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80년대 강대국들은 그를 ‘미끈거리는 사람’이라 불렀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별명이었던 ‘기름장어’와 흡사한 표현이 겐셔의 언행 때문에 탄생했다. 그는 "나는 아내와 영어를 다루는 재주가 영 없다"고 했지만, 외교 상대방에게 성실과 믿음을 심어주면서도 휘둘리지 않았다.
겐셔에 비하면 국제적 지명도가 낮지만 오랜 기간 최고위 관료로 정파를 뛰어넘어 봉직한 영국의 제러미 헤이우드를 빼놓을 수 없다. 노동당 출신 총리인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보수당 출신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과 테리사 메이에 이르기까지 그의 보좌를 받았다. 그는 총리 다음의 내각 최고위직인 행정장관(Head of Home Civil Services)으로 차별적인 총리 4명과 지혜롭게 일했다.
헤이우드와 함께한 총리들은 소속 정당이 다르더라도 한결같이 "그가 있으면 영국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말로 최고의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전략은 물론 정책 디테일에도 통달해 총리들에겐 ‘필수적 정책통’(policy wonk)이었다.
그는 20여년간 정파를 넘어 권부의 핵심에서 일해 한국에서라면 거의 불가능한 이력을 지녔다. 뜻이 다른 이들도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신념의 소유자였다는 게 정치인과 동료들의 말이다. 그는 정치인과 공무원의 관계설정에 역점을 두었다. 정치인과 공무원의 경계를 존중하면서도 공무원이 정치인 장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영국 총리들은 이따금 "제러미는 (이 문제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을 보좌진에게 했다고 한다. 4년 전 비교적 젊은 나이(56세)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헤이우드와 흡사한 인물을 찾는다면 한덕수 국무총리가 거의 유일하다. 윤석열정부의 초대 총리가 된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최고 지도자들이 중용한 ‘행정의 달인’으로 불린다. 그는 헤이우드처럼 같은 직위에서 연속 일하지는 않았으나 진보·보수 정권을 넘나들며 최고위 관료로 일하다 두번째 총리를 맡았다. 경제·통상·외교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데다 정파색이 없는 게 장점으로 통한다.
노무현정부 총리 시절 붙은 별명이 ‘일벌레’였던 그는 대부분의 신문을 읽고 검토한 뒤 회의에서 토론을 거쳐 정책을 조정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대통령마다 사랑한 ‘일벌레’ 한덕수는 이제 부지런한 엘리트 총리를 넘어 정책적 위기 대응 능력이 긴요한 상황과 마주쳤다. 나라 안팎에서 밀려오는 미증유의 폭풍은 자칭 ‘마지막 공직’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더한 ‘경제 겨울’이 닥칠 것이라는 경고가 벌써 쏟아진다. 한 총리 자신도 지난주 "경제전쟁이라 할 만큼 대내외 상황이 급박하다"며 관계 부처의 신속한 대응을 독려했다. ‘자유무역협정(FTA) 전도사’였던 그의 장기가 신냉전의 도래로 빛이 바랠 수 있는 국면이기도 하다. 올해 상반기 한국의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라는 통계가 나왔다. 그가 총리 지명 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중장기 국가 운영 4대 필수과제(국익 외교, 재정 건전성, 국제 수지 흑자, 높은 생산력 유지) 가운데 이미 ‘국제수지 흑자’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대통령 중심제의 국무총리라는 자리의 특성상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존재감을 보여줘야 하는 그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그저 무난하고 안정감을 갖췄다는 평판에 그쳐서 안되는 처지다. 대통령 정책실장이 없는 윤석열정부에서 한 총리의 역할은 경세가에 가까워야 한다.
그는 때를 한참 지나 다시 공직에 돌아왔다는 시선과 자존심을 의식해서라도 국정운영의 성과물로 입증해야 한다. 한 총리는 "민주주의가 잘 되려면 통합과 상생이 돼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여야 협치를 통한 국민통합·민생경제에 난제가 쌓였지만, 야당이 의회권력을 장악한 상황에서 정책 협치가 순탄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궁극적인 책임이야 대통령에게 돌아가겠지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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