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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선진국에 걸맞아야 할 공직 인사기준

 헝가리 대통령은 박사논문 표절 탓에 물러났다. 슈미트 팔 전 대통령은 올림픽 펜싱 금메달 2연패를 이룬 헝가리의 스포츠 영웅이었다.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이보다 한달 앞서 독일 국방부장관도 박사논문 표절 의혹으로 사임했다. 독일에서는 2년 뒤 교육부장관이 또 박사학위 논문 표절 판정을 받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해에는 독일 가정·노인·여성·청소년부장관이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 소용돌이 속에서 사직했다.


 스웨덴 부총리는 정부 신용카드로 생필품 34만원어치를 사고 나중에 자기 돈으로 카드대금을 메꾸었다고 해명했으나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모나 살린 부총리는 공휴일에 기저귀 초콜릿 식료품값을 무심코 법인카드로 지급했다. 1996년 총리직 승계를 반년 앞둔 시점이었다. 스웨덴에서는 아무리 작은 액수라도 국민 세금을 공직자가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는다.


 핀란드 교육부장관은 골프장 주변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골프장 회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 이해충돌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장관을 지낸 하원의원이 10년 전 과속딱지를 뗀 책임을 아내한테 전가한 것이 들통나 쫓겨났다. 하나같이 사소해 보이지만 공직자로서 부적절한 처신과 사안이기 때문이다.


 건국 당시부터 인사검증과 인사청문회 제도를 도입한 미국은 230여 년 동안 낙마자가 10여 명에 불과하다.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준동의안을 상원에서 표결하는 미국에서 부결된 사례도 2% 미만이라고 한다. 사전 인사검증이 얼마나 꼼꼼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은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지 20년이 넘었으나 고위공직자 임명 때마다 부적격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도덕성 기준이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느슨한데도 그렇다. 국민의 기대 속에 출범한 윤석열정부도 초기 인사부터 실망스러운 일이 줄을 잇는다. 이미 한차례 낙마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후임자 역시 도덕적 흠집투성이여서 사퇴 여론이 비등하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는 만취운전, 논문 중복게재 의혹, 이해충돌 시비에 이르기까지 부적격 사유가 한둘이 아니다. 단 한번의 음주운전 처벌을 받은 교원이라도 올해부터 교장 승진 길이 막힌다. 국가 교육수장을 맡을 자격이 없다.

 

 김승희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의 결격 사유 역시 박 후보자 못지않다. 김 후보자는 관사 재테크(아파트 특공분양), 정치자금으로 렌터카 편법 인수, 노모 위장전입, 편법증여 등 의혹이 불어난다. ‘정치자금 유용’ 의혹 보도가 나온 후에야 같은 금액을 반납한 뒤 은근슬쩍 넘어가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을 면하기 어렵다.


 전임 문재인정부는 스스로 병역기피 탈세 불법재산증식 위장전입 연구부정행위(표절) 음주운전 성범죄 같은 7대 비리 해당자는 고위공직 후보자에서 배제한다는 인사기준을 발표하고도 거의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2~3개의 필수비리가 있어야 발탁된다"는 비아냥거림이 있었을 정도다.


 국민의 4대 의무 가운데 하나인 세금납부를 하지 않다가 공직 임명 소식을 들으면서 부랴부랴 내고 통과되는 사례가 허다했다. 법인카드를 유용하거나 정치자금을 불법으로 사용했지만 처벌은커녕 장관으로 임명되는 사례도 여럿 있었다. 다른 선진국에서라면 결코 그대로 넘어갈 수 없는 일이다.

                                                                                     


  병역면제나 업무추진비 특정업무 경비 등을 유용하고도 법을 다루는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장관 같은 공직에 임명되는 데 별문제가 없었던 사례도 흔하다. 학위논문이 표절로 판정돼도 개의치않고 국회의원직을 유지하거나, 대통령 후보직도 간직한다. 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죄송하다" "송구하게 생각한다"면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한다. 명백한 불법인 위장전입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정권 담당자들은 높은 도덕성 검증기준 때문이라고 불평하지만, 언제나 자기와 가까운 사람, 자기편만 챙기는 좁은 인재풀이 문제다. 인사검증 문턱을 높인 것은 윤 대통령 자신이다. 검찰총장 시절 조 국 전 법무 장관 임명 때부터 국민의 공정과 상식 눈높이가 달라졌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위장전입 같은 불법이나 탈법이 밝혀졌음에도 별일 아니라는 듯이 용인하는 정서다. 위장전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국회가 법 폐기부터 해야 할 텐데도 말이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최고의 리더십은 솔선수범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5%의 사람은 리더가 하는 말만 들어도 믿지만, 95%의 사람은 실제 행동을 봐야 믿는다." 새로운 시대와 선진국에 걸맞게 최소한의 명확한 인사기준을 정하고 지켜야 할 때다.


 ‘인사는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는 한마디로 대통령이 마음대로 해서는 안된다. 인사청문회 대상이 아닌 공직자도 대통령이 잘 아는 사람이면 무조건 임용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통령의 의식 수준이 관건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