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초심자 행운’이 가혹한 시험으로

  처음 주식에 손을 대 재미를 좀 보면 빚까지 내 골몰하다가 낭패를 보는 사람이 숱하다. 친구를 따라가 처음 낚시를 하는 사람이 한두차례 월척을 낚으면 자기 소질이 대단한 줄 안다. 새로운 걸 처음 해볼 때 뜻밖에 전문가보다 나은 성과를 거두는 ‘초심자의 행운’은 어느 분야에나 존재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맞이한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운을 실력으로 착각하는 일이다. ‘초심자의 행운’에 자기과신과 확증편향까지 결합하면 최악의 실패를 불러온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초심자의 행운’을 경계해야 하는 본보기로 곧잘 거론한다.


 ‘초심자의 행운’을 자신에게만 있는 특별한 능력이라고 착각하는 순간 어김없이 시련이 따라오곤 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파울루 코엘류는 소설 ‘연금술사’에서 ‘무엇인가 찾아나서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라고 경종을 달아놓았다.

                                                                                     

   정치 초보자 윤석열 대통령은 8개월 남짓 만에 너무 쉽게 최고 권좌에 오르는 ‘초심자의 행운’을 누렸다. 윤 대통령의 당선에는 그의 능력과 정치적 자질보다 국민의 정권교체 염원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실정과 오만이 낳은 결과물이나 다름없다. 역술가들의 말처럼 ‘대통령 자리를 하늘이 내려준 것이니 내가 맘대로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추호라도 지녀서는 안된다는 뜻과 같다.


 최근 잇단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는 것은 자기과신의 함정을 의심해 보게 한다. 취임 2개월 전후 지지율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위기국면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참모진은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지지율은 별 의미가 없고, 오로지 국민만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있단다. 지지율이 곧 민심인데 국민만 바라보겠다니 무슨 역설인지 모르겠다.


 국정수행 부정평가 요인으로 ‘인사’가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정권의 토대가 튼실하지 않다는 의미다. ‘인사만사’는 공자 말씀 이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가·기업·사회조직의 바탕이다.


 잇단 각료 후보자 낙마 외에도 유례없는 검찰 식구 챙기기, 학교 선후배와 지인 중용 인사, 문제적 인물 임명 강행, 김건희 여사와 연관성 의혹이 있는 논란 인사 같은 것은 공과 사가 모호하다는 지적을 받는 대표적 사례다. 공과 사가 섞이니 윤 대통령의 집권 구호인 공정과 상식이 흔들린다.


 인사 부실을 지적하는 기자들에게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 봤나" "우리 정부에선 빈틈없이 사람을 발탁했다" 같은 반응을 보인 것에서 또 다른 ‘내로남불’이 느껴진다는 여론이 많다.

                                                                                           

 때마침 윤 대통령이 깊이 새겨야 할 흥미로운 여론조사 결과가 지난주 말 발표됐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일로 돌아가 다시 투표한다면’ 하는 질문에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50.3%,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하겠다는 응답은 35.3%로 나타났다.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보면 시스템 문제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지 않느냐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인사문제에 대한 재인식과 재정비가 없으면 신뢰회복에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른다면 더 큰 문제다.


 대통령과 ‘윤핵관’ 같은 권력 주변의 지나친 자신감과 아마추어적 열정, 부족한 정무감각이 포개져 정권 초기의 난맥을 부추긴다.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출근길 약식기자회견(도어스테핑)이 정제되지 않은 ‘애드리브’같은 답변으로 되레 실점하는 것도 정무감각 부족으로 보인다. 

 

  정무감각은 모든 언행에서 드러나곤 한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 국정감사에서 "예나 지금이나 정무감각 없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검사로서는 정무감각이 없는 게 장점일 수 있으나 정치인인 대통령이 정무 감각이 떨어지면 치명적이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해명을 자주 한다. 정치는 법이 아니라 정서로 하는 것이다. 국민은 사실의 영역보다 인식의 영역에 산다.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요인으로 ‘경험·자질 부족·무능함’ ‘독단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부분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자기과신은 새로운 정보에 소홀하거나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을 때 흔히 나온다. 보통 사람도 대부분 평소 자기과신에 빠져 있다는 연구결과가 여러 사례로 드러나 있다. 자기과신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겸허해야 한다. 대통령 자리는 국민에게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초심자의 행운’은 두번 다시 오지 않는다. 윤 대통령에게 국내외 정치 환경은 ‘초심자의 행운’을 한참 비껴가고 있다. 최악의 국제정세와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로 빚어진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보라. 대통령은 쉽게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을 실력으로 증명해보여야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