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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못 말리는 검찰 사랑 인사

  한국 최고지도자 중 외국 기자로부터 국내 인사(人事) 문제점을 지적받은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같은 지적도 한번이 아니다. 윤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워싱턴포스트 기자로부터 남성 편중 내각 인사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백악관 출입기자들은 외국 정상과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할 때 대부분 미국 대통령에게만 질문을 던진다. 어쩌다 상대국가 지도자에게 질문하더라도 외교 현안에 집중된다. 윤 대통령은 최근 미국 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도 남성 편중 내각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두차례 답변에서 윤 대통령의 곤혹스러움이 묻어났다. “예를 들어 내각의 장관이라고 하면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 기회를 더 적극적으로 보장할 생각이다.” “첫 내각을 구성하는 데 시간도 없고 제약도 있어서 잘 알려진, 눈에 띄는 이들로 내각을 꾸렸지만 향후에는 여성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생각이다.”


 국제적인 수모에 각성한 것인지 낙마한 부처의 장관 후보자와 차관급 인사에서 잇달아 여성을 등용하는 변화를 보였지만, 전체 고위직 인사의 현격한 성비 불균형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능력주의’를 표방하며 무안배·무배려 인사로 일관한 결과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다.


 세대 지역 학벌 직역(職域) 등의 다양성은 더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30, 40대 젊은 장관도 여럿 기용하겠다던 선거공약은 없었던 일이 됐다. ‘아가패 인사’(아는 사람, 가까운 사람만 쓰는 패밀리 인사)라는 별명도 그렇게 얻었다.

                                                                                   


 무엇보다 큰 염려는 윤 대통령의 못 말리는 검찰사랑 인사다.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상 자리에만 검찰 출신 5명이 들어갔다. 대통령의 곳간지기(집사)와 문고리부터 인사라인까지 검찰 출신으로 채워졌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뿐만 아니라 내각에도 검찰 시절에 같이 일해 본 ‘가까운 사람들’을 전면 배치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 자신의 징계 소송 변호인이던 이완규 법제처장, 이노공 법무부 차관이 대표적 인물이다. 검찰 출신 인사를 대통령실과 내각의 주요 자리에 이처럼 다수 배치한 것은 유례없다. 검찰의 힘을 빌려 권력을 공고히하는 것과 또 다른 의미의 ‘검찰공화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추천부터 검증까지 인사에 관한 핵심 권한을 검찰 출신이 장악한 시스템 문제도 지적된다. 대통령실 인사기획관이 후보자를 추천하면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에서 1차 검증 작업을 하고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2차 검증을 하는 구조다. 공직후보자 인사 추천과 검증 분야는 상호견제가 이뤄져야 한다. 이 절차를 모두 검찰 출신이 맡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쉽다.


 윤 대통령은 검찰 출신을 잇달아 정부와 대통령실 요직에 앉혀 검찰 편향 인사란 우려가 컸는데도 지난 주말 또 검사 출신을 중용하는 인사를 이어갔다.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박성근 전 서울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국정원 기조실장은 국정원 조직과 인사, 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자리다. 조 실장은 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이고 같은 수사팀에서 근무한 인연이 있다. 국정원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자리에 검사 후배를 앉혀 직할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에 총리 추천 인사가 아닌 검사 출신을 임명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경제계 검찰총장으로 불리는 장관급 공정거래위원장에도 검사 출신인 강수진 고려대 교수가 내정됐다고 한다. 호남 기반의 여성인 점은 오랜만에 긍정적이지만 하필이면 윤 대통령과 검찰에서 같이 근무한 적이 있는 가까운 인물이다. 법조인이 공정위원장에 임명되는 것은 1981년 공정위 출범 이래 첫 사례여서 우려를 더한다. 여기에다 금융감독원장까지 검찰 출신으로 굳어졌다는 설이 파다하다.


 검찰 출신 인사가 이처럼 과점하는 현상을 염려하는 것은 ‘집단사고’가 불러오는 위험성 때문이다. 저명한 미국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 예일대 교수는 ‘집단사고’(groupthink)의 위험을 처음 경고했다. 똑똑하면서 동질적인 집단은 덜 똑똑하면서 다양한 집단에 비해 잘못된 결정을 내리기 쉽다고 한다. 응집력이 강한 집단의 구성원들이 판단을 내릴 때 만장일치를 이루려는 사고의 경향 때문이다.


 대의에 순응하는 사고체계와 반론을 허용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을 추구하는 조직문화는 다양성과 독창성이라는 값진 가치를 저버리기 쉽다. 검사는 모두 오랫동안 ‘검사동일체’(검찰총장을 정점으로 검사들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한다는 원칙) 문화 속에서 일해왔다.


 윤 대통령의 유일한 인사 철학이 능력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것이지만 그 능력도 도덕성과 함께 믿음을 주기엔 부족하다. 세계 10위권 선진국 정부의 인사 시야가 턱없이 좁아 보인다. ‘다시, 대한민국! 새로운 국민의 나라’ 슬로건에 걸맞은 인재를 널리 구하는 최고지도자의 안목이 아쉽다. 청나라 관리 심문규(沈文奎)는 황제에게 이렇게 진언했다고 한다. “하늘은 한 세대에 충분히 쓰고도 남을 인재를 내려줍니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