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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그들만의 리그’ 특권고위층

  인사청문회는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거울에 비치는 고위층의 맨얼굴은 날이 갈수록 추한 모습만 드러낸 돋을새김 같다. 정권이 바뀌어도 진보 보수 가릴 것 없이 ‘그들만의 리그’는 온존한 생명력을 뽐낸다. 인사청문회 때마다 절망하다 체념하는 분위기까지 엿보인다. 도덕성 기준이 뚜렷이 퇴보했기 때문이다. 김대중정부의 국무총리 후보자 2명이 연이어 낙마한 결정적인 사유는 위장전입이었다. 노무현정부의 교육부장관 조기 사퇴는 논문 중복 제출 때문이었다. 이제 병역의혹 탈세 부동산투기 위장전입 연구부정 같은 일은 웬만하면 그러려니 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지지율은 정권교체당해 떠나는 대통령보다 낮다. 공정과 상식의 깃발 덕분에 당선했으면서 취임도 하기 전에 약속을 깨트린 게 주된 이유의 하나다. 실력만 보고 발탁했다는 40년 지기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자는 불공정과 불의의 상징이 된 조 국 전 법무부 장관과 ‘어쩌면 그리 똑같냐’는 손가락질을 받는다. 김인철 교육부장관 후보자도 비교육적 이해충돌에다 ‘의혹 백화점’이라는 비난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윤 당선인의 고교·대학 후배인 이상민 행정안전부장관 후보자의 아들과 딸도 부모찬스와 무관하지 않다. 상당수의 다른 후보자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정호영 후보자는 자녀의 편입학, 병역특혜 의혹으로 논란을 덮기 쉽지 않다. 아버지가 경북대 병원장·진료처장을 하던 때 남매가 공교롭게도 그 의대에 편입했다. 아들딸의 스펙쌓기도 같은 병원에서 이뤄지고, 편입시험 면접관들도 친한 교수다.

                                                                           

  정 후보자는 "부당한 행위는 없었다"며 의혹을 거듭 부인했지만, 조 국 전 장관도 "불법행위는 없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이 "부정의 팩트가 확실히 있어야 하지 않나"라면서 감싸는 모습도 문재인 대통령이 조 전 장관을 두둔하던 것과 꼭 닮았다. 공정과 상식의 문제임에도 윤 당선인은 법조인 시각으로 판단하는 것처럼 보인다.


 김인철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도 봇물 터지듯 나온다.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을 맡았던 후보자 가족 4명(본인 아내 아들 딸) 모두가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억원을 받는 놀라운 행운이 반복해서 일어났다. 김 후보자는 의혹 없는 공정한 선발이었다고 주장했지만 동문회 부회장이 심사위원이었던 점을 보면 쓴웃음이 나온다. 한국외대 총장 시절 대기업 사외이사 셀프 허가, 법인카드 부당 사용,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숱한 비교육적 언행에 이르기까지 끝이 없다. 윤석열정부의 공정과 상식의 잣대가 달라졌다는 의심을 산다.


 이 때문에 ‘‘굥정’’이라는 비아냥섞인 낱말이 입길에 올랐다. 윤 당선인의 성 ‘윤’을 뒤집으면 ‘‘굥정’이다. ‘뒤집힌 윤석열의 공정’이라는 뜻이다. 정식 취임하면 해당 부처 업무와 충돌하는 의혹이 적지 않은 인물들을 후보로 내세운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공정수칙 위반이다. 이해충돌은 공정성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발생한다.


 때마침 교육부가 발표한 교수 자녀들의 ‘부모찬스’ 논문 활용 대학입시 부정 의혹도 고위 지식인층에 만연한 공정과 상식 위반을 방증한다. 교수들이 자신과 동료의 중고생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끼워 넣어 입시에 활용한 사례를 4년간 조사한 결과 96건의 ‘부모찬스’ 사례가 들통났다. 하지만 입학취소는 조 국 자녀를 포함해 5건에 불과했다. 공저자 끼워넣기로 적발된 교원 69명 중 중징계된 사례도 3명에 그쳤다.

                                                                         


 정치권에서 부모찬스 입시 부정실태를 전수조사하자는 제안이 나왔지만 늘 그랬듯이 흐지부지될 게 틀림없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정호영 김인철 후보자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며 "최근 10년 치 의학전문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치대·한의대 입시에서의 교수 자녀 전수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모든 시기·모든 대학으로 ‘부모찬스’ 조사 범위를 확대하자"고 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이권 때문에 쏙 빼놓았던 이해충돌방지법도 LH 부동산 투기 사태 이후 통과시키겠다고 철석같이 다짐했지만 부도수표임이 드러났다.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도 임명되는 부적격 고위공직자가 공동체에 끼치는 해악은 심각하다. 악행을 용인하면 치유할 수 없는 고질병이 된다. 엘리트 부패카르텔 사회에서는 부와 권력을 합법의 형식을 빌리지만 불공정하게 쓸 수 있는 교묘한 수단과 방법이 많아졌다. 1원도 받지 않았다거나, 법적으로 증명하지 못한다고 부패가 아닌 게 아니다.


 청탁금지법 제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영란 전 대법관은 우리 사회는 엘리트들이 카르텔을 만들어 권력과 부를 나눠 갖는 사회가 됐다고 판단한다. ‘합법적 부패카르텔’도 민주적 제도를 훼손하고, 국민의 신뢰를 파괴한다. 대통령의 인사 기준이 무너지면 엘리트 카르텔형 부패를 타파하기 어렵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