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100년 전인 1922년 하버드대 두 동창생의 기념비적인 시와 저작이 나와 세상의 눈길을 끌었다. T.S. 엘리엇의 장편시 ‘황무지’와 월터 리프먼의 ‘여론’이 그것이다. 시대상황을 대변하는 두 작품 모두 지금 현실에 대입해도 맞아떨어진다.
‘황무지’의 유명한 첫 구절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은 100년이 지난 우리에게 그대로 다가와있다. 황무지는 1000만명의 사망자를 낸 1차세계대전과 곧이어 수천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독감 팬데믹이 초래한 서구 문명의 절망을 은유적으로 절규한다.
3년 차에 접어든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지구촌을 100년 전과 다름없는 황무지로 이끌고 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팬데믹에 전쟁까지 겹친 지금 "중세가 다시 도래했다"고 한탄했다. 미국인 70%가 3차세계대전이 시작단계에 와있다고 믿는다. ‘21세기의 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은 100년 전처럼 민족주의 강화와 군비경쟁, 경제파탄에 방아쇠를 당겼다.
코로나19와 전쟁이 겹친 상황은 지구촌의 모든 나라에 경제적 충격을 불러왔다. 물가상승률이 30여년 만에 최고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걸프전 직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식량과 에너지가격 급등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선언국가 속출을 예보한다. 스리랑카가 이달 초 디폴트를 선언한 게 시초다. 1년 안에 디폴트를 선언할 나라가 10여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돈다. 중국·러시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쌓아온 파키스탄은 물가폭등과 대외채무 급증으로 돌발적 정권교체가 벌어져 국제정세에 충격을 안겼다.
전세계가 수십년 만의 최악 수준인 인플레이션 쓰나미에 휩쓸림에 따라 가장 큰 악재로 떠오른 것은 빈곤층의 폭증이다.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돈을 무더기로 풀고 물자와 인력의 해외 이동이 급감해 글로벌 공급부족 사태가 나타났다.
전쟁은 고물가에 기름을 끼얹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세계의 공급은 더욱 얼어붙었다. 세계 3위 원유 수출국 러시아는 제재에 몰렸고, 세계 5위 밀 수출국 우크라이나는 씨 뿌리기를 포기했다. 국제원유 곡물 가격이 오르자 가공식품과 공산품도 덩달아 올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와 내년 세계경제의 86%를 차지하는 143개 나라의 성장률 하향 조정을 예고했다. 미국·유럽을 비롯한 민주진영과 러시아·중국의 대결 구도는 참기 힘든 고비용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경제 전문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세계교역의 급격한 위축이다.
리프먼의 ‘여론’은 비합리적인 여론에 기대는 민주주의에 경종을 울렸다. 철학자 존 듀이의 오마주를 빌리면 ‘현재까지 글로 쓰인 민주주의에 관한 가장 효과적인 고발장’이다. 고전이 된 이 책은 ‘전권을 가진 시민’이 국가를 경영하는 게 민주주의임에도 잘못된 여론으로 오판하는 결함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시간 흥미 지식이 없어서 사회문제의 세부사항을 잘 모르는 유권자들의 의견을 물어 여론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경적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가장 영향력 있는 여론 플랫폼으로 떠오른 지금 리프먼의 생각을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사람들은 대부분 정의를 내리기 위해서 무엇을 읽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먼저 내린 다음에 읽는다.’ 리프먼의 저서 ‘여론’에 나오는 이 구절을 보면 간담이 서늘해진다. 확증편향에 따른 사실 왜곡이 SNS의 가장 큰 병폐로 지목되는 지구촌의 현실을 족집게처럼 집어낸다. 정보 왜곡은 대중의 심리적 허점 때문에 생명을 유지한다.
정치인이나 선동가들은 모든 사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유도한다. 미디어가 만든 이미지를 현실로 믿는 것이 오늘날의 대중이라고 리프먼은 안타까워한다. 리프먼은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가장 큰 폐해를 설명하기 위해 ‘스테레오타입’(stereo type)이라는 용어를 발명했다. 리프먼은 1차세계대전을 통해 언론보도를 조작해 여론을 조성하는 게 얼마나 쉬운지 절감했다.
리프먼의 ‘여론’은 현대 저널리즘을 창시한 저작으로 꼽힌다. 리프먼은 이렇게 제시한다. "여론이 건전해지기 위해서는 그것(여론)이 미디어를 위해서 조성돼야지, 미디어에 의해서 여론이 조성돼서는 안된다."
리프먼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진영의 이념적 갈등을 표현하는 ‘냉전’(cold war)이라는 용어를 창안한 탁견은 놀랍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구촌을 ‘신냉전’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우려가 리프먼을 다시 호출한다.
엘리엇의 ‘황무지’는 평화를 뜻하는 산스크리스트어 주문 ‘샨티(Shanti) 샨티 샨티’로 마무리된다. 이처럼 하루빨리 코로나19가 박멸되고 전쟁도 종식해 지구촌에 평화가 정착하길 염원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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