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톺아보기-칼럼

MZ세대 플렉스 문화 열풍의 명암

  오늘 나 플렉스해버렸지 뭐야.‘ ’용돈 모아 플렉스!‘ 2030 MZ세대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플렉스‘란 말이 홍수를 이룬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는 ’영앤리치(젊은 부자)의 플렉스‘ ’하루에 1500만원 다 썼습니다‘ 같은 글이 명품 사진·영상과 더불어 심심찮게 올라온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플렉스(flex)가 명품과 돈 쓰는 것을 자랑하는 의미로 쓰인다.


 플렉스는 영어로 ’구부리다‘라는 뜻이지만 1990년대 미국 힙합문화에서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다‘라는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말은 원래 어려운 환경에서 자수성가한 자신의 삶을 자랑할 때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염따, 기리보이 같은 MZ세대 래퍼들이 노랫말에 자주 사용하면서 유행에 이르렀다.


 최근 설 연휴 마지막 날 영하 10도 강추위와 오미크론 대유행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명 백화점 명품 매장에 ’오픈런‘(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달려가는 현상) 대란이 벌어졌다. 구름 인파가 몰리는 백화점 명품매장에는 MZ세대가 주류를 이룬다.

 

  3대 주요 백화점의 2021년 매출액이 전년도보다 평균 16.3%나 신장한 것은 이처럼 MZ세대의 플렉스문화 덕분이다. 명품 매출의 절반가량이 2030세대 소비라는 통계도 있다. 지난해 한국 명품시장은 무려 16조원 규모로 세계 7위 반열에 올랐다. 

                                                           

  한 보고서를 보면 20대의 명품소비가 최근 2년 새 7배 이상 늘어났다.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56.4%가 ’명품구매 경험이 있다‘라고 답했다. 취업준비생 10명 가운데 4명이 첫 월급을 받으면 ’플렉스‘ 소비를 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요즘 대학생들의 좌우명이 ’플렉스‘라는 얘기도 들린다. ’세뱃돈으로 플렉스‘ ’밸런타인데이(오늘)를 위해 베스트 선물템‘ 같은 판촉 전략 역시 플렉스문화에 편승했다.


 MZ세대의 플렉스문화는 단순히 명품구매에 그치지 않는다. 아트텍(미술품 재테크)차원에서 두툼한 지갑을 여는 MZ세대도 많다. ’샤넬백보다 더 있어 보여요‘라는 말에서 진의가 풍긴다. MZ세대는 대체불가토큰(NFT) 구매로 디지털 플렉스 시대를 열기도 했다. 

 

  해외여행에 굶주린 MZ세대는 고급호텔 숙박과 외제차로 플렉스한다. 고급 한우고기 플렉스 이벤트도 등장했다. 3년째 못 뵌 부모님께 200만원 한우 플렉스를 했다는 식이다. 심지어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고급 부동산도 플렉스한다.


 MZ세대는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지녔지만 취업은 가장 어렵다. 불과 몇달 사이에 수억원 단위로 상승하는 부동산값에 좌절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푼이라도 아끼고 모을 생각을 하지 않고 플렉스 타령이나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MZ세대는 플렉스가 나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내 계정의 자존감을 지탱해준다고 한다.


 플렉스문화에는 흥미로운 현상도 나타난다. 돈을 많이 번 유명인사(celebrity)의 유튜브 채널에서 MZ세대 댓글을 보면 ’애완견이라도 되고 싶다‘ ’양자로 삼아주세요‘ 같은 반응이 적지 않다. 댓글을 보고 기성세대가 ’자존심도 없나?‘ ’자조적이다‘하고 생각하면 초점에서 한참 어긋난다. 이런 댓글을 달고 공감을 표시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플렉스소비 놀이문화다.


 플렉스문화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베블런 효과와 비슷하나 다른 점도 있다. 베블런 효과가 사치품을 사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플렉스는 오늘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조금 무리한 소비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MZ세대의 생활양식은 기성세대와 크게 다르다. 기성세대라면 공짜로 줘도 안 쓸 곰표 밀가루 진로소주 협업 제품에 열광하는가 하면, 100만원짜리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추운 길거리에서 밤을 새운다. MZ세대 소비자들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가격에 상관없이 아낌없이 투자한다.


 화려한 플렉스 뒤에는 눈물 나는 아르바이트, 몇 달 치 월급의 공중분해 같은 것도 버무려져 있다. 부유한 소비자는 값비싼 명품, 가난한 소비자는 초저가 상품만 사는 시대는 지났다. MZ세대 명품소비에는 ’가성비‘(價性比)와 ’플렉스‘라는 이중적 성향이 공존한다. 간단히 한끼를 때워야 할 때는 가성비 있는 버거, 근사한 데이트를 할 때는 프리미엄 버거를 먹는 식이다. 이런 양면적 소비현상은 ’다중적 자아(multi-persona) 현상‘이 발현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두 얼굴의 ’야누스 소비‘다.


 플렉스문화는 상황에 따라 변주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이 기부금이나 후원금을 내면서 SNS에 스스로 자랑하는 방식이다. 한 젊은 방송인이 ’기부가 플렉스문화가 돼 칭찬하고 즐길 수 있는 분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라고 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다른 젊은 가수의 기부 플렉스에 누리꾼들이 호응하는 모습도 흐뭇하다. 이처럼 플렉스문화가 다양한 갈래로 분화된다면 더 건강한 사회로 자리잡지 않을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