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국정이나 정책 의제로 삼는 것은 자칫 ‘뜬구름 잡기’라는 도마 위에 오르기 쉽다. 행복은 누구나 얘기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 없는 추상명사인 데다 측정기준도 천차만별이어서다. 그래선지 오랫동안 선진국들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의외의 복병으로 히말라야산맥 속에 자리잡은 인구 70여만명의 작은 왕국 부탄이 있었다. 꼭 50년 전인 1972년 지그메 싱계 왕추크 국왕은 ‘국민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전통적 가치를 보존하는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경제’를 국정 목표로 삼았다. 그는 후생지표를 ‘국민총행복’이라고 이름 지었다.
국민총행복지수(GNH)는 총체적인 행복과 후생수준을 평가하는 9가지 요소로 이뤄졌다. 심리적 안정, 건강, 시간 활용, 행정체계, 문화 다양성, 교육, 공동체 활력, 환경, 생활수준이 그것이다. 경제발전만을 평가하던 국내총생산(GDP)을 세계 최초로 대체하는 지표였다. 부탄은 1인당 국민소득이 3000달러에도 못 미치지만(2020년 기준), 국민 97%가 행복하다고 느낀다.
‘국민총행복’에 관심이 높아지자 2012년 유엔이 3월 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하고 해마다 이날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부탄은 유엔 세계행복보고서 작성 방식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한국의 국민행복지수는 54~58위권에 머물다가 2020년 61위, 2021년 62위로 뒷걸음질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올해 한국 경제력을 세계 9위(명목 국내총생산 기준)로 내다본 것과 대조를 이룬다. 국가경제규모(GDP) 순위는 오르지만, 국민행복 순위는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게 대한민국의 서글픈 현주소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국내총생산 너머 국민총행복’을 국정운영 철학의 하나로 삼으려는 것은 이런 상황에서 착안한 듯하다. 선거대책위원회 미래기획단이 지난주 부탄의 행복정책연구소장까지 온라인으로 참여시킨 가운데 ‘내가 행복한 나라’ 세미나를 연 것도 유권자의 가슴에 닿는 공약으로 표심을 잡으려는 차원이다.
51차례에 이르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 시리즈 역시 ‘국민총행복’의 목적으로 읽힌다. 선대위에 소확행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가상자산 과세 1년 유예, 탈모 치료약 건강보험 지원 같은 체감 공약을 쏟아붓는다.
‘국내총생산 너머 국민총행복’을 국정 의제의 하나로 삼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높고 험준하다. 불명예스러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는 분야가 한둘이 아니다. 자살률 노인빈곤율 저출생은 OECD 국가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의 오명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 부문에선 논란이 일자 서울대 팩트체크연구소까지 나서 ‘한국은 세계 최악의 산재국가가 맞다’고 결론지었다. 한국의 어린이·청소년 행복지수 역시 OECD 꼴찌 수준이다.
여러 지표로 넓혀보면 행복한 나라로 가야 하는 길에 낯부끄럽고 우울한 통계로 넘쳐난다. 소득불평등 지수(지니계수)는 OECD 36개 회원국 중 28위, 상대적 빈곤율과 소득 5분위 배율도 각각 31위와 29위로 바닥을 긴다. 최악의 남녀임금격차지수까지 이르면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가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 이재명 후보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기본소득은 불평등 축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지난해 OECD 회원국 중에서 3번째로 사회갈등이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리서치와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지난주 발표한 ‘2021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서 국민 10명 중 9명은 사회집단 간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다. 그중에서도 세대·남녀·지역 갈등은 전년보다 더 심각해졌다고 답했다.
이 후보가 제시한 5-5-5공약(종합국력 세계 5위, 코스피 지수 5000, 국민소득 5만 달러)도 ‘국민총행복’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실현 가능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임기 내에 도달할 수치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경제성장도 잊지 않는다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계산이 분명해 보인다. 이명박정부의 ‘747공약’(연 7% 성장,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위 경제대국)을 연상시킨다.
‘이스털린의 역설’도 살펴봐야 할 요소다. 소득이 어느 정도 높아지면 행복도가 올랐지만 일정 시점을 지나면 행복도는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의 이론이다.
이전 정부에서도 국민행복개념을 국정 기조의 하나로 삼았으나 말만 앞세우고 실행은 하지 않아 통계수치가 보여주듯 도리어 퇴보했다. 박근혜정부에서 국민행복지수는 2013년 41위, 2015년 47위, 2016년 58위로 현격히 떨어졌다. 표만 생각하고 그럴듯한 포장의 상품을 남발하면 ‘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국민’만 속절없이 남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세상톺아보기-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21세기 차르’ 푸틴의 야욕·오만·오판 (0) | 2022.03.11 |
---|---|
MZ세대 플렉스 문화 열풍의 명암 (0) | 2022.02.18 |
공수처 1년, 넘치는 의욕 민망한 실력 (0) | 2022.01.13 |
죽음이 낳는 정치적 숙제 (0) | 2021.12.30 |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 (0) | 2021.12.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