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재한 ‘민주주의 정상회의’에서 단연 눈길을 끈 인물은 대만의 오드리 탕 디지털총무정무위원(장관)이었다. 성 소수자인 탕 장관(40)은 시대를 앞서가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대만 디지털 민주주의의 상징이다.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차이잉원 총통 대신 참석한 탕 장관은 화상으로 110개국과 대만의 모범적인 디지털 플랫폼 민주주의 경험을 나눴다.
대만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167개국의 민주주의 상태를 조사해 발표하는 2020년 민주주의 지수에서 한국을 제치고 세계 11위(전년 31위), 아시아 1위에 올랐다. 대만 민주주의의 약진은 탕 장관 덕분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차이잉원 총통은 2016년 정치 경력은 물론 공직 분야 경험도 전혀 없는 35세 ‘화이트 해커’ 출신 프로그래머 탕을 무임소 디지털장관으로 발탁했다. 최연소, 최저 학력(중학교 중퇴), 최초 트렌스젠더(남성에서 여성으로) 장관이어서 뜨거운 화제를 모았다. 대만은 2019년 아시아 최초로 동성 커플 결혼을 합법화했을 만큼 개방적이다. 한국에서라면 보수 종교계의 반발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지명조차 못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주 업무는 투명한 정부, 사회적 혁신, 청년 참여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일과를 디지털화하는 작업으로 시작했다. 탕 장관은 누구나 인터넷으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플랫폼 ‘조인’(JOIN)을 만들어 의견을 수렴한다. ‘가장 투명하고 열린 정부’를 구축했다고 봐도 좋다. 대만의 모든 장관은 35세 이하 청년 멘토를 2명 두어야 한다. 최신 디지털 기술에 익숙한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역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통해 반영하기 위해서다.
그는 매주 수요일 오후 집무실을 시민에게 개방해 여론을 듣고, 신속하게 정책에 반영한다. 누구든 탕 장관에게 온라인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는 "정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일한다, 시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일한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탕 장관의 파격적인 행보에 시민들이 열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오드리 탕 소환’이라는 밈이 있을 정도다. 작년 1월 재선한 차이잉원 총통이 탕 장관을 바꾸지 않고 6년째 함께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탕은 모든 일정, 언론 인터뷰 내용, 사생활까지 인터넷에 공개한다. 트렌스젠더여서 궁금증이 더할 법한 언론에 "탐사보도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너스레를 떤다. 탕은 ‘정보접근권도 인권’이라는 정부 철학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로 민주주의를 확장하고 모범적인 민주주의 정부 운영의 토대를 만들어간다고 자부한다.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코로나 방역도 탕 장관 공이 지대하다. 팬데믹 초창기 빠르게 ‘실시간 마스크 공급지도’와 주문한 마스크를 인근 약국에서 받도록 하는 ‘마스크 예약제’ 앱을 만든 것도 탕의 아이디어다. 그는 현장 방문에서 문제를 파악하고 그곳 사람들과 끊임없이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한다. 탕은 "코로나바이러스는 하나의 (정치적) 증폭기다. 민주적인 국가는 더 민주적인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우고, 권위적인 국가는 더 권위적 방식으로 바이러스와 싸운다"고 말한다.
탕 장관이 추구하는 시민 참여와 민주주의는 허를 찌르는 반전 전략에서 빛을 발한다. 한 남학생이 분홍색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대만 중앙전염병관리센터 남성 공무원 여러명이 모두 분홍색 마스크를 쓰고 언론 브리핑에 나섰다. 가짜뉴스가 퍼지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코미디언을 등장시켜 더욱 급속히 확산시키는 방법으로 궁극에 무력화하는 전략을 썼다.
IQ 180의 천재 해커로 불리는 탕은 14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워 16살 때 스타트업을 열었다. 19살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검색엔진 회사를 창업한 IT업계의 입지전적인 인물이 됐다. 대만의 민주화 바람을 일으킨 ‘해바라기 학생운동’에도 참여했다. 천재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깬 대표적인 인플루언서다.
탕 장관의 사례는 ‘깜짝 외부인재 영입’이라는 낡은 방식을 고수하다 철회하는 일이 잦은 한국의 주요 대선 후보 캠프가 새겨야 할 점이 많다. 후보가 당선 후에도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 구성, 공공 부분 인사 때 참고할만하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개될 게 틀림없다. 진화하는 민주주의 역사도 새로운 버전으로 써야 한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낡은 지도로는 새로운 세상을 탐험할 수 없다"고 했다. 나라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혁신하는 데도 새로운 사고로 무장한 리더십이 절실하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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