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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표준’이 돈·권력·무기인 시대

  역사는 표준화 과정이자 표준 쟁탈전이기도 하다. 표준을 만들고 확립하는 자가 권력과 돈을 거머쥐었다. 권력자들은 자연스레 표준에 집착했다. 이제 누구나 표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시대가 됐다. 표준은 심지어 무의식에까지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표준은 자의적이든 강제적이든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 통일 규격을 의미한다. 표준을 통해 치수·용어·사물·서비스·관행에 이르기까지 의미와 결실이 한결 명료해진다.


 모든 나라의 표준어는 국가의 지배와 권력체계를 상징한다. 한국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을 표준어로 삼는다. 경제와 과학기술 역시 표준을 거쳐 발전한다. 근대화의 핵심에 표준화가 있었던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산업혁명의 대표적인 특징인 대량생산체제는 표준화가 낳은 결실이다.


 중국 최초로 천하통일을 이룬 진시황은 역사적으로 표준과 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영토 통일보다 더 어렵다는 표준통일을 이뤄 2000여년을 잇는 중국의 토대를 공고화했다. 길이·무게 같은 일상생활의 도량형 규격과 도로의 폭, 수레바퀴의 크기를 표준화했다. 조세나 징병의 근대화를 의미하는 전 국민 호적제도는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황제보다 200년이나 앞섰다. 오늘날 중국 한자의 원형이 된 문자를 통일한 것은 비교하기 어려운 표준화의 금자탑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빌 게이츠는 다른 형태의 표준 황제다. 게이츠는 1970년대 중반 개인용컴퓨터(PC) 운영체제의 표준을 장악해 전세계 소프트웨어와 정보산업을 지배했다. IBM이 360이라는 대형컴퓨터의 표준을 내놓아 세상을 평정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싸움은 윈도즈 운영체제로 표준시장을 점령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완승으로 싱겁게 끝났다. 수많은 IT 기업이 표준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PC 운영체제의 표준을 휘어잡을 기회를 놓쳤다.


 표준에는 ‘공적 표준’(de jure standard)과 ‘사실상 표준’(de facto standard)‘이 존재한다. 공적 표준은 국가나 기구의 권위로 법과 제도를 통해 강제한 것이다. 사실상 표준은 시장경쟁의 승리로 정착된 기술적 표준이다. 진시황이 공적표준의 화신이라면 빌 게이츠는 사실상 표준의 귀재다.


 물론 더 우수하지 않은 기술이 표준이 되기도 한다. 사용자가 호환성을 중시하거나 익숙해진 것을 고집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쿼티(QWERTY) 자판 배열, 비디오 포맷 전쟁에서 마쓰시타의 VHS가 소니의 베타맥스 방식에 승리한 게 여기에 해당한다.

                                                                           

 공적 표준과 사실상 표준은 모든 글로벌기업의 당면 현안이 됐다. 중국 최대 통신기업 화웨이가 2030년 6G(6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목표로 삼는 것도 표준화 선점 전략의 하나다. 물리적 장벽이 엷어지고 가상세계가 열리면서 글로벌 차원에서 표준화가 가속하고 표준의 위력이 막강해졌다.


 한국 기업들은 세계표준(global standard),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정부정책 같은 공적 표준에 대응해야 하는 한편, 소프트웨어 디지털기기 시스템설계 등에서 ’사실상 표준‘을 선점해야만 한다.


 열강의 주도권 싸움이 치열한 미래 수소시장을 놓고 수소인증제와 국제표준을 한국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런 차원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대에는 순간의 승리나 패배는 무의미하다. 스스로 표준을 창출하는 것이 요긴하다.
 표준화 바람은 정치에도 예외가 없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나란히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화 공약‘으로 유권자 마음잡기에 나섰다. 1500만명에 육박하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이 동물병원마다 천차만별인 ’폭탄성 진료비‘ 제거를 호소하기 때문이다. 통일시대에 대비한 정부 산업계 학계의 ’남북 표준화‘ 작업 같은 것은 빠를수록 좋다.

                                                                         

 정치에서 이중표준(double standard, 이중잣대)은 악성종양이다. 유사한 상황에 대해 각자 다른 표준을 불공평하게 적용하는 한국 정치의 이중표준은 급기야 해외에서 ’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로 소개될 정도다. 내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여야 모두 ’내로남불‘의 행태가 만연한다. 내가 하면 민생공약이고 남이 하면 포퓰리즘이다. 정치와 선거운동에서 이중표준은 불신과 정치 무관심을 낳은 주범이다.


 법치에서도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적용 표준이 다르다는 의심을 산다. 내 편이면 설렁설렁 황제 수사, 남의 편이면 먼지떨이 수사라는 냉소가 흘러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택적 정의‘라는 용어가 여야 양쪽에서 난무하는 것은 악마의 표준이다.


 올바른 정치의 표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KS마크라도 부여해야 할까. 민주주의 발전에서 표준의 의미가 더욱 중요해졌다. 내 편과 남의 편의 표준이 다른 현실은 선진 민주정치를 희구하는 시민을 슬프게 한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