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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로마 황제 자리도 돈으로 샀다지만

  로마제국 황제 자리를 돈으로 샀다면 믿을 수 있을까. 실제로 19대 로마황제 자리는 오늘날 유권자에 해당하는 1만명의 근위대 병사에게 줄 돈을 더 많이 써낸 후보가 차지한 일이 일어났다.


 2세기 무렵 온갖 특권과 돈으로 근위대의 충성을 유지했던 황제들 때문에 근위대는 더없이 부패했다. 세습제가 아닌 로마제국에선 황위에 오른 뒤 근위대에 즉위 하사금을 주는 게 관례였다. 서기 193년 18대 황제 푸블리우스 헬비우스 페르티낙스를 시해한 황실 근위대는 다음 황제 자리 경매 공고문을 벽에 붙였다.


 그러자 두 후보가 나섰다. 전임 황제 페르티낙스의 장인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와 전직 집정관이자 부유한 원로원 의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였다. 승자는 근위병 1명당 7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6250데나리우스(3억원 상당)를 써낸 율리아누스였다. 술피키아누스가 먼저 5000데나리우스를 써냈지만 탈락했다. ‘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은 ‘(황제를 결정한) 근위대의 방종이 로마제국 쇠퇴의 첫 징후이자 원인이었다’고 진단했다.


 여러 차례의 코로나19 재난지원금도 부족하다며 전 국민에게 1인당 100만원의 6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자고 나선 집권당 대선 후보도 최고권력을 돈으로 사려는 것과 다름없다는 비난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복지를 중시하는 정의당 대표조차 "국민 세금으로 매표행위를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고 공격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는 "국민의 세금은 집권 여당이 곶감 빼먹듯 쓰는 꿀단지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지난주 한 여론조사에서도 국민 10명 가운데 6명이 6차 재난지원금을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다. ‘묻지마 지지자’ 외에는 호응하지 않겠다는 반응인 셈이다. 국민이 그리 어리석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 전 국민에게 지급된 1차 재난지원금으로 재미를 봤다고 시인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오래전부터 공약으로 내세운 기본소득 역시 돈으로 표를 사겠다는 의도로 해석하는 유권자가 많다. 지난주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65%가 이재명 후보의 핵심공약인 기본소득제에 반대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20대 응답자의 75%가 기본소득제에 반대해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는 사실이다. 가장 실질적인 수혜자에 속하는 미래세대가 이처럼 반대의견을 드러낸 것은 이례적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조건 없이 현금성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어서 재난지원금을 상시적으로 확장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5000만명에게 매달 10만원씩만 준다고 해도 해마다 60조원이라는 거액의 세금이 필요하다. 이 후보의 공약대로 우선 연간 25조원으로 1인당 한해 50만원을 지급한다면 월 4만2000원을 받는 꼴이다. 소중하고 어마어마한 금액을 수많은 사람에게 푼돈으로 나눠 주는 낭비가 될 수밖에 없다.

                                                                       


 대다수 복지학자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복지국가 실현에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 부유층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은 돈을 나눠주면 그렇지 않아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한 한국 사회의 양극화 완화에 도움이 될 리 없기 때문이다. 10월 말 한국재정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기본소득이 불평등 완화 효과가 떨어지고 재정수지가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 논문이 발표됐다.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가운데 4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10월 25일 OECD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2018~2019년 기준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7%에 이른다. 일정 수준의 생활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6명 중 1명꼴이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인구 중 기준 중위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을 의미한다. 소득불평등 자산불평등 지수가 높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정부가 천정부지로 올려놓은 부동산가격 탓에 벼락거지가 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치유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집권당 후보가 정권재창출 이유를 부르짖으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가용 재정을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집중하겠다고 약속하고 실천하는 게 도리다. 한국의 복지지출 수준은 국내 총생산(GDP) 대비 12%여서 OECD 평균 20%와 비교해 8%p나 낮다.(2019년 기준) 복지지출비용이 많은 나라인 프랑스나 핀란드보다는 20%p 차이가 난다.


 최고 복지전문가 중 한 사람인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표현한다. 이 후보는 스스로 ‘포퓰리즘도 감수할 수 있다’고 했다. 국제사회 전문가들도 한국이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소득 불평등에 대한 불만이 높아 포퓰리스트가 부상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분석한다. 영국 시인 조지 바이런은 "나라를 세우는 데는 천년의 세월이 모자라고, 그것을 허무는 데는 한순간으로 충분하다"고 일찍이 경종을 울렸다.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