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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대장동 의혹,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

 정책 결정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결과를 낳는 최악의 상황이다. 선인들이 밟은 전철(前轍)은 무수하다. 미국의 세입자 보호를 위한 아파트 임대료 통제 정책, 베트남 하노이의 들쥐꼬리 현상금 같은 게 대표적 일화다. 세입자를 보호하려는 좋은 의도로 도입한 정책은 아파트 주인이 아파트 유지 보수에 투자하지 않는 등 외려 세입자에게 해로운 결과를 쏟아냈다.

 

  하수구 들쥐를 박멸하기 위한 들쥐꼬리 현상금은 쥐꼬리만 자르고 놓아주는 부작용을 불러왔다. 새끼를 낳아야만 꼬리를 많이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란 경구로 정립돼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서양 속담까지 생겼을까 싶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정책 결정자가 당위론에 의존해 의욕만으로 정책을 펼 때 주로 일어난다. 현장 사정에 어두운 책상물림 학자, 현실보다 이상에 치우친 참모가 만든 아이디어가 의욕이 앞서는 정책결정권자와 결합하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에 더없이 비옥한 토양이 조성된다.


 소득주도성장의 바탕이 된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의 인건비 부담을 키우고 고용 위축의 역풍을 낳았다. 비정규직 제로 정책도 신규채용을 줄이고 노노 갈등을 격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태풍의 눈으로 떠오른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도 설계자는 선한 의도가 예상 못한 부동산값 폭등과 마귀 같은 민간개발업자를 만난 탓으로 돌린다. 1800억 원으로 추산된 민간사업자 이익이 4천억 원대로 폭증한 원인이 이 때문이라는 뜻이다.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경기지사는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5503억 원의 거대한 개발 이익을 세수로 환수해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 환수 사업이며,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배워야 할 모범사례라고 자랑한다.


 이 지사는 대장동 개발의 민관합작 방식 도입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민관합작을 하려면 마귀의 돈을 쓰고 마귀와 거래해야 한다는 당위론을 펼친다. 지자체가 민간개발업자와 함께 사업을 하다 보면 유착과 부패 발생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평소 이 지사에 우호적인 진보 진영에서도 선한 의도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분위기다.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대장동 개발사업과 같은 민관합동개발을 가급적 시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토지를 수용하면 공공택지로 개발해 조성원가로 공급하는 게 상식이다. 

 

  대장동 개발사업 참여회사인 화천대유자산관리는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받지 않아 2700억 원에 가까운 개발 이익을 추가로 챙겼다. 대장동 관련자들은 1100배의 폭리로 희희낙락했다. 민관 합동 방식이 아니었다면 화천대유가 분양가 상한제를 피할 수 없었다. 애초 계획처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택지로 개발했다면 개발 이익이 화천대유가 아닌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가는 선순환이 이뤄졌을 게 뻔하다.  

                                                                   


 민간사업자 초과이익 환수 조항은 협약서 결재 과정에서 이유도 모른 채 사라졌다고 한다. 게다가 대장동 개발 공공부문 주체인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예상을 훨씬 넘는 초과이익이 발생하기 시작한 뒤 초과이익을 민간개발업자가 가져가는 설계 내용을 바꿀 기회가 있었으나 그대로 둔 것으로 드러났다. 의혹을 규명할 수 있는 핵심 문서인 주주협약, 사업협약, 정관을 분석할 결과다. 성남시에 관리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불법적인 방법으로 이익을 취하거나 제삼자가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끼치는 배임죄 혐의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실정이다.


 성남시 산하의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아무런 실권이 없는 방식으로 이사회와 주주총회 의결 과정 설계가 이뤄진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주주협약에서 원천적으로 시행사 화천대유에 지나치게 큰 권한이 주어졌다. 이로 인해 성남 도시개발공사가 대주주이지만 이사회 결정에서 주도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설계 구조가 됐다.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추천권을 갖는 성남의뜰 대표이사를 화천대유 추천 이사가 계속 맡아 하는 상황도 이런 구조 때문이다. 1퍼센트도 안 되는 지분을 지닌 화천대유가 주도해 구성한 은행 컨소시엄이 뜻을 모으면 모든 결정을 민간이 다 할 수 있는 구조다. 말만 민관합작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전문가들의 분석을 들어보면 대장동 사업 주주협약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잘못 짜놓은 데서 무능이 아니라 다른 의도가 엿보인다.


 누구의 뜻으로 왜 그렇게 했느냐가 우선 밝혀내야 할 숙제다. 대장동 토지를 원주민으로부터 싼값에 수용해 민간사업자에게 과도한 이익이 돌아가게 하면서 공공 부분이 제대로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면 미필적 고의는 없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대장동 원주민과 입주민이 누려야 할 몫을 민간사업자들이 대신 천문학적 이득을 챙겼다면 ‘의도는 좋았다’라는 말로 덮을 수는 없다. 시민의 피해 구제를 위해 무엇보다 우선해야 하는 일이 정치적 고려 없는 철저한 수사다. 수사의 핵심은 당연히 최종적으로 이익 배분의 큰 그림을 그린 ‘그분’을 찾는 작업이다. 지금의 검찰이 그걸 해낼 수 있을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