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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톺아보기-칼럼

인구지진에도 미래세대에 빚더미 물려주는 양심불량

 뭘 하든 세계최고 기록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한국에 ‘인구절벽’에다 ‘인구지진’까지 덮쳤다. 지난해 한국의 출생률이 0.84로 세계최저치를 경신했다. 세계 유일의 출생률 0명대 나라이기도 하다.


 ‘인구절벽’과 ‘인구지진’이란 말은 자극적 용어를 즐기는 한국 언론이 지어낸 게 아니다. ‘인구절벽’(Demographic Cliff)은 미국 경제학자 해리 덴트가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이 급속히 줄어드는 현상에 붙인 개념이다. 인구절벽이 생기면 생산과 소비가 함께 줄어들고 경제활동이 급속히 위축되는 부작용이 일어난다.


 ‘인구지진’(Agequake)은 영국 인구학자 폴 월리스가 고령사회의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빗대어 만든 용어다. 인구 구성 자체가 바뀌어 사회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충격을 일컫는다. 월리스는 인구지진이 지질학적 지진보다 파괴력이 강하고 강도가 리히터 규모 9.0에 달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한국이 최대 피해국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일찌감치 점찍었다. 


 한국은 지난해 사망자가 출생아보다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하는 인구 데드크로스(dead-cross) 국가가 됐다. 지난주 감사원이 통계청의 자료를 토대로 내놓은 ‘저출산 고령화 감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더 충격적이다. 현재 5178만명 가량인 인구가 2067년에는 3689만명으로 줄어든다. 

                                                                       

  연구에 참여한 전문가는 이 추계가 보수적인 것이어서 실제 인구소멸 속도는 훨씬 빨라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이 예측은 앞선 여러 통계보다 비관적이다. 전국 229개 지방자치단체 시·군·구 모두 2047년에는 소멸위험 단계에 진입한다. 인구 자연감소, 초고령사회, 지역소멸 현상은 3대 인구 리스크로 꼽힌다.


 이것만 보면 여전히 먼 훗날 일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지난달 통계청 추계롤 보면 다르다. 앞으로 10년간 한국의 유소년인구는 161만명 줄고 고령인구는 279만명 늘어난다. 일하는 인구는 339만명이나 감소한다. 이미 발등의 불이 됐다. ‘무관심 무대책 무성의 무능력’의 4무 정치지도자들은 권력다툼에만 골몰한다.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는 환경으로 개선하기는커녕 날이 갈수록 열악한 여건만 조성한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업률 집값 교육비를 먼저 낮추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처방이 이미 나왔지만 현실은 점점 악화하고 있다. 청년실업률 증가율은 37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3위라는 오명이 따라다닌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부동산가격은 나날이 최악의 상황을 갈아치우고 있다. 우리 청년들에겐 악몽 같다.


 그보다 더 나쁜 것은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물려주는 일이다. 2021년 태어난 아이는 세상에서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 5000만원의 연금 빚을 진다고 한다. 국민 1인당 국가채무가 8월 13일 오전 11시를 기해 1800만원을 넘어섰다. 정부 공식발표만으로도 내년 국가채무는 1070조원으로 처음 1000조원을 돌파한다. 문재인정부 출범 직전인 2016년 말 1212만원이었던 1인당 국가채무는 588만원이 더 늘었다. 이전 16년간의 증가추세에 비교하면 2배다. 국가부채 비율이 내년엔 사상 처음으로 국내총생산(GDP)의 50%를 넘을 것이라고 정부 스스로 전망한다.

                                                                   


 인구가 줄면 세금 낼 사람도 줄어든다. 청년이 갚아야 할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런데도 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은 재정여력이 충분하니 빚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부아를 돋운다.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대표 시절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마지노선이라고 했던 40%를 넘은 지 오래다. 한국의 나랏빚 증가 속도에 주목하는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머지않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위험수위인 60%까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내년의 600조원 슈퍼예산도 명분이야 코로나19 극복 대책이라고 내세우지만 대통령선거 지방선거용이라는 걸 모르는 유권자가 없다. 한국인이 선망하는 유럽 복지국가들은 재정건전성을 더 철저히 지킨다.


 국민의 혈세로 메워주는 공무원연금개혁 등은 발등의 불이지만 표가 떨어질까봐 폭탄 돌리기만 한다. 2020년 기준 퇴직 공무원·군인에게 향후 연금으로 지급해야 할 돈인 연금충당부채가 처음 1000조원을 넘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전인 2016년 752조원과 비교하면 4년 만에 약 40% 급증했다. 현 정부 들어 공무원이 11만명이나 늘어나면서 노후를 보장받은 공무원만 태평가를 부른다. 앞선 정부에선 공무원연금개혁 흉내라도 냈지만, 현 정부에선 걱정하는 모습조차 찾아볼 수 없다.


 나랏돈 1조원, 10조원쯤은 쉽게 써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정부여당에서 팽배해 있다. 재정안정은 다음 정부부터 하라고 노골적으로 얘기한다. 단군 이래 처음으로 자식세대가 부모보다 더 못사는 세상을 물려주면서 빚더미를 더 얹어주는 건 나라를 경영하는 사람들의 양심불량이 아닐까.

                                                                                    이 글은 내일신문 칼럼에 실린 것입니다.